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2009. 

* 제목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의 패러디.



달리기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그다지 긴 거리를 달릴 수는 없었다. 20분이나 기껏해야 30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도 헉헉 하면서 숨이 차버리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랫동안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달리는 것을 이웃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도 어쩐지 좀 쑥스러웠다. … 그러나 계속해서 달리는 사이에 달리는 것을 몸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거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폼 같은 것도 갖춰지고 호흡의 리듬도 안정되고 맥박도 차분해져 갔다.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왔다. 스톱워치고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67-8쪽) 


그러나 이윽고 뉴잉글랜드 특유의 짧고 아름다운 가을이 왔다갔다 하는 듯하며 그에 따라 조금씩 풍경을 바꾸어간다. … 그리고 러닝용 쇼트 팬츠 위에 스웨트 팬츠를 겹쳐 입을 무렵이 되면, 불어오는 바람에 낙엽이 춤추고, 도토리가 아스팔트를 콩콩 때리는 딱딱하고 메마른 소리가 주변에 울린다. … 할로윈이 끝나면 마치 유능한 세금 징수원처럼 민첩하고 말없이, 그리고 확실하게 겨울이 찾아온다. … 우리는 장갑을 끼고, 털모자를 귀까지 덮어쓰고, 얼굴 마스크까지 한다. 그렇게 해도 손가락 끝이 얼어붙고, 귓불은 시리도록 아프다. 그래도 차가운 바람뿐이라면 괜찮은 편이다. 참으려고 하면 그럭저럭 참을 수 있다. 치명적인 것은 폭설이다. 쌓인 눈은 밤사이 거대하고 미끌미끌한 얼음 덩어리가 되어, 도로를 떡하니 막아버린다. 우리는 달리는 것을 단념하고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별 볼일 없는 사이클 머신을 타고 체력을 유지하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138-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