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웹상에서 종종 보이는 책이어서,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우리 대학 도서관에 보니 대출 횟수가 다섯 회이던데 그렇게 널리 읽히는 책은 또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동아시아에 대해 이제 막 공부해가는 입장이니 책의 주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평할 깜냥은 안 된다. ‘영속패전’이라는 수사는 충격적이고 신선할 수 있지만, 그 주장의 핵심인 동아시아에서의 패전의 부인과 전승국 미국에의 복종이라는 모순의 공존 자체는 새로운 것인가? 

한편 “바꿔 말해 우파의 정체성 지탱을 위해 타국의 힘으로 내셔널리즘의 바탕을 이루는 매우 기괴한 구조가 정착됐다”(43)라는 구절을 읽고는 (반북/반중) 친미라는 깃발 아래서 서로 공모하는 한국과 일본 극우파들을 잠시 생각했다. 성급한 화해를 강조하는 이들이 당위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한미일의 협력 및 공조이고 또 그들이 조장하는 공포는 중국과 북한의 안보 위협이다. 그 문제의 기원, 뿌리는 반공주의로 소급될 수 있는 것인가? (+ 여기서 日 극우파는 미국에의 종속(표면적으로는 긴밀한 공조라는 단어를 쓰지만)과 재무장을 동시에 옹호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일본의 북한 납북자 문제와 북한 미사일 발사를 내세우는 것이겠다.)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면 언제나 ‘대미 종속’ 구조로 귀결된다. 러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향해 일본이 배타적 내셔널리즘을 행사하는 것은 의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주일 미군의 압도적 존재감에 기댄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동양의 고아’ 일본이 앞으로의 아시아를 전혀 개의치 않는 응석받이 의식을 깊이 새길수록 일본을 두둔하는 미국과의 관계는 밀접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의 요구라면 부조리해도 반드시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게 대미 종속이 아시아에서 일본의 고립을 부채질하고, 그 고립이 다시 대미 종속을 강화하는 악순환이 이뤄진다. 또 이런 구조를 바탕으로 애국주의를 표방하는 우파가 ‘친미 우익’이나 ‘친미 보수’를 자임하는, 바꿔 말해 우파의 정체성 지탱을 위해 타국의 힘으로 내셔널리즘의 바탕을 이루는 매우 기괴한 구조가 정착됐다.(43쪽; 강조 본인) 

 

패전 후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의미에서 직접적인 대미 종속 구조가 영속화한 한편, 패전 인식을 교묘하게 은폐(부인)하는 대부분 일본인의 역사 인식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패전은 이중 구조로 이뤄져 계속되고 있다. 물론 두 측면은 서로 보완하고 있다. 패전을 부인하므로 미국에 끝없이 종속되며, 대미 종속이 깊이 이어지는 한 패전의 부인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영속패전’이다. (61쪽) 

 

그리고 그들은 이런 의무를 이행하기보다는 거짓과 기만의 공중누각을 쌓아올리는 쪽을 택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에겐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패전의 책임을 회피해온 무리와 후계자들이 국방의 책임을 운운할 리도 업고 애초에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그들은 공중누각을 지탱하기 위해 국민의 마음에 각인된 ‘핵무기는 너무나 잔혹해서 싫다’는 감정을 지렛대로 삼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속패전 체제 핵심 세력과 평화주의자 사이에 형성된 기묘한 공범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167쪽; 강조 본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 경험도 이런 관점에서 그 의미를 해독해야 한다. 당시 요나이 미쓰마사(米内光政) 해군대신은 원폭 투하 소식을 접하고 ‘하늘이 도왔다’고 했거니와, 원폭 충격이 본토 결전 회피를 재촉하고 나아가 혁명 가능성을 버섯구름으로 날려버릴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하늘의 도움’이었다. … 이런 의미에서 일미 공범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전후의 국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