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희,  『민중 만들기』. 이경희, 유리 옮김. 후마니타스. 2015. 

지식인(=대학생)과 민중의 관계에 대해 주로 6, 7장을 읽고 쓴 메모. (2018년 11월) 

 

  1) 책 논의 요약
- 민주화운동은 7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자 함. 70년대에 처음으로 ‘현장론’ 제기된 것이 대표적(346쪽): 이는 단기적인 정치적 사안에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인 노동 부문의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운동가들의 인식을 뜻함. 이때에 가장 중요했던 사건은 전태일. 도시산업선교회 같은 기독교 단체들이 핵심 역할(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한 비판은 361쪽 참고). 운동 전략들은 대부분 야학. 프레일리 <페다고지>와 같은 해방적 교육이론에 영향을 받음. 물론 해방적 지식이 아닌 실용적 지식을 원하는 노동자들은 종종 야학 교사들을 “난처하게” 함(366쪽). 야학 교사와 학생이 평등한 관계를 갖고자 하는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야학 프로그램은 훈시적(370쪽).

- 80년대에 와서 주목할 것은 지식인(학생)들이 직접 노동자로서 사회적 정체성을 바꿔가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는 것. 배경: 광주학살에 대한 부채감, 현장론의 영향(김문수), 사회주의 이념의 영향, 1980년의 노동법 개악(공장노동자 자격만이 노동운동 가능)이 지식인들의 “도덕적 특권 담론”(43쪽)과 결합한 것.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공장 취업 노동자들이 매우 많아졌는데, 이는 운동권의 수가 늘어났고 운동이 관례화ㆍ의례화 되었기 때문(408-10쪽).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노동자를 대상화하고 낭만화 하는 경향을 인지하고 있었음(393쪽). 저자는 이를 ‘그람시적 열망’과 ‘레닌주의적 열망’이 충돌했다고 정리함(394쪽). 대학생들의 사회적 위치 그 자체와, 학출 노동자들의 현학적 담론, 혹은 투쟁에 조급한 성격은 노동자들과 자주 충돌.

  2) 비판점, 생각해 볼 지점
(1) 60년대 이후 시기, 서구에는 왜 학출 노동자와 같은 현상이 없었을까? 지식인의 “도덕적 특권 담론”은 저자가 지적하듯, 한국에만 고유한 것이 아님; 이를 설명하기 위한 다른 변수 필요. 개인적 생각: a) 절망적으로 비참한 노동 환경; b) 서구의 60년대처럼, 비교적 풍족한 ‘중산층 학생 집단’이 유의미한 인구 집단으로 정체화한 것; c)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문건만을 주로 접한 운동권들 – 이에 비판적인 문건들 접하기 어려운 환경; d) 자생적인 노동운동의 미발달 – 서구와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변수; e) 광주학살과 전태일의 부채감과 70년대 운동에 대한 반성

(2) 학출 세대들이 위치했던 역사적ㆍ사회적 맥락과 현재 대학생이 자리 잡은 그것은 매우 다름; 대학 진학률 70%가 넘는 현재 도덕적 특권 담론은 유효하지 않음. 사회 전반의 전문화와 분화의 심화로 인해, 대학생이 가진 상징자본 및 상징권력(Bourdieu)은 매우 미약. 

(3) 하지만 지식인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고, 노동자들과 같은 일상적 행위자(lay actors)와 다르게 ‘인식론적 특권’을 점유하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더라도(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의 전제?) 왜 하필 한국에서 학생-지식인들이 현장에 뛰어드는 길을 택했는가-- 이는 특이한 현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