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난민과 국민 사이』.
네이션, 내셔널리즘(민족주의), 국가, 난민 등의 포괄적 주제에 대해 사고하고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제일 먼저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당연히 이 책은 민족주의에 대한 개설서가 전혀 아니지만, 한국인들에게 있어 다른 어느 개설서보다 문제를 '실천적으로', '현재적으로' 사고하고자 하려면 그 출발점으로 도움이 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저널리즘에서 보도되는 바대로 난민을 어떤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한 부산물 정도로 매우 협소하게 이해하면, 난민이 결국 국민[네이션]의 동전의 양면이라는 귀중한 통찰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을 그저 수재민이나 이재민과 다름없는 존재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경식의 글 경유해서만 난민과 민족주의, 자이니치 군국주의 재무장 따위의 문제를 현재적인 것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도 싶다. 어쨌든 내 주변의 문제라고 여길 만한 그런 생각의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재일한인, 탈북민 등등? (그런 점에서 시리아 난민은 너무 추상적으로 여겨졌다.)]
*
서경식의 글을 읽기 전에 나는 민족주의와 네이션을 상당히 편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다기보다는 민족주의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여러 근대의 문제들 가운데 한 쪽에만을 (의도치 않게) 골몰하는 와중에 다른 중요한 측면을 생각할 기회를 놓쳤다는 말이다.
나남에서 출판된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 구판 표지에는 2002년 월드컵을 응원하는 ‘붉은악마’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대 그런 거대 스포츠 이벤트의 한순간을 그 책의 표지로 걸어놓는 것은 책의 내용을 약간 오도할 여지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우연히 민족주의 관련 세미나를 하며 줄곧 염두에 두고 있었던 민족의 상이란 바로 그 ‘붉은악마’들의 이미지였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간에 모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응원한다는 같은 목표 하에 집단적 황홀과 도취를 경험하던 이들.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지도 않고 어떤 종류의 집단주의에 대해서든 생래적 혐오를 반사적으로 느끼는 성질을 타고 난 터라 자연히 ‘붉은악마’들로 상징되는 민족주의를 보면서도 그것은 무언가 정돈되지 않은 것이며 비합리적인 것이라는 인상을 갖기는 충분했다. 어떤 국가적 이익을 옹호한다는 유사성 탓인지 내가 민족주의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이미지는 ‘붉은악마’를 넘어 황우석을 옹호했던 일명 ‘황빠’들이나 아니면 광복절 날마다 일본 웹사이트 2ch에 트래픽 공격을 가했던 네티즌들의 모습으로 확장됐다.
그런 일종의 선입견 내지는 선이해를 가지고 내셔널리즘 문헌을 접하니, (교과서에서는 주로 ‘구성주의적’이라고 간단히 표현되는) 네이션 형성에 본질적인 언어라든지 문화라든지 자연지형적 경계라든지 하는 것은 없다는 입장을 겉핥기로 배우고 난 후 자연히 (‘붉은악마’들로 표상되는) 민족주의자들에 대해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들에 사로잡힌 비합리적인 이들이라는 일차원적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지목할 수는 없지만 아마 운동권 NL 정파들에 대한 속류 비판 역시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 등에서 당권파의 행태 역시 광기로 비치었다는 점에서 앞서 열거한 사건들과 유사성이 있다.) 아무튼, 민족주의라는 이해해야 할 현상 자체를 사람들이 지성과 이성으로 퇴치해야 할 마법과 같은 것으로, 그래서 탈민족주의 내지는 세계주의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는 단선적인 사고는 이후의 공부를 적잖이 방해했던 것 같다.
서경식, 『난민과 국민 사이』, 이규슈·임성모 역, 돌베개, 2006.
특히 다음의 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은 듯하다:
새로운 민족관을 찾아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꿈 (115쪽부터)
에스닉 마이너리티인가 네이션인가 : 국민국가와 민족주의 비판을 넘어서 (147쪽부터)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의 ‘패전후론’(敗戰後論)에 대한 다카하시 데쓰야의 비판(‘전후책임론’[戰後責任論])을 축으로 하면서 거기에 여러 논자들이 뒤얽혔습니다만, 문제 자체는 계속 첨예화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은 생산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있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이 전후책임 논쟁 과정에서 우파 내지 극우파의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은 공유하고 있을 터인 일군의 사람이 ‘일본인(일본 국민)의 책임’을 승인하는 데서부터 출발하고자 하는 논자들에 대해, 그런 입장은 “내셔널리즘의 ‘덫’에 걸리는 일이다”라거나 “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나”라는 자기규정은 “국민국가와 개인의 동일화 욕망”의 표현이며 “내셔널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나왔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의 다카하시 비판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러한 논의를 일본인 다수자에게 특징적인, ‘내셔널리스트 비판과 전후책임 회피의 전도(顚倒)된 결합’의 한 형태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난민의 위치에서 보이는 것들>, 222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이상의 음악이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음악이 내 의식 밑바닥에 마멸되어 가면서도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아득한 ‘문화’의 파편을 움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윤이상이 서구의 전위적 기법을 사용한 것은 조선의 전통적 음악을 유럽의 근대가 이룬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근대 속에서 문제가 된 ‘인간의 조건’(conditio humana)을 응시하며 이 근대 자체를 묻기 위해서”였다. … 그것은 식민지 출신 예술가가 지배 문화와의 격렬한 대결을 통해서 ‘보편’에 이르고자 하는 끊임없는 운동의 표출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윤이상에게 있어 ‘문화’에 감동하기보다 오히려 그 재생과 창조의 역동성, ‘보편’을 지향하는 역동성 그 자체에 감동했던 것이다.” (<문화라는 것>, 28)
“나는 [스탈린의] 이런 규정이 ‘민족’을 무조건 지지해야 할 보편적인 정의(正義)로 입증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조선 민족은 이런 자격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식민지배에 의해—간접적으로는 구미 선진국에 의해서도—‘민족’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부정당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본래 속해 있어야 할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내 모어는 일본어다. 살고 있는 곳은 일본이고, 경제적으로도 일본 국민경제의 그물망에 그 한 올로 짜여져 있다. 그렇다면 “문화의 공통성 속에 나타나는 심리 상태의 공통성”이란 대체 무엇일까?
(…)
이 분열의 비밀은, ‘자격’이라는 사고방식에 있다. 어떤 사람들의 공동체가 ‘민족’이기 위한 자격. 어떤 개인이 ‘민족’ 구성원이기 위한 자격. 이런 사고방식은 ‘문화’를 자격조건의 필수 항목으로 꼽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에 의해 ‘민족’을 인정하는 것과, ‘문화’로부터의 단절(즉 ‘결격’)을 가지고 개인의 민족적 소속을 부인하는 것은 사실 똑같은 하나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양자는 모두 ‘문화’를 정태적인고 선험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전형적인 오류인 것이다.”
(<문화라는 것>, 28-29; 강조 본인)
“다만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점은 확인해두고 싶다. ‘귀화자’의 고뇌를 토로하며 자살했던 양정명. ‘간첩’으로 또 ‘비전향 정치범’으로 19년의 옥고를 치른 서승. 이 두 재일조선인 2세의 삶의 궤적은 전혀 동떨어진 듯하지만, ‘강간 살인범’으로 처형된 이진우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이어진다. 양정명과 서승은 이진우와 자신이 ‘같은 조선인’이라는 직감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명백하게 ‘같은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의 그림자>, 113쪽)
‘공생론’ ‘시민사회론적 재일론’ 비판 - 135쪽ff.
“한일기본조약은 일본 자본주의가 국제적으로 전개되는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서술한 것처럼 재일조선인 사회의 분단이 추진되었다. … 이는 모두 한국 군사정권과 일본 지배층의 정치적·경제적 동맹 아래 행해진 것이다. 이것이 고도성장과 같은 기간에 진행된 또 하나의 현실이다.” (<새로운 민족관을 찾아서>, 138)
“왜 이런 말[파울 첼란의 일화]을 하느냐 하면, 그들의 언어경험이 우리 재일조선인의 그것과 통하는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하고 있을 때, 조선 민족의 언어나 문화를 부정했던 것은 막연한 개념으로는 알려져 있을 겁니다. 35년에 걸친 언어와 문하의 부정은, 해방 후의 조선 민족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포함해서 쉽사리 치유되지 않을 상흔을 남겼습니다. 하물며 우리 재일조선인의 다수는 해방 후에도 일본에서 나고 자랐으며 대부분 일본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재일조선인의 모어는 일본어이고 그것은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그럼 모어를 바꾸면 되지”라거나 “조선어를 공부하면 되잖아”라고들 곧잘 말합니다만, 모어라는 것은 그렇게 편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거의 대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단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재일조서닌은 자신의 모어가 일본어라는 데에 서먹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것은 난민의 언어경험이라고 해도 좋을 보편성을 띤 현상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난민은 ‘국민’과 언어를 달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언어관을 달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
닫혀진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그 공동체의 성원만이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정서를 자명한 전제로 해서 언어가 교환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정서가 공유되지 못해 서먹하고 어색하며 불안에 찬 언어의 교환. 무얼 말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말을 다 쏟아부어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알 수 없게 되는, 그러한 시대가 피할 수 없이 도래한 것입니다. 근대 국민국가가 하나의 언어를 국어로 삼는다고 하는 경험을 최근 100년에서 150년 정도 사이에 해온 결과, 그 틀 밖으로 쫓겨났던 사람들, 그 경계 사이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등릐 언어경험이, 여기서 제가 말하는 단계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반난민의 위치에서 보이는 것들>, 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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