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 『논객시대』, 반비, 2014.
책을 빌린 이유는 그냥 갑자기 논객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서였다. 최근에 수업 시간에서 청와대 국민청원 이야기를 하다가 08년도 안단테의 아고라 이명박 탄핵 국민청원이 생각났고 아 그때는 논객이라는 게 있었다는 사실이 퍼뜩 생각났다. 내 생각에 논객이라는 말이 공론장에 마지막으로 등장했을 때는 2015년의 이른바 ‘진보 논객 데이트 폭력’ 사건이 아니었을까. 사건들의 사실관계가 어떻든 간에 아무튼 그 뒤로 논객이라든지 청년 필자라든지 하는 말들은 쏙 들어갔던 것 같다. 청년 필자라는 말을 또 꺼냈는데… 그만 하자. 할 말도 없고 있더라도 해야 할 것 같지도 않다.
아래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맥락에서의 감상을 아무 거나 쓰겠다.
1. “논객시대의 바깥은 없다”(30쪽). 그러니까 “군사독재에서 민주화로, 민주화에서 정권교체로 이어졌던 정치적 역동성은 이제 과열된 엔진처럼 공회전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에너지가 새로운 시대의 장막을 열어 젖히지 못한다는 것일 테다.
강준만과 진중권, 유시민, 그리고 김규항(?)을 다루는 장에서 노정태는 이런 역사의 흐름을 명시적이지는 않으나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안티조선 운동에서 시작해 노무현으로 맺은 정치적 결실로 드러난 논객들의 성취감 내지는 도취감. 노무현 탄핵 정국으로 인한 분당, 김선일 사건, 디워나 황우석 논쟁 등의 사건을 거쳤지만 조국 근대화(?) 혹은 사회 개혁(개량) 혹은 진보(?)에 대한 기획은 삐걱이나마 진전될 수 있다고 느꼈던 분위기가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명박과 박근혜의 당선은 그런 기대감을 무위로 돌리기 충분했고, 노무현의 자살은 이후의 많은 정치적 논쟁들에 상당한 경로 의존성의 제약을 부여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논객시대와는 분명히 다른 조건에 서 있지만 논객시대의 바깥에 있는, 어떤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 새로운 기획을 논해야 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라는 뜻인 것 같다.
나도 내가 뭔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왜냐면 내가 정치적 의식이 있었을 때는 2012년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런 뭐… 공론장에 늦게 참여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나이를 감안하면 늦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현재까지의 한국 정치와 사회의 논쟁을 강력히 지배하고 있는 90년대 이후의 일련의 사건들(특히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정점으로 하는)을 ‘논객’ 인물들 별로 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을 이해하는 데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영감을 많이 받았다기보다는 정보를 많이 전달받는informative 독서였던 것 같다.)
다음에는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 편을 전부 읽어야겠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 유시민은 이렇게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싸움, 논객시대를 만들어낸 갈등의 축은, 지금도 흔들리고만 있을 뿐 꺾이지는 않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문제의식과 대결 방식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125쪽).
“하지만 진중권이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최소한의 진보는 대단히 허약한 뿌리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 진중권이라는 ‘진보 논객’은 결국, 본인이 비판했던 다른 논객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판단과 선택을 해야만 했다. … 그의 초창기 활동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가장 올바르고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려 했던 진중권을 잃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촛불시위 이후 스타가 된 진중권만을 아는 이들은, ‘비판적 지지’ 논쟁을 하며 게시판에서 밤을 새우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네티즌의 속을 긁어댔던 진중권을 알지 못할 것이다”(96-97쪽).
우울하고나…
2. 재미있는 것은 김규항을 제외하고 책에서 다뤄진 논객들이 모두 유학파거나 외국 체류 경험이 길었다는 것이다. 강준만은 미국 위스콘신에서 박사를 받았고, 진중권은 독일에서 유학을 하다가 IMF 때문에 돌아왔다. 유시민 역시 독일에서 유학을. 우석훈 역시 파리에서 박사를 했다. 박노자는 박노자고, 홍세화도 빠리의 홍세화. 고종석 역시 빠리의 고종석이고… 김어준은 세계여행을 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넘겨 짚자면 적어도 진중권과 유시민, 고종석은 한국에 일찍 옴으로써 뜻하지 않게 논객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진중권이 박사 학위를 독일에서 얻었더라면 그의 삶의 궤적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약간 더 넘겨 짚어서 추론을 해 보자면 그들이 한국에 와서 우연히 논객 일을 하게 되었다기보다는 그들이 한국을 벗어나서 살 수 없음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한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참여의 가장 정교하고 품이 많이 드는 활동인 소셜 커멘터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서 고종석의 글을 잠시 인용해 보자.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겉멋에 들려 파리 사람인 양 살았지만, 내 알량한 허영심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해온 것은 서울이었음을. 나는 파리에 살면서도 뿌리를 서울에 박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파리에 떠 있는 서울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곧 내가 지르는 비명이었다. 몇 달을 버텨내지 못하고 나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김대중 씨가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이었다.”(고종석, 『도시의 기억』, 215쪽. 노정태, 『논객시대』, 282쪽에서 재인용.)
이렇게 보면 박노자의 “급진성의 결말이 냉소주의?”(143쪽)라는 오묘한 역설이 이해될 법도 하다. “전 지구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안에 대해 가장 급진적인 입장을 취하는 박노자는, 개별 사안으로 인해 갈등하는 이에게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라’라는 조언을 차선책으로 제시하기도 하는 사람이다.”(145쪽) 노정태는 이것을 그의 불교적 지향에서 찾기도 하지만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어쩔 수 없는 박노자의 이방인성에서 찾고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가 강요되어 한국에 입국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인데 유학을 가거나 외국에서 오래 체류한 사람들이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그들의 ‘한국인성’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구미 선진국과 한국 사이의 (있다고 가정되는) 수준의 차이과 관련해, 김어준에 대한 노정태의 글은 그 주제에 대한 독립적인 텍스트로 읽히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개인주의라는 구미의 ‘선진 의식’을 설파하고자 하는 개인주의자로서의 김어준과, ‘세계와 맞짱(?)’ 뜨기 위해 디워와 황우석을 옹호하는 선동가로서의 김어준의 모습은 사실 같은 동기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맥락에서 식민지성… 탈식민주의… 그런 걸 얘기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일단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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