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즈 안사리, <모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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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로맨스

최신의 사회학 연구와 번뜩이는 유머가 만나 새로운 연애 지형도가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탐험해 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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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오브 제로 Master of None>으로 유명한 아지즈 안사리가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폭염사회>의 저자라고 한다)와 협업해서 펴낸 책. 우선 첫 번째로 위 TV 시리즈를 재미있게 본 터라 우선 이 책에 흥미가 갔다. 그의 코미디 쇼를 본 적은 없지만 그가 감독한 짧은 시리즈에서 짐작하건대, 아지즈는 대도시의 젊은 남녀들이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공통의 경험들을(해당 시트콤의 에피소드 주제로 생각이 나는 것은, 원나잇스탠드, 데이팅앱, 장거리연애, 피임실패 ... 어쩐지 다 섹스와 관련된 것들이긴 한데) 언어화하는 코미디언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장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았다(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코미디언들이 많지 않고, 그런 코미디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 역시 많지 않다). 논평가나 연구자들이 할 수 없는 코미디언의 일이 이러한 연구서의 색채도 띠고 있는 책에서 어떻게 드러날지 궁금했던 것이다.

둘째로는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인 ‘모던 로맨스’라는 주제에도 흥미가 갔다. 한국어판의 부제는 ‘SNS 시대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이다. 분명히, 더 멀리는 낭만적 사랑의 출현이라든가 최근으로는 성 해방이나 여성들의 지위 향상, 변화한 통신 기술 같은 굵직한 흐름들이 사랑의 실천 양식에 변화를 주었겠지만 최근 10년 사이 소셜미디어와 문자메시지의 대중화가 가져다 준 미묘한 영향에도 주목을 하고 싶었다. 변화한 시대의 변화한 사랑에 대해 논한 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당장은 기든스의 <친밀성의 구조변동>이 생각나고, 최근에 읽으려고 한 책으로는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아픈가> 등이 있다), 그런 책들은 문자 메시지의 출현이 첫 데이트 신청 같은 것들에 있어 우리의 사고 회로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보통 사람의 시선에서 납득이 가는 재미있는 설명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요컨대 나는 학자들의 탐색이 닿지 않는 가장자리에 위치한 변화한 현상들에 대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조금 민감한 사람(=코미디언)의 통찰력 있는 논평을 기대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 내용은 어느 정도 만족스럽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책에서 아지즈 안사리는 스마트폰 출현 이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의 몇 가지 새로운 공통 경험들에 대한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하는데(책의 문장은 시종일관 구어체로 작성 내지는 번역되어 있다), 이를테면 그는 “문자 메시지가 우리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독특”한데, “그저 상대방이 요만한 전화기를 들어서 시시껄렁한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미치광이처럼 몇 분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혼돈과 상처와 분노의 폭풍을 겪는 모습”을 한 세대 전만 해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99쪽). 틴더와 같은 데이트앱이 데이트할 수 있는 싱글을 무제한 공급했다고 논평하고, 오늘날 스마트폰을 가진 것은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싱글 전용 클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정리한다(55쪽). 현대의 로맨스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대처하는 모습들은 저자가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와 공동 수행한 초점집단인터뷰 및 레딧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설문에 의해 생생하게 뒷받침된다. 

이처럼 이 책의 현대 사회에서의 로맨스에 대한 간단한 조망과 비유는 적절하고 또 읽는 재미를 주지만, 한편 이에 대한 그의 논평이 무디고 가볍다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데이트앱의 발달이라거나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 등에서 남성들의 성희롱이 늘어난 조건들(누군가에게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여줬을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도 줄어들고 그걸 불특정다수에게 보내기까지의 비용도 매우 줄어들었다는 것) 등의 문제에 대해 저자는 그것들을 단순히 소개할 뿐이고, 다큐멘터리 진행자나 기자가 할 법한 뻔한 논평들을 한다. (책을 읽으며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마주칠 때 "아무리 스마트폰 화면에 많은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맞은편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다른 사람이 또 누가 있을지, 스마트폰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는 대신, 우리는 실제의 누군가를 만나 좋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려고 고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417쪽]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저널리스트가 쓴 것 같다는 인상을 풍긴다. 물론 코미디언이 이 책을 썼다는 인상을 계속 남기기 위해 저자 아지즈 안사리는 책 내에서 시종일관 말장난 수준의 농담을 하는데, 아예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번역자께서도 능숙하게 미국식 유머를 옮기셨다), 한국어라는 맥락과 스탠딩코미디가 아니라 독자가 책을 읽는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별로 그런 농담들이 재밌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코미디언과 사회학자의 협업. 나름대로 기대를 가졌으나 어느 정도 어정쩡한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돈된 방법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모으고 거기서 어떤 통찰을 얻어내는 사회학자의 지혜와 일상 속의 경험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통찰들을 재치 있는 몇 마디 언어로 표현하는 코미디언의 능력을 기대했는데, 책의 내용은 성실하게 초점집단인터뷰와 인터넷게시판 취재로 얻어 낸 (평범한) 자료를 통해 스케치한 (그리 놀랍지는 않은) 현대 사회의 풍경을 입담 좋은 재담꾼이 묘사해 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