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책세상, 2001.


요약 및 정리

<목차> 
제1장 낭만주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 제2장 낭만주의자의 낭만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 제3장 낭만주의를 정치적 측면에서 볼 수 있는가 / 제4장 낭만주의의 혁명적 의의는 무엇인가


들어가는 말 및 제1장

- 초기 낭만주의와 후기 낭만주의

여기서 지칭하는 낭만주의는 ‘초기 낭만주의’이다. 사람들은 낭만주의를 이야기할 때 초기와 후기 낭만주의를 적당히 섞어 오도시키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낭만주의를 평가하고자 할 때 매우 부당한 것이다. 오로지 초기 낭만주의가 목적을 의식하는 예술 운동이다. (13) “1801년 노발리스의 죽음과 1804년 슐레겔의 가톨릭 개종을 기점으로 초기 낭만주의는 후기 낭만주의로 이행한 것으로 평가된다.”(29) 그런데 후기 낭만주의와 초기 낭만주의의 세계관 사이 유사성은 거의 없다. 벤야민은 오로지 초기 낭만주의에 대해서만 낭만주의라는 개념을 혼란 없이 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제4장에서 더욱 자세히 다뤄진다.

- 슐레겔과 고대 그리스 예술

“고전문헌학자로 출발한 1796년 이전의 슐레겔은 그리스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 그에게 그리스 예술은 완전성의 영원한 전범으로서 예술의 원형을 이룬다. 슐레겔은 그리스 예술의 역사를 자연스러운 것, 자발적인 것, 외부의 영향에 방해받지 않은 것, 그 자체로 완전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 예술을 ‘취미와 예술의 영원한 자연사’로 간주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그리스 예술의 독특한 완결성을 하나의 척도로써 근대 예술에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슐레겔의 이러한 작업은 근대 예술의 정당화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리스 예술의 이러한 역사적인 정당화는 낭만주의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예비하는 것이었다.”(30) 

- 낭만주의와 근대성

일반적으로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와의 대립항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사회 현실로부터 유리된 순진한 태도가 아니며, 낭만주의 예술론은 “낭만적인 꿈과 정치적인 현실 사이에 위치해” 있고, 예술을 통해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야심도 갖고 있다. 또한 (저자에게 있어) 낭만주의는 근대적이다. 이는 이후에 더욱 잘 다뤄진다. (14-15)

- 낭만적이라는 말의 뜻 

이 책이 취하는 관점은, “낭만주의는 18세기 말경 유럽의 감성에서 비롯되어 현재에까지 이르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어떤 특정한 태도와 관련된 복잡한 문화적 현상”이다. (Praz, M. Paribatra, F. M. Alberes 등의 견해) 한편으로 낭만주의는 유럽 문학의 특정한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낭만주의를 고전주의의 대립항으로 설정한 유형론적 관점도 있다. (23)

그렇다면 낭만주의 운동이란 무엇인가? 넓은 의미에서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표현적이고 상징적인 예술관의 정초로서의 낭만주의”이다. (24-5)

- 계몽의 계몽으로서의 낭만주의

“이성의 능력에 대한 환상의 우위야말로 낭만주의의 구조적 원칙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32) “그러나 이러한 환상의 개념은 좀 더 정확하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상에 의한 단순한 자의적 유희를 넘어서 인간 정신의 한층 근원적인 능력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33) 낭만주의에서 환상은 이성과는 다르게 미적 통일성을 보증하고 이성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 준다. 이성은 절대적인가? 주체가 이성으로서 인식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한계를 설정하고자 한 것이 칸트의 비판 작업임을 생각할 때 낭만주의의 환상은 칸트의 그러한 이성의 한계 바깥을 환상으로 넘어서고자 한다.

한데 낭만주의의 환상 개념은 반계몽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낭만주의의 환상은 매우 계몽주의적인 “지성에 대한 신뢰”에 의해 뒷받침된다(35). “말하자면 낭만주의적 환상이란 근대적 교양을 바탕으로 성숙한 정신적 소재와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진 환상이라는 것이다.”(35)

“낭만주의가 추구하는 절대적인 것이란 그 자신과 가능한 모순의 절대적인 통일을 말한다. … 환상은 이념 속에서 대상과 이념의 미적 통일성의 근거가 된다. … 환상에서 보편적인 것은 개념이 아니라 직관이다. 환상의 능력이 없다면 예술은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을 자신의 산물들 속에서 파악할 수가 없다. 환상은 객관적인 세계가 시간 속에서는 이를 수 없는 이상을 의식의 내재성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것으로 드러낼 수 있는 능력으로 유한한 것의 부정성을 극복한다.”(34)


제2장

- 낭만주의와 관념론의 긴장 관계 

낭만주의에서 낭만적 자아의 개념은 피히테로부터 출발한다. 피히테 자체가 낭만주의자는 아니지만, 그의 자아 개념이 낭만적 자아 개념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 기초를 제공했다. 낭만주의 운동은 “독일 관념론의 발생과 전개에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48)

피히테는 순수 자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순수 자아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성으로서 스스로를 정립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필연적인 대립자로서의 세계”를 정립한다(50). “피히테는 모든 인간적 지식의 무제약적이며 절대적인 제1원칙을 자아의 자기 정립적 활동성에서 발견한다.”(51) 데카르트적 자아와는 다르게 피히테의 자아는 자유로운 창조적 활동을 행하고 스스로를 정립하는 자아이다(이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다). 이러한 피히테의 자아 개념 설정 위에서, 낭만주의는 환상 내지는 성찰 등의 개념으로 “세계를 자유로운 창조적 자아와 내적으로 결합”시키고자 한다(50-1). 

- 낭만적 주관성의 이론 

피히테의 관념론은 낭만주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피히테의 절대 자아는 현실적으로 이를 수 없는, 주관과 객관을 완전히 결합시킬 수 없는 것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이러한 간극을 미적 상상력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낭만주의는 철학의 한계를 미적 상상력—예술로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런 측면에서 낭만주의의 프로그램이 ‘예술의 철학화’(예술을 이성으로 설명하고 철학의 한 분과에 종속시키고자 했던 헤겔 등의 사상가)가 아닌 ‘철학의 예술화’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적 아이러니: 
“절대적 명제와 현실적 부정의 통일로부터 피히테는 보편적인 윤리적 조화의 표상을 낭만주의자들은 보편적인 미적 조화의 표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보편적인 미적 조화의 이념은 예술의 절대성이라는 명제를 통해서 담보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예술 작품은 다만 그러한 절대성에 이르려는 동경의 흔적과 파편들로서만 현상된다. 이러한 예술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데서 낭만주의적인 유토피아의 표상이 생겨나며, 그곳을 향한 충동은 자아가 지닌 근원 충동으로 간주된다. 끊임없는 자기 정체성을 향한 이러한 욕구와 현실적인 충족 불가능성은 낭만주의의 고유한 동경이라는 욕구의 형식을 만들어내지만, 저 욕구의 무한성과 충족의 유한성 사이에서는 긴장이 생겨난다. 그 긴장의 영역을 낭만주의자들은 ‘아이러니’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아이러니란 예술의 이념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예술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불화의 의식이다.”(56)

- 미적 근대성의 지평

낭만주의가 근대적이라고 할 때, 여기서 근대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낭만주의가 예술을 철저히 자율적인 영역으로 위치짓고자 한 데에 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자율성이 확보된 예술이 이성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 데에서 낭만주의의 탈근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제3장

- 전기 낭만주의와 후기 낭만주의의 정치성

“전기 낭만주의는 ‘보편적 개인주의’의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었으나 후기 낭만주의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개별적 민족주의’ 입장이 득세하게 된다. 이의 배경에는 물론 나폴레옹이 예나 전투 승리 후 베를린에 입성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74-5)

초기 낭만주의와 후기 낭만주의 사이에는 이론적인 연속성은 부재한다. 즉 민족혼(Volksgeist)을 강조하는 후기 낭만주의는 저자에 따르면 “역사적 상황에서 갑자기 생겨난, 전기 낭만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성도 없는” 것이다. 초기 낭만주의는 현실의 정치와는 큰 관련이 없었고, 그들이 의도한 것은 “정신의 미적 혁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