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도 번역된 신간 <엘리트 독식 사회 Winners Take All>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서평을 번역. 

 

 

Meet the 'Change Agents' Who Are Enabling Inequality 

https://www.nytimes.com/2018/08/20/books/review/winners-take-all-anand-giridharadas.html

 

 

이제는 무시할 수 없게 된 상당한 정치적 영향을 불러온 지난 20년 동안 악화된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를 묘사하는 책들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나서 세계화를 다룬 두꺼운 학술서들(인정하건대 내 것까지 포함해서)이 출판되었는데, 이 책들은 서구 국가들이 지금의 이런 불공정성을 부추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혀 주저함 없이 추구한 바를 상세히 다뤘다. 

 

그렇다면 다음의 새로운 장르도 기대할 법하다. 그런 문제들을 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대 기업인들을 부드럽지만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책들 말이다. 엘리트들은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컨퍼런스에서 술잔을 한 손에 쥔 채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고 상투적인 말들만을 이야기하며 지금 우리의 비뚜름한 경제적 현실을 강화시킬 뿐이었다. 

 

뉴욕 타임스의 전직 칼럼니스트인 아난드 기리다라다스(Anand Giridharadas)는 아스펜(Aspen) 인스티튜트 컨퍼런스에서 이 현상에 대해 연설을 했는데, 이제 그는 흥미로워 보이는 신간 “엘리트 독식 사회Winners Take All”에서 이 아이디어를 더욱 심화시키고자 한다.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분투하고 세계의 선동가들이 흥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세계가 겪고 있는 이 위태로운 전환으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세계화, 기술, 그리고 시장 자유화가 수혜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것이—적어도 미국과 전세계의 선진국 대부분 사람들에게만큼은—이제 명백해졌으니 말이다.

 

세계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본인들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박애주의 정신을 가진 유력 부유층들과 열정 있는 “사회 변화의 지도자”들에게 지금이 이 악화되는 딜레마 속에서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반추할 좋은 때가 될 것이다. 이번 여름 휴가 햄프턴에서 그들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이 특권층의 일부인 여러 개인들을 각각 다룬 장들에서, 기리다라다스는 그들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있다고 실제로 믿고 있는 0.001%의 사람들이 자신의 행태를 어떻게 합리화하는지를 폭로한다. 새클러 가문은 미국 오피오이드 위기에 기여했음에도 중요한 대의를 위해 돈을 대고 있다. 시나본의 최고 경영자는 그녀의 회사가 파는 음식의 지방과 설탕의 구성 성분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회사가 끼치는 해악을 벌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파워 포인트 프레젠테이션과 무해해 보이는 선의들의 세계이다.

 

기라다라다스는 이 세계에 만연한 에토스를 “마켓월드”라고 부르는데, “마켓월드”는 무언가 “잘 하고 좋은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아스펜과 다보스, 그리고 최근까지 존재했던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스의 언어를 우아하게 포착해 낸다. 마켓월드는 “윈윈”이나 “변화를 만든다”는 기분 좋은 클리셰들로 가득 차있는 세계이다. 마켓월드 군중들의 이런 틀에 박힌 대화들은 최근 뉴욕 퍼블릭 시어터에서 상연된, 브루스 노리스가 쓴 연극 “The Low Road”의 제2막 시작 부분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기라다라다스가 마켓월드의 에토스를 그리는 바에 따르면, 마켓월드는 전직 대통령 빌 클린턴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민중들의 분노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있지만, “엘리트들의 죄를 고발하거나, 권력의 재분배와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거나, 지금 엉망이 된 세상에 관해 약간의 느낌이라도 가져볼 수 있게, 금권 정치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남들에게 넘기라고 요구하는” 데에 그들은 무능하다. 

 

살을 빼기 위해 적게 먹는 것만 빼고 무엇이라도 할 다이어터처럼, 비즈니스 세계의 엘리트들은 소셜 임팩트 투자,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 박애자본주의, 인공지능, 시장에 의해 주도되는 문제 해결 방식을 써서 세계를 구하려고 한다. 게임의 규칙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는지 질문하지 않는 대신, 아니면 더 나아가 지금의 왜곡되고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규칙들이 만들어 내는 해악을 줄이기 위해 그간의 행동을 고치는 대신, 그들은 그때그때 유행하는 상투어로 이루어진(buzzwordy) 프로그램에 수백만 달러의 펀드를 댄다. 옳은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윈윈 멘탈리티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실제 희생을 수반할 것이다. 그것을 감수하는 대신 개인적 관심이 있는 프로젝트나 변화의 ‘이니셔티브’에 집중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기는 하다. 기리다리다스가 말하듯이 사람들은 “평소에 하던 일을 좀 더 명예로운 방식으로 하는 대신 고결한 주변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한다. 

 

엘리트들이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모두에게 최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제를 일구기 위해서 마켓월드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법인세와 소득세를 지불해야 할 것이고, 노동자들에게 적정한 임금(decent wages)를 지급해야 할 것이고, 노동조합의 설립을 허가해야 할 것이고, (차터 스쿨charter school에 돈을 대는 대신) 퍼블릭 스쿨에 돈을 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개인 부담 형식의 건강 보험을 지지해야 할 것이고 금융 개혁을 지지해야 할 것이다. 사다리의 아랫 부분이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경제적으로 평등한 현실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높으신 분들 자신들이 만들어냈고 역시 그들에게 혁혁한 보상을 안겨 준 이 새로운 경제적 현실을 기념하는 다보스나 다른 국제 회의에서, 기업 리더들은 아무런 무리 없이 기후 변화와 점증하는 불평등과 금융 불안정성의 위험을 논의하는 세션으로부터 억만장자와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을 축하하고 탈규제 안건들을 환영하는 디너 파티로 유유히 이동한다. 편리하게도, 그들은 경제의 중간층을 이루는 대다수에게 세금이 올랐다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미 미국에서 기대수명이 짧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300만 명 정도에게 적용되는 건강 보험을 폐지하려는 공화당원들의 시도에 대해서도, 커져 가는 환경 오염에 대해서도, 새로운 금융 위기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례 없이 커져가는 기업의 부도덕한 양심 없는 행위에 대해서도(웰스 파고Wells Fargo의 사기든 폭스바겐의 배출 조작 사기이든) 그들은 침묵한다. 인지 부조화는 마켓월드에 내재해 있다. 

 

기리다라다스는 이렇게 자원을 잘못된 곳에 쓰는 것이 엄청난 기회비용을 낳는다고 옳게 말하고 있다. 마켓월드 사람들이 사회 질서의 닳아 빠진 주변 부분을 고치는 데에 애쓰는 시간과 돈은 정말로 실제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데에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다음과 같은 정치적 전투의 전장임을 고려할 때, 즉 대부분의 연방 대법원 판사들과 의원들이 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독점적인 권력을 강화시키고, 헬스 케어에 대한 접근을 약화시키고 여성의 재생산권을 부정하는 식으로 미국의 경제·정치 시스템에 대한 규칙을 다시 쓰려고 하는 이 때 그것은 특히 중요하다. 

 

마켓월드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는 널리 퍼지게 되었으며 그것을 신봉하는 것이 사실이 그러하듯이 문제를 더욱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책처럼 보이게 되었다. 저자는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준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요인 중 하나는 아첨꾼들인 “지식소매상thought-leader”인데, 그들은 금권 정치가들로 하여금 빈민에 대해 더 생각하게끔 유도하나 절대로 금권 정치가들에게 직접 도전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럼으로써 금권 정치가들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마켓월드의 문제 접근 방식이 실제로는 책임 회피 구실이지만 그렇지 않고 채택할 만하다고 느끼게끔 한다. 역사학자인 낸시 맥린(Nancy MacLean)의 “쇠사슬에 묶인 민주주의Democracy in Chains”라는 새로 나온 다른 책은 이기적인 이데올로기들이 퍼질 수 있는 위험한 방식들에 대한 좋은 교훈들을 보여 준다. 

 

“Inside Philanthropy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캘러한(David Callahan)이 최근의 책 “기부자들: 새로운 도금 시대에서의 부, 권력, 그리고 박애정신”에서 한 것처럼, 기리다라다스 역시 그가 쓰고 있는 마켓월드에 자신을 위치지었다. 그리고 캘러한처럼, 기리다라다스는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글을 쓴다. 언뜻 보기에 그는 두 가지 층위를 오가며, 즉 약삭 빠르고도 섬세하게 글을 쓰는데, 종국에 그는 한 계급 전체, 풍자하기는 쉽지만 개혁하기는 어려운 계급에 대해 통렬한 초상을 그려 내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고치려는 현실의 이 문제들이 매우 다루기 힘들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기리다리다스는 세상을 바꿀 처방책을 제시하는 대신 책의 마지막 문장들을 정치학자 키아라 코델리(Chiara Cordelli)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우회한다. “타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권리는, 간단하게, 권력이 있는 시민에 의해 행해질 때 부당한(illegitimate) 것이 된다.” 좀 더 분명한 결론이 내려진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코델리의 말은 이 책의 진정한 교훈을 가리킨다. 그것인즉슨 미국을 특징짓게 된, 민주주의와 높은 불평등은 그저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상류층은 언제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쓸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멋모르는 엘리트들이다. 본인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끽해봤자 그들은 문제의 주변부만을 손대고 있으며,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미미한 수정만을 가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시스템은 그래왔던 것처럼, 방해 받지 않고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이상을 모두 말해 준다. “세상을 바꾼다는 엘리트들의 가식(Char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