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카르본·나오미 칸, 『결혼 시장』.
준 카르본·나오미 칸, 『결혼 시장』, 김하현 옮김, 시대의창, 2016.
한국어판 부제는 "계급, 젠더, 불평등, 그리고 결혼의 사회학." 그런데 저자들은 사회학자는 아니고 법학 교수들이다(가족법 전공). 책의 2부까지는 80년대 이후 변화한 노동 시장과 심화된 인종, 계급 간 불평등을 바탕으로 기존의 문화 전쟁 프레임, 경제학적 설명, 그리고 (속류) 사회학적 설명을 넘어서 결혼 전략의 변화를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책의 목표인 듯하다. 3부에서는 특히, 보다 평등주의적이어지고 중립적이고자 하는 젠더/결혼 규범에 대응하고자 성별 간 기계적인 평등(예컨대 부父에게도 웬만하면 공동 양육권을 부여하려고 하는)을 보장하고자 하는 가족법이, 계층별로 세분화되고 기존의 결혼 규범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혼 관습, 전략의 변화에 전혀 개입하지 못하고 무력해진 것을 보여준다. 가족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인 것 같다.
탈제도화라는 신화
“현재의 동향을 묘사한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은 사회학작 앤드루 셜린Andrew Cherlin이 2004년에 발표한 논문이다. 2004년까지 이혼율, 동거율, 혼외 출산율은 틀림없이 증가했다. 결혼율이 계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셜리는 ‘탈제도화’를 사회 규범이 힘을 잃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한때 사회 규범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도록 이끌고 결혼 후에는 성별에 따라 이들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 반면 셜린은 오늘날에는 결혼을 늦게 하는 것이 곧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68-69)
그러나 “더 나은 설명을 제시하려면, 왜 상위 3분의 1의 엘리트 집단에서는 효과를 보는 해결책이 나머지 집단에서는 먹히지 않는지, 과거 결혼 제도의 성 편향적 역할을 가장 먼저 거부했던 상위 3분의 1이 왜 오늘날 재구성된 관습[결혼]으로 되돌아왔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70)
보수주의자 찰스 머리(Charles Murray)
“찰스 머리는 가족 문제에 관해 쓴 두 권의 책에서 중요한 것은 근면과 결혼, 종교라고 주장했다.” (60)
“찰스 머리는 가족이 불안정한 원인을 끊임없이 개인의 인격 부족과 정부의 그릇된 개입 탓으로 돌렸다 … 경제 변화로 낭떠러지에 내몰린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계급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는 그의 설명에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62)
“두 진영이 설명해내지 못하는 부분은 ‘왜 어떤 사람은 임신을 하지 않았는데도 굳이 결혼을 하려고 하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중산층이 사랑을 얻고 승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고안한 새로운 전략의 기초를 이룬다.” (73)
속도위반 결혼의 종말 (73)
“오펜하이머는 베커와 달리 가족 구조가 변화하면 이상적인 배우자상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아챘다. … 여성이 점차 더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자 이상적인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더욱 복잡해졌다. 첫째, 사회 규범이 바뀔 때는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경제 활동을 우선시하는 여성은 자신의 목표를 인정해주는 남자를 만나길 원한다. … 둘째,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결혼을 미루기 시작하면서 더 심해진 불평등은 판돈을 더 키웠다.” (82)
“대형 로펌에 다니는 여성은 고등학교 때 만나던 남자 친구를 결혼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그 남자 친구를 젊은 변호사들이 모이는 칵테일파티에서 만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또한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에모리 대학교에 입학한 여성은 종종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고향에 있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거나 아니면 남자 친구 때문에 미래의 성공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것이다.” (83-84)
성비 이론과 이에 의한 결혼 시장 변동의 설명
“첫째, 심화된 불평등은 결혼 시장을 세분화했다. … 둘째, 심화된 불평등은 남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은 중간에 밀집해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연구는 소득 사다리의 꼭대기와 밑바닥 사이의 거리가 여성보다 남성 사이에서 더 멀어졌음을 보여준다. … 그 결과 결혼 시장이 점점 더 세분화되면서 상위 계급 여성은 보다 “바람직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고, 중간층에 위치한 여성은 상위 계급 여성에 비해 선택지가 좁아지며, 하층에 위치한 여성은 선택지가 거의 전무해진다.
셋째, 성비는 각각의 결혼 시장 내에서 연애, 섹스, 결혼의 조건에 영향을 미친다. 상위 계급에서는 남성 수가 증가했으며 이들 모두 얼마되지 않는 높은 지위의 여성과 결혼하려 한다. 거튼테그와 세코드는 상위 계급의 남녀가 점점 더 결혼을 지향할 것이며 이들의 관계는 점점 더 안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반면 다른 집단에서는 결혼할 만한 여성에 비해서 결혼할 만한 남성이 줄어들고 있다.”(111-112)
2부 7장
흥미로운 연구: “1992년에서 2004년 사이, 소득 수준이 하위 4분의 1인 가정의 고3 학생은 운동 동아리에서 활약할 확률이 상당히 낮아졌으며, 리더 역할을 할 가능성은 그보다 더 낮아졌다. 같은 기간 소득이 상위 4분의 1인 가정의 학생들은 각종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으며 [이전과는 다르게] 운동 동아리의 주장 역할도 대부분 이들이 맡았다.” (162)
“변한 것은 결혼 생활에 대한 이상理想이 아니다. 남녀 모두 여전히 결혼을 소중한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해서 헌신하는 것으로 여긴다. 변한 것은 사람들이 더는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39)
“1970년대에 대졸자들은 성관계와 결혼에 관해 훨씬 자유로운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쟁이 심한 오늘날에는 엘리트들이 점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결혼을 중심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147)
“무과실 이혼이 허용되자 “무고한” 아내를 경제적으로 계속 부양해야 한다는 이혼 수당의 의미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여성이 점점 더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만 이혼 수당을 요구할 근거가 약해진 것이다.” (218)
결혼은 아내가 남편에게 의존하던 관계에서 남녀가 각각 독립성을 잃지 않고 개인의 성장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상호 의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가족의 요구에 함께 부응하는 관계로 변하고 있다. 더 나아가 현 법 체제는 부모 역할을 엄마와 아빠가 함께 맡는 책임이자 부모 간 관계가 끝나더라도 평생 지속되는 의무로 보는데, 이때 부부에게는 자녀를 함께 책임질 의무뿐만 아니라 서로가 아이의 삶에 개입하도록 이끌 의무도 있다.” (224)
“남녀가 이처럼 비교적 평등한 규범 위에서 벌이는 새로운 젠더 협상은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혼을 상호 의존과 공유의 차원에서 파악할 때 놓치는 것은 노동자 계급 관계에 내포된 조건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접근은 두 사람이 관계에 (언제나 평등하게는 아닐지라도) 비슷한 수준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곧 관계에 비슷한 수준으로 기여할 수도, 서로를 전폭적으로 믿을 수도 없는 사람들은 결혼을 불가능한 협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24-225)
변화한 결혼 모델: “남녀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부부가 서로 동등하고, 상호 의존적이며, 아이를 함께 키워야 한다고 보는 새로운 결혼 모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33)
“양육권 판결의 기준이 달라지자 적절한 배우자를 찾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제 배우자는 서로 상의하며 맞벌이 생활을 잘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녀에 대한 책임까지 공유해야 한다.” (243)
“헌법에 근거하든 일반 법률에 근거하든 핏줄 중심으로 판결을 내리면 친자 확인 검사를 통과한 남성은 아이 엄마와 아이 엄마의 남편이 반대하더라도 부모 자식 관계를 지킬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핏줄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주에서는 남성도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의사 결정 권한을 제한한다. … 이러한 논쟁 상황에서 법은 아이의 친모가 아이 아빠를 선택하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고, 무엇이 아버지 지위를 결정하는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도 못하고 있다.” (261)
“이처럼 ‘좋은’ 일자리와 성별화된 역할이 결합된 체제는 거의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속이 다 시원하다”고 말하지만, 새로운 체제는 경제적 안정도 돌봄 노동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294)
“엘리트에게 부부가 함께 가족을 꾸리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금욕적으로 생활하고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피임약을 먹으며 결혼을 미루는 것도 미래에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이 덜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독실한 우파와 세속적인 좌파 사이의 갈등 때문에 합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성행위 규범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합의된 규범도 없고 행동 양식도 형편에 따라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엘리트와 비엘리트 사이의 격차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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