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넘어서(이한)

2016. 6. 1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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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주로 학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억압과 부실한 교육, 그리고 학교/공교육이 실제로 행하고 있는 사회계층의 고착화와 억압적 통제, 폭력의 양성을 다룬다.

학교 교사들은 실제로 필요한 것과는 별 상관없는 단편적 지식만을 강의를 통해 전달한다(그리고 심지어 이것들은 참고서를 훑어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 수업 현장을 고찰함으로써 이를 알 수 있다. 강의식 수업이 유용할 때는 1) 직접적 전달과 질문이 필요할 때 2) 체계적, 지속적 학습이 필요할 때 3) 입문 과정이 필요할 때 4) 강사의 전달력과 수업능력이 뛰어날 때 5) 강의를 통해 수강자들의 공부할 계기를 만들어야 할 때인데, 학교에서 행해지는 강의식 수업은 위의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학교는 강의식 수업이 곧 학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신념을 주입한다. (1부 1장) 

학교는 1) 부조리한 사회적 계층화와 2) 억압적 통제기구로서의 기능을 행한다. 실업계 학교와 인문계 학교의 구분도 겉으로는 학력 인플레를 해소시키고 효율적인 직업교육을 도모하기 위한 것 같지만 실은 지위경쟁의 과정이고 계층을 나누는 제도이다(p.52). 사회계층화 작업을 해내기 위해 학교는 억압적 통제를 행하는데 그것들은 구체적으로, 1) 쓸모 없는, 획일적인 학습의 강요(등하교 시간의 획일화, 학년제 등 제도적 측면까지 포함), 2) 기본적 인권의 박탈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2장)

학교는 교사를 통해서 폭력을 낳고, 또 인간관계를 가로막거나 파괴함으로써 산업자본주의사회가 사람들에게 행하는 폭력을 증폭시킨다. 학생 간 폭력의 원인도 학교 구조로 볼 수 있다. (반학교문화)

학교교육은 여러 환상을 만든다. 첫째는 학교가 교육자금을 평등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기구라는 환상이다. 그런데 교육세와 같은 조세 제도의 문제, 학교 교육의 비효율성과 불필요성, 실효가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정책 등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는 학교교육이 효율적이라는 환상이다. 학교교육은 학습자가 필요한 것을 깊이 가르쳐줄 수 없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다. 그 원인은 1) 학교제도로 인해 교육형태 및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막혔고 2) 교육과정 자체가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고 3) 배움이 졸업장, 자격증 등 '증' 추구에 종속됐기 때문이다. 셋째는 학교교육이 사교육을 줄일 수 있다는 환상이다. 그런데 일단 사교육비의 증가 원인은 경쟁에 있다. 그리고 학교에 예산을 쏟아부어봤자 대부분은 행정적 비용으로 소모될 것이고, 또 교사들 봉급이 많아진다고 해서 교사들이 잘 가르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낭비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사회적 평등을 추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교육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학교라는 비효율적이고 많은 폐단을 낳는 제도에 공적 재원이 집중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4장)

5장은 학교가 만드는 교육에 대한 이상한 신화를 비판한다. 1) 학교가 지식을 배우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화, 2) 학교가 학습동기를 불러일으키고 능력을 재는 기구라는 신화, 3) 학교는 건실한 사회화기관이라는 신화. 1)의 경우, 강제와 통제 없이도 잘 배우는 서머힐 같은 사례가 있다. 또 강제출석 제도는 비효율적이라는 증거도 있다. 2)의 경우 단편적 사실만을 암기해 시험을 보게 하는 게 적절한 능력을 재는 지표면서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교수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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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중요점: 공교육의 정상화나 학벌폐지 등의 논의가 갖는 한계는 기존의 학교교육, 학교 중심의 교육체제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지 못하고 또 그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이 지향할 점(평등, 자유,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능력 배양) 생각할 때 탈학교 논의 필요 -- 정리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