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w, Graham. 1997.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the Historical Sociology of Barrington Moore.” pp. 31-50 in Comparative Soci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the Three Worlds. London: Macmillan Press. 요약번역 



“거대한 전환”이 일어난 시기를 살아간 몇몇 고전 사회학자들은, 당시를 풍미한 단선적 발전을 가정하는 사회진화론과는 거리를 두고자 했다. 맑스는 서유럽에서의 자본주의의 발흥이 그 자신들의 역사적 배경과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역사철학적 이론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베버는 더 했다. 여태까지의 유럽 문화의 발전은 전혀 순환적이지도 않고 단선적으로 발전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31)

물론 역사사회학 거대이론의 함정은 일반화를 아예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버와 맑스 또한 역사에는 어떤 패턴이 식별 가능하다고 보았다. 배링턴 무어 역시 그러한 전통에 따랐다. 그의 책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 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1967)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세 가지 근대 세계로의 도정을 구별한다. 

무어는 고전사회학자들과는 다르게 중국, 일본, 인도의 근대화 발전도 중심적으로 분석한다. (32)

역사사회학 분야에서 무어의 작업은 매우 영향력있었다. 스카치폴(Skocpol)의 혁명에 대한 비교사회학 연구는 무어의 작업에 매우 빚지고 있다. 무어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폭력과 강압이라는 주제는 마이클 만(Mann)의 저작과 공명한다. (33) 


- 배링턴 무어의 근대 세계로의 세 가지 길 

배링턴 무어가 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에서 제기한 테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前)산업화 세계에서 근대 세계(modern world)로 진입하는 세 가지 길은 1)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와 2) 우파 독재(파시즘) 3) 좌파 독재(공산주의)가 있으며, 이 길은 산업화를 감독한 정치 체제(political régime)의 본성에 의해 구분된다. 영국, 미국, 프랑스는 1)의 경우이며, 독일과 일본은 2)의 경우, 러시아, 중국은 3)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이후 성공적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은 매우 높은 정도의 경제사회영역에 대한 직접적인 국가개입을 했다. 

이는 전통적인 단선적 진화론과 배치된다. 그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에 필연적 연결이 있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민주적 제도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힘들의 균형은 매우 불안하고(precarious) 역사적으로 흔치 않은 것이다. (34) 

무어는 근대화로 제일 피해를 본 계층은 시골 인구들이라고 주장한다. Social Origins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근대로 가는 길에서 농촌 계급이 수행한 중요한 역할이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은 모두 자본주의 혁명을 겪었다 할 수 있고 여기서 민주주의가 산출된 것은 엘리트들 사이 힘의 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프랑스 혁명, 내전(civil war) 등의 정치적 격변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피로 얼룩진 독재를 통한 근대발전과 평화로운 민주적 근대발전을 비교하기 마련인데 무어는 이런 심플한 이분법을 거부한다. 근대화의 비용은 값싸지 않다. (35)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불러온 사회/정치적 혁명에 대한 무어의 대부분 설명은 그것에 선행한 경제적 변화, 특히 농업의 상업화에 집중되어 있다. 소작농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상층 지주계급의 정치적 헤게모니는 붕괴되어야 한다. 소작농은 시장에서 농작물을 판매하는 농부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농촌계급은 성장한 도시상인계급과 제조업자 그룹을 마주쳤고 이러한 그룹들이 지배엘리트나 지주계급의 배타적 성장을 막은 것이다. (36)

배링턴 무어는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는 유명한 주장을 던진다(“무어는 강한 부르주아지의 존재를 민주정치의 발전에 필수적인—그것만으로는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조건으로 본다. 근대화 과정을 늦게 거친 나라들에는, 부르주아지는 약하고 사회적·정치적 발전에서 중요하지 않은 역할을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36-7쪽). 보수적인 근대화를 겪은 나라들은 상업, 산업계급이 약했다. 무어는 일본, 독일에는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농업의 상업화와 자본주의적 공업화의 진척”을 자리잡게 했으며 “이는 ‘기존의 사회 구조를 가능한 한 보존하려는’ 점에서 지향에서부터 권위주의적이고 ‘반동적’”이라고 논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을 가능하게 한 군국주의(militarism)와, 외부의 위협에 대한 내부의 일치단결이 파시즘과 외부로의 확장 정책을 이끌었다고 한다(37쪽). 

공산주의(좌파 독재)의 경우 소작농들의 혁명이 구질서를 싹쓸이해버렸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강력한 농업적 관료제가 농업의 상업화와 산업화를 억눌렀다. 무어는 지주-소작농 사이 존재한 이 약한 고리가 농민 반란의 잠재력을 키웠다고 본다. (37)

즉 너무 강한 왕권이나 지주 귀족 계급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균형과, 적절한 기업농(commercial agriculture)으로의 전환이 민주적인 근대화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조건이 부재한 곳에서 근대화 과정은 권위주의적 정치 시스템에 의해 주도되거나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인도의 경우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다르게 평화로운 변화를 겪었다. 한데 인도는 그럼으로써 과거와 급진적인 단절을 할 수 없었고, 만성적인 후진성이라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38) 


- 혁명의 비교사회학 

프랭크(Frank)는 무어를 비판하는데, 논지는 진짜 이분법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대 자본주의/사회주의 독재체제가 아니라 민주적/독재적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산업화를 겪은 국가들의 정치적 체제의 차이를 이차적 현상으로 격하시키려는 프랭크의 시도는 무어의 분석을 아주 좁게 바라보는 것이다. (39)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이후 산업화를 겪은 나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강제적이었다. 첫째는 초기 산업화 국가들보다 훨씬 더 근대화에서의 국가의 지도와 압력이 매우 컸다는 것이고. 둘째는 소련의 사례와 같이 외부의 먼저 산업화한 국가의 군사적 위협으로 산업화가 강제됐다는 것이다. 

무어는 보수적 근대화를 위로부터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을 아래부터의 혁명으로 지칭한다. 하지만 그자신도 이런 위/아래로의 혁명 구분에 회의가 있었다. 왜냐하면 후자에서 농민은 중요한 혁명의 행위자이나 전자에서는 아니기 때문이고 그들의 혁명은 공산주의적 버전의 위로부터의 산업혁명의 길을 내준 역할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0) 

스카치폴은 무어의 파시즘적/공산주의적 근대로의 길이라는 구분을 받아들인다. 이는 초기의 계급 구조와, 혁명적인 정치적 갈등, 그리고 궁극적인 정치체계의 결과라는 세 패턴을 식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부르주아적 길’을 기각한다. 이는 오직 잔여적 범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보기에 영국, 프랑스, 미국은 비슷할 수 있으나 똑같은 과정을 밟지는 않았다. (41)

스카치폴은 ‘철과 호밀의 연합’—독일에서 드러나는—이 역시 19세기 초 영국에서도 드러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영국에서 민주화로의 저항이 실패한 이유가 계급이익은 물론 계급역량의 문제에도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즉 국가구조라는 정치적 요인 자체가 지주계급의 정치적 역량에 독립적으로 영향을 준 변수이다. 

무어의 문제는, 스카치폴이 보기에, 사회적 혁명과 정치적 혁명 간의 구분을 잘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혁명은 급격하고 근본적인 사회와 계급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계급에 기반한 반란을 수반한다. 정치혁명은 국가구조를 바꾸나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꼭 계급혁명을 동반하지 않는다. 스카치폴은 다음과 같은 그룹화를 시도한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성공적인 사회혁명의 세 가지 긍정적 케이스다. 영국, 일본, 독일은 비혁명적인 정치적 위기와 변화를 겪은 국가들이다. (42)

스카치폴은 역시 무어의 방법론이 간사회적 관점을 충분하게 지니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외부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없다. 스카치폴은 외국의 압력을 중시하는데, 실제로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혁명 전에 외부 선진국의 군사적 압력을 받았던 것이다. Foster-Carter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무어의 이론은 “식민지의 자원을 추출하고 그것을 세계체제의 다른 부분으로 이전시키는 흡수 효과를 강조하는 제국주의 이론이나 종속 이론과 공유하는 바가 별로 없다.”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