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장 (2018) 리뷰

2019. 7. 26. 21:05

# <주전장>에서 영화적으로(다큐멘터리적으로?) 불쾌했던 지점은 미국, 일본, 한국의 거리 시민들을 무작정 인터뷰하던 장면이었다. 감독은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겉보기에 설득력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인들을 섭외해 잠시 인터뷰를 하고 장면을 삽입한 것 같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실상 알지 못하고 숙고한 적이 없는 시민들이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위안부’ 증인들의 의견이 때때로 충돌함을 지적한다”는 단편적 사실만을 접하고 반응해 낸 단견(短見)을 부러 영화에 여러 차례 실을 필요가 있었나 싶다. 다큐멘터리가 앙케이트를 할 필요가 있을까? (덧붙여, 거리에서 ‘무관한’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다큐멘터리가 질 낮은 유튜브 기획 영상 느낌이 나게 하는 데에 일조한 것 같다.) 

 

# 수정주의자들이 부각시키고자 하는 쟁점 중 하나는 ‘20만’이라는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수치가 정확한지 여부이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영화의 초중반부에서 피해자 수치에 대한 활동가 진영과 수정주의자 진영들의 입장을 청취한 후, ‘두 측 모두 수치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는 내레이션과 텍스트 문장을 삽입해 나름대로 자신의 결론을 내린다. 이것이 나로서는 상당히 갸우뚱했는데 왜냐하면 정대협 활동가들, 그리고 일본의 평화 운동가들이 ‘20만’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선동적으로 활용한 적이 적어도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20만’이라는 수치는 언론이 센세이션을 부추기거나 운동에 깊게 참여하지는 않는 지지자들이 (소녀상 건립을 지지하는 몇 미국 정치인)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위해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과연 숫자를 과대포장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숫자에 집착하는 언론과 수에 먼저 반응하고자 하는(“나치가 수백 만의 유대인을 학살했대!”) 우리 일반 시민들의 숙고하지 않는 척수반사적 반응은 문제가 없을까? 피해자 수에 대한 논쟁은 일본군 성노예 사건 이외에도 나치 독일 과거사 문제에서도 수정주의자들이 자주 공격하려는 쟁점으로 알고 있다. 추산을 직접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 상대편을 감정에 휘둘리는 진영으로 호도하고 자신을 객관적인 판관의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과연 (그런 게 있다면) 숫자를 정치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활동가 진영이 문제인지. 이런 문제에 대한 사유가 너무 얕다는 것이 언짢게 다가왔다. (특히, 영화가 끝날 쯤 ‘나는 미국인이지만’으로 시작하는 몇몇 내레이션을 들을 때는 짜증이 좀 치밀었다.) 

언론이든 인터넷 상 반응이든 영화에 대한 많은 평은 이 영화가 민족적 프레임을 취하는 대신 인권이라는 보편적 의제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을 상찬한다. 사람들이 이런 평가를 어떻게 내리게 되었는지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흔히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민족적 프레임을 벗어야 한다는 비판은, 일본 제국이 조선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유린한 데에 더불어 가련한 조선 여성을 착취했으니 한국인(남성)으로써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는 그런 가부장적이고 정념적인 서술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애초에 영화에 등장하는 정대협 활동가 및 할머니 당사자, 일본의 연구자 및 활동가들은 민족적 프레임을 참조한 적이 없다(즉, 이 문제를 피식민지 조선 대 종주국 일본의 대결 구도로 전혀 보지 않는다). 영화 내용 자체도 중후반부까지는 수정주의자들이 쟁점으로 물고 넘어지는 것들을 찬찬히 체크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가부장주의적 역사 서술에 대한 비판을 영화가 담고 있다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것 같다. 그런 평들이 왜 나오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위안부’에 대해 깊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의 생각이지만, 오히려 영화의 후반부가 성노예 문제에 대해 비단 인권만이 아닌 ‘네이션’의 측면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통찰을 던져준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정주의자들과 일본 우익들의 기존 역사 서술에 대한 공격은, 그들이 인권을 개무시하는 악인들이어서라기보다는 순수하고 무고한 일본인이라는 네이션을 다시 상상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미일안보조약, 박근혜 정부 당시 위안부 협정 타결에서 미국의 역할 등등은 동아시아의 반공주의와 일본의 내셔널리즘, 미국의 의도를 참조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영화 후반부가 비록 빈약하고 부족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현재의 국제정세에 있어 오히려 네이션이라는 문제를 참조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환기시켰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 <주전장>은 ‘위안부’ 문제에 무관심했던 한 일본계 미국인의 역사 수정주의자들 논리 탐구 정도의 다큐멘터리다. 수정주의자들의 민낯을 공론장에서 폭로하는 것 자체는 의의가 있지만... 감독 자체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언론에서 자주 이야기를 실을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상의 측면에서나 내용의 측면에서나 훌륭하고 대단한 다큐멘터리라는 평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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