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5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관람. 

## 한국영상자료원의 이번 기획에서 아키라를 튼다고 하길래 시간을 꼭 내서 가 보았다. 일본 거품경제의 상징 격인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뭐다 하는 말들 말이다. 정말로 그런가? 가서 봤는데 버블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굉장했다. 이런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더는 나오지 않겠지. 배경 설정과 스토리도 그렇지만 작화에 대한 감상이다. 앞으로 없을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퍼졌다. 말하자면 이런 슬픔이다. 예컨대 컨트리 음악을 듣고 싶다면 아직도 컨트리 음악을 발표하고 부르는 가수들이 있기 때문에 뭐 괜찮다. 재즈 빅 밴드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이다. 서부극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컴퓨터 그래픽을 거의 쓰지 않은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만들어질 일이 없지 않은가. 

## 그런데 영화를 줄곧 따라가다보니 이상하다고 느낀 점들이 많았다. 전개의 엉성함이라고 부를 것들이 있다. 원작 만화를 보면 그런 의문들이 부분적으로 해소된다고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봤으니 원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아마도 긴 원작을 영화로 만들다 보니 커트해야 할 부분이 있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원작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보기에는 그런 편집으로 인한 성긴 전개가 상당히 기묘한 분위기를 이끈다는 것이다. 관람객을 존중하지 않는 불친절한 전개는 상당히 실험적이고 종종 전위적인 느낌을 줬던 것 같다. 사운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절제된 배경음악의 사용은 의도된 것인가? 배경음악의 부재 위에 단속적으로 나타나는(예컨대 테츠오가 폭주할 때) 효과음은 자칫 피로해질 수 있는 극의 전개에 긴장감을 잘 불어넣은 것 같다. 

## 악몽처럼 테츠오를 짓누르는 열등감과 원한 의식이 극을 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테면 테츠오가 네오 도쿄를 여자친구 카오리와 탈출하고자 하는 장면. 카오리는 다른 폭주족 갱들에 의해 강제로 성추행 당하는 치욕을 겪게 된다(이 장면은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몇몇 신처럼 시각적으로 매우 불쾌하고 충격적이다). 이것은 테츠오가 카네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가 더욱 불안정해지고 파괴적이어지는 결정적 사건이 된다.  

여기서 테츠오의 여자친구 카오리와 카네다의 여자친구(?) 케이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재미있는 것은 두 여자 모두 외양이 굉장히 남성적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다 남성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쪽은 케이인 듯하다. 케이는 저항집단의 일원이기도 하고, 카네다의 장난스러운 구애를 거절한다. 때로는 카네다를 구해 주기도 한다. 가슴이 드러나는 카오리와 달리 그녀는 여성성을 노출하지 않으며 항상 트렌치 코트를 싸매고 있다. 요컨대 폭주족 세계에서 테츠오의 여자친구 카오리는 케이에 비해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할 수 있다. 

## 어떻게 본다면 아키라라는 인물 혹은 배양 세포는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을까? 아키라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영화 후반부에서는 일종의 활력론 내지는 생기론과 비슷한 알쏭달쏭한 관점이 제시된다. 즉 그것은 어떤 힘 같은 것인데 인간들에게 잠재되어 있고 그것이 적절히 계발되지 못하거나 폭주할 만한 인간에게 소유되면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네오 도쿄의 올림픽 스타디움 아래에 보관되어 있는 아키라의 잔해는, (극중 독재 치하의 일본과 올림픽이라는 대중 동원 행사의 맥락을 포개어 볼 때) 파시즘을 발동시킬 수 있는 광기나 에너지의 은유로 읽힐 수 있을 듯도 하다. 다만 그것은 아직 동면 상태에 있으며 그래서 에너지는 빛이 렌즈를 통하듯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간헐적으로 분산되어 분출되는 것이다. 극중에서세밀하게 묘사되는 아키라를 광신하는 사이비 종교나 도시의 공공 장소에서 남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육체적 쾌락에 탐닉하는 젊은이들은 부글부글 끓는 에너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화가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아키라와 세기말 분위기의 네오 도쿄가 가지고 있는 정치성이 완전히 탈각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사회를 조직하는 에너지는 사회를 조직한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어떤 방향성과 가능성을 가진다. 영화 중반까지는 아키라와 초능력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쟁점들이 엿보인다. 예를 들자면 정부 내각 회의에서 아키라 관리 비용을 더 들여야 하는지 대신 그것을 대중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복지에 써야 하는지 하는 논쟁이 있다. 대중들이 무엇 때문에 분노하거나 데카당스에 빠지는지 하는 원인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아무튼 『아키라』에서 사회는 그러한 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아키라의 힘은 테츠오라는 개인에 의해 사적으로 전유된다. 아키라라는 힘은 방향성을 잃고 폭주한다. 흔히들 ‘세카이계’라고 부르는 작품들이 풍기는 분위기를 『아키라』에서 느낀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영화의 말미에서 말그대로 테츠오는 자가증식하는데, 마치 거품과도 같이 돔형으로 커져 간다. 지름이 늘어나는 원에는 방향성이 없다. 아주 개인적인 학창 시절의 괴롭힘과 주변 폭주족 친구들과의 비교로 인한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던 테츠오의 기억과 원한은 점점 커져가며 네오 도쿄를 포획한다. 테츠오의 사적 감정은 곧 (사회가 아닌) 세계가 된다. 

사실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전개다. TV판 『에반게리온』을 봤을 때처럼 약간 김이 샜다고 하나. 테츠오 너의 에고 트립이 궁금한 게 아닌데. 아무튼 테츠오가 폭주하면서 죽게 되는 몇몇 인물들이 있다. 거기서 사망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 명이었는데, 테츠오의 여자친구 카오리였다. 그녀가 극에서 약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때는 앞에서도 말한 성추행 신과 마지막의 사망 신이다. 그녀는 일종의 토큰으로서 소비되는 셈인데, 이 자체는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된다. 테츠오의 개인적 감정은 폭주해 그 자체가 부풀어 네오 도쿄가 되고 곧 세계가 된다. 그 세계가 내쳐야 하거나 혹은 반대로 속으로 꼭꼭 감추고 숨겨야 하는 것은 곧 테츠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여자친구 카오리이다(테츠오는 그녀가 아닌 케이를 가지고 싶어할 것 같다). 그렇게 세계의 끝에 여자친구가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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