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영, «사회의 사회학»(도서출판 길, 2016) 읽고 의문점

‹논의를 시작하면서›를 읽고 나서 든 의문점. 

1) 한국적 이론? 

- ‹논의를 시작하면서›에서, 김덕영은 서구의 종속에서 벗어난 한국형 사회학 이론을 만들려는 시도들을 비판한다. 그 비판의 내용은 «글로벌 지식장…»에서 김경만이 다룬 바와 유사하다. 
- 그런데도 김덕영은 “외국 이론에 의존해 한국의 인간, 역사, 사회, 문화 등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남의 옷을 몸에 걸치는 격이다”(39)라고 쓰고 있다. 이와 동시에 김덕영은 “서구의 이론이 따로 있고 한국의 이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정말로 따로따로 이론이 있다면, 한국 이론, 러시아 이론, 일본 이론, 중국 이론, (…) 수없이 많은 이론이 성립할 것이다”(18)라고 쓰고 있다.
- 두 주장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사회학은 “근대적 인식과 사유의 틀”을 통해, 서구로부터 시작된 근대화로 변화된 사회들을 분석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이론이란 러시아 이론, 프랑스 이론이 따로 없는 것처럼 성립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부르디외의 이론을 이용해서든 하버마스의 이론을 이용해서든 한국의 인간, 역사, 사회 등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혹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남의 옷을 몸에 걸치는 격으로 한국의 사회적인 것들을 분석하고 설명하지 않으려면 한국 사정에 정통한 한국인이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즉 이론의 국적(nationality)가 중요하다고. 그렇다면 이론의 국적(nationality)이 문제시되는 것인데 사실 이론의 국적이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닌가. 부르디외의 이론을 프랑스 이론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하나마나한 말 아닌가. (물론 한국 사정에 정통한 사회학자가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르디외가 프랑스의 경험자료를 분석하고 직접 연구 및 생산하여 만들어 낸 이론을 “프랑스 이론”이라고 부르며 프랑스 사회에만 적용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인식론과 방법론에 있어 “영국 사회학, 미국 사회학, 한국 사회학, 러시아 사회학”이 구분되지는 않는다. 다만 서구로부터 발생된 근대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한 “다양한 버전”의 근대 사회들이 있을 수 있다(“다중적 근대성의 원리”, 25쪽). 김덕영은 그렇다면 다양한 버전의 사회 중 하나인 한국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적합한 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그것이 “한국적 사회학 이론”이라는 것인지? (이렇게 독해가 가능하긴 하지만 용어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게 필요할 듯.) 


2) 김경만 비판에 대한 의문

“그런데 내가 보기에 부르디외와 이 사회학자[김경만] 사이에는 세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첫째, 주로 서구 이론에 매달리는 이 사회학자와 달리 부르디외는 프랑스 안팎에서 발전한 다양한 지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종합하는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는 프랑스 사회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경험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새로운 사회학적 인식의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는 사회실천학을 구축할 수 있었다.”(42)

- 김경만은 이론사회학자이며 또한 그의 주된 연구 관심사는 지식사회학, 과학사회학에 있다. 김경만의 연구주제가 그러한 이상, 김경만이 한국 사회에 대한 경험연구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이상하다. 비판이론이나 과학철학 같은 추상적 이론에 대한 분석을 행하는 학자에게 한국의 경험적 현실에 대한 연구를 주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연구 대상이 “서구 이론”인 것을… 

덧붙여 - “부르디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영어가 아니라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담아내면서 (…) 그의 저작이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42). 프랑스어랑 한국어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고 생각. 

덧붙여 2 - “한국의 사회학은 이른바 미래 한국의 피에르 하버마스들이 영어의 ‘포로’가 되지 않고 지적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피에르를 직접 프랑스어로 읽고 하버마스를 직접 독일어로 읽을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한다.” 사회학 전문 번역자나 이론 연구자가 불어, 독어를 배운다면 모를까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이 굳이 불어, 독어를 읽어야 할 필요가…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 십 년 공부해도 영어 논문 읽기 버거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