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악번역. Hans Joas and Wolfgang Knöbl, Social Theory, Trans. by Alex Skinne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8장 “Conflict sociology and conflict theory.” 갈등사회학과 갈등 이론. pp.174-198. 소제목은 임의로 붙인 것임. 


배경 및 도입 

앞선 장에서 다룬 신공리주의, 민속방법론과 상징적 상호작용주의는 1950-60년대의 파슨스 학파에 대한 반동이다. 그런데 앞선 세 개의 학파는 파슨스 학파의 행위 개념을 주로 다루었고, 사회 질서나 변동의 문제에는 주의를 깊게 기울이지 않았다. 

앞선 배경 하에서 소위 갈등사회학은 1950년대 중반부터 부상하게 된다. 파슨스는 사회적 실재의 규범적 요소들을 너무 강조했고, 그럼으로써 단순히 정적인 사회 질서만을 가정하게 된 것이다. 갈등 사회학은 사회적 삶에서 이익의 충돌과 권력 관계의 역할을 사회학 분석대상의 중심 자리로 갖다 놓고자 한다. 

갈등사회학은 1960년대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때는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서구에서 강해진 시기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파슨스에 대한 갈등사회학적 비판이 좌파적인 정치스펙트럼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한다. (174)


파슨스에 대한 해명

그런데 파슨스 자체는 사회질서가 굳건히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은 보수주의자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는 미국의 특정 사회·정치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한 적은 전혀 없다. (2장을 보면, 파슨스는 FDR와 뉴딜정책의 지지자였고 FBI의 뒷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사회 갈등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선험적(칸트적 의미)으로 사회적 질서의 기본 전제가 무엇이 되는지 밝히는 것이었다. 물론 파슨스의 이론모델이 갈등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는 있다. 그것이 사회변동을 거시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더라도 파슨스의 이론틀이 ‘조화에 대한 편향harmonious bias’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75)


갈등사회학과 갈등이론의 의미 

갈등사회학 자체에는 개념적 어려움이나 모호성이 있다. 갈등사회학은 사회학의 세부학제로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가족사회학, 종교사회학 같이). 한편 갈등사회학은 그 자체로의 특정한 이론적 접근방식으로서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갈등이론conflict theory이라는 용어를 후자의 의미로 쓰고자 한다. (175-6)


파슨스 이론을 확장하고자 한 노력들 

파슨스의 추종자들은 갈등을 사회학의 중심주제로 위치시키는 데 실패했다. 비록 그들은 경험적 현상으로서의 갈등을 연구하긴 했으나 이것이 파슨스 규범이론의 골격에 대한 전면적 수정이나 영향력 있는 비판으로 보기는 어렵다. 단지 세부적 갈등 영역에 대한 연구의 여지만 남겨 놓았을 뿐. e.g. 로버트 머튼Merton의 역할 갈등role conflict 이론.

의미 있는 진전은 루이스 코저Lewis Coser에 의해 이뤄지게 된다. 그는 저작 사회적 갈등의 기능들The Functions of Social Conflict에서 파슨스의 이론적 접근과 맥을 같이 하는 동시에, 갈등을 병적인 것이나 개인적 일탈 같은 심리학적으로 결정된 현상으로 보는 파슨스적 시각을 비판한다. 그는 파슨스가 뒤르켐에만 너무 관심을 기울였고 베버의 갈등에 대한 통찰은 방기했다고 주장했다. (176)

코저는 짐멜Simmel에 큰 영향을 받았다. 짐멜의 에세이 ‘갈등Conflict’은 갈등적인 사회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견지했다(이는 독일적 문화 전통과는 다르다). 이를 물려받아 코저는 사회 갈등이 충족시키는 기능에 대해 집중했다. 그는 모든 갈등이 공격적인aggressive 형태를 취하지는 않고, 그렇기 때문에 갈등의 부재 자체는 곧바로 사회체계의 안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갈등의 부재는 후에 통제불가능한 분출eruption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달리 말해 열려 있는 형태로 잘 정착된 갈등은 안정성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갈등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가질 수 있는데, 왜냐하면 갈등은 새 제도나 규칙의 수립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Continuities in the Study of Social Conflict, 1967). (177)


기능주의에 대항한 갈등이론 


1) 미국 - 벤딕스
 
파슨스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코저는 기능주의 내부에서의 발전을 꾀하고자 했다. 한편 그렇지 않은, 좀더 근본적인 단절radical break이 사회학 안에서 일어나게 된다, 1956년 경부터. 즉 갈등론적 접근을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발달시키려는 시도이다. 미국에서는 라인하르트 벤딕스(R. Bendix)가 주도적이다. 벤딕스는 맑스의 영향을 받았으나 맑스의 이론적 약점 역시 염두에 뒀고, 이를 토크빌Tocqueville과 베버의 이론적 툴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맑스가 모든 갈등을 계급갈등으로 환원하려 했던 시도를 비판했다(Social Stratification and Political Power, 1952). 한편 맑스의 통찰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데 이런 식의 맑스적 통찰을 유지시키려는 모티프는 갈등론 내에서 계속 나타나게 된다. 벤딕스는 (계급)갈등이 예측 가능하다고 본 맑스의 주장을 거부하고 사회운동이 어느정도 지역 조건이나 역사적으로 물려받은 것, 위기의 강도acuteness에 따라 우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178)

Work and Authority in Industry라는 1956년 저작에서 그는 파슨스와는 매우 다른 관점을 취한다. 이것은 차르 러시아와 영국의 초기 산업화에 대한 역사-비교적 연구이다.  파슨스는 기본적으로 조직이 노동분업에 기반한다고 보았지만 그는 이를 부정했다. (179-180). 그리고 그는 파슨스가 했던 방식으로는 다르게 베버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파슨스를 비판한다(180). 


2) 유럽 - 록우드, 렉스, 다렌도르프 

아마도 파슨스 패러다임의 지대한 지배 때문에 미국 사회학에서 갈등의 주제는 (1) 코저처럼 기능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방법으로 다뤄지거나 (2) 보다 근본적 접근을 취하지만 그 이론적 야망이 모호하고 잘 정식화되지 않는 식으로 다뤄졌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후자는 좌익 사회 비평가 밀스(Mills)의 경우이다. 한편 유럽의 경우 몇몇 사회학자들은 파슨스에 대해 좀더 오픈마인드의 자세를 취한다. 1960년대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록우드(Lockwood)와 존 렉스(Rex)가 있다. 

록우드는 화이트/블루칼라 노동자의 의식을 경험적으로 분석한 학자이다. 그리고 그는 파슨스의 이론에 비판을 가한 첫 영국 학자들 중 하나이다. 록우드 역시 맑스의 통찰을 수용하나 그것의 수정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록우드는 파슨스적 접근과 갈등론적 접근이 그것이 강조하는 바에 있어 서로 보충적이라고 했다(“complementary in their emphases”). (181-2)

렉스는 파슨스의 편향적 one-sided 이론을 비판했다. 파슨스의 이론은 그가 보기에 매우 이상주의적(idealistic)이며, 왜냐하면 그는 안정적 질서와 규범적 패턴이 사실은 권력구조의 표현일 수도 있음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베버를 끌어온다. 하지만 렉스 역시 파슨스를 아예 폐기하지는 않는다. (록우드와 같다). (182)

제일 근본적인 파슨스에 대한 비판과 갈등론적 접근의 empathic한 옹호를 펼친 이론가는 독일 사람이다: 랄프 다렌도르프(Darhendorf)가 그 이론가이다. 그는 렉스와 록우드 전에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사실 그의 1955년 에세이 Struktur und Funktion이 록우드에게 깊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는 파슨스에 대해, 특히 그 이행이 파슨스로부터 인과적 분석을 놓치게 했다는 점에서 그가 사실 행위이론에서 질서에 대한 기능주의 이론으로 이행할 필요는 없었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역기능(dysfunction)이 체계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파슨스 이론의 정적(static) 성향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다렌도르프는 록우드와 렉스와 동일하게 파슨스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고, 그것이 수정된 맑스의 계급이론과 보충적일 수 있음을 지적했다. 다렌도르프는 맑스 이론에서 그것의 형이상학적 기반과 정치경제학적 기반을 걷어내고 사회학적으로 유용한 핵심만 남겨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록우드나 렉스가 본 것처럼 생산수단의 점유는 단순히 지배의 한 가지 특별한 종류일 뿐이다. 갈등은 생산수단 유무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대신 다렌도르프는 권위/권력, 지배를 강조했다. 권력과 지배가 사회학의 기본 개념이고, 다른 현상들은 그것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으며 그 기반 위에서 우리는 사회 동학을 분석할 수 있다. 


갈등론은 응집성 있는(coherent) 이론인가? 

이상을 살펴보면 놀라운 것은 갈등론에 그것을 주도한 대표적인 이론가가 없다는 것이다. 가핑클(민속방법론), 파슨스(기능주의), 블루머(상징적 상호작용론)과 같은 이론가가 없다. 그리고 갈등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통합된 전통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갈등론을 응집성 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들은 그럴 수 있다고 답한다. 적어도 갈등론이 사회학 세부학제로 변형되기 전인 1950-60년대까지는. 어떤 지점에서 갈등 이론가들이 공통점을 갖고 있는가? (186)

1) 갈등 이론의 출발지점은 사회적 질서가 아니라, 어떻게 개인이나 집단들 사이의 사회적 불평등을 설명할 것인가, 이다. “Who gets what and why?”(Lenski) 이는 불평등에 대한 단순한 묘사와는 다른데, 왜냐하면 갈등론은 불평등의 인과에 대한 이론적 해명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2) 갈등이론가들은 앞서의 질문, who gets what and why에 대한 대답으로, 사회 불평등은 궁극적으로 지배domination에 대한 문제임을 말하고 있다. 모종의 이유로 특정 그룹은 투쟁에서 이기고, 특정 그룹은 진다. 이긴 그룹은 희소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간 불평등의 분배를 고착화시킨다. 
3) 갈등 이론가들은 재화(goods)나 자원(resources)을 굉장히 포괄적인 의미에서 사용한다. 이런 지점에서 맑스(경제적 자원만을 강조)와 파슨스(규범적 가치만을 강조)를 비판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갈등 이론가들에게 positions of authority는 정치적 자원이 될 수 있다. 
4) 갈등 이론가들에 있어 분쟁은 인간 역사의 언제나 존재하는(constant) 특징이다. 이는 파슨스(사회의 통합을 강조)와 맑스(계급투쟁이 없는 마지막 역사단계를 상정)와도 구별된다. 물론 갈등이 끝날 때도 있으나 갈등 이론가들은 이를 일시적인 평화나 합의로 간주한다. 


갈등론이 촉진시킨 세부 분야들 

1) 교육사회학 (the sociology of education). 중요한 이론가는 랜달 콜린스(Collins)이다. 산업사회에서 교육기간과 노동자들의 전반적 교육수준이 높아지는 경향은 기능주의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콜린스는 경험적으로 반박했다. 직업에서의 성공은 사회적 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 콜린스는 교육수준의 향상을 지배집단이 자원을 독점하고자 한다는 갈등론적인 설명을 펼친다. 학교는 패션, 미적취향, 가치와 매너, 어휘와 억양을 가르치는 것이 주 업무이고, 이를 통해 계층구조를 재생산한다. 그리고 하층계급은 교육을 통해 사다리를 오르려 하는데, 중상층계급은 하층계급으로부터 교육적 qualifications를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그들과 멀어지려고 한다. 이 때문에 하층계급의 노력은 전반적인 학력의 인플레만 강화할 뿐이다. 참고: The Credential Society(1979). 이는 부르디외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2) 전문직의 사회학(sociology of professions). 여기서의 시카고 학파가 갈등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갈등론은 전문직 정신(professional ethos)이 파슨스가 말한 것처럼 어떤 가치의 표현이 아니며, 다만 전문직의 특권과 공공영역에서 전문직의 위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강화하려는 효과적 수단일 뿐이다, 라고 주장한다. 

3) 일탈행동의 사회학(sociology of deviant behavior; 일탈사회학). 6장(상징적상호작용론)에서 다룬 낙인이론(labelling theory)이 갈등론의 접근을 수용한 것이다. 갈등론자들은 해석적 접근의 옹호자들보다 더욱 권력(power)의 역할을 강조한다. 

4) 사회 운동론. 신공리주의적 접근(자원동원이론)과 갈등이론은 사회 운동론에 있어 상호적으로 얽혀 있다. 왜냐하면 둘 모두 집단들이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cost-benefit calculation을 한다는 합리주의적 가정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카시(John McCarthy)나 찰스 틸리(Tilly)의 저작에서 잘 드러난다. 

5) 젠더사회학(sociology of gender relations; 젠더관계에 대한 사회학). 이 영역을 관심있게 살펴본 첫 ‘남성’ 이론가 중 하나는 랜달 콜린스이다. 콜린스는 성적 행위 자체가 강압이나 폭력의 요소를 수반하고, 이것이 남녀의 사회적, 노동 분업—약한 성이 더 불리한—에 대한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갈등론의 이론적 난점들 

1) 갈등론의 ‘현실주의적’(realistic) 시각—갈등론이 던지는 개념들은 과장된 것일 수 있고, 갈등론이 참조하는 고전적 저자들의 중심 통찰을 간과했을 수도 있다. 일례로 짐멜의 경우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그것이 참여자들을 바꾸는 방식을 이야기했다.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 그 자체의 공격성을 잃어버릴 수 있고, 갈등으로부터 절충된 것(what had been a compromise)이 나중에는 가치있거나 의미있는 것으로 경험될 수 있다. 

2) 갈등론은 행위자들의 합리성을 과장한다는 위험에 빠질 수 있고, 그리하여 신공리주의 혹은 합리적 선택 이론의 스탠스를 취하게 될 수도 있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인간의 도구합리적 행위 능력을 매우 과장하고 이념(ideas)과 문화적 양식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이론적 스탠스는 꽤 부적절하다. 

이러한 이론적 난점들 때문에 갈등 이론이 제대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망하게 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앞서 짚은—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갈등 이론가들이 정치적 통합political unity을 결여했다는 것이다. 갈등 이론의 ‘끝없는 권력투쟁’ 테제는 마키아밸리적 정당화를 위해 쓰일 수도 있다. 그러한 정치적 차이 때문에 이 학파는 응집성 있고 지속적인 학파를 구성하는 데에 실패했다. “명확하고 구별되는 갈등론적 접근은 사회학 안에서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다.”(터너, The Structure of Sociological Theory, p.162) 

그리고 이러한 명확한 학파로서 남지 못한 다른 이유는 보다 다원화된 사회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다렌도르프 역시 그의 권력/권위 이론이 제한된 영역의 갈등에만 (단체 내에서의 갈등) 적용될 수 있음을 시인하고, 종족ethnic 갈등이나 국제 문제를 조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함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순수한 형태’로의 갈등론은 ‘역사사회학’ 분야에서 살아 존재하고 있다. 전근대 사회나 20세기 전 사회의 거시적 변동을 밝히는 데에 갈등론적 툴킷이 유용한 것이다. 

1970년대의 이론적 발전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의해 자극받게 된다: 권력과 문화 사이의 연결고리. 이는 파슨스 학파와 마찬가지로 갈등론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이다. 이에 관련해 다음 장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