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코 효과』에 실린, 이언 해킹의 "통계학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프랑수아 에발드의 "보험과 리스크"를 요약함. 



9장 “통계학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해킹은 우선 통계학이 인문과학과 국가의 통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구한다. 통계는 우선 “근대 국가의 권력테크놀로지의 일부”이다(270).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사실은 단순히 통계적 특성을 갖는 사실로 변화해갔다.”(271) 통계 수집 과정은 새로운 분류 체계를 고안하고 이것은 심지어는 ‘정상성’과 같은 메타-개념을 발명하기까지 이른다. 또한 통계학은 보험테크놀로지의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271-74). 그 다음 해킹은 어떻게 “결정론의 약화”와 “우연을 길들이는 것”(276), “숫자에 대한 열정”(277)에 통계학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탐구한다. 19세기 중후반 이전까지는 뉴턴식 결정론이 득세했는데, 해킹이 스케치한 일련의 사건들(279-83) 이후 ‘통계적 확률은 우리의 무지의 소산이다’는 관념, 즉 더 많은 관측과 과학적 일반화는 그 확률적 우연을 설명할 것이라는 관념은 우연론(퍼스)이나 비결정론으로 대체되어 간다. 통계학의 출현으로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실용적 문제를 해결하는 특정한 방식이 등장했다.”(287) 이러한 방식은 보건 향상과 같은 인구의 통치와 관련이 있는데(289), 재미있는 것은 “통계학을 통해 결정론이 약화되고 우연이 길들여졌지만, 그것이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290). 

    분류 체계를 생산하고 확률을 측정하는 통계학은 보험테크놀로지의 발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296). 10장 “보험과 리스크”에서 에발드는 통치기술로의 보험과 리스크의 주요한 특징을 지적한다. (11장 “‘대중의 생명’과 보험테크놀로지”에서 르페르는 주로 제2제정기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a) 종신연금이 어떻게 생명보험의 형태로 변화하고 인구를 ‘인적자원’으로 대하게 되었는지, b) 보험이 어떻게 상호부조적인 노동자 조합 혹은 박애주의적 고용주 조합을 파괴시키고 c) 손해배상에 대한 자유주의적 프레임을 변형시켰는지 다루고 있다.) 에발드에 따르면 아주 다양한 양태를 취하고 있는 보험을 간단히 정의하기란 매우 모호한데, 왜냐하면 보험테크놀로지가 취하는 다양한 형태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보험테크놀로지가 어떠한 대상을 두고 어떻게 이윤을 창출할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291-92). 따라서 보험은 언제나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며 끊임없이 점검되고 재조정되는 통치실천의 효과이다(293). 보험은 리스크 테크놀로지에 근거한다. 그런데 여기서 리스크는 단순한 위험이 아니며, 그것은 어떤 인구 집단이 “대표하고 소유한 가치 또는 자본에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사건을 다루는 특정한 방식을 지칭한다.”(294) 이는 선험적인 개념이 아니며, 보험업자가 현실의 요소들을 어떻게 “분해하고 재배열하고 질서짓는”(293)지에 따라 생산된다. 이 지점에서 보험을 “특정한 유형의 합리성, 확률 계산에 따라 정식화된 합리성의 실천”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294). 이를 다소 쉽게 바꿔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보험업자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불의의 운명에 내맡길 수밖에 없다고 느꼈던 것에서 리스크를 생산해낸다.”(295)

    상술했듯이 통계학과 보험은 밀접하다. 통계학은 우연(확률)을 계산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개인의 책임에 기반을 둔 사법적-도덕적 사고방식의 토대와는 완전히 다른 합리성을 가능케 하고 사고(事故)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만들어 낸다. 리스크의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보며 비교를 해볼 수 있다. a) 확률을 통한 계산 가능성.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판사는 과실과 책임소재를 따지나 보험업자는 “의지의 작용과 상관없이 사고의 객관적 확률에 근거”해 계산한다(298). b) 집합성. 법적 합리성에서 사고는 언제까지나 연루된 당사자들의 특별한 일이다. 그리고 사고는 “개인적 과실·경솔함·부주의에 의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리스크에게 있어 사고는 어떤 특정한 인구 집단이 피할 수 없는, 계산된 확률에 따라 일어난다. 따라서 보험은 리스크가 계산 가능한 특정 인구집단 내의 사람들과의 ‘추상적 상호성’을 구축하여 개인들의 위험 부담을 분산시킨다. c) 리스크는 하나의 자본이라는 점. 보험의 대상은 특정 시점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보험의 대상은 보상해줄 자본이다. 인적자본에 대한 보험의 발달로 인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는 고용주와 법적 다툼을 통해 인간다움을 보장받을 투쟁의 문제가 아닌 전문가로부터 “개인의 위치”를 배정받고 내 부상으로부터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는 문제로 전환된다(302). 

    따라서 위의 특징으로부터 보험의 정의를 정리하자면 “통계 법칙에 따라 조직된 상호성을 통해 우연의 효과를 보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에발드는 여기서 간과된 문제인 보험의 핵심 요소인 정의(正義)를 더 짚어야 한다고 한다. 보험의 특별한 점은 집단의 위험 부담이 “정의의 원칙, 권리의 규칙에 따라 이뤄질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303) 보험적 합리성과 자유주의적 사유는 다르다. 후자에서 운의 분배는 정당한 것(혹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대비는 개인의 몫이다. 반대로 보험은 자유주의 사법 원리와는 다른 합리성 원리를 제공한다. 보험에서, 집단은 자연적 불운을 집합적으로 부담하고, 그 부담의 액수는 규정에 따라 정해진다(생각해보면, 바로 이 점이 “사회적 불평등이 가진 불의를 분명히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프루동은 보험이 “부자의 새로운 특권”(304쪽; 또한 321-22쪽 참고)이라고 했지만, 사실 보험의 혜택을 전 사회집단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것은 보험은 “사회적 재분배라는 관념을 함축”하는 것이 아닌가(304).

    에발드는 보험이 만들어 낸 인식론적 변화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307). 보험의 세 가지 기술의 차원--경제적·금융적 기술이라는 것; 도덕적 테크놀로지라는 것; 손해 보상의 기술이라는 것--은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불가해한 자연의 섭리를 세속화해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보험은 시간의 인식조차 변화시켰는데, 보험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의 영속성을 가정하게 된다(309). 앞서 집합성을 논의할 때 살펴보았듯이 또한 보험은 사회적 연대를 변화시킨다. “[조합이나 가족의 상호성과는 달리] 보험의 상호성은 개인을 자유롭게 놔둔다. 보험은 최대한의 사회화와 최대한의 개별화를 결합한 연합형태를 제공한다.”(300) 그런데 이러한 연합은 애정이나 상호 감시, 부조의 원리가 아닌 전적으로 통계적이고 수학적인 계산을 통한 사회적 혜택과 부담의 분담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 덕택에 보험은 빈곤과 노동계급의 불안정성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하다(306). 보험은 노동권, 노동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