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탈 무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샹탈 무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이승원 옮김, 문학세계사, 2019.
목차: (1) 포퓰리즘 계기 (2) 대처리즘의 교훈 (3) 민주주의를 급진화하기 (4) 대중의 구성
“그러나 유럽에서 민주주의를 말할 때, 우리는 구체적인 모델을 언급하게 된다. 그것은 민주주의 원리를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 새겨 넣는 작업을 통해 발생하는 서구의 모델로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 입헌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다원 민주주의와 같이 말이다.
이 모든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전통의 접합을 통해 특징지어지는 정치 레짐이다. 두 전통 중 하나는 법의 지배, 권력 분립, 개인의 자유 보호와 같은 정치적 자유주의 전통이고, 다른 전통은 평등과 대중주권이 중심 사상인 민주주의 전통이다. 이 두 전통 사이에는 필연 관계가 아니라, 오직 우연적인 역사적 접합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우연적인 접합은 CB 맥퍼슨이 설명하듯이, 절대주의에 맞선 자유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의 공동 투쟁을 통해 발생했다.”(28쪽)
무페가 말하는 포퓰리즘 계기란… 민주적 자유주의 정치는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적 이상과 권력 분립, 개인 자유 보호라는 자유주의적 이상의 경합과 협상 과정인데, 여기서 ‘민주주의’가 심각히 축소된 현 상황은 “포스트 민주주의”(원래는 콜린 크라우치가 제안한 용어)라고 불릴 수 있다. 대중주권이 축소된 이유는 “탈정치”(주류 정당이 인민을 대표하지 못하고, 중도적 합의에만 갇히는 현상. 무페가 보기에 이것은 정치의 경합하는 본성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 33쪽) 혹은 “지구화”와 “과두제화”(33쪽). “‘포퓰리즘 계기’가 파악되어야 하는 지점은 바로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이상이 침식되고 있는 포스트 민주주의 상태이다.”(34쪽) 포퓰리즘은 우파 진영에서 먼저 발생했는데, 이런 우파 포퓰리즘에 맞서는 전략으로 무페가 제안하는 것은, 좌파가, 충동적이어 보이는 우파 포퓰리즘의 지지자들의 “수많은 요구들 한 가운데에 있는 민주적 핵심을 찾아내” 전유하는 좌파 포퓰리스트 전략이다(40).
좌파 포퓰리즘의 전략은 대처주의로부터 찾을 수 있다(대처주의의 교훈). 무페가 보기에, “그녀는 정치의 당파적 본성과 헤게모니 투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50쪽) “사회민주주의 헤게모니에 대한 맹공을 퍼부으면서, 마거릿 대처는 ‘상식’이라 고려되는 것들을 담론적으로 재배열하고, 그 상식에 달린 사회민주주의 가치들과 싸우기 위해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전선에 개입했다. 주요 목표는 자유주의, 그리고 맥퍼슨이 말한 것처럼 자유주의를 ‘민주화’시킨 민주주의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53쪽) “이 이데올로기적 전략[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에 담긴 또 다른 움직임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구성하는 것이었다.이것은 민주주의를 ‘자유’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자유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관념은 개인의 자유라는 관념보다 부차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와 사적 소유에 대한 방어는 특권적 가치로서의 평등에 대한 방어를 대체할 수 있었다.” (54쪽. 강조 본인) 대처가 재임 시 한 가장 훌륭한 업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답한 말: “토니 블레어와 신 노동당이죠. 우리는 우리 적이 마음을 바꾸도록 힘을 썼죠.”(56쪽)
민주주의를 급진화한다는 것은? “우리[무페, 라클라우] 관점에서 볼 때, 근대 민주주의 사회가 가진 문제는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구성 원리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좌파의 임무는 이 원리들을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원리들이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싸우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옹호하는 ‘급진 다원 민주주의’는 기존 민주주의 제도들의 급진화로 이해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자유와 평등 원리들은 점차 증가하는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효과적이게 되었다. 이 작업은 토대의 완전한 재구축을 암시하는 혁명적 형태와 급진적으로 단절할 거슬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급진 다원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전통이 가진 상징적 자원들을 끌어내 오는 내재적 비판을 통한 헤게모니적 방법으로 성취될 수 있었다.” (68쪽)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 등 광장의 구호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민주주의’ 기표가 정치적 상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이다.”(70)
무페는 좌파 포퓰리즘 전략을 급진적 개혁주의, 혹은 혁명적 개혁주의라 이름 붙인다(76쪽). 이는 ‘극좌’의 혁명적 전략과는 다른데, 첫째로 무페의 전략은 국가를 탈취하거나 제거해야 할 억압 기구가 아닌 “세력 관계의 결정화crystallization이자 투쟁의 지형”으로 파악하고(77), 둘째로 극좌 ‘혁명’ 전략과 달리 자유민주주의의 ‘합법성 원리’를 수용한다. (자유민주주의적 원리와 단절해야 한다는 일부 극좌의 오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 제도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사이”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이론적 혼란 때문이라고 무페는 정리한다. “이 접합은 우연적인 것이다.” 79쪽; “오늘날 광범위한 민주주의 요구들을 진전시킬 수 있게 되는 곳은 바로 자유주의 국가에 있는 원리들—권력 분산, 보통 선거권, 다당제, 시민권—의 틀 안에서이다. 포스트 민주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 원리들을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고 급진화시키는 것이다.” 80쪽)
“이것이 다양한 국가 기구들을 전환시켜서 국가를 여러 민주주의 요구들을 표현하는 매개물vehicle로 만들기 위해서 헤게모니 전략이 이 기구들과 연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중요한 것은 다원주의를 조직화해 가는 국가와 제도들이 ‘서서히 약해져 가는 것’withering away이 아니라, 이 제도들을 민주주의의 급진화 과정에 맡기기 위한 심도 깊은 전환이다. 목표는 국가 권력의 장악이아니라, 그람시가 말한 대로, ‘국가가 되는 것’이다.”(78)
“시민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것은 대표성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경합적 대결의 결핍인 것이다. 해결방안은 대표성을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제도를 더욱 대표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좌파 포퓰리즘 전략의 목표인 것이다.”(91쪽) 이런 맥락에서 추첨으로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려는 제안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대의제는 이러한 갈등적 차원의 제도화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90)
대중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이게 4장의 질문이 될 수 있는데, 무페는 그것을 ‘시민’이라는 어휘로 정리하려고 한다. (민주주의적 의미의) 시민권이란 “일반적 이해관계에 대한 특정한 생각에 따라 정치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우리’의 일부로서 행동하는 것으로 생각된다.”(101) 여기에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은 “이 전략이 국민적 차원에 부여하는 역할에 대한 것이다.” (109) 이에 대한 응답은 민주주의적 급진화는 국민적(혹은 국민국가적) 수준에서 먼저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적 차원의 집합 의지가 공고화된 후 다른 국민국가의 운동과 연대하는 것은 생산적일 수 있지만,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국민적 형태의 동일화 과정에서 작동하는 강력한 리비도적 투여를 무시할 수 없”다(110). 이것은 곧 샹탈 무페가 대중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감정(정동affect)적 실천을 중시하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리차드 로티가 자주 강조했듯이, 비트겐슈타인적 관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충실함과 그 제도의 가치에 대한 신념이 민주주의에 대한 지적 토대의 제공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도록 한다.”(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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