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2017)

2020. 8. 10. 08:53

우연히 왓챠(예전의 이름은 왓챠플레이였는데 바뀌었다)에서 <소공녀>라는 영화를 보았다.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해서 볼까 말까 했는데 여자친구가 보자고도 했고 또 <족구왕>의 감독이었던 전고운의 영화이길래 우선 보기로 했다.

 

(1) 우선 든 생각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왜 좋아할까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영화가 특별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미소라는 주인공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상당히 얄팍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고, 그 점이 영화를 특색 없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월세가 몇 만원 비싸지자 미소는 짐을 싸서 집을 나오고 과거 밴드 활동을 같이 했던—이 밴드가 아마추어 밴드였는지 아니면 진지한 밴드였는지는 영화에서 언급이 없다—친구들을 차례로 찾아간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전형적인 회고의 구도를 취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미소가 잠을 자고 거처를 구하기 위해 과거의 친구들을 순례하여도, 영화는 미소라는 사람은 (자주 인용하는 영화 속 대사에 따르면)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이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위스키와 담배(=‘생각과 취향’?)를 지출절감을 위해 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만을 보여주는데에 그칠 뿐이었던 것 같다. 중심이 되는 인물의 내력이라든지 성격에 대해 크게 생각할 거리가 없다보니 영화가 보여주는 풍경들이 특별히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고, (깊이는 없는) 주인공의 매력이나 개성에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 영화가 힘을 잃었다고 생각되었다. 미소는 몇 차례 이동하며 2010년대 서울의 풍경과 청년들의 초상을 그리는데, 인물 자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때문인지 그 시선이 뻔한 것만을 비춘다고 느껴진 것. 예컨대 회사에서 링거를 맞으면서 일하는 과거 베이스 친구, 대출 끼고 집을 샀기 때문에 이혼 위기를 맞아 집이 집 같지 않음에도 집을 버릴 수 없는 밴드 동료 동생 등등과 같은 이미지들은 미소의 시선에 여과되었을지라도 전형적인 것들에 불과해서 특별히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마도 미소라는 캐릭터에서 자기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 타협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굳센 개인을 보는 것 같다.(그것을 연출하기 위해 동원되는 위스키와 담배라는 소재가 상당히 도식적이고 전형적인 점은 내 불만에 한몫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상당히 호평을 보내는 것 같고. 그런데 과연 위스키와 담배가 ‘취향이나 생각’이 될 수 있는지는 재고가 필요한 것 같다. 기호(嗜好)가 신념이 될 수 있는가. 당연히, 기호는 존중받아야 할 것이나, 嗜好가 확실한 것이, 즉 자신만의 ‘리스트’가 있는 것이 곧 줏대 있는 개인이 되는 데에 필요한 요소인 것인지. 좀 더 많은 고민을 요하는 주제이긴 한데, 나중으로 미룬다. 물론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은, 비록 그것이 위스키와 궐련담배에 불과할지언정,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는 할 것이고, 미소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지지를 얻는 것은 배우와 연출의 성취일 것이다. 위스키와 담배에 탐닉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알콜중독자나 니코틴중독자로부터 풍기는 부정적인 분위기를 전혀 암시하지 않는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래도 길거리나 포차에서 소주가 아니라 정상적인 바bar에서 위스키를 주문해 마시고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지는 않는다.(영화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휴대용 재떨이를 소지하고 다닐 것 같다.) 

 

(2) 미소가 차례대로 만나는 밴드 멤버들이, 미소의 대학 졸업(중퇴?) 이후 삶의 가능성들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회사에서 노예처럼 일할 수도 있고,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하여 홀로 외롭게 살 수도 있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할 수 있고, 혹은 부모의 압박에 못 이겨 구혼의 노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서울(혹은 경기도)에서 ‘보통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꿔 말하면 서울에서 어찌어찌 살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처럼 읽혔다. 결혼을 하든, 일을 하든, 일을 하지 않는 대신 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든, 아니면 서울에서 살지 않는 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왓차피디아(구 왓차)의 코멘트를 보는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쓴 게 인상이 깊었다. 집도 포기하고 다른 것 다 포기해도 서울에서 사는 것은 포기를 못 한다고.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영화의 끝에서 미소는 한강둔치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 장면이 나오는데, 감독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에게 그것은 주인공 미소의 최종적인 결단처럼 느껴졌다.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서울에 사는 것은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 서울 거주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데, 그것은 영화에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저 여러 가지로 짐작을 해 볼 뿐이다.

 

이것은 나에게 이 영화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삶을 대하는 굳건한 태도 하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 점이 마음에 들었고, 생각할 거리가 됐다. 미소의 옛 밴드 동료들이 그녀와 비교되면서 ‘생각과 취향 없이’ 일상적인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만 그려지는 경향이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미소란 캐릭터가 역설적으로 개성이 없어 보이는데(일반적 삶의 트랙을 벗어난다는 점으로만 인격이 정의되기 때문),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게 해 주는 실마리가 된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