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경향신문 <다시 쓰는 인구론> 특집에서 다음 책을 알게 되어서 읽고 있다: 조은주, 『가족과 통치: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 창비, 2018. 어제 빌렸는데 정말 유잼인 책이라 단숨에 읽었다. 


1.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가족계획사업과 인구 정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푸코의 말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의 통치성(governmentality) 논의를 주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쓰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의 기획은 국가와 사회가 대립한다는 개념적 경계를 넘어서고 어떻게 국가가 여러 가지 통치 테크놀로지를 통해 ‘인구’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가족 계획과 섹슈얼리티, 재생산의 문제에 개입하고 그에 관한 사람들의 품행(conduct)을 어느 쪽으로 인도하는지 사회사적으로 밝히는 것이다(국가의 통치 과정은 다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새로운 [인구의] 통치 과제의 조사와 확정에서 사적 개인과 조직이 행하는 주도적 역할, 전문가들과 행위자들 사이 교류로 이뤄지는 상호작용, 지방자치의 민영화, 자원활동의 동원 등. 콜린 고든, “통치합리성에 관한 소개,” 『푸코 효과』, 난장, 2014, 66-67쪽, 155쪽). 여러 주제를 넘나들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의학자들과 사회학자들 같은 지식인들이 국가의 가족계획사업을 제안하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사실상 이런 예방의학, 보건학, 가족계획 연구가 국내 사회과학 연구 발전의 중요한 기원 중 하나였다는 내용이다. 4.19 혁명이 일어나기 전 의사이자 보건사회부 차관이었던 양재모는 WHO와 유엔 원조처의 지원을 받아 유럽에 가서 사회보장제도를 연구하는데, ILO 전문위원의 ‘사회보장 시스템보다는 가족계획사업이 훨씬 더 한국에 시급하다’는 충고를 듣고 이후 가족계획 사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게 된다(『가족과 통치』, 37-9쪽). 양재모가 주도한 대한가족계획협회는 5.16 군사쿠데타 직전에 설립되었고, 쿠데타 이후 급변하는 정치적 기회구조 속에서 양재모가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포함됨에 따라 이후 군부독재 체제에서 인구 및 가족계획의 핵심적 행위자가 된다(같은 책 3장). 세브란스 출신이라는 연줄로 긴밀히 엮여 있었던 의사나 보건 관료들은(양재모를 포함) 전후 미발전한 국가들의 근대화에 관심이 있었던 미국 정부나 여러 재단의 후원과 어드바이스를 받아 인구 및 출산 통계의 설립 같은 통치 테크놀로지를 세우는 데에 상당한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 서울대 의과대 교수인 권이혁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인 이만갑과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인구학 연구를 1963년 진행했다. 이후 1965년 서울대학교에 인구연구소가 설립되는데 이는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의 전신이다. 그리고 “농촌지역 가족계획 연구사업팀의 일원이었던 서울대학교 사회학 석사 출신의 안계춘은 이후 인구협회의 지원으로 시카고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70년대 초[1973년] 연세대학교에 사회학과가 신설되면서 교수로 부임한다”(같은 책, 159쪽). 책에서 자세하게 쓰여 있지는 않지만 “가족계획연구원의 연구자들 역시 [미국의 제3세계 원조 프로그램을 통해] 1980년대 초까지 하와이대학교, 시카고대학교 등에서 경제학, 사회학, 인구학, 통계학 등을 전공하여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163쪽)는 언급을 고려할 때 박정희 시대의 가족계획 사업은 한국 사회학의 제도화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2.

6장 "근대가족 만들기"는 미셸 푸코의 "성적 억압의 가설이 잘 유지되는 이유는 그것을 지지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성의 역사>, 1권)라는 말로 시작한다. 섹슈얼리티를 억압과 금지의 이분법으로 사고할 때 우리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성 담론이 "금기나 억압, 통제, 금욕적 태도나 보수적 입장"(<가족과 통치>, 184쪽)을 일관적으로 견지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그 함정이 될 수 있겠다. 책에 따르면 기존의 연구는 "가족계획이 보급한 피임의 목적은 단지 임신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출산 조절의 구체적 방법은 비가시화되었고 가족계획과 섹슈얼리티의 연관성은 회피되었으며 성관계는 오직 생식을 위한 것이었을 뿐 쾌락을 위한 성은 죄악시되었다고 주장해왔다"(192쪽).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가족계획은 단순히 피임술의 안내와 보급만을 필요조건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푸코적 이론으로 생각할 때 국가권력의 통치는 각 개인들의 미시적 실천을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인식되는 지식을 활용해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동의를 얻어 특정한 방식으로 규율하고 관리한다. (책의 3장은 1960년대 가족계획 초기, 공무원이나 여성들이 문맹이어서 살정제 피임약 사용법을 인식하지 못해 경구로 복용하여 문제가 생긴 어느 마을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가족계획은 "평범한 사람들이 성행위와 임신 및 출산을 분리시켜 사고하는 태도"(178쪽)를 전제하고 그것을 확산시켜야 했다. 60-70년대 가족계획에 대한 담론은 섹슈얼리티에서 쾌락적 성행위와 생식 활동을 분리시키고자 노력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족계획 담론이 "성에 대한 억압이나 금기, 통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로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의식과 충분한 성지식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성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문제시"했다(181쪽). 이는 대한가족계획협회의 기관지인 <가정의 벗>에서 잘 드러난다. <가정의 벗>은 거의 매호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고, "성적 욕망을 긍정하는 것은 물론 성적 행위의 기술을 강조하고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글을 끊임없이 게재했다"(184쪽). 책이 직접 인용하는 당시 가족계획과 관련된 문헌들을 읽어보면 그 내용이 현재의 여성잡지나 맥심 같은 남성잡지에서 묘사되는 성생활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상당히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흔히들 자유주의적, 쾌락적 성 담론의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1948년과 1953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킨제이 보고서를 꼽곤 한다. 책이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실은 의사 등의 전문가들에 의해 그러한 쾌락주의적인 성 담론이 한국에도 그다지 긴 시차를 두지 않고 유포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킨제이 보고서가 한국에 처음 번역 소개된 것은 1950년대이고, "의과대학 교수들이 집필한 가족계획 안내서 <가족계획>은" 주부들의 성생활에 대한 미국의 통계적 연구들을 인용하고 있다(204쪽). "피임법의 대대적인 선전과 더불어 가족계획의 성 담론은 쾌락적 섹슈얼리티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여러 전문가 담론과 결합되어 유통되었고, 여성잡지를 비롯해 늘어나는 대중매체는 여성들이 새로운 정보, 특히 성생활과 임신 등 여성에게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통로이자 교양 독서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205쪽). 

물론 당시의 가족계획 성 담론은 현재의 성 담론과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여성의 성적 쾌락은 즐거운 것이고 과학 지식을 통해 면밀히 탐구되고 보다 세심한 방식으로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긴 하지만 쾌락이 그 자체로 장려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남편과의 '정신적 애정'을 도모하고 가정의 평화를 단단히 하는 보완물의 성격으로 장려되었기 때문이다. 즉 가족계획의 성 담론은 "성의 쾌락적 차원을 혼인관계에 견고하게 위치"시켰다는 것이다(205쪽).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여기서 기든스의 논의를 끌어들인다. 즉 가족계획의 성 담론은 한국의 전통적 가족 관계를,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에 기반한 서구의 '정상적'인 가족관계로 재편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계획사업이 겨냥한 근대적 가족의 모델은 이상적인 자녀 수와 실제 출산자녀 수, 가구 구성원 수의 양적 변화를 수반하는 동시에, 이러한 양적 변화만으로 표상되지 않는 정서적 삶의 재질서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