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제국주의론』 요약
V.I. 레닌, 남상일 옮김, «제국주의론», 서울: 백산서당, 1986. 이하 내용에서 «제국주의론»의 인용 쪽수는 괄호 안의 숫자로 표기한다.
1. «제국주의론» 개관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16년에 집필됐으며 1917년 중반에 출판되었다. 레닌의 관심은 전쟁을 촉발시킨 20세기 초의 제국주의를 “복합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었다. 그렇기에 본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왜 제1차 세계대전을 “세계분할을 위한 전쟁, 식민지와 금융자본의 세력권을 분할·재분할하기 위한 전쟁”으로 규정했는지, 왜 “그러한 경제체제[사적 소유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전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인지—과 그에 대한 해답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제국주의론»은 그 원제목,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국주의의 경제적 특질과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왜 제국주의가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전야”인지를 해명하고 있다.
다음은 «제국주의론»의 구성과 각 장의 요지이다. «제국주의론»은 총 10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1장부터 제7장 초반까지는 주로 제국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 제7장 후반부터 제10장까지는 제국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론들의 비판과 제국주의의 역사발전단계에서의 위치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제1장 “생산의 집적과 독점”에서 레닌은 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가 생산의 집적임을 전제하고, 1900년에 이르러 자본주의가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독점자본주의로 전화했음을 밝히고 있다. 제2장 “은행과 그 새로운 역할”, 제3장 “금융자본과 금융”에서는 산업 부문의 독점체들이 어떤 수단을 통해 성장했고 힘을 발휘했는지를 다루고 있는데, 그 수단은 다름아닌 금융자본이다. 은행도 원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체들처럼 독점체가 되었으며, 소수의 은행 독점체들은 자신들의 이해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자본을 대부한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면서 산업자본가들은 은행의 지원이 없이 자본을 투자하고 기업을 운영하기 어려워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과 산업이 유착하며 금융자본이 발생하고 이들 금융자본이 ‘금융과두제’를 형성한다. 금융자본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경쟁 사업체를 고사시키며 독점의 이익을 양껏 누린다.
제4장 “자본수출”에서는 어떻게 금융자본이 국제적 종속·연결망을 구성하였는지가 다뤄진다. 제국주의 체제는 이전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르게 수출의 영역에서는 자본수출이 지배적이다. 영·미·프·독 등의 열강들은 막대한 자본을 식민지들에 대부하며 이자나 기타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항들을 통해 이득을 얻는다. 제5장 “자본가단체들 간의 세계분할”에서 레닌은 앞선 장의 내용—금융자본의 수출과 세계분할—을 실제 경험적 자료를 제시하며 자세하게 풀어낸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전세계를 호시탐탐 노리는 금융자본들의 야욕이 곧바로 실제적인 투쟁이 될 수 있으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투쟁이 세계를 재분할하기 위한 국가들의 전쟁이 될 수 있다는 논리적 귀결이다. 제6장 “열강 간의 세계분할”에서는 세계가 어떻게 분할됐는지 그 현황과, 독점자본주의 시대와 식민지 투쟁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경험적 자료와 더불어 설명된다.
제7장 “자본주의의 특수한 단계로서의 제국주의”에서는 제1장에서부터 제6장까지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제국주의의 정의를 추상한다. 첫째 정의는 제1장에서, 둘째 정의는 제2·3장에서, 셋째 정의는 제4장에서, 넷째 정의는 제5장에서, 다섯째 정의는 제6장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진 것이다.
첫째, 생산과 자본의 집적이 고도의 단계에 달해, 경제생활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독점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은행자본이 산업자본과 융합하여 ‘금융자본’을 이루고, 이를 기초로 하여 금융과두제가 형성된다.
셋째, 상품수출과는 구별되는 자본수출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넷째, 국제적 독점자본가단체가 형성되어 세계를 분할한다.
다섯째, 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다. 요컨대 제국주의란, 독점체와 금융자본의 지배가 확립되어 있고, 자본수출이 현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 트러스트들 간의 세계분할이 시작되고, 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지구상의 모든 영토분할이 완료된 발전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이다(122).
제1장에서 제7장의 초반부가 책의 구성상 제국주의의 특징을 여러 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고 묘사하는 것이라면, 제7장 후반부와 제10장까지는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와 전망에 대한 서술과 제국주의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나아가 혁명적 노동자 계급의 잘못된 투쟁 방향을 제시하는 카우츠키를 위시한 기회주의자들의 비판이 주를 이룬다. 제7장의 후반에서 레닌은 제국주의의 과도기적 특성을 짧게나마 언급하는 동시에 카우츠키의 잘못된 제국주의의 학술적 정의와 그의 제국주의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비판한다. 제8장 “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후화”에서 레닌은 제국주의가 낳은 모순인 기생성을 다루고, 선진 열강들에서 나타나는 노동계급 상층부가 자본과 영합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는 동시에 이것이 혁명적 노동자계급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제9장 “제국주의 비판”에서 레닌은 제국주의의 영향과 향후 전망을 긍정하는 카우츠키 류의 기회주의자를 더욱 비판하고, 제국주의 자체가 약소국 내에서 자신에 대한 저항세력인 민족주의자들을 잉태하고 있음을(마치 자본주의가 자신에게 언도된 사형을 끝내 집행할 프롤레타리아트를 잉태했듯이) 지적한다. 제10장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에서 레닌은 제국주의의 과도기적 생산관계 양식을 언급하며 왜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고·최후단계인지를 논증한다. 1
다음부터는 좀 더 상세히 요약된 각 장의 내용들이 차례로 제시될 것이다.
2. 제1장: 생산의 집적과 독점
레닌은 “산업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점점 대규모화되는 기업으로 생산이 급속히 집적되는 과정은 자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질 가운데 하나”(43)라고 서술하고 있다. 1914년—레닌이 본서를 서술한 당시—에 이용 가능한 통계에서 이러한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우선 독일의 경우, 1882년에서 1907년까지 “1,000개의 기업 중 50명 이상의 임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43) 대기업의 수는 3개에서 9개로 늘었다. 또한 대기업들이 이용하고 있는 국가의 증기력과 전력 총량 비율도 매우 늘었다. 1907년 독일에서 고용 노동자가 천 명 이상인 기업은 586개에 불과하나 이들이 독일 증기력과 전력 총량의 약 1/3을 소비한 것이다. 이러한 집적은 독일 뿐만이 아닌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레닌은 “집적이 어느 정도의 발전단계에 이르면”(45) 집적이 독점으로 전화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첫째, 수가 많지 않은 대기업들끼리는 협정을 맺기가 용이하고, 둘째, 대기업은 그 규모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 내에서 경쟁이 어렵고 독점이 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경제적 특질인 독점이다. 이것은 맑스가 «자본»에서 증명한, 생산의 집적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것이 독점으로 전화한다는 명제를 사실로써 뒷받침하는 것이다.
제국주의가 이전 단계의 자본주의들과 다른 점은 생산과 기술의 발명, 개선과정이 사회화되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경제는 자유경쟁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전의 자유시장경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카르텔이나 트러스트와 같은 독점체들이 원료를 장악하며, 또 다른 독점체들과 협정을 맺어 유통의 중단·봉쇄 따위의 방법을 통해 시장을 분할하고 경쟁 기업들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평화롭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이상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레닌은 제국주의의 이러한 사회화 경향을 “완전한 자유경쟁으로부터 완전한 사회화로의 과도적인 질서”라고 평가하는데, 왜냐하면 “생산은 사회화되지만 소유는 여전히 사적”(53)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오해하기 쉬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한다. 첫째, 생산의 집적은 한 산업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국주의 경제에서 독점의 특징은 서로 다른 부문의 기업들이 하나의 기업으로 결합하는 ‘기업합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철강 대기업의 경우, 원료(철광석)를 생산하고 그것을 가공하여 철광석으로 만들고, 또 그것으로 완제품을 만드는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둘째, 보호무역국에서만 생산의 집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높은 관세 따위의 제도로 생산을 보호하는 독일 뿐만이 아닌 “자유무역국인 영국에서도 집적은 … 역시 독점으로 나아가고 있”(47)는 것이다. 다만 자유무역국의 경우 보호무역국과 비교했을 때 집적이 진행되어 독점으로 전화되는 양상이 다소 다르거나 그 속도가 느린 것이다.
레닌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낡은 자본주의를 명확하게 대체한 시기”(48), 즉 독점이 출현한 시기를 연대기순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1860~70년대: 자유경쟁이 절정에 달한 단계. 독점체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의 맹아에 불과하다. (2) 1873년 공황 이후: 카르텔은 상당히 발전했지만 아직 예외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직 지속성을 갖추지 못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3) 19세기 말의 호경기와 1900~03년의 공황기: 카르텔은 경제생활 전반의 한 기초가 된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전화되었다.
이처럼 레닌은 독점이 제국주의 이해의 중요한 키워드임을 주장하나, 독점체들이 어떻게 성장했고 힘을 발휘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더불어 지적한다. 그 내용은 2장에서 다루어진다.
3. 제2장: 은행과 그 새로운 역할
레닌은 은행이 “중개자라는 소극적인 역할로부터 탈피하여, 거의 모든 자본가와 소경영주의 화폐자본 및 한 나라 혹은 여러 나라의 생산수단과 원료자원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강력한 독점체가 된다”(59)고 서술한다. 이는 “순수히 기술적이고 완전히 보조적인”(64) 지불과정의 중개만을 맡는 과거의 은행과는 대비된다. 즉 은행 또한 앞서 말한 기업체들과 같이 독점체로 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은행 체제의 확립이 이루어진 시기를 1897년 혹은 1900년으로 잡을 수 있다(75).
이들 은행의 독점체는 “전체 자본주의사회의 모든 상업적·산업적 활동을 그들의 의지에 종속”(64)시킨다. 그들은 첫째, 은행들이 분산되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집중된 금융업무와 기업의 당좌계정 운영을 통해 “개별 자본가들의 재정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며, 둘째, 신용 제한 및 자본의 통제를 통해 자본가들을 확실하게 자신들의 지배하에 놓을 수 있다. “산업자본가는 보다 완전하게 은행에 종속당하는 것이다.”(70) 은행의 독점체화는 제1장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자유경쟁체제 자본주의를 소멸시켰다.
은행의 거대독점체화는 은행이 “기업가나 점원 및 극소수 상층 노동계급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화폐수입을 긁어모으”(66)고 있음을, 즉 맑스가 말한 생산수단의 보편적 분배형태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는 실질적인 보편적인 생산수단의 분배로 이어지지 않는다. 단지 그 형태만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거대 은행은 대자본의 이해와 영합하고 있어, 사회 전체의 이해와 일치하는 식으로 생산수단을 분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닌은 대은행과 소은행의 분포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며, 은행이 독점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07~8년과 1912~13년의 기간 동안, 독일에서 9개의 대은행이 가지고 있는 예금액은 전체의 절반 가까이 늘어나고 있으며, 소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예금액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또한 레닌은 대은행이 군소기업이나 은행의 “자본 일부를 ‘소유’하거나 주식을 구매하고 교환함으로써, 또 신용체계를 이용함으로써 그들을 ‘합병’하고 종속”시키는 현상을 은행그룹들의 종속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이를테면 독일의 거대 은행그룹 중 하나인 도이치 은행은, 제1·2·3차 지주(holdings)형태를 통해 총 87개의 은행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소은행들이 대은행들의 지점이 되어가고 있음을 레닌은 지적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은행업무가 집적되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 6대 은행의 총 지점수는 1895년 42개에서, 1911년 450개로 늘었다. 프랑스의 3대 거대은행의 경우 1870년 64개의 지점이 1909년에는 1,229개로 늘었다.
“은행과 거대 상공업기업 사이”의 “모종의 인적 결합” 또한 은행독점체의 권력 확대의 실례(實例)로 제시된다. 그 방식은 대개 주식을 사는 것을 통해서거나, 아니면 이사진 혹은 감사진에 은행·기업 이사를 임명하는 식을 통해서이다. 인적 결합은 상호적이다. 베를린 6대은행은 751개 회사에 자신 은행의 중역·이사진을 파견했으며, 거꾸로 이들 은행의 이사진에는 “거대산업가 51명이 포함되어 있다.”(71) 은행 중역들은 “특정 지방이나 특정 산업부문의 관리를 맡는” 식으로 분업과 전문화가 점점 증대되고, 각 산업 부문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72-3). 이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첫째, “은행자본과 산업자본 간의 합병 … [또는] 그 유착이 증가”(73)하는 것과, 둘째, 은행자본이 산업자본에 전반적이고 항구적인 개입을 하게 되는 것.
4. 제3장: 금융자본과 금융과두제
3장의 주요 주제는 ‘독점체를 형성한 은행이 어떻게 산업자본가로 전화하는지’이다. 레닌은 이러한 “사실상 산업자본으로 전화되는 화폐형태의 자본을 … ‘금융자본’이라 부른다.” “생산의 집적, 이로부터 생겨나는 독점체, 은행과 산업의 합병 혹은 유착, 이러한 과정이 바로 금융자본의 발생사이며 금융자본이라는 개념의 내용이다.”(77)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 독점체들의 사업활동이 “어떻게 하여 금융과두제의 지배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가”(78). 바로 지주제도가 금융과두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독일 경제학자 하이만이 상세히 다룬 바 있다. “콘체른 수뇌부는 주요회사(모회사)를 통제하고, 모회사는 종속회사(자회사)를 지배하며 그 자회사는 다시 다른 종속회사(손회사)를 지배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그다지 많지 않은 자본으로도 광범한 생산영역을 지배할 수 있다. 사실상 하나의 회사를 통제하는데 50%의 자본만 있으면 항상 충분하다고 할 때, 콘체른의 수뇌부는 단지 1백만 마르크만 있으면 손회사의 8백만 마르크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쇄’가 좀 더 확대된다면, 1백만 마르크를 가지고 1600만 마르크, 3200만 마르크 등등의 자본을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78-9) 그러나 분산된 소주주들은 주주총회에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50%가 아닌 사실상 40% 정도만 있어도 가능하다고 레닌은 보고 있다. 이를 봤을 때 사회민주주의자들이나 “부르조아 궤변가”들이 말하는 ‘주식 소유의 민주화’는 결국 “금융과두제의 권력을 증강시키는 방법”인 것을 알 수 있다(79).
지주제도는 법망의 규제와 처벌을 회피할 수 있게 해 준다. “왜냐하면 형식적으로 ‘모회사’의 간부들은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자회사’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며, 따라서 자회사를 매개로 하여 모든 것을 ‘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수법이 존재한다. 대차대조표를 법률에는 저촉되지 않지만 교묘한 방식으로 작성하는 방법을 써서 자회사들을 동원하고 비정상적인 투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콘체른 수뇌부가 아닌 일반 주주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고 투기가 실패하더라도 콘체른 수뇌부와 같은 “주된 이해관계자가 투기 실패의 결과를 떠맡지 않을 수” 있다(81).
금융자본은 독점을 통해 고리대금의 영역에서든 시장의 영역에서든 엄청난 이익을 누린다. 미국에서는 금융자본이 막대한 자본을 통해 새로운 사업 부문에서 한 트러스트를 창설한다. 그러한 트러스트는 자본을 등에 업고 가능한 한 많은 원료 생산지나 소규모 기업을 병합한다. 이 모든 과정의 목적은 모두 시장에서 독점이윤을 얻기 위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대은행들이 고리대금업을 통해 ‘금융과두제’를 형성하고 ‘절대적 독점’을 누리고 있다. 이들은 차관을 빌려주며 그 이익을 취한다. 도시 개발에서 벌어지는 투기에서 또한 금융자본이 매우 많은 이윤을 취할 수 있다. 거대한 금융자본이 도시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토건·건설회사와 교통수단 회사와 영합하고 있기 때문에 투기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건설 회사들은 작은 손해만 입고 끝날 수 있다. 베를린의 경우 시가전철, 궤도철도, 버스회사가 형성한 운송트러스트의 배후에는 금융자본의 계획이 있었다. 금융자본이 토지 개발로 인한 부동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트러스트를 조직한 것이다. 독점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작동시키는 데 복무하는 정부 형태나 헌법 따위의 “세세한 문제”(89)들을 무시한다. 정부와 은행의 유착으로 인해 국가의 관료들은 본연의 소명인 청렴성을 망각한다(재정 관련 부서의 관료들이 은퇴 후 은행으로 옮겨가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한 “부르조아 저술가”는 “독일헌법에 보장된 경제적 자유는 많은 경제생활 분야에서 이미 공문구가 되어 버렸다”고 썼다(89).
이러한 현상들이 “제국주의, 혹은 금융자본의 지배란 곧 그러한 분리[금리생활자와 경영자의 분리, 자본의 소유와 자본의 투자의 분리 등]가 상당한 정도에 이른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라는 것, 그리고 “다른 모든 형태의 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우위는 곧 금리생활자와 금융과두제의 지배를 의미하며, 금융적으로 ‘강력한’ 몇몇 국가가 나머지 다른 모든 국가 위에 우뚝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90). 한 국가 내에서 거대한 금융자본이 국민경제를 장악하고 작은 기업가들과 노동자들로부터 이윤을 뽑아내듯이, 세계에서도 막대한 금융자본을 소유한 부유한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이윤을 취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프랑스·미국·독일 4개국은 1910년 전 세계 금융자본의 약 80%를 소유하고 있다. “금융자본의 국제적 종속망 및 연결망을 형성하는 데 있어 자본수출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검토”(92)는 제4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5. 제4장: 자본수출
앞서서, 자유경쟁이 지배적이었던 기존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르게 제국주의 체제에서는 독점이 지배적이라고 서술했다. 두 체제는 무엇을 전형적으로 수출하는지도 다른데, 자본주의의 경우 상품수출이 전형적이며 제국주의의 경우 자본수출이 전형적이다. 19세기 후반 이전, 세계경제는 영국의 자유무역 체제에 의해 주도되었다. 빠른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한 영국으로 전 세계의 원료가 몰려들었고, 영국은 이를 공장에서 가공해 상품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윤을 얻었다. 그러나 다른 개별 국가들이 제도적 보호막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산업국가로 발전하게 되면서 영국의 단일한 헤게모니는 위협받게 되었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서 미개발된 국가들 대부분에서 철도와 같은 기초적인 인프라가 생기는 등 산업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되었다. 즉 후진국들이 “세계 자본주의적 교역에 편입”(94)된 것이다.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독점이 형성되는 것을 보게 된다.”(93) 즉 이제는 상품수출의 독점이 아닌 자본수출의 독점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본수출의 독점이 가지는 특성은 무엇인가. 20세기에 들어 자본가들의 독점체가 형성되었고, 소수의 국가(영국·프랑스·미국·독일 등)들이 “막대한 ‘과잉자본’”을 가지고 “독점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93). 선진국들은 과잉자본을 가지고 물론 이윤을 취득하기 위해 분주하다. 과잉자본은 후진국에 투자된다. 일반적으로 후진국에 투자하는 것이 선진국에 투자하는 것보다 원료를 값싸게 이용할 수 있고, 임금과 토지도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 이득이 된다(앞서 살펴봤듯이 후진국에서 자본수출을 위한 토양이 마련되었다는 조건도 충족된 점도 있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1862년 국외투자자본이 36억 프랑에서 1914년 750~1,000억 프랑으로 늘었으며, 1910년 그 투자처의 분포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경우 유럽에 40억 마르크, 아메리카에 370억 마르크, 아시아·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에 290억 마르크. 영국은 자신들의 식민지에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이득을 취한 것이다. 프랑스는 영국과는 조금 다르지만—프랑스는 주로 국채의 형태를 띤 차관자본을 빌려주는데, 레닌은 이를 영국의 ‘식민지 제국주의’와는 다른 ‘고리대 제국주의’라고 명명한다—역시 제국주의 하에서 자본수출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다.
자본수출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즉 언제나 이득을 얻는다. 96쪽의 베를린 «은행»지의 인용 문구를 토대로 보건대, 1910년대 금융시장은 매우 활기차지 않았고 전망도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들이 앞다퉈 후진국들에게 차관을 기꺼이 대부하게 된 것은, 주변 국가들이 먼저 차관을 제공함으로써 어떤 “호혜적인 반대급부를 확보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96) 때문이었다. 실제로 금융자본은 차관을 대부하며 특정한 급부를 요구한다. 이를테면 인프라 건설시의 유리한 조항을 확보한다든가 채권국의 무기를 우선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식의 규정을 만들어 놓는다는가 하는 것들이 있다(이러한 차관의 요구는 공개된 시장에서의 경쟁과는 대비된다). 레닌은 이것을 금융자본이 “문자 그대로 전세계 모든 나라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97)이라고 일갈한다.
6. 제5장: 자본가단체들 간의 세계분할
초독점(super monopoly). 즉 금융자본들이 “세계를 실제로 분할”(98)해 국제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을 레닌은 전기산업과 석유산업의 예를 통해 보여준다.
우선 전기산업을 보자. 전기산업은 금융자본들이 어떻게 초국가적 카르텔을 형성하는가의 예이다. 전기산업은 미국과 독일에서 특히 발전했는데, 독일에서는 1900년 공황 당시 금융자본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전기회사에만 돈을 빌려주고 다른 회사는 파산시키는 방식으로 거대한 전기회사 그룹을 형성시켰다. 1900년 이전 독일 전기산업에는 7-8개의 그룹이 있었으나, 1908-12년 그 그룹들은 하나의 그룹으로 합병되었다(형식적으로는 AEG와 Siemens & Halske-Schuckert의 두 그룹이 존재하나 이들이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하나라 한 것이다). 이렇게 발전한 독일의 독점 트러스트 AEG가 미국의 독점 트러스트 GEC와 상호 비밀협정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기술 연구 과정을 서로 공유하고 어떤 나라에 자본을 투자할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전기산업의 예 뿐만 아니라 국제 철도카르텔, 해운업 카르텔도 외국시장을 협정을 통해 분할한다(철도카르텔의 경우 1884년 “외국시장을 영국 66%, 독일 27%, 벨기에 7%의 비율로 분할했다.” 105쪽). 이렇게 초국적 카르텔을 형성한 금융자본은 말 그대로 세계를 분할한다. 그런데 기업들의 세력관계가 바뀐다면 재분할이 일어남이 자명하다. 석유산업은 자본의 세계 재분할의 시도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1900년대 석유산업은 미국 록펠러와 로스차일드·노벨 두 거대 금융그룹에 의해 양분되었다. 록펠러는 다른 트러스트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 독일의 금융자본은 루마니아 유전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을 시도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에 대항하였다. 록펠러 측이 훨씬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록펠러 측이 독일 은행에 불리한 협정을 맺으며 승리를 거두나, “이 협정에는 독일에서 석유 국가독점이 확립될 경우 그 효력을 잃는다”(103)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어서, 독일에서 애국주의를 동원한 석유 독점 법안 통과 운동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는 정치적·현실적 문제 때문에 독일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지는 못 했으나, 이는 금융자본 간의 세계를 재분할하기 위한 투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이와 같은 국제카르텔은 “자본주의적 독점체가 어느 정도로 발전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다양한 자본가단체들이 서로 투쟁하는 목표를 드러내고 있다.”(106) 여기서 레닌은 자본가단체들이 투쟁하는 “목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역사적·경제적 의미를 밝혀주는 것”(106)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카우츠키나 독일 부르주아 이론가들이 제국주의 경제투쟁의 형태만을 강조함으로써(이를테면 제국주의에서의 경제투쟁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든가,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생산수단이 사회화되고 있다든가) 그 본질(즉 힘에 비례한 세계분할)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목표를 위해 자본은 순전히 경제적인 힘을 동원하거나 아니면 국가의 무력까지 동원하여 세계 분할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7. 제6장: 열강 간의 세계분할
제6장에서는 금융자본에 의한 세계분할이 19세기 말에 정점에 달했음이, 즉 “현 시기[19세기 말]의 특징은 지구상의 최종적인 분할”이 이루어졌다는 것임이 다뤄진다. 최종적인 분할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무엇인가? 지구상 어떤 대륙에도 국가에 속하지 않은 지역이 이제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최종적’이라는 말은 재분할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다(109). 세계 구석구석이 완벽히 분할되었다는 말이, 그 분할 구도의 재편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가 완벽히 분할되었다는 것은 이제 “오직 재분할만이 가능할 뿐”임을 가리키고 있다(110).
6장에 이르러 1900년대 현재가 금융자본에 의한 세계분할이 완료된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국면임이 명확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와 지난 시대는 그 특징이 어떻게 다른가? 레닌은 두 가지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식민지정책의 강화, 식민지 획득을 위한 투쟁의 첨예화는 바로 금융자본의 시대에서 나타나는 것인가?” 둘째,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세계는 지금 어떻게 분할되어 있는가?”(110)
첫째 질문에 대해 레닌은 실증적 자료를 근거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미국의 작가 모리스의 표를 볼 때, 영국의 식민지 면적이 두드러지게 늘어난 시기는 1860년에서 1880년까지이다(이백오십만 평방마일에 칠백칠십만 평방마일로 늘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1880년과 1899년 사이이다(프랑스는 1880년 칠십만 평방마일에서 1899년 삼백칠십만 평방마일로, 독일은 1880년 식민지가 없다가 1899년 백만 평방마일로 늘었다). 제국주의에 대한 책을 쓴 홉슨은 “1884년~1990년을 유럽 주요 국가들의 격렬한 ‘팽창’의 시대라고 특징짓고 있다.”(111) 앞에서 1장에서 보았듯이 1860-70년대에 자본주의의 자유경쟁이 절정에 달하고 그 이후 독점자본주의 체제가 나타나게 된다. 즉 열강들이 세계분할을 위한 투쟁에 정력적으로 투신한 시기와, 자본주의가 금융자본에 의한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한 시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질문, 세계가 어떻게 분할되어 있는가에 대해 레닌은 비식민지국 및 반(半)식민지국까지 포함한 자료를 동원한다(페르시아, 중국, 터키가 반식민지에 포함된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첫째, 세계의 분할이 완벽하게 이루어졌고, 둘째, 6대 열강(영·프·독·일·미·러) 사이에서도 식민지 확장율의 불균등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프랑스는 독일과 일본의 식민지를 합한 것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영토를 획득했다”. “비록 지난 수십 년간 대규모 산업과 교역, 금융자본의 압력으로 인해 세계의 평준화, 즉 각 나라의 경제 및 생활조건의 평준화과정이 강력하게 진행되었다 해도, 여전히 상당한 차이들이 존재한다.”(114) 덧붙여 금융자본이 국가를 지배하는 형태가 다종다양하기 때문에 종속국들의 형태도 다양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를테면 포르투갈의 경우 “정치적 독립은 유지하나 금융적·외교적으로는 종속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119).
레닌은 반종속국을 지배하고자 하는 투쟁이 더욱 심해질 것을 전망한다. 금융자본은 자신의 이익을 가장 확대하기 위해 정치적 결사를 이룬 민족의 정치적 독립마저 앗아가는 것을 불사하기 때문에, 현재 열강 간의 이해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작은 국가들의 식민지들도 열강의 침략에 휩싸일 수 있다. 이는 종속 형태의 중간단계를 취하고 있는 반종속국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울러 금융자본은 지금은 별다른 가치가 없어 보이는 황폐한 토지에도 관심을 가지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자원이 발견되는 등 가치가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주인없는 땅이라도” 금융자본은 탐내는 것이다(117).
8. 제7장: 자본주의의 특수한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지금까지 논의한 주제들을 모아 레닌은 “다음과 같은 5개의 기본적 특질을 포함하는 제국주의의 정의”를 내린다(122).
(1) 생산과 자본의 집적이 고도의 단계에 달해, 경제생활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독점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2) 은행자본이 산업자본과 융합하여 ‘금융자본’을 이루고, 이를 기초로 하여 금융과두제가 형성된다. (3) 상품수출과는 구별되는 자본수출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4) 국제적 독점자본가단체가 형성되어 세계를 분할한다. (5) 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다. 요컨대 제국주의란, 독점체와 금융자본의 지배가 확립되어 있고, 자본수출이 현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 트러스트들 간의 세계분할이 시작되고, 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지구상의 모든 영토분할이 완료된 발전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 위치한 특수한 국면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몇몇 근본적 특성이 변증법적 대립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이행하고, 이것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나타난다. “독점은 자유경쟁의 직접적 대립물이다.”(121) 그런데 독점은 자유경쟁이 배태한 것이며,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서 독점은 자유경쟁과 “나란히 존재하며” “또 그럼으로써 매우 첨예하고 심각한 수많은 대립과 마찰, 갈등을 낳는다.”(121) 따라서 맑스주의적 시각으로 볼 때 제국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더 높은 사회구성체로의 이행기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레닌은 7장에서 카우츠키의 그릇된 제국주의 인식을 비판한다. 카우츠키는 제국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제국주의는 고도로 발전된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제국주의는 어느 민족이 살고 있는가에 관계없이 모든 거대한 농업[카우츠키의 강조]지역을 지배하거나 병합하려는 산업자본주의 민족의 노력 속에 있다.”(124) 그러나 카우츠키는 제국주의의 특징을 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에 파악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 또한 제국주의의 야욕은 농업지역 뿐이 아닌 공업화 지역까지 병합하려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에도 카우츠키의 분석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1) 세계의 분할이 이미 완료되었으므로 모든 종류의 영토에까지 손을 뻗쳐 재분할을 기도하며, 2) 헤게모니를 잠식하기 위해서 영토를 정복하려는 열강들 간의 경쟁이야말로 제국주의의 본질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124-5) 카우츠키는 “제국주의의 정치를 제국주의의 경제로부터 분리”(126)하는데, 그런 인식을 취한다면 “세계의 영토적 분할은 비제국주의적 정책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는 제국주의의 모순의 뿌리인 금융자본에 의한 독점자본주의 체제를 도외시하는 것이다.
카우츠키는 비단 학술적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만이 아니라 기회주의적으로 제국주의를 옹호한다는 점에서도 정치적 비판을 받는다. 카우츠키는 초제국주의(ultra-imperialism)라는 국면을 제시하는데, 그에 따르면 초제국주의는 “카르텔정책이 대외정책에까지 확장되는” 국면이며 여기서 전세계 제국주의들과 금융자본은 전쟁 대신 평화적 공동착취를 행한다(127). 그러나 레닌은 카우츠키의 전망이 완전히 그릇된 현실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한다. 1900년 전후, 그리고 레닌이 글을 쓰는 1914년 현재까지 유럽에서는 식민지를 둘러싼 깊은 정치적 분열이 존재하며, 라틴 아메리카와 중국을 식민화하려는 열강들의 투쟁이 치열하다. 덧붙여 국제카르텔은 과거 세계의 평화적 분할에서 현재 세계의 비평화적 재분할로 이행하고 있다. “식민지 분할과 금융자본의 세력권 간의 불균형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자본주의하에서 전쟁 이외”의 방법은 없다(132). 레닌은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한 카우츠키의 분석과 전망이 “냉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겁먹은 속물의 반동적인 시도”(130)이며, 초제국주의론은 “초(超)헛소리”(129)라는 재치있는 비판을 가한다.
9. 제8장: 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후화
8장에서 레닌은 노동운동을 침식해가는 제국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을 검토한다. 그것은 바로 기생성이다. 제국주의의 경제적 토대인 독점은 필연적으로 “정체와 부패의 경향을 낳는다.”(133) 기생성은 변증법적으로 봤을 때, 독점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생겨났으나 자본주의와 모순관계에 있다. 이를테면 “기술진보를 일부러 늦출 수도 있는 경제적 가능성까지 생겨난다.”(133) 산업에서의 혁신적인 발명을 카르텔이나 독점 트러스트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독점체가 그것을 인수하고 일부러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자본수출이 중요한 경제적 토대인 제국주의 체제는 그 내부에서 금리로 먹고 사는 금리생활자를 만들고, 이것을 국가로 확장시키면 다른 나라에 차관을 대부해 그 이자로 먹고 사는 국가, 즉 금리생활국가(Rentnerstaat)가 등장한다(2-3장에서 검토한 프랑스가 바로 이러한 국가인데, 독일 역시 1911년 현재 이러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고 란스부르그는 전망한다. 136쪽). “쉴더는 영국·프랑스·독일·벨기에·스위스의 5개 공업 국가를 ‘명백히 공인된 채권국’이라고 보고 있다.”(135) 실증적 자료를 볼 때, 영국의 기본산업부문에 종사하는 인구의 전체 인구에 대한 비율은 1851년 23%에서 1901년 15%로 낮아지고 있다.
부패하는 기생적 자본주의국가, 혹은 금리생활국가는 노동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금리생활국가의 지배계급이 식민지 수탈과 금융자본의 이자로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을 가지고 “이제 더 이상 농업과 공업의 주요 산업에 종사하지 않고 새로운 금융귀족의 지배하에서 개인적 또는 부차적 산업서비스를 수행하는 수많은 고용인들을 온순하게 길들일 수 있는 것이다.”(137) 그리고 “제국주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특권층을 창출하여 이들을 광범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141). 프롤레타리아트의 상층부가 부르주아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레닌은 이러한 상황을 다소간은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현 상황의 뚜렷한 특징은 노동계급운동의 전반적·필수적 이해와 기회주의 간의 비화해성을 더욱 증가시키는 경제적·정치적 조건들이 우세해졌다는 데 있다.”(142) 즉 노동운동이 기회주의자들과 정면으로 대항할 수 있는 토대가 더욱 굳건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레닌은 우리는 “일반적으로는 제국주의에 대하여, 특수하게는 기회주의에 대하여 저항하는 세력을 잊어서는 안 된다”(138)며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격려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10. 제9장: 제국주의 비판
제9장에서 레닌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제국주의에 영합하게 되는, 주로 부르주아 학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의 태도를 분석적으로 비판한다. 앞서 8장에서도 논의한 바 있듯이,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또한 노동계급으로도 침투하고 있”(145)는 것이다. 우선 레닌은 “여러 종속국과 종속인종들의 대표자들”이 그들의 대회에서 행한 연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하지만, 그 요구는 “지배하는 국가는 종속민족의 자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국제사법재판소는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 체결된 조약의 이행을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제국주의를 추동하는 본질, 금융자본의 야욕을 직시하고 그것에 반대하지 않은 채 제국주의의 드러난 일부 측면만을 반대하는 것이므로 “‘경건한 소망’”에 불과한 것이다(146). 미국의 제국주의 반대파 또한, 백인이 타인종을 통치하는 것은 “자치가 아니라 전제(專制)”라는 점만을 지적하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토대 간의 불가분한 연결을 인식하기 꺼려하는” “‘경건한 소망’”에 그치는 것이다(147-8).
카우츠키는 “자본의 팽창욕구는 … 제국주의의 폭력적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적 민주주의에 의해 가장 잘 촉진될 수 있다”(149)고 한다. 앞서 살펴본 제국주의의 특질들을 고려할 때, 카우츠키의 이러한 주장은 독점자본주의에서 비독점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암시하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하지만 자유경쟁 자본주의가 심화되며 꽃을 피울 수록 그 안에 배태된 독점의 맹아는 더욱더 발전하게 된다. 즉 카우츠키의 주장은 모순인 것이다. 평화적 방식으로 자본이 팽창될 수 있다는 것도 현실에 대한 오도된 이해에 기반한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힘의 발전은 서로 불균등하다. 상식적으로 개별 기업, 독점체, 국가들의 경제적·군사적 힘들은 협정을 맺지 않는 이상 지금과 같은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균등하게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힘의 균형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제국주의적 팽창이 갈등·분쟁 없이 평화적으로 조절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허황된 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제국주의 열강들은 간혹 평화적 동맹을 맺으나 이는 일시적일 휴전에 불과한 것이며, 미래의 침략을 위한 것이다.
스펙타토르(Spectator)는 독일이 영국 식민지와 무역했을 때 그것이 영국 식민지와 영국 간의 무역보다 더욱 발전했다는 것을 자유무역의 제국주의에 대한 우월성을 보여준다고 했으나 이는 억지에 불과하다. 독일도 제국주의 열강인 이상, 이는 독일 금융자본과 영국 금융자본의 투쟁에서 독일이 우세했다는 것뿐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이론적 비판은 … 상호 병존하는 독점과 자유경쟁 간의 모순, 금융자본의 대규모 ‘활동’(및 대규모 이윤)과 자유시장에서의 ‘정직한’ 거래 간의 모순 등 제국주의의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모순들을 회피하고 흐려버”린다(154).
레닌은 부르주아 경제학자 란스부르그의 잘못된 통계 분석을 지적한다. 란스부르그는 “한 제국주의 나라의 수출무역을 1) 이 나라에 금융적으로 종속되어 있으며, 돈을 빌어가는 나라들 및 2) 금융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나라들과 비교하여 검토”해 표로 만들었다(151). 표들은 독일에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즉 독일이 차관을 대여해주는 나라—에의 독일의 수출량 증가율이 독일로부터 금융적으로 독립된 나라의 그것보다 떨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란스부르그는 독일의 자본이 독일에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에게 투하될 때 일시적으로 수출량이 증가하지만, 그것은 몇 해가 지나면 감소한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로부터 란스부르그가 제시하는 바와 같이, 국내산업의 발전이 자본의 국외수출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도출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금융업자들의 술수(앞서 파악한 바와 같이, 차관을 공여할 때 차관으로부터 이윤을 얻는 것과 더불어 채무국에게 불리한 조항을 지우고 차관국의 무기와 자재를 수입하길 강요하는 것)와 수출의 연관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레닌은 힐퍼딩을 인용하며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빚어내는 길항을 지적한다. 제국주의의 침략 야욕은 약소국 민족—새롭게 침략을 받는 국가들과 이미 착취받았던 민족들을 막론하고—들의 저항의식을 발전시키고 당연하게도 그들의 민족적 단결을 심화시킨다. 약소국 민족들은 자신들을 침략하는 금융자본에 대해 민족국가를 형성하며 저항한다. 제국주의의 침략이 모든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가 그 내부에서 모순을 배태하고 있는 것과 같이 약소국 내에서 자신을 전복시킬 저항의 싹을 틔운다. 이렇게 때문에 자본은 “오직 끊임없이 군사력을 증강함으로써만 자신의 지배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159)
11. 제10장: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
제10장에서는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가 개괄된다. 레닌은 “독점적 자본이 자본주의의 제반 모순을”(162) 심화시켰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를 논한다. “자유경쟁 자체에서 성장해 나온 독점은 곧 자본주의체제로부터 보다 높은 사회경제적 질서로의 과도형태”이다(161).
독점은 다음과 같은 모순을 심화시켜 왔다. 카르텔, 신디케이트, 트러스트, 콘체른 따위의 독점체가 선진국에서 헤게모니를 쥐었고 이는 자유무역 국가나 보호무역 국가나 동일한데, 그러한 독점체들은 보통 원료에 대한 생산과 유통을 장악함으로써 “카르텔화된 산업과 카르텔화되지 않은 산업 간의 대립을 격화시켰다.”(161) 또한 금융자본은 산업자본과 결탁해 “현대 부르조아사회의 모든 경제적·정치적 기구들에 예외없이 종속관계의 조밀한 그물을 쳐놓”(162)았는데 그 그물은 국가를 가리지 않는다. 금융자본은 전세계의 분할을 완료했으며 이제 세계의 재분할을 위한 투쟁이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수의 열강들이 식민국가를 착취함으로써 그 국가들의 기생성은 더욱 강화된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제국주의 시기의 경제를 분석할 때 ‘상호연결(interlock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레닌이 보기에,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사회적 생산관계로의 이행을 초보적으로나마 드러내 주는 단서이다. 제국주의에 이르러 생산이 고도화되며 대기업은 “대량의 자료에 대한 정확한 계산에 기초하여, … 원료 공급의 … 전부를 계획적으로 조직할 수”(165) 있게 되는데, 이러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생산을 감독하고 생산물을 필요한 이들에게 체계적으로 분배할 수 있게 되면 바로 생산의 사회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생산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적 경제와 사적 소유관계”라는 제도는 “더 이상 그 내용물에 적합하지 못한” 인위적으로 제거해야 할 “껍질”이 되어버린다(165). 노동계급 상층부가 자본과 결탁하는 현상을 진보적인 양 채색하는, 낡은 제도를 일소하는 데에 방해되기만 하는 기회주의라는 악성 종양을 경계하며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도모하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모순은 역사의 발전을 추동하는 힘이다. 그러니까 독점자본주의와 금융과두제를 골자로 하는 제국주의는 내적 모순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붕괴를 알리는 조종(弔鐘)이자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알리는 시작종이다.
- 이는 본래 맑스의 표현이다. K. Marx and F. Engels, Selected Works, Moscow: Foreign Language Publishing House, 1962, p.232. 루이스 코저, 신용하·박명규 옮김, «사회사상사», 시그마프레스, 2003, 57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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