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 올림픽: 분석 과제[각주:1]
Pierre Bourdieu. 1998. “The Olympics—an Agenda for Analysis.” in On Television, trans. P. Ferguson. New York: The New Press. pp.79-82.

올림픽을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우선 우리가 올림픽이라는 단어로 지칭하는 것은 겉보기에는(apparent referent) “실제” 일어나는 현상들인 것 같다. 즉, 다시 말하면,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운동 선수들이 보편주의라는 이상의 상징과 함께 스포츠 경기를 펼치는 장대한 스펙터클과, 상당히 국가주의적이고 심지어는 애국적인 각 나라 팀들의 퍼레이드 및 국가(國歌)들이 요란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만국기 아래에서 열리는 시상식 행사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들이 올림픽이라는 말로써 지칭되는 무엇인 것 같다.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단어의 숨겨진 지시체(hidden referent)는 곧 텔레비전 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영상으로 녹화가 되어 텔레비전에서 선택적으로 방영되고 스포츠 경쟁은 국제적인 것이니까 국가적 편견에 때묻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스펙터클의 표상들의 앙상블인 텔레비전 쇼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올림픽은 두 가지 의미에서 숨겨져 있는 셈이다. 아무도 그것의 전모(全貌)를 보지 못하며, 그리고 아무도 그들이 그 전모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텔레비전 시청자 모두는 실제의 올림픽 그 자체를 보고 있다는 환상에 빠질 수 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올림픽은 그저 단순히 일어나는 사건들을 녹화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각 나라들의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그들 나라의 국민적 자존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운동 선수나 이벤트들에 더 많은 방영 시간을 할당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실제로는 전세계에서 모인 운동 선수들의 스포츠 경기가 텔레비전에 의해 각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선발된 선수들인 챔피언들의 맞붙음으로 변환되는 셈이다. 

이런 상징적 변환(symbolic transformation)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올림픽 스펙터클 전체의 사회적 구성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개막식이나 폐막식 같은 올림픽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 전체와 개별 사건들에 눈길을 보내야 할 것이며, 그 다음에는 이 스펙터클을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이미지로 만드는 프로덕션 과정을 살펴야 할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이벤트는 곧 광고에 쓰이는 소품이기 때문에, 텔레비전 이벤트는 가장 많은 시청자들에게 도달해야 하고 또 최대한 긴 시간 동안 전파를 타도록 설계되어야 하는 상품이다. 텔레비전 이벤트들이 경제적으로 패권을 쥔 국가들의 황금 시간대에 꼭 전파를 타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것을 방영하는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수요를 맞추도록 조정되어야만 한다. 각각의 스포츠에 대한 각 나라의 대중들의 기대와 그들의 선호가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기 있는 종목과 텔레비전에 나오는 대회는 경기에서 이겨서 국민적 자존심을 높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대표팀을 내보내기 위해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한다. 그런 결과로 국제 스포츠 기구 내의 각각 종목들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그것이 텔레비전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줄지에 좌우된다. 텔레비전 방송이 부과하는 제약 요건들은 올림픽 경기 종목의 선택은 물론이고, 올림픽 개최지와 각 스포츠 경기에 할당된 시간대, 심지어는 경기들과 세레모니가 열리는 방식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왜 서울 올림픽의 마지막 핵심 이벤트가 (엄청난 재정적 고려를 둘러싼 협상 끝에) 우연하게도 미국의 텔레비전 황금 시간대와 같은 시간에 배정되도록 계획되었는지가 비로소 설명된다.

위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올림픽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는 쇼 혹은 마케팅 용어로는 “커뮤니케이션 수단(a means of communication)”으로서의 올림픽을 생산하는 장 전체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올림픽에 대한 이미지와 해설을 생산하고 팔고자 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행위자들과 제도들의 객관적 관계들의 총체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석 대상으로는 첫 번째로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있을 것이다. IOC는 소수의 폐쇄된 스포츠 중역들과 중요한 기업(아디다스, 코카콜라 등등)의 대표단들에 의해 장악된, 점점 성장하여 매년 이천만 달러의 예산을 쓰는 거대한 상업적 기업이 되었다. IOC는 송출권(바르셀로나에 대한 송출권은 633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과 스폰서십에 대한 권리와 올림픽 개최 도시 선정에 관한 사항을 통제한다. 둘째로는 (각 나라 혹은 언어권에 따른) 송출권을 두고 경쟁하는 (특히 미국의) 거대한 텔레비전 방송국에 주의를 돌려야 할 것이다. 셋째로는 자신들의 상품을 (“공식 스폰서”라는 명목으로[각주:2]) 올림픽 게임과 관련지어 프로모션하는 것의 전세계에 대한 배타적 권리(exclusive world rights)를 두고 경쟁하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코카콜라, 코닥, 리코[Ricoh], 필립스, 기타 등등)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신문지상의 올림픽의 이미지와 해설을 생산하는 자들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생산자들의 경쟁이, 어떤 이미지를 선택할지, 프레임을 어떻게 짤지, 어떻게 편집할지, 표현을 어떻게 수정할지 하는 식으로 올림픽에 대한 표상의 구성을 조건짓기 때문이다. 분석에 있어 다른 중요한 고려 사항은 올림픽의 스펙터클이 지구화되면서 더욱 격화된 국가 사이의 경쟁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경쟁의 결과는 국제적 스포츠 대회에서의 성공을 위해 촉진되는 국가 공식 스포츠 정책(sports policies)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공식 스포츠 정책은 국제 경기에서 승리함에 따라 얻는 상징적, 재정적 보상을 최대화하고, 또 약물의 사용과 권위주의적인 훈련을 함축하는 스포츠 프로덕션의 산업화(industrialization of the production of sports)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각주:3]

예술 작품의 생산에서도 유사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개별 예술가들의 행위는, 서로의 경쟁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생산하고 작품과 작가의 가치를 만드는 다른 행위자들—비평가나 갤러리 소유주나 박물관 큐레이터와 같은—의 활동을 보이지 않게 가릴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다른 행위자들이, 예술의 게임 전체가 가능할 수 있게 뒷받침하는, 예술과 예술가의 가치에 대한 바로 그 신념을 생산한다는 것이다[각주:4]. 비슷하게 스포츠에서도 챔피언 달리기 선수와 투창 선수는 그저 스포츠 스펙터클의 명백히 보이는 주체일 뿐이다. 이 스펙터클은 어떤 의미에서는 두 번에 걸쳐 생산되는데[각주:5], 제1의 생산은 수많은 행위자들—운동 선수, 트레이너, 의사, 대회 조직자, 심판들, 골키퍼들, 대회 개최자들(masters of the ceremonies)—이 한데 모여져 진행되는 경기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의 쇼는 이미지와 해설으로써 첫 번째의 것을 재생산한다. 보통 엄청난 일의 압박을 견디며 노동하는, 쇼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 각각을 짓누르는 객관적 관계망의 총체 속에 갇혀 있다.

우리가 “올림픽”이라고 부르는 이벤트의 참여자들은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올림픽의 두 단계의 사회적 구성(첫 번째는 스포츠 이벤트, 다음에는 미디어 이벤트)의 장막 뒤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실체를 폭로하는 조사에 진지하게 착수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연구와 성찰의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의식적 통제로서만 그들의 집합적 단결이 올림픽 게임의 정신에 체현되어 있는 보편주의—오늘날 멸종 위기에 이른—가 가지는 잠재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각주:6].

  1. 이 텍스트는 1992년 10월 2일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의 스포츠 연구를 위한 철학적 학회(the Philosophical Society for the Study of Sport in Berlin)의 연례 학술회의에서 행해진 연설의 축약본이다. 이는 이후 다음에 수록되었다.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103 (June 1994), pp.102-103. [본문으로]
  2. “스폰서들은 상품 카테고리 내의 독점성과 4년 동안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완전한 커뮤니케이션 패키지를 제공받았다. 각각의 75개 경기에 대한 이 프로그램에는 경기장 내부 광고, 공식 공급자라는 타이틀 홍보, 마스코트와 엠블럼의 사용, 가맹 사업 기회가 포함되어 있다.” 1986년 700만 파운드(1400만 달러)가 있으면 각 스폰서들은 “다른 스포츠들과 비교가 불가능한 미디어 노출 기회”를 제공받아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텔레비전 이벤트”의 지분을 가질 수 있었다. (Vyv Simson and Andrew Jennings, The Lords of the Rings: Power, Money and Drugs in the Modern Olympics [London: Simon and Schuster, 1992], p.102). [본문으로]
  3. 경쟁이 최고로 강한 스포츠 분야는 인간의 몸을 효율적이고 지치지 않는 기계로 변형시키고자 다양한 생물학, 심리학적 연구 성과를 사용하는 산업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국가 대표팀과 정부들의 경쟁은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하게 금지된 약물을 사용하고 의심스러운 훈련 방법을 채택하게끔 부추기고 있다. 다음을 보라. John M. Hoberman, Mortal Engines: The Science of Performance and the Dehumanization of Sport (New York: Free Press, 1992). [본문으로]
  4.  다음을 보라. Pierre Bourdieu, The Rules of Art: Genesis and Structure of the Literary Field, trans. S. Emanuel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6). [본문으로]
  5. 올림픽 “쇼 비즈니스” 속 여러 행위자들이 갖는 실제 가치에 대한 총액 지표로서, 한국 당국이 올림픽의 여러 중요한 인물들에게 배포한 선물 액수는 IOC 회원들에게는 1100달러에서 운동 선수들에게는 110달러로 오갔다. 다음을 보라. Simson and Jennings, Lords of the Rings, p.153. [본문으로]
  6. 예를 들어, 올림픽의 두 가지 쇼의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할 원칙을 갖는 올림픽 헌장을 제정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원래 재정적으로 공평무사함을 추구해야 했지만 그것을 위반함으로써 이득을 얻게 된 장본인인 올림픽 위원회를 굴리는 사람들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혹은, 올림픽 선서를 제정해 운동 선수들의 행위를 제약할 수 있을 것이다(예컨대 경기장 주변에서 국기를 들고 애국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다든가). 그리고 그러한 애국주의적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이러쿵저러쿵 논평하고 사람들도 규제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