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규, 『번역가 되는 법』, 유유, 2018.
김택규, 『번역가 되는 법』, 유유, 2018.
심심해서 알라딘 웹서핑을 하다가 이런 책이 있는 걸 발견했다. 저번에 『어린이책 읽는 법』으로 유유 출판사 땅콩문고(맞나?) 시리즈를 접한 적이 있는데 가볍게 읽기도 좋고 실용적 정보 얻기 좋겠다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렸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단숨에 읽었다.
우선 위로가 된 부분은 내가 당장 번역자가 될 것으로 지금 결심한 것은 아니지만 또 내 한국어 문장 솜씨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번역가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결코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외국어의 간섭과 명확히 거리를 둘 수 있는 확고한 모국어 감각”이라고 하는 점(30쪽). 그리고 저자 주변에 있는 번역가 분들 중 이중언어 구사자는 없다는 것. 비록 모국어는 감옥이지만 익숙한 감옥이라도 하나 있는 게 어디야. 어정쩡하게 이중언어를 구사하면 기약 없이 자꾸만 이감하는 미결수의 느낌이겠지. 이런 정신 승리를 한다. 그래도 내가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내가 속한 언어 공동체에 무언가 기여는 할 수 있겠다는 느낌에 기분은 좋고. (나는 정말로 번역가들을 존경하고, 무한한 경의를 보낸다.)
본문부터, 책의 앞 부분 30쪽 정도는 직역이냐 의역이냐 하는 잘못된 통념에 대한 간략한 경계와 번역의 의의 내지는 윤리(로렌스 베누티)를 소개하는 내용. 그 뒤에 저자는 번역가가 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번역서는 어떻게 내는지 하는 실용적인 정보들을 다루는데 어렴풋이 번역가라는 직역을 꿈꾸는 이들이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되겠지 싶었다. 많이들 읽어 보시길…
독서 중 기대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이것.
“저는 오랜 기간 독서를 하며 지식을 쌓아 왔습니다. 시를 쓰고 발제를 하고 에세이를 끼적이며 저만의 문체를 단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의 한 주체로서 굴곡진 시대를 살아오며 온갖 희로애락의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 번역의 창조를 통해 순간순간 그 축적된 에너지를 발현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번역을 하며] 자유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138쪽)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번역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어학 지식이라기보다는 텍스트를 콘텍스트와 견주고 행간을 음미할 줄 아는 독해 능력이라는 점(48-50쪽). 이런 능력은 단기간의 목적이 있는 계획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니까. 한 사람이 그동안 의식적인 공부로든 목적 없이 소일하는 독서로든 쌓고 축적해 온 도저한 경험이 비로소 그럴듯한 결실이 되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번역.
글을 옮긴다는 행위의 어떤 아주 중요한 측면을 이해하는 방식을 얻어간 것 같아 즐거운 독서였다.
'독서 일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민하, 『냉소사회』, 현암사, 2016 읽고 정리 및 생각 메모 (0) | 2019.05.19 |
---|---|
노정태, 『논객시대』, 반비, 2014. (0) | 2019.05.12 |
피터 싱어, 『헤겔』, 노승영 옮김, 교유서가, 2019. (0) | 2019.04.24 |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양승훈, 오월의봄, 2019) (0) | 2019.03.31 |
일본 가서 읽은 책들 (1) - The Reasons of Love (0) | 201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