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Turner (2006) “Sociological Theory Today.”
Jonathan H. Turner. 2006. “Sociological Theory Today.” In Handbook of Sociological Theory. Springer Science & Business Media.
50-60년대와 비교해 사회학은 이론의 엄청난 분화(hyperdifferentiation)를 겪고 있다. 만약 랜덜 콜린스가 말한 “작은 수의 법칙”이 옳다면 이론들을 솎아 낼 필요가 있을 텐데, 각자의 이론이 니치(niche)를 점하고 지지 기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저자는 사회학에서 어떤 이론도 헤게모니를 잡고 있지 못해왔고, 또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학이 진정으로 과학적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 터너는 지난 50년 동안 이론 사회학 영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주관적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1) 인식론에 관한 여러 입장
(1-i) 사회학 이론은 과학적이어야 하는가? 사회학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자연과학과 같은 실증적 과학이 되기를 바랐다(e.g. 콩트, 스펜서, 뒤르켐).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학이 비판적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베버는 일반 법칙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고 보았고 사회학을 경험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을 내놓는 학문으로 생각했다. 오늘날 실증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이론가는 별로 없고, 많은 이들은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거나, 사회학을 과학이 아닌 여러 현상들을 개념화하고 기술하는 해석적 학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많은 이들은 일반적 법칙을 내놓는다는 과학의 인식론에 반대하는 듯하다. 터너는 이러한 회의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사회학 이론이 과학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저널리즘, 이데올로기적 훈계(preaching),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 모호한 철학화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학은 인문학에 물 탄 것뿐이 되지 못하며 정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심지어는 학문적 동료에게까지 중요한 것이 못 될 것이다.
(1-ii) 사회학 이론은 미시적이어야 하는가 거시적이어야 하는가? 모든 과학은 거시-미시의 구분을 화해시키지 못했으며, 그저 거시와 미시의 구분을 드러낼 따름인데 왜 사회학은 계속 이러한 이슈에 집착하는지 자문할 수 있다. 터너는 이 이슈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이유를, 이 이슈가 다른 인식론적 이슈와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거시-미시의 구분은 행위자-구조의 문제와 섞여 있다. 그리고 저자는 행위자-구조의 문제가 과연 사회학이 과학적 활동(scientific enterprise)인지에 대한 문제로 우리를 돌려 놓는다고 본다.(만약 행위에 우선을 둔다면 사회학은 과학이 되기 어려울 것이고, 구조에 우선을 둔다면 행위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일 수 있을 것이다.)
미시-거시의 구분을 화해시킬 여러 시도가 있었다. (a) 베버적인, 개념 구축의 시도. 그러나 이 접근의 문제는 실재에 대한 여러 분석적 카테고리만을 갖게 될 뿐 여러 수준의 실재가 갖는 다이내믹을 잘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b) 짐멜적 시도. 사회 관계의 형식들은 실재의 여러 수준에서 동형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각 수준의 발현적인 속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c) 연역적 환원주의. 이 역시 여러 실재의 수준에 대한 설명들이 서로 차이나는 이유를 가려 버리는 문제가 있다. (d) ‘문화적 전환’. 기든스와 부르디외의 시도는 사실 임시방편으로 미시분석과 거시분석의 차이를 메워버리는 것이라고 터너는 본다. 왜냐하면 거시 수준에는 행위자들이 참고하고 동원하는 “창고”로서의 문화만이 아닌 다른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시도 역시 터너는 비슷하게 논평한다. (e) 머튼의 중범위 이론 옹호. 하지만 이 시도는 그저 사회학이 더욱 미분화되고 합의되지 못하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터너가 제시하는 ‘당연한’ 해결책은 각각의 차원(거시, 미시, 중범위)이 각자의 발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른 과학 역시 거시-미시의 구분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오직 사회학 이론만이 이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이는 오히려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엄청난 분화만을 낳았다고 터너는 논평한다.
(2) 다양한 이론적 전통
(2-i) 기능주의 이론. 기능주의는 어떤 현상이 더 큰 체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지를 이론화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는데, 왜냐하면 순환 논증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의 기능주의 이론가들은 분화를 사회 발전의 최상위 과정으로서 설정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피했다. 그런 설정은 적어도 검증 가능한 명제들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기능주의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파슨스의 특수한 분석 방식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파슨스의 기능주의는 설명이라기보다는 현상을 기술하기 위한 개념적 도식이기 때문이다. 신기능주의자들은 “요구 조건(requisites)”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분화 과정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 엄밀히 따지면 신기능주의는 기능주의가 아니게 된다.
(2-ii) 갈등 이론. 파슨스가 헤게모니를 놓치게 된 이후 갈등 이론이 유행했는데, 터너는 이러한 경향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기능주의에 대한 갈등 이론의 비판은 그저 사회 체계 안에 통합과 갈등의 과정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것을 발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갈등 이론은 사회 이론에서의 초점을, 갈등이 일어나는 여러 조건들로 이동시켰다. 이러한 전환 후에 여러 가지 접근이 발달했다. 하나는 불평등과 계층화에 대한 마르크스적, 베버적 강조이다. 다른 것은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을 발달시키려는 노력이었다. 사회 운동의 이론화는 추진력을 얻었고, 교환 이론 역시 갈등 이론적 요소를 품었다. 갈등 이론의 전성기에 세계 체제 이론 역시 부상했다.
(2-iii) 비판적인 이론화(Critical theorizing). 마르크스의 해방적 이상과 베버적 염세주의를 결합한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이에 해당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 비판 이론 중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문제의식 자체는 초기 사회학자들과 공명한다. 비판 이론의 문제는 그것이 비판적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많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논평한다.
(2-iv) 진화 이론(Evolutionary theory). 사회학 이론에는 언제나 진화적 경향이 있었다. 진화의 단계 모델(stage models)은 20세기 초 많은 공격을 받았지만, 20세기 말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e.g. 세계체제 이론, 하버마스, 기능주의). 진화 이론의 다른 형태로는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이 있는데 이런 이론의 문제점은 임시방편(ad hoc) 혹은 사후적(post hoc)이어서, 가설이 검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형태의 진화 이론으로는 주목을 잘 받지 못하지만, 인간과 유사한 침팬지 등의 생활 형태를 비교 연구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사회적 구성’에 대해 헌신적 믿음을 갖는 이론가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진화 생물학에서도 인사이트를 끌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2-v) 공리주의 이론. 공리주의 이론은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의 저작에서도 드러난다. 공리주의 이론화는 50년대 말과 60년대 초 호만스 식의 행동주의 모델이나 콜만의 모델에서 드러나는데, 공리주의 이론의 가장 중요한 진보는 짐멜에 의해 처음 제안된 교환 이론의 발달이다.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합리적 선택 이론이 유행했는데, 이러한 이론의 설명 논리(ad hoc과 post hoc)는 사회생물학과 유사하다. 그러나 사회생물학과 다르게 합리적 선택 이론은 실제로 예측(prediction)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vi) 상호작용적 이론화. 미드의 유산은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에 남아 있는데,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은 역할 이론이나 교환 이론, 행위 이론 등과 융합되기도 했다. 의례와 감정적 격정(arousal)을 강조하는 뒤르켐적 유산은 고프먼의 연극적 접근이나 콜린스의 상호작용 의례 이론에서 드러난다. 이외에도 후설과 슈츠의 영향을 받은 민속방법론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상호작용화 이론화 영역에서 가장 흥미로운 진영은 감정(emotions) 연구로, 감정 연구는 1970년대 이후 미시사회학 연구에서 선도적 위치가 되었다.
(2-vii) 구조 및 구조주의 이론. 표면적 현상의 심층에 구조적 형식이 있다는 것은 흥미를 끈다. 하지만 부르디외, 기든스, 우스노우Wuthnow 등의 이론은 레비-스트로스나 촘스키가 주장한 것처럼 뇌(brain)를 구조를 생성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다른 구조주의 이론의 종류로는 네트워크 분석이 있다. 네트워크 이론의 관심은 연결(tie)의 다양한 형태가 만들어 내는 동학이다. 다른 형태의 구조주의로는 구조가 어떻게 상호작용의 비율에 영향을 끼치는지의 연구가 있다.
결론
사회학 이론은 상당히 분화되어 왔지만, 이들 중에서 통합의 움직임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터너는 이것이 오늘날 사회학 이론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본다. 과학은 그것이 지시하는 문제와 인식론에 대해 최소한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