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니킬 서발,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김승진 옮김, 이마, 2015. 


원제: “Cubed: The Secret History of the Workplace.” 한국어 제목은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영어 제목을 본다면 책은 일터로서의 직장 공간을 강조하고자 하는 미묘한 어감을 풍기고, 한국어 제목은 사무실의 건축적 특성에 좀 더 방점을 둔 것처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노동사회학과 경영학의 연구 성과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축과 도시 계획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사무실이란 어떤 곳인지 또 화이트 칼라 노동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사무실workplace 전반의 역사를 개괄하고자 시도한다. 

19세기 후반까지 우리가 상상하는 화이트칼라들이 일하는 사무 공간은 낯선 곳이었다. 책의 1장은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소개하며 시작하는데, 작품이 쓰인 1853년은 “사무실이 이제 막 세상 사람들의 인식에 잉크 자국을 내기 시작했”을 때였다(23쪽). 19세기 후반까지 사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체 노동 인구의 오 퍼센트에도 못 미쳤고 그들의 작업 방식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파티션으로 칸칸이 나뉜 좁은 구역에서 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경우 사무원들의 일은 회계 업무나 베껴 쓰기(필경)였고, 이들은 잡화점이나 상사(商社)에서 비즈니스맨과 함께 부대끼며 일했다. 이때 사무원들의 일은 보통 긍정적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남성적이지 않고 미국적 정신에 반하는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19세기 후반 대불황을 겪으며 많은 기업들이 수직적으로 통폐합된 경제적 배경과 철도와 우편 등의 인프라가 발달된 사회적 배경 하에서 사무원의 수는 매우 늘어났고, 건축술의 발달로 고층 빌딩이 비록 에어컨은 없었지만 그들을 오밀조밀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미국에서 사무원이 당시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들의 수가 어떻게 늘어났는지를 제1장에서 개괄한 후, 제2장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 방법과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 당시 미국의 노동쟁의와 경영 상황이 우리가 흔히 아는 사무실 공간에 끼친 영향을 다룬다. 

사무 공간에는 남자만 있었을까? 1870년에는 그랬지만, 1920년에는 여성이 미국 사무직 노동자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대부분 속기사나 타자수, 비서 업무에 국한되었지만. 제3장은 사무실 일터에서 여성의 지위를 일과 성(性)의 측면에서 모두 다룬다. 여성의 사무실로의 진입은 여러 의미에서 일터의 질서와 문화에 균열을 냈다(아주 재밌는 부분이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 

제4장은 모더니즘과 사무실 건축에 대한 이야기이다 -- 르 코르뷔지에 같은 익숙한 이름이 나온다. 에어컨과 형광등, 달반자suspended ceiling는 현재 우리가 아는 사무 빌딩을 건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5장은 직전 장과 달리 빌딩 내부의 이야기 -- 사무실 내에서의 인종적 소수자들의 지위, 진취적 정신과 배치되는 관료제적이고 순응적인 조직형 인간들에 대한 무성한 논의들, (오피스 와이프를 포함한) 직장과 아내들의 관계 -- 를 다룬다. 

6장은 초점을 조금 바꾸어, 1960년대 즈음 사무실 내부 공간을 혁신하고자 했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시도를 다룬다. 작업 공간을 창조적인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시도는 피터 드러커 등의 지식 노동론이나, 과학적 관리 이후의 인사 관리 이론 등의 경영학 성과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딱딱한 사무 공간을 능동적인 업무와 창발적인 성과들이 오가는 곳으로 변화하고자 했던 액션 오피스 등의 시도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저자는 “유연성을 위해 만들어”진 액션 오피스가 “‘인간적인’ 헝겊”으로 싸인 “경직성”을 들여왔다고 지적한다(290쪽; 제임스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7장은 6장의 문제의식의 맥을 이어, AT&T의 예시를 중심으로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실패와 사무실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 다음,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끝난 이후의 사무실의 변화를 다룬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는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중간 관리자의 대량 해고 등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러한 배경 속 여성 비서들의 저항 운동이나 사무직 노조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매끄럽게 읽힌다. 

8장과 9장은 현재와 미래의 사무실을 다루고 있다. 미래의 사무실 문화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것들은 일과 휴식, 놀이의 경계가 뒤섞인 사무실이나 재택 근무 문화이다. 이러한 혁신들은 주로 실리콘 밸리의 벤처 기업에서 많이 이뤄졌는데, 그것들이 모두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다. 8장은 사무실의 칸막이를 없애는 등의 시도가 놓치고 있는 것은 일반 직원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수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즉 혁신과 창의라는 미명 하의 계획들이 사무실의 문화를 과대 결정(overdetermine)하는 것은 아닌지 암시한다. 

9장의 말미는 우리가 1990년대 이후 사무실을 혁신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주의해야만 할 것은 바로 늘어난 비정규직 인력임을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현재의 사무실 문화는 19세기 중반의 그것과 흡사한 듯하다. “19세기 중반에 노동 시장은 광대하고 규제가 없었다. ... 사무실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 적어도 20세기 초에 등장한 것 같은 형태의 사무실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415쪽) 저자는 책의 앞에서 인용한 C. W. 밀스의 문장을 책의 끄트머리에서 다시금 꺼낸다. 

이렇게 책을 덮으면 종횡무진 이어진 화이트칼라 사무 공간의 역사 기행이 끝나게 된다. 종횡무진이라는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닌데, 저자의 박식함 덕택에 약 150년의 사무 공간의 역사가 건축이나 경영학, 노동사회학, 여성학, 당시의 소설과 광고 등 여러 주제와 제재를 넘나들며 흥미롭게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정보들을 난삽하지 않고 읽기 즐겁게 이어 놓은 저자의 글쓰기 솜씨도 중요함은 언급해야겠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공간의 역사가 궁금한 교양 독자에게도, 아니면 그저 탁월한 논픽션을 즐겁게 읽고 싶은 심심한 독자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