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이치 노리토시,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이소담 옮김, 코난북스, 2017.


단상


1. 일본에서는 루만을 많이 연구한다. ‘거대 이론’은 보통 파슨스와 루만의 이론을 의미한다. 

2.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저서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읽은 것이 전부. 일본에서 스타인지는 몰랐는데 확실히 그런 듯. 그럼에도 매스컴에서 소개되는 직함이 사회학자일 뿐 충분히 학계 내에서 자리잡은 이는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관련해 우려를 표하는 것이 인터뷰들 안에서 드러나고 있다. 

3. 제일 인상 깊었던 인터뷰는 가이누마 히로시(b. 1984, 도쿄대 사회학 박사과정생, 후쿠시마 연구자)와의 것. 



인용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오구마 에이지: 제 견해로는요, 사실 사회학은 잔여항의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 정치학이나 법학, 경제학 등의 대상이 되지 않는 부분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영역을 횡단하는 것이죠. ... 간단히 말해서 사회학이란, 원래는 사회 현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려는 학문이었지만, 점차 개별적인 잔여 영역을 실증 연구하는 학문이 되었다고 할까요. (23쪽) 


우에노 지즈코: 좀 더 엄밀하게 정의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 증거에 근거한 경험과학입니다. (65쪽) 


니헤이 노리히로: 방법론 면에서 보는 편이 사회학의 특징이 잘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 방법론에도 종류가 다양한데, 비교적 공통적인 요소로 최소한 다음 네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 본질주의를 택하지 않고 언어적 의미에 따라 사안이 구성된다는 견해. 두 번째로 사안의 의미는 관계성의 망 안에서 정해지고 그 배치는 시대나 집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견해, 세 번째는 개인의 행위는 사회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그 개인의 행위에 따라 사회는 차이를 내포한 채로 재생산된다는 견해, 마지막으로 연구자도 사회 외부에 서지 않고 연구나 발신은 재귀적인 프로세스 안에 포함된다는 자각. (88-9쪽)


오사와 마사치: 그래도 추상적으로 정의하자면, 사회학은 ‘사회의 자기의식’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식할 때 사회는 자신이 무엇인지 생각하죠. (135쪽) 


야마다 마사히로: [저널리스트와 사회학자의 차이에 대해] 우선 현상만 보지 않고 현상 배후에 있는 사회 전체의 변화에 이론적으로 위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여부로 나뉩니다. … 사회학자는 이를[일반 이론을] 바탕에 두고 현상을 해석하거나 평가하고요. … 이 말을 바꾸면 가족 문제를 잘 아는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조사나 연구를 사회 이론 안에서 풀어갈 수 있다면 그 저널리스트는 사회학자라 해도 좋습니다. (161-2쪽)



기타 


우에노 지즈코: 아카데믹 언어는 긴장을 일정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계속 쓰지 못해요. [후루이치: 지금은 우에노 선생도 못하시나요?] 못해요. 정년이 되어 업계에서 물러났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긴장감을 갖추고 문장을 쓰지 못하게 되었어요. (71쪽) 


[후루이치: 우에노 선생은 사회학자인 동시에 젠더 연구자이기도 한데요, 그 둘 사이에 갈등은 없나요?] 우에노: 없어요. 왜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죠? [후루이치: 사회학자는 사회학이 사회과학인 이상, 매사를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시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젠더 연구자로서 우에노 선생은 … 사회운동가의 의식도 있지 않나요?] 고리타분하네, 후루이치 씨. 사회과학자가 중립적인가요? (72쪽) 


우에노: [프로 연구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영어로 수신하고 발신하지 못하는 연구자는 글로벌한 존재 의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 프로 연구자가 되고 싶다면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 미국 이외의 선택지는 없어요. 미국에 있으면 알아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곳에서 경쟁해서 글로벌하게 발신하는 실력을 닦는 거예요. (81-2쪽)


니헤이 노리히로: 최근 직접행동의 힘을 휘두르는 것은 좌파 이상으로 우파인 것 같아요. 종군위안부 세미나를 여는 공민관에 불만 민원전화를 불이 나도록 걸어대고 시위를 벌이기도 해요. 그 결과로 행사가 여러 차례 중단됐죠. 혹은 재특회 같은 활동을 우익이 펼치고 있어요. 그러면 그전까지 가장 극단적이었던 우익이었던 활동조차도 온당한 우익이나 중도쯤에 위치하게 되죠. 이것도 일종의 시위 효과입니다. [후루이치 노리토시: 그렇지만 우파든 좌파든 아무리 봐도 효과가 없는 촌스러운 활동이나 운동도 있잖아요.]  그 촌스러움은 명문대 출신에 도쿄걸즈컬렉션을 즐기는 후루이치 씨 입장에서 본 촌스러움이죠? 그러나 관계론적으로 보면 절대적인 촌스러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학자라면 스타일의 의미나 합리성을 내부에서 관찰했으면 좋겠어요. … 다만 촌스러움이 아무리 상태라 하더라도 그 촌스러운 상태에 있는 운동이 어떤 문맥에 따라 나왔는지, 다른 어떤 가능한 조건이 있어서 그 운동이 선택되었는지를 살펴보지 않으면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없어요. (99-100쪽)


가이누마 히로시: … 학문의 묘미로서 자신의 가설이나 분석이 뒤집히는 재미가 있지 않습니까? … 그렇게 생각했는데 3.11 [대지진] 이후로는 분석이 뒤집히면 사람이 죽어버린다고 통렬하게 느꼈습니다. 이건 베버가 말하는 책임윤리와 비슷한 것 같아요. … 사회학을 포함해서 인문사회 계열의 논자는 그런 책임윤리가 조금 부족한 것 아닐까요. … [사회학은 약자를 발견하기] 아주 좋아하죠. 발견해서 과제를 해결한다면야 좋지만, 그저 희생양을 찾아 규탄하고 대중의 불안을 선동해 적개심과 고립감을 주고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는 신뢰를 받는 쾌감을 느끼고 끝이에요. … 머리나 손발을 움직일 마음이 없다면 그냥 틈새의 것이나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약자를 발견하고 이용해서 포괄적인 척을 하다가 종료해버리는 행동만 하니까 짜증이 나요. (27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