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하, [냉소사회], 현암사, 2016. 읽고 정리 및 생각 메모. 

 

체제적 열등감? 

 

책 제목을 감안하면 핵심은 2장부터인데, 개인적·체제적 차원의 열등감을 감소시키기 위한 개인적 자구책이 바로 냉소주의라는 것이다. 사실 사회 전반적 차원에서 조성되어 있는 열등감이 개인에게 곧바로 냉소주의라는 해결책을 갖도록 하게끔 유도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다. 더군다나 저자 자체가 학벌주의라든지 생애주기별 이상적 모델이 뚜렷한 일반적 정서 같은 것이 아닌 선진국이 되고자 하는 열망 같은 것을 ‘체제적 열등감’이라고 정의내린 데에서(64-65쪽) 좀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1장에서 세월호 사건을 한국 사회 근대화 전반에 걸친 열등감의 해소 내지는 그것을 위한 캐치업(따라잡기)의 시도와 관련지어 해석하고자 시도한 것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동원하는 사실관계나 심리적 인과관계에 대해 학적으로 따지고 들어간다면 엄밀하지 않은 부분이 많겠지만 비평을 할 때 일종의 해석 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던 것 같다. 

 

1장은 사실 다른 책 내용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 같다. 

 

“이러한 체제적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부는 공공적 영역을 사실상 포기하고 시장에 떠맡기면서 ‘작고 효율적인 정부’라는 허상에 스스로를 가둔다.”(76) “고도성장 시기의 체제적 열등감이 선진국과의 격차가 엄청난 상황에서 북한과 체제 경쟁을 해야 했던 처지에서 비롯됐다고 한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체제적 열등감은 정부가 실패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75) 

 

 

인터넷 커뮤니티 분석 

 

2장에서 저자 김민하가 제시한 열등감을 해소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냉소’와 ‘열광’이 있다는 분류는 이후 3장에서 지젝의 인용과 함께 보다 세련되어진다. 바로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대해 ‘그럼에도 진정한 무엇인가가 있다’(열광), ‘아무것도 없을 뿐이다’(냉소)인 것이다. 나는 지젝을 읽은 바가 없으므로 그냥 그렇다고 느낌으로 이해했는데 뭐 그래도 독서에 큰 문제는 없다.

 

아무튼 2장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역사를 간략히 짚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을 비평한 시도는 몇 개가 있었던 것 같다. 안 읽어 봤지만 이길호의 『우리는 디씨』라든가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 (후자는 읽어 봄). 뭐 더 최근으로 가자면 박가분의 『혐오의 미러링』 (읽지 못함)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암튼 그런 서적들이 웹 공간의 진화를 비교적 통시적인 시각에서 고찰했느냐는 모르는 일이다. 

 

냉소사회 책 2장에서는 그런 시도가 있어서 재밌었다. PC통신 - 인터넷 게시판 - 블로그 - 소셜 미디어(SNS)로 이어지는 인터넷 공간의 구조 변동. 여기서 피시통신은 또 채팅방이랑 (원시적) 게시판으로 나뉘는데 채팅방은 “나가면 그때까지 대화가 유실되는 특성”(94쪽)을 가지고 있다. 아마 네이버 카페 채팅방도 2010년까지는 이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피시통신 게시판의 특징은 댓글을 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제로보드 게시판에 댓글을 달 수 있음에 따라 아이덴티티를 가진 인터넷 논객이란 것이 생길 수 있게 되었다. 김민하는 그들이 “언제나 같은 이름을 사용해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아를 형성하고 자신이 제기하는 담론의 일관성을 이어간다”(96-97쪽)고 표현한다. 댓글 기능에 힘입어 가능해진 인터넷에서 아이덴티티 쌓기는 블로그 형식에서 한층 더 강화된다. 그런데 블로그는 게시판처럼 아무나 들어와 여러 말이 오가는 걸 볼 수 있는 광장이라기보다는 그냥 주인장이 하는 말을 듣는 1인 미디어의 형태에 가까워서 인터넷 소통의 방식도 변화하게 된다(99-104쪽).

 

그런데 재밌는 것은 SNS 시대가 되어 개별 이용자의 아이덴티티는 중요한 것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정한 이름이나 닉네임을 걸고 계속 계정을 쓰니까) SNS의 마이크로? 단문적인 특성 때문에 특히 트위터에서는, 김민하의 표현으로는, ‘메시지의 일회성’과 ‘주체의 연속성’을 전부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106쪽 참조). 이런 SNS 시대의 특징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칼날 같은 논리를 뽐”낼 필요가 없고 “단지 비웃고 이에 대한 여러 사람의 동의를 모으는 것만으로 내가 시샘하는 사람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106쪽). 물론 다른 인터넷 공간에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트위터의 특성이 자신의 약점은 감추고 남을 조지는 것은 쉽게 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인정투쟁을 더욱 쉽게 만든다. 

 

과연 트위터가 없었다면 2015-16년부터 트위터를 휩쓸었던 일련의 폭로들이 소기의 결과를 낼 수 있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트위터에서 떠도는 유언비어나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분석 같다. 

 

트위터 말고 페이스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저자는 페이스북의 가상 자아-현실 자아의 일체 특성을 두고 이것이 “일상에서 맺고 있는 인간관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커뮤니티의 성격도 변화시키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무슨 말이냐면 이제 우리는 “일상에서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하는 독백을 가상공간에서는 누구나 들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어렵게 말하면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를 가상공간에서 재현하며 자기 전시의 방식 중 가상공간의 고유한 몫을 고스란히 일상에 포섭하는 파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108쪽). 결과는 더욱 빠르게 인터넷 공간에서 확산되는 개인적 냉소이다. 

 

왜 하필 페이스북이 일상 자아와 가상 자아의 일체감을 이런 식으로 풀도록 유도했는지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페이스북에서 냉소를 쏟아내는 사람 유형도 있지만 아무튼 공적인 인간관계의 확장으로서 페이스북을 조심스럽게 이용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해도 재미있는 분석이다. 

 

이런 인터넷 커뮤니티 분석도 글 흐름과 약간 별개로 해서 독립적으로 읽혀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분량 상 아쉬운 점들이 많다. (예컨대 ‘된장녀’나 ‘개똥녀’, 문희준에 대한 집단적 비난 등의 사건은 주로 디시인사이드나 기타 게시판형 사이트에서 주도되었으니까.) 누군가가 인터넷의 논쟁 문화에 대해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눈여겨 볼 문장은: “인터넷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절차에 따른 민원을 축구협회에 제기하기보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이를 여론화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고 파괴력을 지닌 행위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 내용을 모두가 공유하고 문제 제기를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지, 대안으로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를 정하는 게 아니다. 공격이냐 방어냐의 기본 태도를 정하는 게 모든 것에 우선한다.”(114쪽)

 

이런 문장을 읽으면 나는 최근의 학생 사회를 생각하게 된다. 기존에도 뭐 학내 정치라는 게 잘 된 적은 별로 없었겠지만 대학 별로 인터넷 커뮤니티가 대중화되면서 인터넷 공간을 통한 여론화라는 게 중요해졌다. 많이들 학내 커뮤니티에서 총학생회나 대학 본부를 성토하면 무언가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는 현상. 그러면서 잃게 되는 것은 집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우리 대학 커뮤니티에 심심하면 올라오는 것이 “총학 일 하나요?” 왜 일 안 하냐고 성토하냐면 에어컨이 늦게 나온다거나… 커뮤니티에 글 쓰는 방식으로 ‘소통’을 안 한다거나… 뭐 나는 총학이랑 관계 없지만 일 하는 사람들은 참 노이로제 걸리겠지 싶다.) 

 

어떻게 보면 학내 자치라는 것이 기반부터 붕괴하고 있다는 조짐이 드러나는 것이다. 뭐 사실 지금이 학생회라는 게 잘 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아니다. 학생회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망하는 게 엄청난 문제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들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없거나 잃어 간다는 점이겠지. 최근 최순실 게이트 때의 시국선언 등에서 보았듯이 대학생들은 적어도 일반 대중보다는 정치적으로 약간은 더 액티브한 존재이지만 이것과 자치의 능력은 별개의 것이다. 

 

관련되어 있지만 약간은 또 곁다리인 얘기를 잠시 하자면.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성토하는 것이 마치 정당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정치적 행위인 것처럼 사람들이 점점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일종의 여론화 혹은 공론화만을 운동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런 생각이 더 정당한legitimate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또 여론에 감응해야 하는 집단도 이런 인터넷의 요구를 중요하게 안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된다. 최근 청와대의 국민청원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물론 해명책무성accountability은 중요하지만… 소비자적 불매운동, 권리 찾기 운동으로 책임 있는 주체의 해명을 얻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소비자주의 

 

“언론에 대한 대중의 냉소는 음모론이라는 결론으로만 이어지지 않고, 독자가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이건 또 소비자-독자의 아마추어리즘? 제한된 정보, 합리성? 뭐라고 해야 할지… 하여튼 인터넷 공간에서 숙고되지 않은 가치가 0에 수렴하는 의견도 그냥 의견 1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많은 댓글들은 “사실상 인상비평에 기댄 억지 논리이거나 순환논증을 되풀이하는 사례가 많다”(168쪽). 그러니까 제대로 안 읽고 비판한다는 것인데 이것도 같이 포괄해 소비주의라고 일컫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매체인 인터넷이 대중화된 이후 상당히 최근의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아님 말고), 『우리에게는 쉼표가 필요하다 The End of Absense』(마이클 해리스, 김승진 옮김, 현암사, 2019)의 4장 “여론”을 같이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요지는 아마추어들도 인터넷에서는 동등한 발언권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자는 아마추어 아닌가요? 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김민하는 이런 소비주의를 ‘비평의 종말’과도 연결짓는데 이 부분이 재미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 [영화 비평에] 거부반응을 보”이는데 반응은 대체로 (1) 비평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 혹은 (2) “보고 즐기면 되는 걸 뭐하러 머리 아프게 비평을 하느냐”=“나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왜 욕하느냐”라는 것이 있다(169, 170쪽). 문제는 (2)의 경우이다. 

 

책이 2016년에 쓰여진 거다 보니 뭐 「국제시장」 같은 영화가 인용되는데, 나는 읽으면서 「걸캅스」, 소위 ‘걸복동’ 논란이 떠올랐다. 걸캅스의 경우 위의 소비자주의, 비평의 종말을 보여주긴 하는데 조금 복잡하다. (나는 이 케이스는 미국의 게이머게이트 사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Quinn의 게임 Depression Quest를 둘러싼 남성 게이머들의 반응 말이다. 게이머게이트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은 Angela Nagle, Kill All Normies, Zero Books 를 참고함.) 

 

암튼 걸캅스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개 이것이다: (1) 자고로 영화는 재밌거나 혹은 예술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메타크리틱 점수 등으로 드러나는 작품성이다. (2) 근데 걸캅스는 재밌거나 예술적이지도 않으면서=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답습하면서 여성주의 팔이로 표를 얻으려고 하고 있다. (3) 이것은 뭐 최근 몇몇 마블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예술과 상관 없는 PCness 혹은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등을 끼얹어 예술의 재미와 작품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로서 존나게 욕을 먹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남자들의 반응이 최소한의 비평의 형식은 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뭐 예컨대 영화가 기존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모두 답습하고 있다는 주장에서 드러난다. 그럼에도 광기에 가까운 알레르기 반응도 드러내는데 바로 재미로 보는 영화(게이머게이트의 경우는 게임)에서 어떤 편향적인 정치적 지향성(?)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작품에 어떤 정치성을 넣는다는 것이 곧바로 노잼으로 이어진다는 정당화하기 힘든 인과관계를 은연 중에 전제하고 있는 것인데 일단 넘어가자. 

 

여성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영화를 안 봐도 예매를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나름의 지지를 보태는데 이것 역시 사실 또 소비자주의적인 대항 행위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쨌든 비평가들은 계속 새우등 터지듯이 얻어 맞고 있다. 

 

 

이후 4장이나 5장도 다시 훑어보고 뭔가 쓰면 좋을 것 같은데 일단 숙제를 해야 해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