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레이먼드 카버 읽기



1. 레모네이드[각주:1] 


가장 위대하고 가장 고귀한 것을 우연에 맡긴다는 것은 너무도 부조리한 일일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109b: 24.


시는 화자의 집 책꽂이를 재러 온 목공수 짐 시어즈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활기가 넘치고 확신이 있는, 손 마디를 뚝뚝 꺾는 짐 시어즈. 그는 하나 뿐인 아들을 잃은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화자가 짐 시어즈의 아버지 하워드 시어즈에게 간단한 안부를 물어보며 짐의 전사(前事)를 들을 때 시제는 현재형으로 바뀐다. 시어즈 씨는 말한다. “신은 당신만의 알 수 없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이 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어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나는 신이 그 아이를 데려갔다는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의 의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그의 행위를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짐은 생각한다—혹은 우리는 이 부분을 화자의 생각으로 읽을 수도 있다. 우리는 알고 싶어한다. 무수한 사건의 더미 속에서 원인과 결과를 재구성하고 책임을 부여하고자 한다. 만일 그날 아침 레모네이드를 아이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꼭 레몬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왜 레몬이어야 했을까? 레몬에 얽힌 기나긴 인과의 고리. 누군가는 레몬을 심고 물을 댔고 노동자는 그것을 박스에 싣고 철도와 트럭은 그것을 옮겼다. 짐의 아이 또래들은 레몬을 가공했을 것이고. “짐 시어즈의 생각이 계속되며, 그것은 맨 처음의 원인으로 되돌아간다, 지구상 최초의 레몬을 경작했을 그때로.” 


“맞다, 모두의 마음은 찢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는 다시 현재 시제로, 화자가 하워드의 넋두리를 듣는 시점으로 돌아온다. 짐은 그의 선반이나 조각칼을 볼 때 그의 아들의 마지막을 회상한다고 한다. 그가 헬기에 의해 물에서 건져올려져 너무도 우아하게 짐의 발 앞에 내려지는 그 순간. 그 순간 때문에 짐은 도무지 목공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결국 이것만이 하워드, 짐, 그리고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확실한 인과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신의 목적에 물음을 던질 수 없고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이상 이 인과는 아무런 의미를 제공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현재에 대해 진술할 수밖에 없다. “But dying is for the sweetest ones. And he remembers sweetness, when life was sweet, and sweetly he was given that other lifetime.” 



2. 뚱보 


“루디, 저 사람은 뚱뚱해.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15) 화자와 뚱뚱한 남자 사이에는 모종의 연결이 존재한다. 뚱뚱한 남자는 혼자지만 그는 주문할 때 ‘저(I)’라는 대명사가 아닌 ‘우리(we)’라는 대명사를 쓴다. “정말이지 우린 늘 이렇게 먹지는 않는답니다.”(12) “우린 코트를 벗어야겠어요.”(13) 


물론 화자를 제외한 주변인들은 뚱뚱한 남자와 화자 사이의 어떤 연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뚱보와 화자, 애인인 루디와 직장 동료인 조앤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깊은 이해의 심연이 가로막고 있다. 루디는 웃는다. “이 여자, 뚱땡이를 좋아한다는 얘기 같군.”(15) 조앤은 루디에게 “조심”하라고 말한다. 루디는 지나가는 말로 화자에게 학창 시절의 뚱뚱한 녀석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은 화자도 뚱뚱한 남자와의 유대를 알아채고 있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루디와의 섹스 도중 너무나도 뚱뚱해져 버린 자신을 상상한다. “어떤 감정이 엄습하는 거야.”(15) 화자가 리타와 대화를 하며 그날의 일들을 재구성할 때, 뚱보가 지칭하는 ‘우리’라는 대명사는 시차를 두고, 그 의미를 온전히 불행히도 이러한 의미의 수신인은 화자에게만으로 제한되는 것 같다. 리타는 말한다.[각주:2] “말도 안 돼.”(17) 리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화자는 그것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8월이다”라는 텍스트 상의 급격한 단절, 그리고 곧이은 “내 인생은 변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는 진술에 주목한다면. 



3. 제리와 몰리와 샘 


“그는 출발점을 찾아야 했다—얽힌 일들을 정리하고 이 모든 것의 질서를 잡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할 때, 변화를 꾀하기 위해 생각을 똑바로 해야 할 때였다.”(260) 앨(Al)은 일하는 회사의 정리 해고와 외도 중인 여자 질, 쓸데없이 이사를 하게 만든 아내 베티, 그리고 처제 샌디와 골칫덩이 개 수지 때문에 삶의 방향을 잃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위한 그의 첫 번째 시도는 수지를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주변 상황을 제어”(258)하는 것이자 “집안의 질서를 바로잡는 첫 조치”(260)인 것이다. 


개를 유기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심하던 그는 “전에 살던 동네” 욜로 카운티(Yolo County)라는 좋은 대안을 생각해 낸다. 그곳에서 그는 어릴 적의 사냥개 ‘샘’—아이리시 세터로 추정되는—과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잠시 어머니의 집으로 회귀하고 싶어한다. 유기를 마치고, 앨은 처음 보는 술집 듀피스에서 여자 몰리를 유혹하고자 한다(그가 술집에서 현재 외도하는 여자 질을 꼬셨던 것처럼).  몰리와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비용이 또(one more expense)” 들었다는 것, 그리고 “제리가 [돈도 받지 않고] 물건을 아주 잘 고”친다는 것. 


추가적 비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로를 받기 위해 방문한 질의 집에서 앨은 졸지에 여드름을 짜인다(272). 수지가 없어진 집은 눈물바다이고, 혼란 그 자체다. 또한 앨은 아내의 비난을 받는다. 그는 거울에서 부도덕한(immoral) 자신을 발견한다. “이번엔 정말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I believe I have made the gravest mistake this time).” 수지를 버리겠다는 것. 그것은 실로 완전한 실수가 아니었을까? 그는 처제가 데려온 개가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개를 버림으로써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는 수지를 찾았지만 수지는 다시 돌아오기를 거부한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았다. 모든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세상은 개로 가득 차 있다. 온통 개 천지다. 그중엔 어찌해볼 수 없는 녀석들도 있는 법이다.”(282) 


그렇다. 그는 분명 주변 상황을 제어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번번이 실패했다. 몰리를 꼬시려 했지만 그것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개를 버린다 해도 상황이 정상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악화될 뿐이었고, 아내의 신뢰마저 잃어 버렸다. 제목 “제리와 몰리와 샘”은 자못 상징적이다. 적어도 이들은 무언가를 통제하거나 변화할 수 있는 사람 혹은 동물이지 않은가? 샘은 말을 잘 듣고 제리는 물건을 잘 고치고(fix) 몰리는 적어도 앨과 같은 하류 인간의 구애에 흔들리지 않는다. 앨은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일까? 그는 “샤워도 하지 않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는데(276).[각주:3]



4.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랠프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데, 문제는 불안으로부터 비롯된 아내에 대한 추궁이,[각주:4] 아내가 미첼과 잤다는 사실을 확증해버렸다는 것이다. 의심이 사실이 되었을 때 랠프는 집 밖으로 뛰쳐나오고 상징의 세계를 배회하게 된다. 


    거리에서의 광경은 랠프의 상상 속 불안과 조응한다. 랠프는 여자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것을 보았다.”(398) 이는 그가 불안을 느끼는 매리언의 이미지와 연결된다(381). 거리에서 마주치는 성적인 이미지들(400, 403). “우리 한 번 할까(Shall we have a go at it)?”(399) “그 사람이 우리 한번 할까요, 그러더라구요.”(393) 그에게 두 번째 기회는 있는 것일까? 그는 육 년 전 들른 “중고 서점(secondhand shop)”이 있는 “2번가(Second Street)”에서 방황한다(400).  그는 도박을 마치고 2달러만을 남긴다(409). 


    그는 “삶의 방향을 전환"해야 할까(404)? 묘하게도 아내를 때리려고 했던 그의 충동(386)은 노상에서 흑인 청년에게 강도를 당함으로써 되돌아온다(411). 강도의 계기는 그를 상상의 세계인 밤거리에서 아침의 집으로 복귀시킨다. 아침은 모든 것이 정돈되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일어나 세수를 하고 출근을 한다. 아이들은 다친 아빠에게 무슨 이상이 있는지 묻는다. 그는 욕실로 들어간다. 옷을 정돈하고 몸을 씻을 수 있는 공간. 욕조에서 아이들에게 “제발 조용히 좀” 하라는 그의 외침은, 잠시 모든 것을 되돌릴 시간을 달라는 절규로 들린다. 그는 거울을 보고 몸을 씻으며 다시 일상의 세계로 복귀한다. “자신에게 닥쳐오고 있다고 느껴지는 믿을 수 없는 변화에 놀라면서.”(417)






  1. 출전: Carver, Raymond. Short Cuts: Selected Stories. Ed. Robert Altman. New York: Vintage, 1993. [본문으로]
  2. (노트: 리타의 “우아한 손가락(dainty fingers)”과 뚱보의 “길고, 두껍고, 말랑말랑한 손가락(long, thick, creamy fingers)”의 대비) [본문으로]
  3. (노트: 바꿔 생각해 본다면, 그는 알지 못하지만, 정말로 ‘개’와 같은 존재는 앨 본인이 아닐까? 개들 중에서 어찌해볼 수 없는 녀석이라 함은 바로 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앨은 무언가를 움직여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만 애초에 통제권은 그에게 귀속된 것이 아니지 않을까?) [본문으로]
  4. “그것은 한참 전, 이번 겨울로부터 이 년 전의 일이었다.”(382) “벌써 사 년 전 일이니 …”(38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