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번스타인,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 번스타인,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18.
전체 170페이지 정도고 판형도 작아 읽기에 부담이 없는 책.
앞의 악의 평범성이나 권리를 위한 권리에 대한 장들은 관련 논의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크게 새롭지 않을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아렌트의 시온주의 비판 장. 팔레스타인 역사를 잘 모르지만…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읽긴 했는데 거의 다 까먹었다. 수업 때문에 급하게 읽은 것이라. 흑흑) 아랍-유대인 평의회를 수립하는 것을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아렌트가 제시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아래에 인용한 아렌트의 통찰—유대인들이 비록 건국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물리적 자기방어에만 몰입해 다른 모든 관심과 활동은 잠식당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논평—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이것은 아렌트의 행위/활동 이론과도 관련이 있다. “의견의 형성은 고립되어 있는 고독한 개인이 수행하는 사적 활동이 아니다. 관점을 달리하는 의견들과 진정으로 직면할 때 … 에만 의견은 검증될 수 있고 확대될 수 있다.”(110) 정치는 특정한 공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매우 현재적인 맥락에서 쓰여졌다. 아렌트의 사상이 이해하기 쉽게 다이제스트 식으로 요약되는 동시에 그것은 도널드 트럼프 현상이나 난민 현상 같은 최근의 문제들과 같이 다뤄진다. 일반 독자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 듯…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렌트가 “정치와 공연예술의 유사성에 대해” 강조한 부분. (132쪽) “공연예술가—무용가, 연극배우, 음악가 등—는 자신의 기교를 보여줄 관객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마치 행위자가 그 앞에 나설 수 있는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연예술가나 행위자는 모두 자신의 ‘작품’을 위해 공적으로 조직된 공간을 필요로 하며, 행위의 수행 그 자체를 위해 타인에게 의존한다.”(132쪽, 아렌트의 글, 『과거와 미래사이 Between Past and Future』 국역본 210쪽) 제프리 알렉산더 생각도 난다.
또한 아렌트는 칸트의 취미판단 개념을 인용하여 정치적 사유에 본질적인 판단이 무엇인지 생각을 전개한다. “판단의 과정은 내가 최종적으로 합의에 도달해야 할 사람들과의 예상되는 의사소통 속에 늘 우선적으로 놓여 있다. 이러한 잠재적 합의에서 판단은 그의 특수한 타당성을 도출한다. … 다른 한편으로, 이 확장된 사유방식은, 판단처럼 자신의 개별적 한계를 초월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엄격한 고립과 고독 속에서 기능할 수 없다. 그것은 “그 관점을 대신해서” 사유해야 하고 그 관점을 고려해야 하며 또한 그 없이는 결코 작동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타인의 현존을 필요로 한다.”(146쪽. 아렌트의 글. 국역본 『과거와 미래사이』 294-295쪽)
충성에 근거한 반대: 아렌트의 시온주의 비판
“시온주의자들이 행한 선언에서 아렌트가 경각심을 느꼈던 부분은 그들이 점차로 아랍 문제, 즉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다수민이 유대인이 아니라 아랍인이라는 사실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가능한 가장 강력한 언어로 표현하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65).
“그리고 비록 유대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그 결과 팔레스타인에서 시온주의의 독특한 가능성과 독특한 성취가 파괴되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존재하게 될 나라는 시온주의자와 비시온주의자 등 모든 유대인의 세계라는 꿈과는 아주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승리한” 유대인들은 전적으로 적대적인 아랍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그 어떤 때보다 더 위협받는 국경 내에 격리된 채, 물리적 자기방어에만 몰입해 다른 모든 관심과 활동은 잠식당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유대인 문화의 성장은 모든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다. 사회적 실험은 비실제적 사치들로 여겨져 버려질 것이다. 정치적 사유는 군사전략에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 경제적 발전은 전적으로 전쟁의 필요로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한 민족의 운명이 될 것이다.”(72-73쪽. 아렌트의 글. 원본은 The Jewish Writings, pp. 396-97, 강조는 본인.)
“그녀[아렌트]는 이것[지역 아랍-유대평의회들에 기초한 연방제 국가 제안]이 유대인 조국이라는 이상을 구현하는 “현실적” 방법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75)
인종주의와 분리
“아렌트는 공립학교에 대한 연방정부의 통합교육 강요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인간의 조건』에서 상세히 논한 범주들을 사용해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그리고 사적인 것을 예리하게 구분했다. 그녀는 사회적 차별을 정치적 수단으로 불법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가령 백인 학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을 백인 아동들만 있는 학교에 보내길 원할 때 정부는 그것을 방해할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80)
“아렌트는 전 생애에 걸쳐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를 비난했다. [e.g. 「폭력론」]”(84), 그러나 “아렌트는 유럽적 맥락에서 발생한 이데올로기적 체제로서 인종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지만, 미국 흑인들의 경험에 대한 그런 통찰의 적실성을 올바로 평가하는 데 실패했다”(84-85).
“아렌트는 시민권이 차별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88).
악의 평범성
아렌트는 “톱니바퀴 이론”, 즉 아이히만이 거대한 관료주의 기제의 한 톱니바퀴였다는 생각도 분명히 거부했다. 자신은 단지 한 체제의 톱니이거나 바퀴 중 하나라는 주장에 대응해 “그러면 왜 당신은 톱니바퀴가 되어 이런 방식으로 계속 기능했는가?”라고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되묻는 것은 언제나 적절하다. 아렌트의 가장 중요한 지적은 악을 신화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01쪽)
'독서 일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앤 페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0) | 2019.06.16 |
---|---|
매슈 레이놀즈, 『번역』. (0) | 2019.05.28 |
로버트 달,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0) | 2019.05.24 |
김민하, 『냉소사회』, 현암사, 2016 읽고 정리 및 생각 메모 (0) | 2019.05.19 |
노정태, 『논객시대』, 반비, 2014. (0) | 2019.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