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키아 사센, 『축출자본주의』, 박슬라 옮김, 글항아리, 2016.

 

작년 10월 쯤에 단숨에 읽은 책.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으로 시작. 케인즈주의로 대표되는 1940-70년대까지의 자본주의와 다른 최근의 자본주의에는 어떤 논리가 내재되어 있는가? 간단히 말해 사센은 이전의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노동자 및 소비자로서의 ‘가치’를 부여해 많은 사람들을 체제 내로 포괄(inclusion)하고자 했으나, 현재의 자본주의는 금융 자본의 이익과 자연 자원의 활용을 위해 인간들을 체제 밖으로 ‘축출’(explusion)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봄.  


기존 케인즈주의 체제에서 성장은 노동 계급의 재생산을 보장하고 두터운 중산층의 형성을 꾀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금융 시장이 성장하며 세계는 자연과 인간들을 ‘축출’하면서 지표상으로만 경제 성장을 도모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명백해진다. (1) 사람들의 축출과 경제의 위축. 1980년대 이후 사센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 구조가 변화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1990년대 즈음 복지 축소, 민영화(사유화), 수입관세 철폐, 규제완화와 함께 세계의 일부 지역을 이윤 확대를 위한 특화 지구로 만들었다(e.g. 아웃소싱 제조업 지대, 인도의 대규모 콜센터 등). 이는 중산층을 약하게 만들고 많은 도시 빈민과 난민을 증가시켰다. 축출의 최종 메커니즘은 대규모 수감이다.  


(2) 토지의 수탈. 90년대 이후 세계화와 규제 완화로 인해 초국적 자본이 타 주권 국가의 토지를 엄청난 규모로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초국적 자본의 영향은 지역의 이해관계에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기 쉽고, 주권 국가의 규제를 넘어 토지를 황폐화시키는 정도까지 이윤을 뽑아내기 쉽다. 전통적으로 농경을 일구던 공동체들은 말 그대로 축출된다.  


(3) 금융자본주의의 파괴적 영향력 증가.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표적이다. 금융은 주거와 같은 사람들의 필수적인 자산까지 증권화해, 파생상품이라는 복잡한 상품으로부터 가치를 착취했다. 거품이 무너졌을 때 빚을 갚지 못해 퇴거당하는 사람은 엄청났으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빈민이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되었다.  


(4) 엄청난 규모의 환경 파괴. 초국적 기업에 의해 이뤄지는 자원추출과 대규모 플랜테이션은 전례 없는 규모로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예: 프래킹, 수자원 오염, 산업폐기물, 유독가스 누출 사고 등) 자연의 파괴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저개발국이나 선진국 양쪽 모두에서 진행된다. 


이러한 ‘축출’의 동향은 선진/후진 자본주의 국가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주권국가나 계급, 중산층, 소득 불평등과 같은 개념적 도구들은 이러한 동향을 파악하기에 부적절하다. 전세계적인 환경의 파괴와 수감자의 급증, 난민 문제와 빈민의 대규모 급증이라는 최근의 동향을 소득 불평등이나 가계 부채라는 개념으로, 주권국가의 경계 안에서 파악하기라는 불가능하다. 지정학적 경계를 초월하는 이 현상들을 포괄해 분석하기 위해 사센은 축출(expulstion)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는 것. 

 


 

"이런 자본주의 개편의 기저에는 두 가지 논리가 존재한다. 하나는 제도적 논리로, 민영화와 수입 관세 폐지 등 국가의 경제 및 규제(완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변화는 대개 조세나 통화 제도가 불안정하고, 그 경계가 허물어질 때 나타난다.
    또 하나는 세계 여러 지역이 이윤 착취를 위해 극도로 특화된 지구로서 새로이 또는 급격히 변모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익숙한 형태가 세계도시와 아웃소싱 공급처다. 이 두 장소는 값비싼 컴퓨터와 그 컴퓨터를 구성하는 부품처럼 발전 단계가 다르지만, ‘글로벌’ 기업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조건이 집약된 ‘로컬’ 환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늘날 이와 유사한 로컬 환경으로는 수출용 자원을 생산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이나 광산을 들 수 있다. 세계도시가 다국적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고급 자원을 생산한다면 아웃소싱 공급처는 반대로 규격화된 부품이나 대규모 콜센터, 표준화된 사무직 노동력을 대량 공급한다. ... 동시에 이 장소들은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고안하고 실행하는 계약 및 규제 완화 정책을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혜택을 얻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비용은 납세자들이 부담한다." (38쪽) 

"다음으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급격한 변화들을 살펴볼 것이다. 기업 수익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와 정부의 심각한 재정적자, 개도국의 국내 난민과 선진국의 수감자 증가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일정한 법률과 제도, 목적, 그리고 여러 장애물이 결합된 시스템 안에서 독특하게 기능하는데,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세 번째 단계(아직은 초기에 불과하지만)로 이어지게 된다. 이 세 번째 단계의 독특한 특성이 바로 생계와 삶의 계획,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리, 그리고 민주주의의 핵심인 사회적 계약으로부터 퇴출되는 ‘축출’이다. 축출은 단순히 빈곤이나 경제적 불평등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설명하는 축출은 아직 충분히 가시화되지도 않았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다. 몇몇 영역에서 예외가 있지만 아직 대다수의 사람은 접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축출은 대개 좁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제도권의 변두리에서 시작돼 점진적으로 심화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가파른 변화가 아직 통계상으로는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중산층은 재정적으로는 궁핍하면서도 여전히 근사한 집에 살며 화려한 허울 속에 진실을 감추고 있다." (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