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1학기 때 과제로 제출한 서평. 책은 잭 골드스톤의 "왜 유럽인가?"(조지형, 김서형 옮김, 서해문집, 2011)이다.  


유럽이라는 신화 깨기

— 『왜 유럽인가?』서평



책을 읽게 된 이유: 매력적인 주제


신문 기사나 인터넷의 글들을 읽다가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접한 적이 있었다.  유럽은 과연 정말로 우월하고, 그것이 전 세계가 따라야 할 표준인가. 유럽, 혹은 서구의 문화와 문명이 우월하다는 관점은 현재 서구가 쥐고 있는 패권에 의해 형성된 잘못된 편견이 아닌가.[각주:1] 이런 주장은 신선했고, 나는 동의했다. 역사란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유럽중심 역사는 객관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현재 서구를 설명하는 데 있어 오리엔탈리즘에 오염된 담론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곱씹어볼수록 내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간에 지금 서구는 세계를 주도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 경제, 문화의 측면에서 역시 서구는 중심부다.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인터넷의 기사와 글들은, ‘비서구 세계나 서구나 서로 평등하다’는 정치적 올바름, 혹은 규범적 올바름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으로 현재 서구가 어떻게 패권을 잡게 됐는지 그 원인과, 배격되어야 할 유럽중심주의적 담론은 무엇인지를 서술한 연구를 읽고 싶었다.  

  그런 내게 이 책이 다루는 주제와 문제의식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왜 밤하늘에서 지구를 볼 때 특정 지역(유럽, 북미, 동아시아 일부)은 밝지만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초점은, 왜 유럽이 잘나게 되었는가, 유럽과 비유럽의 ‘분기’를 유발한 원인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여러 편견과 왜곡에 찌든 기존의 잘못된 설명들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최신 연구 성과를 종합하고, 비교론적인 방법론으로 분기의 원인을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유럽 분기의 원인: 산업 혁명 


저자인 골드스톤은 유럽이 결정적으로 산업혁명 때문에 부흥했다고 주장한다. 여섯 가지 요소들이 조합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했고 이것들이 유럽으로 확산돼 분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골드스톤이 이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 사유의 궤적을 살펴보자.[각주:2]

골드스톤은 우선 유럽이 1700년 이전부터 계속 진보하였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을 일축한다. 18세기 이전까지 인간 모든 문명은 마치 사인 함수처럼 진보와 후퇴를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기술적 진보는 물론 이루어졌으나 이것이 결정적인 분기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여러 영역에서의 진보들이 시공간적으로 흩어지고 고립돼 있어 이것이 결합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적 진보가 꾸준히 발생하고, 경제적 수준과 생활 수준이 지수 함수처럼 급격히 성장하는 근대와 대비된다. 그렇다면 분기를 형성한 원인은 무엇일까. 골드스톤은 종교적 차이를 검토한다.  

유럽과 비유럽의 종교적 차이가 분기를 형성한 것일까? 골드스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부 학자들은 유럽의 종교(기독교)는 진취적이고 자연을 대상으로 바라봐 물질적 진보에 적극적이었고, 동양의 종교는 안정을 중시하는 정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양 종교와 서양 종교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개념화다. 이슬람교라는 예외 사례가 있다. 또한 16세기까지는 서양보다 동양에서 무역이 더 활발했다. 베버 식의 주장,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자본주의 발달과 경쟁, 과학적 접근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골드스톤은 반박한다. 경쟁 체제는 동양에도 있었고, 경쟁을 한다 해서 꼭 번영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폴란드, 동유럽 국가들은 타국과 활발한 경쟁을 펼쳤는데 영국만큼 성장하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트 국가가 항상 가톨릭 국가보다 번영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가톨릭은 16-18세기까지 과학에 개방적이었고 과학 연구들을 종종 지지했다. 

종교가 원인이 아니라면, 골드스톤은 다음으로 제국주의와 노예제도가 분기를 유발했는지 검토한다. 골드스톤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유럽이 16세기부터 세계를 차례차례 정복해오지는 않았다. 예컨대 포르투갈은 압도적인 힘으로 인도를 정복시키지 않았다. 이들은 인도 중앙과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부터 교역과 정복을 시작했다. 바로 인도를 접수하기에는 군사력이 뒤처졌기 때문이다. 사실 정복 대상국의 정치적 불안정이나 역병과 같은, 시기나 운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유럽이 정복에 성공한 경우가 많다. 16-17세기 초기, 유럽인들이 우월한 힘으로 교역과 정복에 성공했다는 것은 신화이다. 노예제 또한 유럽의 부흥에 기여를 별로 하지 않았다. 많은 식민지 인민들을 노예 상태로 유지시키고 교육하지 않은 것은 부 창출에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 비교해볼 때, 노예제도를 많이 활용하지 않은 영국, 스위스, 벨기에, 미국의 뉴잉글랜드가 근대 세계의 선구자였다.  

근대적 발전 이전에 유럽과 아시아는 큰 차이가 없었다. 앞서서 보았듯이 유럽만이 유별나게 진보한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교역과 약탈로 엄청난 이득을 본 것도 아니었다. 유럽이 근대적 발전, 산업 혁명을 겪기까지 유럽과 아시아에는 생활수준에 크게 다른 차이가 없었다. 골드스톤은 기대 수명과 실질임금, 평균 신장을 비교해 이를 뒷받침한다. 19세기 이전까지 아시아와 유럽에는 실질임금과 기대수명, 신장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물론 짧은 기간동안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에서 실질임금이 증가하고 감소하기는 했겠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실질임금은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그런데 1850년과 1900년까지 유럽 내에서 급격한 분기가 발생한다. 1900년부터 유럽의 가장 부유한 국가는 아시아 국가를 능가하게 된다. 산업화되어 대량 고용이 발생하고,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식량을 구매하고,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럽의 부흥을 만든 것은 산업화로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발전한 산업 혁명과 그것을 가능케 한 요인들


유럽의 분기를 유발한 결정적 요인은 산업화와 기술적 혁신들이고, 그것은 주로 영국에서 이루어졌다. 영국에서 이뤄진 혁신들이 유럽 대륙으로 확산돼 지금과 같이 패권을 장악한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요인은 바로 새로운 사상이다. 일반적으로 과거에는 새로운 사상이 기존의 종교적, 정치적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겨져 억압되었다. 오스만 제국도 그랬고 17세기 이후의 가톨릭도 그랬고 명과 청조의 중국도 그러하였다. 다만 영국이 그렇지 않았다. 영국은 법 체계가 관습법 체계였는데 이는 통치자의 바람대로 악용되지 않아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600년대 이후 유럽에서는 기존의 종교적 해석이나 그리스의 사유 체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상적 패러다임들이 생겨났다. 데카르트가 대표적이다. 영국은 왕립 학회를 중심으로, 이러한 논리, 연역, 추론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체계에 덧붙여, 측정과 실험, 관찰을 통한 경험적 방법을 크게 발달시켰다. 

이러한 원인들을 여섯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일련의 새로운 발견으로 기존 교회, 그리스 문헌의 권위를 의문시하고 부정하게 됨, 2) 자연 세계에 대한 실험 연구와 수학적 연구를 결합한 과학을 발전시킴, 3) 증거, 논증, 과학의 탐구 목적에 대한 영국 대법관 프란시스 베이컨의 관점이 주입됨, 4) 기구에 기반한 실험과 관찰의 접근 방법 개발, 5) 관용과 다원주의의 풍토, 새로운 과학에 대한 영국국교회의 지원, 6) 기업가 정신에 대한 관대한 지원, 기업 과학자 기술자 장인 사이의 긴밀한 사회관계.  

물론 이런 요소들은 유럽, 혹은 영국 사람들이 특별히 잘나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15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이나 인도, 이슬람의 과학 및 수학 수준이 유럽보다 깊었다. 기존 패러다임에 도전하고 그것들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유럽의 사상들 또한 영국이 아닌 곳에서 먼저 생겼다. 위와 같은 조건들은 우연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골드스톤은 주장한다. 위 요소들이 영국이라는 국한된 장소에서 동시에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영국은 산업혁명과 일련의 혁신들을 이룰 수 없을 터인데, 그렇게 되어야 할 어떤 필연적 이유가 있지는 않다.


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 유럽 패권의 형성 원인과 이후 전망에 대한 좋은 개론서


저자인 잭 골드스톤은 이른바 캘리포니아 학파(California School)로 불린다. 캘리포니아 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서양의 등장이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며 서양의 경제적 우월성이 곧 중국을 위시한 비서양 국가에 따라잡힐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 책은 유럽 패권의 형성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책의 후반부에서 잭 골드스톤은 앞선 논증을 바탕으로 비유럽권의 부상 가능성을 점친다. 비유럽 국가들이 유럽이 성공하게 된 요인들을 갖추게 된다면 이들 역시 선진 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캘리포니아 학파가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근거들을 이 책을 통해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서양 패권과 이후 중국의 부상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볼 때 이 책은 좋은 개론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이 책은 읽기가 쉽다. 페이지 수는 300쪽 정도로 읽기에 부담이 없다. 서술 또한 평이하다. 현학적이거나 난해한 문장이 없다. 구성 또한 이러한 역사 논의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친절하다. 각 장 별로 유럽이 부흥하게 된 원인들을 지목하는 기존의 논의를 검토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단계적 서술 방식은 독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기존의 유럽중심적인 주장들을 실증적 증거로 하나하나씩 파헤쳐 간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단계적 서술로 유럽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통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반박한다. 골드스톤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 책을 통해 충실히 전달했다. 1) 이해하기 쉬운 평이한 문장과 단계적 서술로 2) 유럽의 부흥 원인을 면밀히 밝히고 앞으로의 비유럽 국가들의 전망 또한 짧게나마 밝혔으며 3) 이러한 논증들을 진행해가는 과정에서 또한 기존의 유럽중심주의적 담론들을 비판적으로 해부하였다. 

물론 책의 분량이 방대하지 않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만큼 그 깊이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저자가 드는 다양한 논거들을 보자면 상당히 방대한 양의 주석이 실려야 할 텐데, 2장을 제외하고는 한 장당 주석이 대여섯 개도 채 달려있지 않다. 대중서임을 의식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근거들을 검토할 때 각각의 출처를 명확히 찾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히 이 책의 단점이다. 다만 각 장의 말미에 더 읽어보면 좋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으니 열성적인 독자는 이를 길라잡이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저자가 드는 논거들이 경제학, 생물학과 같은 다양한 학문에 바탕을 두고 있다보니 일부 논거들의 신뢰성이나 설득력이 약해지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책의 157쪽에서 저자는 “키에 관련된 연구를 통해 장기적인 안정성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중략) 100년부터 1800년 사이 평균 신장은 큰 차이가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의문점이 들기 마련이다. 키는 한 세기 정도의 기간 안에 빠르게 변화하는 것일까? 키는 영양 상태 말고도 인종적 차이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닐까? 이런 부분까지 책은 설명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책의 논지의 설득력을 약화시키진 않지만, 비약이나 부적절한 증거 동원으로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 책의 핵심 논지인 ‘영국에서 과학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활발했고 이러한 과학적 사고방식이 확산됐다’ 또한 더 많은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영국의 분위기가 그랬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확산된 데에는 영국 시민이나 과학자들의 사회적 네트워크와 같은 실체가 있는 인프라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왕립 협회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인해 기술자와 자본가들이 새로운 기술들을 채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혁신 기술들을 집약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하는 네트워크가 있었지 않을까? 대학이 그 역할을 담당했을 수도 있겠고 관료 기구가 담당했을 수도 있겠다. 더 많은 연구들로 보충되어야 할 부분이다.


아쉬운 번역


한국어판 번역에서는 곳곳에 오역들이 눈에 띈다. 글의 흐름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은 꽤 어색한 표현들이 더러 있고, 원문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게 하는 오역 또한 존재한다. 책의 57쪽을 보자. “유럽의 경미한 질병 사망률은 유럽 질병이 아메리카에 전해졌을 때 유럽 질병이 유발한 황폐화 효과에 의해 상쇄된 것 그 이상이었다.”라는 표현이 있다.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However, the lightness of disease mortality in Europe was more than offset by the devastating effects that European diseases had when they were introduced into the Americas.”[각주:3] 우선 ‘황폐화 효과’라는 표현은 오역이다. devastate라는 단어는 황폐화시킨다는 뜻을 가지지만, 이것의 형용사형인 devastating은 ‘대단히 파괴적인’이라는 조금 더 관용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effect 또한 효과라기보다는 결과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에 더 맞다.[각주:4]

그런 사소한 표현의 문제는 의미 자체를 크게 왜곡하지 않으니 넘어간다 치더라도, 이 문장에는 결정적 오역이 있다. 우선 ‘황폐화 효과에 의해 상쇄된 것 그 이상’이라는 표현은 한국어에서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에 문장 자체를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황폐화 효과에 의해 뭐가 상쇄된다는 건가? ‘상쇄된 것 그 이상’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건가? 추측하건대 역자는 more than이라는 표현을 비교급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런 오역을 범한 것 같다. 그런데 more than은 비교급이 아니라 ‘매우(to a great degree)’를 뜻하는 부사 표현으로 여기서 쓰였다. ‘A is more than offset by B’이면 A는 B에 의해 매우 상쇄된다, 한국어답게 풀이하면 B가 A보다 더 정도가 깊거나 크다는 의미이다. 기계적 번역이 낳은 오류라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문장을 이해할 수 있게 다시 번역하자면 “그러나, 유럽의 경미한 질병 사망률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옮긴 질병의 대단히 파괴적인 결과에 비해서는 보잘것없었다.” 정도가 된다. 이렇게 해석해야 앞뒤 문단의 문맥을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앞뒤 문단은 유럽 인구의 10-15%를 감소시킨 유럽 역병과 원주민 인구의 90%를 감소시킨 역병을 대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유럽중심적 연구가 더 많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상술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존의 유럽중심주의적 역사관에 대한 대안으로 좋은 책이다.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기존 유럽중심주의 담론에 저항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기도 하지만,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최신 연구 결과들을 상세히 반영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학 연구 성과와 구미 학계에서의 유럽중심주의 혹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면 이 책은 없었을 것이다. 유럽의 진보에 대한 많은 잘못된 생각들은 “유럽의 변화에 대한 충분히 자세하고 학문적인 이해와 아시아의 변화에 대한 다소 모호하고 극히 단순화시킨 이해를 비교한 것에서 유래한다”.[각주:5] 비유럽권 지역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축적된 지식들을 통해 한층 더 객관적인—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역사 서술은 없겠지만 말하자면—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 주로 중국과 유럽을 대비하여 서술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아닌 다른 지역들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다. 아마 현재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 혹은 아프리카나 남미, 오세아니아에 대한 지역학 연구가 미비하고 관심이 덜할 까닭일 터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반도 지역에 대한 역사 또한 깊게 연구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과 같은 비교적 중립적인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책에서도 한반도나 기타 지역은 여전히 주변부 같다. 어떻게 보면 탈유럽중심적인 역사 서술을 주도적으로 해 나가는 쪽이 구미 학계라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한국에서도 역사 연구에 충분한 지원을 하여, 양질의 결과물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각 대학의 역사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역사콘텐츠학과와 같은 이상한 학제를 만들어 당장 돈이 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국의 현재 상황이 자못 안타깝다. 내실 있는 기초학문의 발달을 바라며, 구미 뿐만이 아닌 한국, 아프리카, 남미 학계에서도 탈유럽중심주의적 연구가 많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1. 강철구,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은 누가 만들었나」,『프레시안』, 2007.10.25. [본문으로]
  2. 이하의 내용은 잭 골드스톤, 조지형· 김서형 옮김, 『왜 유럽인가?』(경기도 파주: 서해문집, 2011)을 요약한 것. [본문으로]
  3. Jack A. Goldstone, Why Europe? (New York: McGraw-Hill, 2009), p.22 [본문으로]
  4. New Oxford American Dictionary는 devastating의 뜻을 “highly destructive or damaging”로 풀이한다. Merriam-Webster's Learner's Dictionary는 more than을 “to a great degree: very, extremely”로 풀이한다. [본문으로]
  5. 잭 골드스톤, 조지형· 김서형 옮김, 『왜 유럽인가?』(경기도 파주: 서해문집, 2011), p.5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