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Social Science Bites (사회과학 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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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브루어가 C. 라이트 밀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John Brewer on C Wright Mills)
전문全文 번역 

나이젤 워버튼: C. 라이트 밀스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회학자 중 한 명입니다. 밀스는 사회학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사회학자들은 중립을 지키기를 그치고 변화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62년에 단명(短命)했지만, 밀스의 사상은 60년대의 반문화에 동력을 제공했지요. 퀸즈 대학에서 강의하는 존 브루어(John Brewer)는 밀스의 열정적 추종자(a passionate admirer)입니다. 

데이비드 에드먼즈: 안녕하세요? 소셜 사이언스 바이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존 브루어: 감사합니다. 

에드먼즈: 오늘 말할 주제는 밀스와 사회학에서 그가 갖는 중요성입니다. 밀스와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담을 시작할까요? 

브루어: 네. 그는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목축업자(rancher)였어요. 상대적으로 교육바딪 못하고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요, 밀스는 물론 그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는 텍사스 대학에 갔는데 군사학교였습니다. 그렇지만 성취도가 매우 높았고, 결국에는 콜럼비아 대학에 들어갔고 뉴욕 그리니치(Greenwich)에 거주했습니다. 

에드먼즈: 그렇다면 밀스는 텍사스에서의 교육과 이후 동부에서의 삶으로부터 둘 다 영향을 받은 셈이군요.

브루어: 정말로 그렇습니다. 밀스의 저작을 읽으면, 텍사스와 동부라는 두 전기적(biographical) 공간을 두고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알아챌 수 있지요. 그 공간들이란 시골이고 덜 특권적인(underprivileged) 텍사스와 뉴욕 시내입니다. 그는 두 공간의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살았습니다(lives on the edge of both). 저는 아마 그 두 사회적 공간 사이의 충돌이 그에게 미국 사회의 본질에 대한 어떤 특별한 통찰을 주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배경에서 자라서 빈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죠. 

에드먼즈: 밀스는 살면서 속물들에게 많이 시달렸다고 하는데요.

브루어: 물론입니다. 즉 그는 텍사스 출신이라는 점으로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문화자본의 결여라고 부르는 것 때문에 놀림을 받은 셈이죠. 당시 최고의 사회학자 중 한 명이었던 에드워드 쉴즈(Edward Shils)는 밀스를 두고 그가 앞으로는 거의 읽지도 않을 책을 가방에 담고 그리니치에 겨우 올라왔다고 말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지금 쉴즈가 CIA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고 밀스를 굉장히 위험한 인물로 바라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에드먼즈: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회학자로 밀스는 알려져 있는데요. 그가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브루어: 그는 두 가지 점에서 굉장히 특별했습니다. 첫째는 미국 사회에 대한 그의 관심입니다. 그는 훌륭한 책 세 권을 썼는데, 그것들은 미국의 계급구조 변화를 반영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밀스는 미국의 대외 정책(foreign policy)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캐리비언에서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책 두 권을 썼고, 또 물론 밀스는 세계대전에 관한 글[The Causes of World War Three]을 썼는데, 이는 굉장히 문제적인 미소 관계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정리하면 밀스는 우선 미국 사회에 대한 급진적 비판가로 유명한데, 또 다른 점으로는 그가 사회학에 대한 급진적 비판가였다는 점에서 매우 유명한 것입니다.

에드먼즈: And what did that consist in? 

브루어: 밀스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1959년에 출판됐는데 유럽에 안식일(on sabbatical)을 갔을 때 집필됐습니다. 그 점이 매우 중요한데요, 그 책에는 사회학적 상상력에 대한 밀스의 이해에 유럽 사회학의 흔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유럽 사회학의 특징은 바로 그것의 뿌리가 도덕철학이라는 것이고, 또 사회학이 무엇보다도 근대의 사회적 조건을 진단하는 학문으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미국 사회학은 두 개의 지배적 전통에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었죠. 하나는 추상 이론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밀스가 추상적 경험주의라 부른 전통입니다. 전자는 일반이론을 강조하고 후자는 과학적 방법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밀스는 유럽의 전통에 단단히 뿌리를 둔 사회학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 낸 것이죠.

에드먼즈: 따라서 밀스는 개인이 그저 추상적인 그림의 데이터로만 간주되는 경향과 싸운 셈이군요. 

브루어: 정확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밀스가 두 가지 전기적(傳記的) 공간, 그러니까 텍사스에 기반을 두었지만 뉴욕 그리니치에서 살아온 생애적 이력 사이에서 살아오며 받은 영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그는 보통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겪는 생생한 영향을 포착하는 데에 매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밀스는 사회학이 규범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즉 사회학은 사회적 조건(social condition)을 진단하는 동시에 그것을 개선하는(ameliorate)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는 사회학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노력들의 학문으로 조형(造形)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을 거대이론의 추상적 범주로 간주하기도 거부하고, 추상적 경험주의의 그저 추상적인 통계적 범주로만 간주하기도 거부한 것입니다.

에드먼즈: 밀스가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썼다고 하셨는데요. 밀스가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의 삶의 측면들에 대해 예시를 제시해 주실 수 있나요? 

브루어: 미국의 변화하는 계급 구조를 다룬 글에서 밀스는 새로이 생겨나는 중간 계급(emerging new middle class)에 대해 상당히 강조했습니다. 즉 ‘조직 인간’(회사인간; the organization man)인데요, 물론 오늘날 우리들도 그들에 대해 이야기들 하죠. 조직 인간은 회사에 고용되어, 회사에 의해 삶이 결정되고, 충성은 회사에 향해 있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밀스는 이러한 새로운 중간 계급이 힘을 잃고(neutered), 구속을 받고(constrained), 그들이 갇혀 있는 사회적 상황을 파악할 수 없고, 거대한 사회 구조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과정을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밀스가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써서 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사회학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문제(private troubles)들을 공적인 이슈(public issues)로 바꿔야 할, 그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구조적 힘을 그들 스스로 이해하게끔 돕고 그들이 더 잘 살며 정치적 동원(mobilization)과 행동에 참여해 사횢거 조건을 바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규범적 의무를 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에드먼즈: 그러한 구조적 구조를 인식하게 하는 밀스의 방법론은 무엇인가요? 통계 자료를 분석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특정한 형식의 에스노그라피인지? 메모판(clipboard)를 들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찰을 했는지?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지 못하는, 그러나 그들에게 작용하는 힘을 식별해 내기 위해 밀스는 어떻게 했나요? 

브루어: 사실 그 점에서 밀스가 가진 역설(paradox)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거대 이론을 빈정거림에도(lampoon) 불구하고, 2차적 자료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어요. 에스노그라피를 수행하지도 않고, 통계 연구를 하지도 않고, 이차적 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 점에서 밀스의 모델은 베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스 베버 연구에는 메모판(clipboard)도 없고, 사회 조사(social survey)도 없고, 심층 질적 인터뷰도 없지요. 연구는 우선적으로는 이차적 자료, 이차적 소스에 의존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합쳐져서 분석적 서사(analytic narrative)를 형성합니다. 많은 측면에서 밀스는 그가 비판하는 추상적인 이론가와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밀스가 주장하는 사회학은 실질적이고(substantive) 현실적인 삶의 이슈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죠. 미국의 변화하는 계급 구조, 미국의 외교 정책, 미국의 쿠바 공격이나 소련 공격 같은 것들 말입니다. 

에드먼즈: 그렇다면 미국 사회를 탈구축(deconstructing)하는 데에 있어서, 밀스는 역사를 이해하고, 미국이 어떻게 이런 자리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고, 단지 단편적 풍경(snapshot)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네요? 

브루어: 그것이 제가 밀스를 왜 가장 유럽적인 미국 사회학자라고 일컫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밀스는 역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인의 생애가 갖는 중요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학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상상력은, 사회학이라는 학문(discipline)이 제시하는 전망(promise)은, 밀스의 묘사에 따르면, 바로 개인과 개인의 생애, 개인의 생생한 경험에 대한 강조를 사회 구조와 역사에 대한 강조와 조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밀스는 아주 많이 유럽적입니다. 밀스는 미국에 대해 애증(愛憎)의 관계를 갖고 있었어요. 유럽에서 그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곤 했죠. 그 편지들에는 온통 미국에 대한 향수(鄕愁)가 있었습니다. 사실 유럽에 거주함으로써 밀스는 그의 문제설정이나 이해, 그리고 그의 원동력이 사실 미국 사회를 분석하는 것에서 왔음을, 그리고 미국 사회가 그가 있어야 할 곳임을 깨닫게 된 것이죠. 밀스의 애증을 이해할 수 있나요? 밀스는 미국의 사회구조, 정치를 혐오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역시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에드먼즈: 그는 미국을 바꾸고 싶어했죠. 그리고 선생님 그것이 밀스의 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규범적 차원이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선생님은 규범적 의제(normative agenda)를 가지지 않은 사회과학자는 사회과학자로서의 역할 충족에 실패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브루어: 밀스는 그러한 용어로 말한 적은 없지만 말씀하신 바가 정확합니다. 사회학의 전망(promise)은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밀스가 묘사하듯 사회학자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켜야 할 규범적 책임(normative commitment)을 가질 의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이유 때문에 밀스가 유명해졌다고(popular) 봅니다. 그의 죽음 몇 년 후 60년대 후반에 반문화 운동이 출현했는데요, 이러한 거의 반과학적인(anti-science) 움직임은 밀스로 하여금 그들의 세대의 대변인이 되게끔 만들었습니다. 비록 밀스는 1962년에 사망했지만요. 민권 운동의 바리케이드에 선 사람들과 사랑의 여름(the Summer of Love; 미국 서부에서 히피 문화가 절정을 이룬 1967년 여름을 사랑의 여름이라고 칭한다—역주)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밀스와 함께했던 것이죠. 

에드먼즈: 밀스는 확실히 좌파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밀스가 FBI의 주의를 끌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밀스는 우파 사회학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우파 사회학자도 규범적 의제를 가질 수 있는데요.

브루어: 그것은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이에 관해 우리는 밀스의 서신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밀스의 편지들에서는 그의 사회학적 글(sociological writings)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무뚝뚝함(brusqueness)과 거칠음이 있습니다. 그 편지가 사적인 것이고 그가 두 정치적 그룹에 모두 비판적이었다는 데에서 오는 신랄한 문체(vitriol)가 있었습니다. 밀스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개혁적이지 않은 좌파(the unreconstructed left), 낭만적 좌파(the romantic left)에 굉장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일반적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포착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사회학의 분파들에게도 비판적이었습니다. 

에드먼즈: 밀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가 굉장히 글을 유려하게 쓰는 사람이며 그것이 그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설명한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브루어: 정말로 그렇습니다. 밀스는 포퓰리스트인데, 두 가지 의미에서 포퓰리스트입니다. 첫 번째 의미로, 밀스는 사회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특별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사회학이 유명해졌으면 바랐습니다. 그런데 다른 의미로도 그는 포퓰리스트였는데 즉 그는 매우 대중적인 방식(popular fashion)으로 글을 썼던 것입니다. 그는 어려운 전문용어(jargon)을 쓰는 사회학의 경향을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조롱했어요. 그 책에 참 아름다운 글이 있습니다. 거기서 밀스는 탤컷 파슨스(Talcott Parsons)의 사회 일반 이론에 대한 글을 발췌를 해서 그것을 몇 문장 수준으로 압축적 요약을 했죠. 비록 밀스가 그 책에서 ‘개소리(bullshit)’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밀스가 요약해 하고 싶었던 말이 그런 것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지요. 그러니까 밀스는 포퓰러라이저(populariser)였습니다. 사회학이 일반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사회학이 일반 사람들에게 통찰을 주어 그들이 밀스가 정치적으로 참여적인 만큼이나 정치적으로 참여적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에드먼즈: 밀스의 유산에 대해 요약하자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브루어: 이제 우리는 밀스의 모순(paradox)에 다다른 것 같네요. 밀스는 사망 후 미국 사회에서 빠르게 나타난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밀스는 1962년에 사망했는데 예컨대 민권 운동의 부상을 예측하지 못했죠. 밀스의 책은 젠더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요, 인종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한 밀스를 받들어(in Mills’ name) 바리케이드를 치는 학생 세대가 출현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점은 미국이 최후의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소련의 종말을 예상하지 못했죠. 이것 때문에 저는 밀스가 정말로 당대를 살았던 사회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밀스는 1950년대 후반 미국의 외교정책과 사회 구조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밀스는 그것이 어떻게 급격히 변할 지 예측할 수 없었고, 따라서 변화하는 계급 구조에 대한 그의 연구와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한 그의 연구는 사실상 오늘날 외면받고 있습니다. 밀스는 사회학의 급진적 비판가로 매우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유명한 책은 『사회학적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국제사회학회(International Sociological Association)는 사회학자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사회학 책을 알려 달라고 여론조사를 했는데, 베버의 『경제와 사회』가 1위를 차지했고 밀스의 그 책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이 설문조사는 다음 링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isa-sociology.org/en/about-isa/history-of-isa/books-of-the-xx-century —역주). 『사회학적 상상력』은 일종의 슬로건(bumper sticker)가 되었고, 밀스는 사회학의 본성에 대해 급진적으로 비평을 하고자 하는 사회학자 세대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그는 그것으로 매우 유명해졌죠. 우리 세대의 경우 밀스는 언제나 우리들이 따라야 할 별이 될 것입니다. 

에드먼즈: 존 브루어 선생님, 감사합니다.

브루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