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박형신, 정수남)
2016년 여름학기 현대사회학이론 수업에서 과제로 제출한 서평. 기존의 감정사회학 연구와 결은 좀 다르지만 아즈마 히로키의 일반의지 2.0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첫째로 이 책에 실린 감정사회학 연구는 행위의 배후감정과 감정동학을 분석하는 것이 전부인 연구가 대다수인데 히로키는 욕망(감정)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대중들의 (비교적) 날것의 욕망을 과감히 정치에 반영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방법론적 얘기인데, 히로키가 제시한 '데이터베이스에 집적된 일반의지'의 분석이 요새 여러 매체에서 시도되는 의미망 분석으로 어느 정도 파악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또 그런 분석으로 감정을 얼마간 계량화해서 분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해서이다. 그런데 일반의지 2.0을 꽤 오래 전에 읽었고 또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감정 연구'와 히로키의 논의가 맞닿아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뿐이 든 것이고 아직 1학년이라 통계 분석 그런 것에 대해 아는 것도 없어서 글에 쓰지는 않았다.
서평: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1. 들어가며: 왜 감정이 중요한가?
2016년 5월 17일, 서울시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화장실에서 한 20대 여성이 일면식 없는 30대 남성에 의해 흉기로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불리며, 우연히 살해당한 여성에 대한 추모의 물결을 일으켰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경각심을 촉발했다. 사건 발생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5월 22일 밤까지 피해자를 추모하고 사건의 간접적 원인으로 지적된 여성혐오적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는 의미의 포스트잇이 총 1004장 부착됐다. 2 인근에서 일어난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이 사건의 사회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여성혐오 현상을 고발하는 의미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붙인 것이다. 이러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추모 포스트잇 부착 행위 말고도, 이 사건을 목도한 시민들의 반응은 집합행동의 형태로도 나타났다. 5월 21일 강남역 현장에서 약 400명의 시민들이 추모집회에 참석했고, 3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가두시위가 6월 6일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진행됐다. 4
소설가 박민규는 세월호의 침몰과 그것을 둘러싼 일련의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평하였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하고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5 이러한 사고-사건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을 해석한다면, 사건 이후 일어난 추모 물결과 집회·시위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어떤 정신 이상자가 우발적으로 일으킨 단순한 ‘사고’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즉,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멸시와 혐오 감정이 그 모습을 직접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낸 ‘사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남역 살인사건은 일반적인 살인 사건처럼 사고 발생 후 경찰이 사건을 적당히 조사하고 법원이 적절한 판결을 내리고 범죄자는 처벌받는 식으로 단순하게 전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제기될 수 있다. 일면식도 없는 한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의 동기 형성에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이해가 쉽다(실제로 가해자는 조사 과정에서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언급한 바 있고, 이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또한 여성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문제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직접적인 행동에 동참했다는 분석 역시 납득이 간다. 의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기인한 사건들이 비록 작더라도 꾸준히 있어왔는데(예컨대 성폭력 사건과 그에 대해 ‘가해의 원인을 제공한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담론, 혹은 ‘김치녀’나 ‘김여사’ 같은 비하 용어들) 왜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사회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여러 시위가 발생했는가? 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여성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사회적 행동에 나서게 한 동인(動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러한 원인을 설명하는데 감정사회학이 유용할 수 있다. 감정사회학은 “감정이 사회를 어떻게 움직여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다(31). 조야한 분석이지만, 강남역 살인사건을 둘러싼 추모와 시위 등 집합행동의 발생 원인으로 공포 감정을 지목해볼 수 있겠다. 살인사건 발생 이전에도 한국 사회의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다양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실제로 발생하고 형사처벌이 이뤄지고 통계적으로 집계되는 폭력 사건들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도 힘든 일상에서의 성희롱 및 성추행들, ‘김치년’, ‘김여사’와 같은 편견과 언어 폭력들, 그리고 더 나아가 ‘여자기 때문에’ 강요되는 여러 보수적 규범들이 여성들의 실제적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차별과 폭력을 겪는 여성들은 일차적으로 공포라는 감정 에너지를 가진다(실제로 포스트잇에 새겨진, ‘살女주세요’로 대표되는 문구들을 살펴보면 공포 감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차별과 폭력에 대한 여성주의적 문제의식 및 담론이 확산되면서, 여성들은 공포 감정을 사회로 외사(extroject)하고, 이는 분노의 표출—저항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공포의 감정이 체제를 개혁하려는 집합행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 현상의 발생 원인과 사회 변동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감정사회학은 구조와 행위를 매개할 수 있다. 위의 강남역 살인사건과 관련지어 풀어 쓰자면, ‘여성혐오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 왜 여성을 비롯한 시민들은 ‘집합행동(행위)을 펼치는지’ 그 구체적 동인을 설명하는 데에서 감정사회학은 그 힘을 발휘한다.
감정사회학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회학에서 감정은 비합리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며 백안시(白眼視)되어왔다. 실제로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감정은 사회학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가 아니었고, 지금도 어느정도는 그렇다. 예를 들어 현재 많은 대학의 사회학과에서 개론서로 널리 쓰이는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을유문화사, 2014; 영어 원제는 Sociology)의 목차를 보자. 이 책은, 세계화와 사회 변동(4장), 일과 경제(7장)에서부터 젠더와 섹슈얼리티(15장), 종교(16장), 미디어(17장), 민족·전쟁·테러리즘(22장)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사회학적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감정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감정의 발생 원인과 표출 양태에는 사회·문화적인 요소가 깊게 관여하고, “[현대의] 사람들은 문자 메시지에 찍힌 점 하나마저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으로 민감해져버렸”음에도 말이다(30). 6 박형신·정수남의 책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한길사, 2015)는 사회학에서 감정이 갖는 중요성과 감정 분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회학은 ‘합리적인 것’만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을 연구하는 학문임을 강조하면서, 저자들은 사회학의 감정적 전환(emotional turn)을 시도한다.
2. 왜 거시적 감정사회학인가?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1장과 2장에서 감정사회학의 중요성 및 거시적 감정사회학의 개념과 주요 방법론을 소개한다. 앞서 서술했듯이, 기존의 사회학 이론들과 경험적 연구들은 감정을 도외시해왔다. 물론 사회학이 감정을 아예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선 고전 사회학을 살펴보자. 베버의 ‘카리스마적 지배’ 개념이나 뒤르켐의 집합의식 논의, 짐멜의 ‘둔감함’ 개념은 고전 사회학자들이 감정이라는 주제를—중요하게 다루지는 않았지만—그래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감정은 사회학적 주제로 일부 다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됐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이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여 다룰 대상은 아닌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감정은 1) 다른 사람이나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된다는 점에서, 2) 감정을 표현하는 주체가 처한 상황적 맥락에 따라 상이하게 표현된다는 점에서, 3) 행위의 속성을 지니는 점에서, 4) 사회적 규범에 대해 조정되고 규제된다는 점에서, 5) 사회에서 종종 집단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이러한 감정의 사회적 속성에 여러 학자들이 주목한 후 1970년대 후반부터 감정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의 감정사회학은 여러 한계를 안고 있다. 요는 감정을 사회를 변화시키는 독립 변수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학 이론의 본령 중 하나가 사회의 거시적 변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하는 것일진데, 해당 시기의 감정사회학은 감정이 사회 구조 혹은 규범에 의해 구성되고 결정된다는 점만을 강조한 나머지 사회적 실체로서의 감정을 제대로 조망하지 못했다. 감정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 혹은 결정되는가, 라는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결국에 감정은 개인적 문제로만 그 중요성이 축소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던 강남역 살인사건의 문제에서도 보았듯 감정은 행위자들을 집합적으로 동원하며 특정한 사회적 현상을 낳는 중요한 동인이 된다. 따라서 기존의 감정에 대한 사회학의 논의를 넘어선 ‘거시적’인 감정사회학이 필요하다. 거시적 감정사회학은 감정이 어떻게 특정한 행위를 유발하고 그것이 거시 구조와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거시적 감정사회학의 이론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거시적 감정사회학은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사회학의 무대로 끌어올려 현실 사회의 풍부한 결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맥락성, 상황성, 관계성을 강조하는 감정사회학의 특유한 개념 때문이다. ‘감정동학’(emotional dynamics)이라는 개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감정동학은 “행위자가 처한 상황적·관계적 맥락 속에서 감정적 행위의 주체로서 행위를 전개함에 따라 발생하는 역동적 과정”이다(44). 감정동학을 이끄는 감정은 ‘배후감정’(background emotion)이다. 배후감정의 양태(과거지향적인가, 현재지향적인가? 혹은 자신을 향한 감정인가, 외부를 향한 감정인가?)에 따라 감정동학은 변화한다. 이를 통해 감정사회학은 단순히 구조가 행위를 일대일로 결정한다는 단조로운 분석에서 벗어나고, 그러한 분석 방식이 담지 못하는 여러 예외적 상황들을 설명할 수 있다.
또한 거시적 감정사회학은 사회 변동에서 감정이 미치는 영향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적 의의뿐만이 아니라 실천적 의의도 가진다.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기존의 사회학은 “개별적 사례가 갖는 특수성과 구체성을 사상시킴으로써” “비현실적인 획일적 정책 대안만을 제시해”왔는데(97), 거시적 감정사회학은 행위자의 감정형성 메커니즘과 감정동학을 파악하여, 보다 세분화된 정책 입안을 가능케 한다.
이처럼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그간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다뤄졌다 해도 고작해서는 종속변수의 위치만을 가졌던 감정이라는 존재를 독립변수의 위치로 격상시키며, ‘거시적 감정사회학’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그 관점의 틀에서 한국 사회를 분석한 저자들의 연구를 제시한다. 책의 3장에서 9장은 먹을거리 파동, 노동자의 행위양식, 신자유주의와 축소된 주체 따위의 사회적 주제를 감정사회학의 틀에서 분석한 연구들이다.
책의 8장 ‘공포정치와 복지정치’의 논의 전개 방식은 감정사회학의 의의와 이론적 강점을 잘 드러낸다. 감정사회학을 통해 구조에서 원인을 찾기 어려운 불명확한 예외적 상황의 설명이 가능해진다. 흔히 사람들은 좌파 정권이 득세하면 복지 제도가 확충되고, 우파 정권이 득세하면 복지 제도가 축소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의 복지제도 역사를 살펴보면, 복지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주요한 정책들은 주로 우파 정권에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많은 복지정책들이 입안됐다. 왜 그러한가? 당파성 이론과 정당 간의 경쟁을 다룬 이론을 살펴보면 우파 정권의 복지 정책은 예외적 상황이다. 우파 정권은 이념상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지도 않으며, 정당 간의 표심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도 복지 정책은 좌파 정당이 보통 먼저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정치적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우파 정권이 복지 카드를 꺼내든다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지만, 사실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우파 정권은 경제적 위기 모면 등을 이유로 들어 복지 정책을 축소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구조에서 원인을 찾기 어려운 불명확한 예외적 상황을 감정사회학은 설명할 수 있다. “[우파 세력이] 처한 구조적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개인적·집합적 노력은 감정동학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320). 책에 따르면, 우파 정권의 복지정치를 촉발시키는 주요 배후감정은 ‘공포’인데, 이 공포의 책임소재를 정권이 내부로 인식하느냐 혹은 외부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정치의 양상이 공포정치인지 복지정치인지 갈린다.
또한 책의 6장 ‘고도경쟁사회 노동자의 공포 감정과 행위양식’은 IMF 이후의 치열한 고도경쟁 체제의 노동자들의 행위양식을 배후감정과 감정동학 개념을 통해 총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감정에 따른 맞춤형 정책의 개발을 도울 수 있는 감정사회학의 실천적 의의를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IMF 체제 이후 보다 유연화된 고용 정책과 약화된 사회적 연대로 인해 노동자들의 공포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포 감정에 대해 노동자들은 단일한 방식으로만 대응하지 않는다. 공포는 노동자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른 배후 감정을 낳고, 이는 상이한 행위양식으로 표출된다. 공포 감정에 노동자들이 대응하는 행위양식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1) 공포 감정을 내사하느냐 외사하느냐, 2) 공포 감정에 대응하는 행위가 미래 지향적인가 과거 지향적인가가 주요 변수이다. 첫째, 공포 감정이 외사되어 현 경쟁체제를 향하고 행위가 미래 지향적이라면 배후감정은 분노로 나타나고, 노동자들의 행위양식은 체제를 변혁하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둘째, 공포 감정이 외사되나 행위가 과거 지향적이라면 배후감정은 무력감으로 나타나고, 행위양식은 체제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셋째, 공포 감정이 내사되어 자신을 향하고 행위가 미래 지향적이라면 배후감정은 수치심이고 노동자들은 이른바 ‘자기계발적 주체’의 행위양식을 취한다. 넷째, 공포 감정이 내사되고 행위가 과거 지향적이라면 배후감정은 체념이고, 노동자들은 개인적 태업과 같은 체제를 이탈하려는 행위양식을 보인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네 가지 행위양식의 기저에 존재하는 배후감정을 분석하면 그것에 맞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정책의 개발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새로운 환경과 기술에 대한 적응 교육을” 제공하는 식이다(262).
3. 경험적 근거 자료가 부족하다는 아쉬움
앞서 서술한 것처럼 감정사회학은, 그간의 사회학이 도외시했던 감정이라는 인간 행위의 주요한 동기를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복권시킴으로써 사회의 정치(精緻)한 이해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이론적 차원의 의의와, 그럼으로써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입안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실천적 차원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책에 실린 감정사회학의 방법론을 활용한 몇몇 연구들은 아쉬운 점을 남긴다.
지적할 것은 책에 실린 몇몇 연구들에서 행위자들의 특정한 배후감정이 어떠한 감정동학을 통해 실천으로 옮겨지는지에 대한 실증적, 경험적 근거와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배후감정과 그것의 감정동학을 경험적 근거들의 뒷받침 없이 추상적인 차원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몇몇 장의 논의들은 ‘생각해보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가설적인 수준의 설득력이 약한 논의로 비친다.
예를 들어 4장 ‘‘부자 되기’ 열풍의 감정동학’을 살펴보자. 이 장에서는 먼저 한국 사회의 부자 되기 열풍을 발생시킨 두 가지 사회적 원인—경제적 공포와 사회적 위험의 개인화—을 지적한다. 그 뒤 사회의 직접적인 행위자인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의 열망 뒤에 숨어있는 감정동학이 어떻게 부자 되기 열풍을 촉발시켰는지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부자 되기’ 열풍의 감정동학은 ‘공포-환멸-선망’의 세 단계를 거친다. 위험 부담의 개인화를 추동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 분위기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포의 감정을 우선 불러일으키는데, 정부가 그러한 위험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회 구성원들이 인식하며 그들은 환멸의 감정을 가진다. 그러나 환멸의 감정은 대개 내사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사회적 열풍을 촉발시키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환멸의 감정이 선망의 감정으로 변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자기계발적 담론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평등주의적 에토스의 확산 때문에 결국 사회 구성원(대중)들은 자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즉 선망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대중들은 공포, 환멸, 선망의 감정을 가졌는가? 위의 설명은 논리적으로는 수긍이 가나 현실 사회를 살아가는 대중들이 실제로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부자 되기 열풍에 동참하는가는 양적 통계 자료와 질적 연구 자료를 통해 경험적으로 밝혀야 할 문제이다. 본 책의 2장에서는 거시적 감정사회학의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감정을 양적으로 조작해 통계적으로 검증하는 방법은 유용하나 한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타인과의 권력 관계나 사회적 구조 및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는 감정 특유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려면 1) 역사적 텍스트 자료 등을 통해 문헌 연구를 해야 하고 2) 인터뷰나 관찰 등의 질적 연구방법을 써야 한다. 그런데 1)의 경우, 감정은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정서적 경험이라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역사적 텍스트만을 연구하는 것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감정을 발현하고 표출하고 또 통제하는지의 감정동학을 포착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를 위해 2)의 질적 연구방법이 중요하다.
그러한 거시적 감정사회학의 방법론을 살펴볼 때 4장은 어떻게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가? 4장은 ‘공포-환멸-선망’의 감정동학이 부자 열풍의 원인이 된다는 가설의 적실성을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현격히 감소한 공적 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양적 신뢰도 조사나(155쪽), 매스미디어의 성공 신화를 전파하는 프로그램들(156-158쪽) 혹은 자기계발 담론을 유포하는 많은 출간물들(163쪽) 등의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뒷받침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러한 텍스트 분석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살아가는 대중들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면밀히 분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공포 감정이 정부에 대한 환멸 감정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은 어떠한가? 다음과 같은 다른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각자도생의 사회였다. 6.25 전쟁 초기, 당시 정부는 서울이 안전하다는 거짓 방송을 내보냈지만 정작 자신들은 부산으로 철수했다.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백화점 사건은 또 어떤가. 개개인이 잘 사는 길은 당장의 욕망을 억누른 채 ‘열심히 노력’하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길이었다. 국가의 성장은 국민 개개인 차원의 ‘노력’이 이룩했고,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낮은 생활 수준이나 특별히 발생하는 사회적 위난에 대해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감안하면 사회 구성원들이 2000년대에 들어 정부에 특별히 환멸의 감정을 가졌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할 수 있다. 또한 매스미디어가 ‘당신도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선망의 감정을 유포하지 않았냐는 것에 대해서도, 과연 매스미디어가 겨냥한 ‘대중’은 어떤 대중인지(비교적 소수의 교육받은 중산층들이 주로 그러한 정보를 수용하지 않았을까?), 비교적 교육받지 못한 계층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심리학적 자기계발 담론이 실제로 선망의 감정을 가지게 한 사회적 원인인지(당시 ‘부자 되기’ 열풍과는 시간적 거리가 존재하지만, 최근의 ‘노오력’과 같은 자기계발 담론에 대한 인터넷 상의 조소들을 상기해보자)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정리하자면,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배후감정과 그것의 감정동학을 설명할 때 치밀한 경험적 자료들이 동원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몇몇 장은 그렇지 못하다. 위에는 주로 4장을 예로 들어 설명했는데, 6장의 경우도 공포 감정이 어떻게 분노 등의 배후감정으로 변모하는지 인과적 설명이 부족하다. 물론 6장 후반부에는 체념의 배후감정을 통해 체제 이탈적 행위양식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구술 자료가 설명력 있는 근거로 제시되나, 노동자들의 처지(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직장의 노조 조직률은 어떠한가? 관리직인가, 생산직인가?)에 따라, 그리고 특정한 노동자 집단의 공통의 사회적 경험들에 따라 이들이 어떤 배후감정을 갖게 되는지의 설명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특유의 통치성으로 인한 공포 감정의 사사화와 그로 인해 만들어진 축소된 주체(혹은 자기계발적 주체)를 다룬 3장의 경우도 비슷하다. 물론 ‘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고 개인적 차원에서 자기계발을 통해 위난을 벗어나는 것에 골몰하는가’를 설명하고자 할 때 인간의 미시적 행위와 구조적 사회 원인을 잇는 가교로서 감정사회학을 활용한 책의 3장은 충분한 논리적 설득력을 가지나, 다만 경험적 근거의 부족으로 논문의 현실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4. 마치며: 감정사회학의 과제들
지금까지 감정사회학의 유용성과 그 의의를 살펴봤고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실린 연구들의 아쉬운 점을 짚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런 지점들을 감정사회학이 논의한다면 적절할 주제들을 두 가지 정도 제시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1) 촛불집회와 대항감정
9장 「먹을거리, 공포, 가족 동원」은 가족 단위에서 모성이라는 감정이 1) 무너진 신뢰(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파동에 대한 무책임한 대응), 2) 소고기 파동에 대한 공포, 3) 분노(경찰의 폭력 진압과 버시바우 미 대사의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 등), 4) 미래의 불확실성에 의한 감정의 증폭이라는 네 가지 감정의 메커니즘을 거쳐 가족 단위의 촛불집회가 발생시켰다고 설명한다. 그런 뒤 장의 말미에서 저자들은 “그 격렬하고 열정적이었던 촛불집회 이후 우리 사회에서 그 촛불의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다”(383)며, 감정사회학의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우리는 이제 이 책을 마무리하며 또 다른 감정사회학적 과제들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촛불을 더 이상 켜지 않게 한 감정동학은 무엇인가? 또 어떠한 감정동학이 당시의 열정의 에너지를 무력화했는가? 그렇다면 그곳에는 또 다른 대항감정들이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 이는 우리가 제기했던 전제, 즉 감정은 사회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변화를 지체시킬 수도 있다는 전제 중 후자에 대한 연구를 더욱 진척시킬 것을 요구한다. (383, 강조는 인용자)
2016년 현재를 생각해볼 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촛불의 감정은 상당 부분 무력화됐을 뿐더러, (여성에 대한 극단적 멸시나 지역 및 외국인 차별과 같은) 극우주의적 담론이 그 세를 점점 키워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한 극우주의적 담론 확장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웹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박가분의 분석이다. 그는 저서 『일베의 사상』(오월의봄, 2013)에서 일베가 촛불시위의 쌍생아라는 도발적인 견해를 제기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쇠고기 추가 협상을 약속한 이후”의 2008년 촛불집회는 “현실의 맥락에서 검열되지 않은 온갖 정념과 분노, 그리고 공포가 여과 없이 표현되는 장”이 되었는데, 이러한 “몰이상적 측면에 대한 반동”으로 일베가 생겨나지 않았냐는 것이다. 7 그는 인터뷰에서 “다소 무리한 주장일 수는 있”다는 것을 인정하나, 2008년 이후 한국 사회의 역사는 “촛불시위의 환상이 깨져가는 과정”으로 전개됐으며 “촛불집회의 이상은 사라지고 [보수 정치인들을 욕하고 조롱하는 식의] 카니발적인 위반만 남은 것이 바로 일베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8
실제로 일베 유저들이 종종 자신이 어떻게 ‘우파 청년’(?)이 되었나를 회고할 때 자주 드는 서사가 촛불집회 당시의 ‘선동’과 우파 정치인들에 대한 조롱에 반발하여 일종의 전향(?)을 겪었다는 것이다. 물론 검토해야 할 측면이 많은 주장이긴 하지만, 촛불집회의 정념적인 정치적 수사들 및 분노 감정과 촛불집회의 미진한 끝맺음이 환멸이라는 대항감정, 그리고 그것이 환멸-전향의 감정동학을 낳은 게 아닐까?
2) 선망의 감정과 자기계발 열풍이 지나간 자리: ‘헬조선’과 ‘노오력’
“1997년 이후로 지속된 경기침체와 노동시장의 유연화”(105)로 인해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은 매우 불안정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단기적 사회” 속에서 “장기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과 “지속적인 사회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정체성과 평생의 역사를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워진다. 9 즉,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장기적으로 조직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공포 감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포 감정과 그 원인들을 정부가 해결해줄 수 없다는(혹은 해결하지 않는다는) 현실과, 사회변혁에 대한 열망(거대서사)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 공포는 개인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로 간주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포는 개인에게 자기계발을 압박하는 감정적 에너지로 작용한다.”(125)
그런데 2016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자기계발 담론은 파산한 것처럼(적어도 파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헬조선’과 ‘노오력’이라는 두 인터넷 신조어를 보자. 우선 헬조선은 지옥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헬(Hell)과 조선(朝鮮)의 합성어로, 지금 한국의 상황이 지옥같음을 뜻한다. 10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맥락이다. 기성 사회의 청년 착취(‘열정 페이’, ‘무급 인턴’)나 부족한 사회 안전망, 한국의 엄청난 노동 강도를 조롱하고 그것들을 ‘미개’하다고 지적하는 맥락에서 주로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다. ‘노오력’은 ‘노력하면 될 수 있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해라(주로 ‘열정 페이’와 관련된 논란에서)’ 등의 기성 사회의 청년 착취와 자기계발 담론, 상당히 많은 한국의 노동 시간을 조롱하고 비꼬는 데 쓰이는 용어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분명 ‘헬조선’, ‘노오력’과 같은 신조어는 적어도 ‘끊임없이 경쟁(노력)하고 살아남으라!’는 무한경쟁체제의 명령에 대한 반발로 읽힌다. 그러나 이것은 저항으로 이어지는 적극적인 분노 감정을 나타내는가? 분노긴 분노이나, 그것은 적극적인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개 그러한 반응들은 조소, 냉소, 비웃음의 형태를 띠며, 6장의 노동자들의 행위양식 도식을 참고하자면, 그것은 환멸이나 체념의 배후감정을 낳는 것처럼 보인다.
무한경쟁 체제와 자기계발 담론에 분노를 보내는 젊은이들. 그러나 체념으로 이어지는 분노의 감정들.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혐오[즉, 체제 개혁을 고민하기보다는 원래 헬조선은 미개하다고 냉소하는 현상—인용자]라는 ‘증상’이 아니라 체념이라는 ‘원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체들의 변화한 행위양식의 배후에 있는 감정을 분석하고, “주체가 정치적 무력감을 극복하고 세계 속에 의미 있게 개입할 좌표를 찾아내는” 11 시도에 감정사회학 연구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12
- 인용구의 출처는 각주에 표기하나, 본 글이 다루는 책 박형신·정수남의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경기도: 한길사, 2015)에서 가져온 인용의 출처는 따로 각주를 달지 않고 괄호 안에 페이지 수를 표기한다. [본문으로]
-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강남역 10번 출구 포스트잇]경향신문이 1004건을 모두 기록했습니다”, 『경향신문』, 2016년 5월 23일. [본문으로]
- 박현철, “[한겨레 라이브] 이 시각 ‘강남 살인사건’ 추모집회 현장”, 『한겨레』, 2016년 5월 21일. [본문으로]
- 최성욱, “20일 넘게 이어지는 '여성 혐오' 반대 집회…홍대 앞 가두행진”, 『뉴시스』, 2016년 6월 6일. [본문으로]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눈먼 자들의 국가』(경기도: 문학동네, 2014). [본문으로]
-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2010년대에 들어 미국의 십대들은 문자 메시지에 찍힌 마침표(period)를 화났거나 언짢다는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가 있다. Guo, Jeff. “Stop. Using. Periods. Period.” The Washington Post. The Washington Post. 13 June 2016. Web. 11 July 2016. [본문으로]
- 박가분, 『일베의 사상』(서울: 오월의봄, 2013), p.215. [본문으로]
- 선민서, “[저자와의 대화] 박가분, 『일베의 사상』 /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고대대학원신문』, 2013년 12월 26일. [본문으로]
- 리처드 세넷, 조용 역,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서울: 문예출판사, 2002), p.33. [본문으로]
- 본래 헬조선은 한국을 특히 비하하기 위해 ‘헬조센’(Hell + ちょせん)의 형태로 쓰였는데, 이것이 조금 더 순화(?)되어 ‘헬조선’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 박권일, “[세상 읽기] 왜 분노하는 대신 혐오하는가”, 『한겨레』, 2016년 2월 11일. [본문으로]
- 그런데 2010년 들어 생겨난 ‘과잠 현상’을 생각해보면 꼭 모든 20대들이 자기계발적 담론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소위 ‘명문대생’들 가운데에 자신의 학교 문양이 그려진 야구잠바를 입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문화가 새로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계발 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자기표출적 문화’를 철저히 내면화한 주체들이고, 이들 행위의 배후감정은 공포나 환멸보다는 자랑스러움(pride)으로 보인다. “최소한 몇 년 전까지 서울대라는 학벌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선 부끄러운 ‘주홍글자’였고, 그래서 학생들은 내심 학벌경쟁의 승자임을 자랑하고 싶더라도 서울대를 드러내는 옷을 걸치고 다니는 것을 어색해했다. (…) 그러나 몇 년 사이, 대학이 세계화되어서인지 미국 대학의 캠퍼스처럼 이제 국내 대학에서도 자연스럽게 대학 이니셜이 박힌 옷을 입는 대학문화가 정착됐다.”(김도민, “자퇴하는 대학생 김예슬과 학교점퍼를 입는 대학문화”, 『인물과사상』 2010년 5월호, p.158.) 이는 감정사회학 연구에 있어 계층 등에 따라 달라지는 배후감정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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