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의 진격의 대학교(문학동네, 2015)를 읽고 고3 때 쓴 독후감.
어쨌거나 지금은 우물쭈물하다 대학에 왔다. 일단 대학에 와서 한 학기를 보낸 후의 소감을 말하자면:
-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는 교양 강좌로 취업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고 리더십은 어떻고 하는 거를 별로 개설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런 강의를 의무적으로 들을 필요도 없다. 1학년 필수 수강 강의로 '1학년 세미나'라는 것이 있는데(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보고 문제를 풀어 일정 점수가 나오면 Pass가 되는 강의이다) 거기서도 별로 취업 얘기 이런 건 없다. 아참, 새내기 대상으로 학과 행정실에서 주최한 사회학과 워크샵에선 어디어디 취업한 동문들을 연사로 불러와 취업 어쩌구 얘기하긴 했다. 뭐 이런 행사가 아니면 직접 찾아다니지 않는 이상 리더십 취업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듣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회학과여서 별로 그런 얘기를 접할 틈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학교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취업에 목을 매야 하는 학교가 있고, 그러할 필요가 덜한 학교가 또 있기 때문에. 대학들은 절대로 균질하지 않다. 그러니까 서울대랑 비서울권 대학은 다르다는 것이다. 어디는 대학의 재원을 희귀 저널 구독이나 도서관 장서 확충이나 교수 수 늘리는 데에 쓴다면 어디는 재원을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짓는 데에 쓴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에 이 책이 크게 놓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 영어강의에 대해서는 매우 공감한다. 나는 비록 아직 교양 영어강의만 들었고 제대로 된 영강은 안 들었지만 주위 선배들 이야기하는 것 들으면 아주 영어강의라는 제도의 폐해가 엄청나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대학의 글로벌 지수가 높아져 대학 평가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영강의 장점은 이런 것 같다.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교환학생들이 쉽게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여하간 대학의 글로벌화에 영강이 기여하기는 기여하는 것 같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1) 학부 수준에서 대학이 글로벌화될 필요가 있는가? 학부 수준에서 한국어 실력이 없는 유학생들을 받는 게 과연 대학의 학문적 질 향상에 도움을 주는가? 2) 외국의 다른 대학들은 학부에서 영어강의를 얼마나 개설하고 또 영강의 질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취업률. 요새 대학들이 목매는 지표. EBS 교재만 펴봐도 우리 학교는 취업률이 몇 퍼센트고~ 하는 광고가 수두룩하다. 심지어는 자기 학교를 '취업사관학교'로 소개하는 학교도 있음. 취업률에 목매는 대학들이 상당히 늘어났는데 이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취업률 높아서 나쁠 건 없겠지만... 문제는 취업이 대학의 제1 목표가 되면서 원래의 대학의 목적이었던 배움,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취업이 잘 되는 학문, 즉 기업이 좋아하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취업 잘 되는 학문은 정원을 늘리고 취업이 잘 안 되는 학문은 구조조정이나 통폐합을 한다. 이런 게 요새 대학의 행동강령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냥 당장 모집 요강을 봐도... 보통 인문대 학과는 20-30명 남짓 뽑는다. 근데 경영대(학과가 아니라 따로 단과대임)는 보통 200명 넘게 뽑는 것 같다. 10:1.... 저자 오찬호는 사회학 강사로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사회학을 가르치니만큼... 굳이 말을 보태지 않아도 왜 이 사람이 이런 책을 썼는지 알 것이다. 사회학은 문사철과 함께 대표적인 '잉여 학문'이니까.
이 책은 가상의 대학교 '진격대'를 무대로, 역시 가상의 대학생 몇 명을 등장시켜 현재 대학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무대가 가상일 뿐 사례들은 모두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일화들을 좀 꼽자면...
1. 리더십 강의, 취업 강의. 요새는 교양강좌도 다 리더십 강의나 취업 강의들이라 한다. 대학에 들어가도 뭐 '현대미술사 개론' 이런 교양 강좌들 요새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다(물론 학생들이 안 듣기도 함;;). 그럼 그런 취업 리더십 강의에서는 뭘 가르치느냐? 나비넥타이 매는 법... 화장하는 법... 면접관에게 어필하는 법 이런 걸 가르쳐 준다고 한다. 아니면 성공하기 위한 마인드컨트롤 방법 이런 자기계발류 강연인데.... 실로 등록금이 아깝지 싶다. 게다가 이런 강의들은 외부 명사들을 초청해 진행하기 때문에 일회성 성격이 짙다고 한다. 그런 일회성 성격이 짙은 강연, 그렇게 전문성도 없는 명사들의 강연을 굳이 대학이 진행할 필요는 없을텐데.
2. 영어. 영어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물론 영어에 목매다는 건 취업률 및 대학지표 때문이다(취업률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역시 대학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미래의 고객인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기 땜에). 한국 교수한테도 영어강의를 강요함으로써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야 당연한 것이다. 모국어에 기반한 사유와 외국어에 기반한 사유는 서로 질적으로 다른 건데... 여하간 이렇게 영어를 강조함으로써 학생들끼리도 알게모를 격차가 생긴다고 한다. 그 격차는 유학파/비유학파의 격차다. 유학파인지 비유학파인지는 영어 발음으로 드러나는데... 이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계층의 격차가 하나 더 생기는 것. 학생이 교수 발음 구리다고 지적하는 코미디도 일어난다고;;
3. 여성학 가르치는 교수가 수업 시작하기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자조적으로... '이런 거 들으면 취업에 불이익 생길 텐데요' 뭐 이런다고... 실제로 기업에서 면접할 때 물어본다고도 한다. (여성학이나 사회학 등등 강의에 대해) 이런 거 왜 들으셨냐고. 그런 과목 듣거나 전공한 사람이 반골 기질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걸 기업도 아는 거겠지만. 어쨌거나 그래서 현재 한국 대학의 문사철 및 사회과학 학문은 고사 상태다.
나는 원래부터 대학에 대한 환상은 없었으나, 이 책을 읽고나서는 대학에 갈 생각이 별로 없어졌다. 주변에서 대학 별 거 없다고 익히 듣긴 했으나, 실제적 사례를 이렇게 접해보니 확실히 체감이 됐다고 할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대학. 기업이 원하는 바에 맞춰, 사람을 찍어내는 학교. 그렇다면 과연 대학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문, 탐구라는 추상적인 대답밖에 내놓을 수 없지만 어쨌든 취업은 대학의 존재 이유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 책은 이에 대해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분석의 역할에서만 그칠 뿐이다. 물론 명확한 대안을 내놓아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세태가 틀렸다는 문제제기가 우선 중요한 거니까. 하지만 내가 책을 읽고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를 생각했을 때 우선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은 어쨌거나 국가의 산업 및 경제와 분리될 수 없는 기관이다. 기업의 목적에 철저하게 복무해서도 안 되겠지만 대학은 기업이랑 분리될 수도 없다(좋고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좋은 직장이나 학위 같은 사회적 희소가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추세라 한다.
학문의 완전한 자율성 같은 목표는 거창하고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제쳐두면, 우선은 고사 상태에 있는 학문에 대한 제도적 보호가 우선은 필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문사철, 일부 사회과학 학문, 예술 학문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취업의 논리에 의해 쉽게 구조조정되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아쉬운 점은 첫째, 다양한 대학의 사례를 '진격대'라는 가상 대학교의 사례로 일원화함으로써 대학 간의 차이를 무시했다는 것이 있다. 저자는 별 생각없이, 아니면 대학 실명비판이 좀 그래서 진격대라는 픽션적 글쓰기를 시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몇몇 사람들이랑 간단히 얘기해보기도 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본바, 취업에 대해서도 인서울 명문대랑 그렇지 않은 비수도권 대학이랑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난다는 것이다. 적어도 스카이 서성한 중경외시 정도 학교는 학과가 막 통폐합되지는 않는다(중앙대는 잘 모르겠긴 함). 명문대 학생들도 취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비수도권 대학 학생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갭이 있다고 한다. 아마 입학하는 학생들의 소득과 같은 계층적 차이나, 학생들의 자신의 대학 서열 인식에 대한 불안감에 기인한 차이이리라. 이런 디테일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둘째는 현 상황에 대한 분석이 수치화, 데이터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대학 별 차이도 그렇고, 현재의 문제 상황에 대해서도 단순하게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하는 사례를 나열하기보다는 대학의 기업화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다른 요인들까지 함께 고려하고 연구해서 치밀한 분석을 내놓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저자가 사회학자니 말이다. 이 부분은 좀 아쉬웠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