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달,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김순영 옮김, 후마니타스. 2010.

 

분량만으로 보면 굉장히 얄팍한 책이다. 그리고 초반 책 몇 장은 아주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1장 서론: 서론이고 책 구조를 소개한다.

2장 정치적 평등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목표인가?: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도덕적 가정과, 어떤 개인 혹은 집단도 정부를 통치할 확연히 나은 자격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 뒷받침되는 가정을 도입할 때 정치적 평등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임을 밝힌다. 

    또한 달이 내린 이상적 민주주의의 기준을 소개한다: 효과적 참여 (데모스는 자신의 견해를 알릴 평등하고 효과적인 기회를 가져야 함); 투표의 평등; 계몽적 이해의 획득 (각 정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이해를 모두 효과적으로, 평등하게 가져야 함); 의제에 대한 최종적 통제; 포괄성; 기본권. 

    또한 아주 간략하게 역사상 정치적 특권층이 자원을 독점해 왔음에도 평등을 지향하는 운동과 변화가 어떻게 가능해왔는지를 개괄한다. 특권은 교의를 통해 정당화되지만, 이런 교의는 하층계급에 보편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여기서 인용하는 연구는 James Scott의 Domination and the Arts of Resistance). 세대나 이념, 믿음, 구조가 변화하면 억압받는 계층에 대해 호의적인 환경이 종종 조성되는데, 그렇다면 변화에 대한 압력이 증가하고 지배 계층 내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3장과 4장에서는 정치적 평등을 추동하는 힘에 이성적 판단만이 아니라 감정도 있음을 짧게 논하는데, 언어와 이성 그리고 직관과 감정이 모두 협력에 중요하다는 것을 심리학 결과를 인용하며 주장한다. 그런데 감정은 기본적으로 편파적(partial)이기 때문에, “감정이입만으로 멀리 떨어진 타인을 위해” 행복을 희생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정치적 평등을 향한 변화를 가져오게 만든 감정적인 충동 내지 정서적인 추동력이 무엇이든, 그런 성취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정서적·인식론적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64). 

    5장에서는 정치적 평등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논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정치적 자원, 기술, 그리고 유인의 분배, (2) 더는 축소할 수 없는 시간의 한계, (3) 정치체제의 규모, (4) 시장경제의 확산, (5) 중요하지만 민주적이지 않은 국제 체제의 존재, (6)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심각한 위기.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5)였다. 국제 체제는 각 국가 시민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만, 그 결정은 민주적이지도 않고 민주적이기도 힘들다. 국제 체제 내부 국가들의 다양성(이질성), 상당한 규모 등등 때문에. 

    6장은 정치적 평등에 장애가 되는 요인 때문에 미국에서 정치적 불평등이 심각히 심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5장에서 논한 요인들을 하나하나 따진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시장경제의 확산과, 어느 정도는 그것으로 인한 소비주의의 확산이다. 이런 소비주의 문화는 “시민권의 문화라고 부르는 것보다 미국인의 사고와 행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106), 이는 소비주의가 조장하는 시기심의 감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을 토대로 7장에서는 과연 소비주의 문화를 시민권의 문화가 대체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짤막하게 논한다. 사실 행복에 대한 인지적 연구를 살펴 본다면, 어느 정도의 적정한 소비를 이루면 사실 소비가 더 증가한다고 해서 행복이 더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결과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달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소비 충동이 “행복 혹은 복지를 추구하고자 하는” “훨씬 더 강력한 충동”과 모순된다고 지적한다(121). “시장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 소비를 계속해서 증가시킴으로써만이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과도하게 강조하는 일반적인 문화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의문을 던지게 되지 않을까? 더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 [다른 사람들의]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찾거나 그 해결책을 확실하게 실행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는 없는 것일까?”(127). 이런 관점에서 실패한 60년대 반문화 운동과 학생조직 SDS를 다루고 책은 끝난다. 

 

달의 마지막 희미한 희망에 반박이 될 수 있는 것은 소비주의의 동력은 주관적 행복에의 열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상대적 지위 비교에서 온다는 것이다(로버트 프랭크, 『사치 열병 Luxury Fever』). 즉 많은 사치재들은 맥락 의존적이다. 소비주의 문화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로버트 프랭크가 제안하는 누진 소비세 등의 제도 도입이라든지 집합 행위가 필요하다고 할까… 

 

정치학 입문 강의 같은 걸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평이한 내용의 책이라도 그동안 이것저것 들어서 안 정보들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만 나는 처음에 독서를 시작한 목적이, 로버트 달이 어떻게 엘리트 통치가 아닌 다두적 정치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지가 궁금해서였는데 그런 정당화 내용은 거의 없음으로 이런 거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스킵하는 것이 좋겠다. 

 

다음에는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를 가볍게 읽어 봐야지. 더 여유가 난다면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을 읽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