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프먼, 『자아 연출의 사회학』
어빙 고프먼, 『자아 연출의 사회학 (원제: 일상 생활에서의 자아 연출)』 진수미 옮김, 현암사.
제3장 영역과 영역 행동, 제4장 모순적 역할
(단상)
1. "대규모 집회장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연설[처럼]... 흔히 공연에는 공연자와 관객이 주의를 기울이는 시각적 초점이 하나뿐이다. 그러나 제각기 말로 상호작용을 하는 여러 무리로 구성된 공연도 있다."(139)
대규모 정치 집회장에서도 칵테일 파티처럼 여러 하위 집단이 존재함을 관찰할 수 있다. 집회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연단 위에 주의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대규모 집회에서는 주변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나 같이 집회에 온 친구 혹은 가족들끼리 잡담을 하거나 안부를 교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도 매우 큰 규모의 집회에서는 열성적인 참여자들이나 '바람잡이들' 정도를 제외하고는 공연자들이 꼭 연단 위의 연설자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연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다. 집회장에서 상호작용이 다초점으로 존재함을 고려하면 더욱 의미있는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
2. "무대 위에서 하는 개인의 공연은, 영역을 지키고 특정 기준을 실행하는 겉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140)
개인은 상황 정의 뿐만이 아닌 공연의 영역을 지키고자 한다는 고프먼의 새로운 분석 틀은, 관객들이 상황 정의를 지킨다고 언급한 제1장에서의 분석 틀과 엄밀히 구분되는가? 개인은 상황 정의의 노선을 정하는 데에 무대의 영역을 고려하기 때문에, 공연의 참여자들이 개인의 앞무대만이 아닌 무대의 다양한 영역들을 지키는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3. "[뒷무대는] 체면을 지키려고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옷차림을 허물며 '연기를 멈춘' 순간이다. ... 침실을 집 안의 활동 공간과 분리 배치하는 관행도 그 때문이다. 또한 침실은 또 성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성 행위는 행위자를 곧장 또 다른 상호작용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드는 상호작용의 형태이기 때문에, 분리 배치된 침실이 더 쓸모가 있다."(155-156).
사람들은 물리적 공간을 재배치하며 앞무대와 뒷무대를 배치한다. 물론 앞무대와 뒷무대를 구분짓는 기준은 사회의 규약 내지는 상징이다(Symbolic Interactionism의 관점). 하지만 공간은 그 자체로 물리적이고 여러 사회적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이를테면, 집값이 비싼 대도시 원룸에 사는 사람들은 침실의 공간을 따로 배치하기 어렵다. 침실이 있는 공간에서의 성관계와 없는 공간에서의 성관계는 사람들에게 다른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물리적, 사회적 제약에서 개인들이 공간에 부여하는 상징적 내용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시공간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고프먼의 분석은 대체로 정해져 있는 사회의 무대들을 기술하고 분류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의 무대들이 어떤 이유나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하게 되는지 알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4. "물론 정기 공연을 위해 마련된 무대도 공연 전후로 무대 뒤로서 기능하는 때가 있다. ... 그렇다면 무대 위와 무대 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특정한 공연을 준거로 삼는 것이고..."(163)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고프먼 역시 언급한 성당의 경우 행위자들은 그 장소 자체가 가지는 상징의 힘 때문에 성당을 뒷무대 혹은 무대 뒤로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무대가 공연 전후에 무대 뒤로 활용될 수 있다면 그 공간에 부여된 상징적 의미가 그다지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질문)
1. p.207 마지막 문단 ("비슷한 예로~"): 무슨 뜻인가? "준거점을 한 공연에서 다른 공연으로 옮겨야 충분히 탐구할 수 있는 문제"라 함은 무엇인가?
2. p.209-210에서 착안하여... 중고등학생들에게 학교 내외부에서의 '건전한' 처신을 강요하기 위해 교복을 입히는 경우: 복장 규제를 통해 학생으로 하여금 연극에서 (비교적 조직적 성격이 강한) 학생 동료 집단이라는 배역을 맡으라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여 품행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동료 집단"(209)은 보통 외부적 표식 등으로 쉽게 식별 가능하고 categorizing 가능한 소수자들이 주로 되지 않을까? e.g. 소수 인종이나 민족의 범죄가 대중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경우; 또는 많은 부분에서 여성의 경우.
3. 서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동료 집단을 팀으로 간주할 때 (=팀 개념을 거시적으로 확장할 때) 문제점이란? 국가적 이미지 때문에 해외 여행 중 자신의 처신을 조심하는 한국인을 두고 연기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경우 거시적으로 확장된 팀 개념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제5장 배역에서 벗어난 의사소통, 제6장 인상 관리의 기술, 제7장 결론
1. “공연은 팀 성원들이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다른 현실이 가능한지 시험해보고 또 다른 종류의 공연을 상상하거나 연출해보는 것이기도 하다.”(259)
『자아 연출의 사회학』을 읽는 중 제5장의 “관계 재구성” 절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왜냐하면 책의 내용 중 다른 대부분이 상호작용[연극]에서 지켜져야 할 규범이나 각자 팀의 상황 노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한 전략과 같은 정태적인 것들을 논했다면 이 부분은 상호작용에서의 팀들이 노선을 변경하는 데에서 관찰되는 비교적 이행적인 것들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관계 재구성의 방법 중 하나는 “노출성 의사소통”인 “속내 떠보기”나 “이중화법double talk” 등이 있다. 왜 관계를 재구성하는 데에 사용되는 기법들은 대부분 무대 뒤에서 이뤄지거나 암시적 신호로 제시되는 등 은밀한 형태를 띨까? 참여하는 팀들이 채택한 노선이 무너질 때의 어색함 등의 불이익이 상당히 크기 때문인가, 혹은 개인이 견지하는 노선 혹은 ‘가면’은 그 자체로 지켜져야 하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인가?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일상생활에서의 상호작용은 쉽게 변하지 않는 보수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 공연의 판을 뒤집기 위한, 즉 “사건incidents”을 만들기 위한 연극 참여자들의 행위는 제6장의 첫 부분(263-67)에서도 다뤄진다. e.g. ‘불의의 기습’, ‘결판내기’, ‘소동’. 또한 연극적 관행이 변해온 몇몇 사례들에 대해서는 307-310쪽도 참조.
2. “연극적 훈련의 초점은 아마도 표정과 목소리의 조절에 있을 것이다.”(273)
근대 사회에서 몸의 훈육(discipline)이 제도적 차원으로 이뤄지는 대표적인 장소는 학교, 군대, 감옥이다. 이러한 장소에서 훈육을 거침으로써 개인들은 시계로 측정된 일정한 시간 동안 비교적 일정하게 몸짓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유년기 아동들을 엄격한 연극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예컨대, 장례식장)에 데려 가지 않는 부모들의 결정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연구 과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학교, 군대, 감옥 같은 근대적 제도가 형성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상호작용의 예법은 엄격하지 않은 경향을 띠는가? 바꿔 말해 그러한 사회에서 연극적 훈련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서구 근대 사회와 상당히 다른 방식을 띠는가?
3. “나는 공연자의 방어적 인상 관리 기법이, 관객과 외부인이 공연자를 도와주려고 발휘하는 요령 및 보호 성향과 짝을 이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286)
공연자가 연극의 앞뒷 무대를 분리하고 상황 노선을 유지하고 성공적인 연출을 행하기 위해서는 관객이나 상대 팀, 혹은 외부인의 요령에 상당히 의존해야 한다. 상호작용이라는 의례(ritual)는 연출자와 관객 모두가 받들어야(hold) 하는 것이기 때문이겠다. 극적 비유를 적용시켜 보아도, 관객들의 일정 수준의 호응과 협조 없이는 극이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프먼은 “관객이 되면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 근본적인 민주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293). 우리는 언제나 사회의 무대에서 관객과 공연자를 오가기 때문에, 공연자의 입장에서 관객의 입장을 추정하는 식으로 “벌어질 일들”을 “우려”하고, “자신과 관객에 대한 양가감정”을 가진다. 고프먼은 지적한다. “이 모든 문제는 인간이 직면하는 상황의 연극적 구성 요소들”이라고(296). 탁월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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