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인용들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최장집 편, 박상훈 옮김, 폴리테이아.
이 밤이 서서히 물러갈 때, 이 봄날의 꽃이 자신들을 위해 화사하게 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살아 남아 있게 될까? 여러분 모두는 그때 내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을까? 비분강개해 있을까 아니면 속물근성에 빠져 세상과 자신의 직업을 그냥 그대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또 아니면 (그리 드문 일도 아니겠지만) 그럴 재능이라도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비주의적 현실도피에 빠져들거나 또는 단지 그게 (흔히 있는 현상이자 뿌리 뽑기 어려운 병균 같은 현상이라 할) 유행이 되어서 그런 신비주의에 빠져들어 있을지 모른다. 어떤 경우이든 나는 그런 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감당할 능력이 없고,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감당해 낼 능력도 없었으며, 일상적 존재로서도 능력이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결론내리게 될 것이다. (230쪽)
상황이 어찌되었든 아직도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은 직업적 정치의 세계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길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이 길이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나약한 성격의 소유자, 특히 잘 보장된 신분적 지위를 가진 조건에서만 내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이 길은 맞지 않는다. 젊은 학자의 경우, 비록 그의 삶 역시 요행에 좌우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의 주변에는 확고한 신분적 관습들이 구축되어 있으며 이것들이 그를 탈선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그러나 저널리스트의 삶은 모든 면에서 도박 그 자체이다.
게다가 그것은 내적 안정감을 시험하는 -- 다른 어떤 직업에서도 찾기 힘든 -- 상황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삶이다. 그는 직업 생활에서 개인적으로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되지만, 심지어 이것이 그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특별히 힘든 내적 요구들에 대처해야만 하는 것은 사실 성공한 저널리스트들의 경우다. 그는 유력자들과 모임을 자주 갖고, 외관상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 서있으며 흔히 모든 편으로부터 아부를 받는다. 왜냐면 모두들 [성공한 저널리스트를] 두려워 하니까. 그런 일이 별거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기가 방에서 나가기가 무섭게 모임의 주최자가 남아 있는 손님들에게 자신이 ‘불한당 같은 신문기자’Pressebengeln의 비위를 맞출 수 없었음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는다는 것도 빤히 알고 있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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