Social Theory 11장 중 pp.290-307. 

앤서니 기든스의 magnum opus, The Constitution of Society. 
행위이론의 관점에서 다음의 여섯 가지 점을 지적할 가치가 있다. 

1) 그는 행위를 분석할 때 단위 행위unit act를 기준점으로 삼는 것을 비판했다. 기든스는 현상학적, 프래그머티즘적 인사이트를 받아들여 행위를 전체론적인 흐름(durée)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보았다. Durée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생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것이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독립된 사고의 연결이 아니라, 우리의 지각이 마치 음표들이 서로 합쳐져 음악을 이루듯이 서로 섞여들고 녹아드는 경험의 흐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기든스는 의식에 대한 이러한 사고를 행위에도 적용시킨 것이다. 오직 회고적으로 볼 때에만 우리는 분리된 행위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2) 그는 행위가, 목표 설정에 뒤따른다는 생각을 깼다. 이는 파슨스의 행위의 준거틀과 상반되는 것이다. 행위의 지향성(intentionality)은 행위 외적인 것--즉 행위자가 행위 전에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이 아니라, 그것은 행위를 하는 중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행위의 지향(의도)은 행위 중에 계속되어 수정된다. 기든스는 이를 “행위에 대한 성찰적 관리reflexive monitoring of action”라고 불렀다. (비판, 문제점 존재) 

3) 그는 행위자가 행위를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적인 개념에서 벗어난다. 일상의 행위는 대개 routine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그는 routine적 행위와 autonomous한, deliberate한 행위의 이분법을 깨고 싶어했다. 그가 지적한 Concentration camp의 수용자들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행위에서 루틴과 autonomy는 뗄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routine이 행위의 잠재력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그는 역시 행위의 육체성(corporeality)에 주목한다. 행위와 몸에 대한 전의식적인(preconcious) 통제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e.g. 자전거를 타는 것)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은 행위시 몸을 도구로 간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위는 routinized physical movements의 기반 위에서 진행된다. 

5) 앞의 지점에서 따라나오는 것인데, 그는 다른 이론가들과 달리 인간의 상호작용에 있어 몸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예컨대 제스처, 표정, 기타 표현 등은 체면을 지키거나 체면을 잃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이러한 통찰은 Goffman에게 많이 빌려옴). 이는 간접적으로 하버마스에 대한 비판인데, 왜냐하면 인간의 상호작용이란 단순히 특정 타당성 주장을 던지는 intelligent machines들의 상호작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cf. 공현전Copresence)

6) 기든스는 행위의 인지된acknowledged, 그리고 인지되지 않은 조건을 구분한다 (“knowledgable actor”, Ethnomethodology에 영향받음). 그리고 그는 또한 인간 행위의 의도되지 않은 여러 결과들을 구분한다. 하지만 머튼 같은 기능주의자와는 달리 그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를 기능주의적 논변에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side effect들의 결과들이 안정적 구조나 체계를 지탱한다는 개념이 매우 문제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식별할 수는 있지만, 구조는 사실 끊임없는 변화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구조의 이원성the duality of structure” 구조는 처음에 행위를 가능하게 하고, 행위자들에 의해 단순히 재생산되는 것 같지만, 그것은 꾸준히 행위자들에 의해 변형된다. 


기든스의 사회 질서에 대한 이론
A) 기든스는 근본적으로 반-기능주의자이다. 인식론적으로 우선 그는 기능주의가 인과를 뒤섞고 존재하지 않는 원인을 만든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그는 기능주의적 사회질서론에서, 사회적 관계가 고정적이고 행위자가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틀렸음을 지적한다. 그의 구조화 개념은 행위자들이 구조를 재생산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고 변화시킨다는 관찰에 근거한다. 그런데 이는 기든스가 체계라는 개념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세계에는 매우 고정적인 패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회 구조가 매우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체계에 대해 emprical understanding을 시도한다. 즉 동일한 종류의 행위가 계속해 시도되고 그것을 유발하는 피드백의 루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야 우리는 체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기든스의 트레이드마크는 그가 그의 행위이론에서 사회 질서 이론을 도출해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B) 기든스는 권력power 개념을 행위에 곧바로 연결시킨다. 개인의 행위를 이해할 때 권력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여러 행위자들은 권력으로 통합되어 있거나integrated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대단히 추상적이기에 단계적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기든스는 우선 베버의 권력 개념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베버는 권력이 제로섬 게임이라고 보았는데, 사회학의 역사에서 볼 때 그런 식으로 작업한다면 권력의 분배에만 관심을 쏟게 되기 마련이고 이는 비판에 직면하기 쉽다는 것이다. 파슨스는 권력이 돈처럼 매개체medium로 이해되어야 하고, 권력은 축적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든스는 이런 파슨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 (이는 아렌트Arendt의 폭력의 대하여On Violence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특히 권력의 생산에 관심을 집중한다. 어원적으로 볼 때 권력power/pouvoir은 행위할 수 있음to be able, 능력ability를 나타낸다. 즉 기든스는 권력과 행위함 모두가 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권력이 부재한 행위란 있을 수 없다. 디드로의 『자크와 그의 주인』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제시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생각해본다면, 피통치자 역시 권력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는 권력을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이 아닌, 다면적으로 인식한다. 권력은 경제적인 것일 수도, 정치적인 것일 수도, 군사적인 것일 수도, 지식에 기반을 둔 것(푸코)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기든스는 행위와 권력을 연결시킴으로써 하버마스나 록우드의 ‘사회 통합’ vs. ‘체계 통합’에서 사용된 이론적 이원론(전자에는 행위이론을 전개하고 후자에서는 기능주의 이론을 전개하는)을 타개하고자 한다. 그는 민속방법론자나 고프먼, 상징적 상호작용론 이론을 빌려, Social integration을 행위자들이 공현전하고 서로를 관찰할 수 있는 연결상태로 정의한다. 그런데 행위가 공간적-시간적 떨어짐distance을 넘어 연결될 수 있는데, 기든스는 이때 ‘system integration’의 문제가 생긴다고 보았다. 상호작용론자나 민속방법론자는 이에 대해 만족스러운 설명을 내놓은 적은 없다. 

그는 체계의 통합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기능주의적 논변에 기대기보다는 어떻게 시공간의 원격화distanciation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되었고 이 측면에서 다양한 문화에서 어떻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발전되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거시적인 주제를 설명할 때 행위와 권력의 개념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C) 기든스의 이러한 사회 질서 이론은 파슨스 류의 규범주의적 기능주의 비판으로 연결된다. 파슨스는 규범과 가치 등으로 이해관계의 충돌이 조정되고 거시적 질서가 유지되는 평화주의적인 질서를 상정했다. 기든스에게 있어 질서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규범이나 가치는 이차적인 문제인데,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과 이동의 수단이 기술적으로 확보되어야--즉 특정한 권력의 기제들이 확보되어야--확산될 수 있다. 

이는 마이클 만도 지적한 사회학에서의 ‘사회’ 개념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사회학에서 사회는 흔히 검토 없이 국민국가 단위로 상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를 연구할 때 우리는 권력의 네트워크가 중첩되고 사회 구조가 경계로 확정될 수 있는 것이 형성되었는지 경험적으로 먼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맑시즘과 같은, 거시적 구조에 적용된다고 가정되는 단일한 논리를 거부한다. 대신 기든스는 근대성과 근대 국민국가가 다양한 제도적 복합체로 형성되는 긴장의 장field에 의해 대표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러 가지 힘들에 의해 형성되는 자본주의의 복합체와 산업주의적industirialism 복합체, 국가 체제의 복합체를 구분한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동학dynamics은 근대 사회를 추동한 중요한 것이지만, 이것 말고도 기술의 동학 또한 산업적industrial 근대성을 추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국민국가 체제가 앞의 두 dynamics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신만의 이중적 동학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본다: 1) military dynamic. 2) 감시의 테크닉과 같은 행정 기구. 

기든스 행위이론의 난점: 그는 민주주의 운동을 근대 국민국가의 행정력이 사회적 관계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의 결과로 보았는데 이것은 민주주의, 인권 등의 문화적 뿌리를 간과한 것이 아닌가. 

기든스의 사회 변동에 관한 이론
이전 장들에서 기능주의적 사회 변동 이론은 진화론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기능주의를 근본적 수준에서 깬 기든스는 사회 체계가 내생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진화하고 움직인다는 관념과 별 관련이 없다. “knowledgeable actors”들의 resource 동원 능력과 그들 행위의 여러 부작용side-effects들을 고려할 때 역사와 사회 변동은 episodic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