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지헨과 수능

2020. 10. 26. 22:57

고2 말 쯤에 본격적으로 수능을 준비했다. 수능 대비 공부를 하면서 여러 아티스트들을 들었는데 -- 비틀즈와 존 메이어, 포플레이, 빌 에반스, 뱀파이어 위켄드 등을 많이 들었다 -- 그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쪽은 도쿄지헨(東京事変)이다. 특히 수능이 가까워졌을 무렵 [大人(어른)] 앨범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도쿄지헨이 생각나서 종종 들으면 수능 보기 전의 기억과 그때의 느꼈던 생각들도 같이 떠오르곤 한다. 

도쿄지헨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나는 아티스트를 처음 접한 계기를 기억하는데 도쿄지헨은 예외인 셈이다. 누가 추천해줘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알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시이나 링고가 "群青日和"를 부르는 그 뮤직비디오에 꽂혀서일 수도 있고, 뭔가 재즈적인 화성 등 그런 색채가 가미된 록 앨범을 찾다가 도쿄지헨을 듣게 되었을 수도 있다. 제일 처음 들었던 곡은 恐るべき大人達였던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고2-고3 때 도쿄지헨 앨범은 거의 다 들어봤다. 개중에 [교육(教育)]도 좋기는 했지만 역시 [어른(大人)] 쪽이 취향저격이었다. 일단 화장을 고치고(化粧直し) 트랙부터. 고등학생 때에도 보사노바를 참 좋아했다. 조빙이나 게츠 같은 사람들을 깊게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보사노바 리듬 위에 서정적인 여성 보컬이 깔리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이다(그래서 이소라 노래 중에서도, 1집 곡이었나, "청혼"을 제일 좋아한다). 링고의 감미로운 보컬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겠고, 이 곡의 피아노는 참 관능적이다. 그 외에 또 좋아하는 곡은 黄昏泣き(황혼 울음, たそがれなき). 화장을 고치고와 같이 이 앨범에서 드물게 조용한 곡인데, 마찬가지의 이유로 스윙 리듬 위에 깔리는 링고의 목소리가 좋았다. 이 앨범에서 제일 재즈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곡이라고 해야하나. 여기서 링고의 보컬은 좀 더 잔망스럽고, 호소하고자 한다. 비교적 단순한 구성인데, 2분 20초 이후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피아노(? 키보드? 무슨 악긴지 잘 모르겠음)가 좋다. 그것 말고도 블랙아웃이나 투명인간, 슈퍼스타는, 원래 도쿄지헨 1집 스타일--록밴드 악기들이 정신없이 질주하고, 열정적인 링고의 보컬이 그 위를 타며 재촉하는--이니까, 좋아한다.  

수능을 준비할 때, 특별한 목표는 없었다. 사실 대학 진학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고, 어쨌든 그때의 나는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고 사는 게 쿨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서, 점수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냥 1년 동안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게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모의고사 점수는 잘 나왔는데, 이는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첫째로 평소에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국어 점수와 영어 점수는 기본으로 받쳐 줬어서 수학만 공부하면 되었고, 또 둘째로는 내가 수능을 봤던 당시 수능 문제들--특히 수학 과목 문제들--이 그나마 쉽게 나왔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아니면 먼 과거라면 그런 식으로 수능을 준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되다보니 점수를 올려보는 재미도 있었고 국어나 영어나 사회탐구 같은 과목은 공부를 하는 게 목표 점수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의미가 커서 10월까지는 수능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었다. 

그런데 10월이 되니까 수능에 대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생각보다 점수를 잘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도 있었고, 그때는 워낙 실수가 주는 타격이 크다보니 조마조마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공부 계획이란 걸 대충 세워서 10월 정도부터는 문제를 풀 것도 없고 특별히 더 공부할 것도 없어서 이미 풀었던 모의고사를 풀거나 교육청 문제를 풀곤 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지... 여러모로 불안했다. 답답하면 공부도 안 되니까 주변을 무작정 산책했다. 당시 공부하던 곳이 한국예술종합학교 근처여서 한예종 캠퍼스를 자주 걸었다. 그때 도쿄지헨을 들었던 것이다. 아마 수능 며칠 전까지도 그렇게 도쿄지헨을 들었을 것이다. 황혼울음(여담으로, 그때는 일본어 한자를 읽을줄 몰라서 '타소가레나키'라고 읽는지도 몰랐다. 그냥 뜻만 알았다)이나 화장을 고치고 같은 트랙이 나오면 괜히 센치해지는 한편 설국이나 수라장 같은 트랙이 나오면 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신나는 느낌도 들고... 그러다가 다시 황혼울음과 화장을 고치고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래도, 그럴 때 위로가 되는 것은 정말로 음악밖에 없다. 가장 위로가 되었던 트랙은 투명인간(透明人間)인데 별 이유는 없고 링고의 보컬이 거기서 귀엽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능을 봤고 특별히 이변은 없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리고 대학에 지원했고, 그리고 정말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수능을 보고 나서 도쿄지헨을 그렇게 자주 듣게 되지는 않았고... 듣는다 해도 [오락(娯楽)] 앨범이나 [大発見], [스포츠スポーツ] 앨범의 좋아하는 몇몇 곡 위주로 듣게된 것 같다. 그래서 도쿄지헨의 여러 앨범들 중에서 어른(오토나) 앨범 하나에 그때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도쿄지헨이 재결합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도쿄지헨을 다시 듣다가, 그냥 예전 생각이 나서 주절주절 써봤다. 예전 생각인가. 몇 년 전이긴 한데... 잘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 내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사실 지금의 것과 엄청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때 들었던 것들을 지금도 계속 듣고... 그런다. 그때 들었던 것들은 질리지가 않는다. 캡슐(カプセル)이나 킨(Keane) 같은 몇몇 그룹들을 제외하면 뭐 계속 듣는다. 그렇게 보면 사실 지금의 내가 고등학생 때의 나와 그렇게 다른 사람인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을 한다. 

 

 

아래는 디시인사이드의 시이나 링고 마이너 갤러리에 올라온 앨범 大人의 라이너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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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人(ADULT)』 SELF LINER NOTES - 시이나 링고 갤러리

2006년 잡지 "CDでーた"에 게재된 시이나 링고의 도쿄지헨 2집 『大人』 해설01 비밀1기 멤버와 투어에서 연주했던 곡이므로, 그대로 수록해도 좋았겠지만, "첫 번째 곡에서 타성으로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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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비밀

1기 멤버와 투어에서 연주했던 곡이므로, 그대로 수록해도 좋았겠지만, "첫 번째 곡에서 타성으로 하면 맥빠져"라고 이자와가 말하기에, 보컬 파트 이외는 그에게 (편곡을) 일임했습니다. 그것도 즐거웠어요.



02 싸움고수

도입부의 중얼거리는 부분은, 제 휴대 전화로부터 하타의 휴대 전화로 얘기한 것을 녹음 받아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바탕 연극을 한다는 느낌이죠. 연주는 "싸움"이라고 하는 것 치고는, 녹음 할 때도 아주 즐거웠습니다.



03 화장 고치기

이렇게 브라질의 색채가 나온 곡은 (이제까지) 없었어요. 부모님이 그런 음악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틀어 놓으셨기에, 자연스럽게 (제 안에서) 표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직접 실행하는 것은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수치심을 떨쳐버렸습니다.



04 슈퍼스타

투어에서 이미 연주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기타를 격정적으로 치는 편곡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멜로디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는데. 이자와가 이전의 것이 좋다고 해서 싸움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슈퍼스타는 제 안에서는 이치로입니다.



05 아수라장

싱글과 합주 구성이 달라요. 싱글이 어라, 어라, 하는 사이에 완성된다면, 예상 이상으로 상승되어 버립니다. 본래의 이미지도 담자는 것으로, 다시 만들었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06 설국

니가타에 갔을 때 만든 곡입니다. 이것은 엔카입니다. 데모에서는 피아노의 리프와 노래만으로 진행하고, 밴드는 강조의 역할로써만 들어가 있었습니다만, 이자와가 "이런 건 이젠 됐어"라고 하며. 리프도 많이 바꾸어서, 이렇게 됐습니다.



07 가부키

앨범 전체를 통틀어, 한 여성의 바이오리듬,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만, 저 자신은, (본래) 가무(歌舞)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한 번 돌아가보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후반의 흐름을 목차식으로 설명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08 블랙아웃

암전(暗轉)의 곡이죠. 사실은 아야야(미츠우라 아야)가 불러주었으면 했습니다. 귀여운 쪽이 노래하는 이미지가 있었어서. 그래서 제가 부르면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하며 자의식 과잉을 극복하면서 불렀습니다.



09  황혼울음

보컬을 삽입하는 데 오래 걸렸어요. 몇 번을 불렀지만 '이거다' 하는 테이크가 기록되지 않아서, 집에 가지고 와서, 곁잠의 자세를 취하며 노래하거나, 여러 가지 자세를 시험해서 불러보기도 했습니다. 결국 멀쩡하게 서서 불렀지만요.
(*역주: '황혼울음'은 '영아산통infantile colic' 증상을 의미. 영유아가 황혼의 시점에 이유없이 우는 증세. 따라서 어머니의 느낌으로 곁잠의 자세를 취하기도 한 것으로 보임.)



10 투명인간

스승(카메다)님 작곡의 귀여운 곡. 가사는 오래 걸렸습니다. 개인이나 조직을 대하는 데 있어서, 어미(語尾)나 어구(語句)를 바꿔야 한다는 게 싫어서, 저도 아들도 모드(mode)의 전환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열심히 작사했습니다.



11 편지

이자와의 작곡입니다만,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노래라면, 어떤 작위(作爲)도 통용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부르지 않는다면, 이 노래의 진짜 좋은 점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大人』 앨범의 마지막이기에, 무구(無垢)한 것을 배치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드 버먼이 그의 새 셀프 타이틀 앨범 『퍼플 마운틴』의 모든 곡에 대해 논하다 ​

David Berman Discusses Every Song on Purple Mountains’ Self-Titled New Album

exclaim.ca/music/article/david_berman_discusses_every_song_on_purple_mountains_self-titled_new_album

 

​David Berman Discusses Every Song on Purple Mountains' Self-Titled New Album

Ten years since retiring Silver Jews and retreating from public life, David Berman has triumphantly returned with a fantastic and revealing...

exclaim.ca


공식 석상과 밴드 실버 주스(Silver Jews)를 은퇴하고 십 년이 지났다. 그리고 데이비드 버먼은 퍼플 마운틴이라는 프로젝트 이름 아래, 환상적이고도 함축적인 곡들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2019년 7월 12일, 레이블 드래그 시티(Drag City)는 퍼플 마운틴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매할 것이고, [Exclaim!] 지와의 인터뷰에서 버먼이 조심스레 설명하고자 하는 이 앨범은 아마도 지금까지 그의 가장 위대한 앨범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요. 그렇다고 말하기가 조금 저어되긴 합니다.” 시카고에 위치한 드래그 시티의 사무실에서 스카이프 전화를 받은 그는 그렇게 말했다. “록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라온 한 사람으로서요. 늙은 뮤지션들이 종종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운운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만년의 작품이 처음에는 모두를 흥분시키지만 그 뒤에는 모두가 잊어버리곤 한다는 것을 자주 봐왔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앨범이 제 초기 작품들만큼이나 강력하다는 걸 말하는 것이 조금 두렵기는 한데, 그렇게 말하고자 싶군요.” 

버먼은, 새 앨범에 있는 모든 곡 각각을 살펴보고 그것들의 영감이나, 가끔은, 가사가 담고 있는 주제들을 말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앞으로 보듯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날것이며 자기고백적이고 또한 시대의 아이콘이며 수수께끼의 언더그라운드 시인이자 뮤지션이었던 버먼에 관해 많은 것을 드러내 보여 준다. 

 

1. That’s Just the Way I Feel


Exclaim!: 팬들에게 이 곡은 당신이 공식 석상에서 은퇴한 뒤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결산처럼 느껴집니다.

 

버먼: 그렇습니다. 꽤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서전적인 것(autobiographical)을 두려워한 적은 없었고, 이 곡들은 상당히 자서전적이죠. 이건 그저 이 앨범의 도입부이자 인트로일 뿐입니다.

 


2. All My Happiness Is Gone 

Exclaim!: 앨범의 처음 두 곡은 굉장히 어둡고 슬픈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즐거운 편곡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의도적인 것인가요?

버먼: 그렇습니다. 곡을 쓰고 나면, 그것은 노랫말과 노래가 상충되는 식으로 곡의 윤곽이 복잡해집니다. 이것은 저에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저의 많은 음악이 그런 식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저는 사람들이 치료저항성 우울증(treatment-resistant depression)이라는 것을 앓아 왔습니다. 그 우울증은 저의 삶에 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있었고, 사실 생각해보면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 왔다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지난 10년 간 못해도 100번의 밤을 아마 아침 동이 틀 때까지 삶을 이어나가기는 못하겠다고 생각하며 지새운 것 같아요. 저는 정말로 우울한 인간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에게 더욱 안 좋은 감정을 느끼고 그리고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실제로 저는 지금 기분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3. Darkness and Cold

Exclaim!: 여러 주제의 곡들이 있지만, 이 곡은 굉장히 ‘이별’ 노래 같다는 점에서 저를 놀랍게 합니다.

버먼: 그렇습니다. [아내인] 캐시와 저는 20년 동안 결혼 상태였습니다. 제가 10년 전 음악을 관뒀을 때, 저는 저 자신으로 도망쳐 은둔했습니다. 캐시는 잘 살고자 했고, 학위를 얻었고, 그녀는 굉장히 사람을 좋아하고 자연을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과는 정반대인데요. 우리는 끝내 이혼으로 이어지는 그런 갈등을 겪은 적은 없지만, 서로가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필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서 있는 지점의 대극에 그녀가 서 있거나, 아니면 그 반대인, 그런 다극적(多極的)인 덫에 우리는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런 이야기들이 곡에 녹아 있습니다.

 

 

4. Snow Is Falling in Manhattan

Exclaim!: 이번 건은 왠지 인간관계에 대한 느낌이 덜 드는 곡입니다. 혹시,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인지요? 

버먼: 이 곡은 좀 까다롭습니다. 이 곡을 쓸 때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현관에서 한 남자가 현관을 쓸고 있었습니다. 맨해튼에 브라운스톤 양식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관리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기로 했고, 그러자 관리인이 노래의 목소리인 가수의 은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곡이 시작되고 나서 얼마 후, 관리인이 집으로 감기에 걸린 친구를 데려온 것을 묘사할 때, 곡의 말미에서 당신은 청자(聽者)가 그 자이며 저는 목소리라는 유령을 남겨 둔 집주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5. Margaritas at the Mall 

Exclaim!: 여기서, 당신은 “하나님이 이렇게 연약할진대, 세계는 언제까지 더 존속할 수 있을까? /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 없이, 세계는 언제까지 더 존속할 수 있을까?” 하고 노래합니다. 존재론적인 노래인데, 그렇지 않나요? 

버먼: 그렇습니다. 확실히, 확실히 우주적인 실망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업사회란 그 자체로 일종의 연옥입니다. 교회는 인간들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이 연옥의 가르침(doctrine)을 만들었죠. 연옥은 실제로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했고 사람들에게 조금의 종교적 자유를 허용했죠. 왜냐하면 그들이 대부업자나 은행과 완전히 관계를 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6. She’s Making Friends, I’m Turning Stranger

Exclaim!: 문장의 앞 부분과 뒷 부분이 재밌게, 또 슬프게 대구를 이루는데요. 특별히 영감이 있나요? 

버먼: 보통 컨트리 뮤직에서 보곤 하는 말놀이일 뿐입니다. 이 곡은 해피엔딩이지만, 실제로 제 삶을 묘사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캐시와 저는 여전히 친구로 남아 있고, 은행 계좌를 공유하고 있고, 집을 공동소유하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긴 합니다. 그녀는 실제로 제 가족입니다. 그녀는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우리를 끊어 놓거나 분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7. I Loved Being My Mother’s Son

Exclaim!: 제목의 뜻이 가사 속에 모두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당신이 말하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버먼: 짐작건대 이 곡이 아마 [이 앨범을 위해] 처음 쓴 곡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곡이었어요. 어머니의 작은 집에서 놀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바로 직후였는데, 그때 이 곡을 썼습니다.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무언가를 움직였는데—가슴을 울리는, 목재의 울림이란 것이 있지요… 그때 기타를 다시 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명상과도 같다고 생각했는데, 또 보면 역시 마사지 같기도 합니다. 단순한 코드를 연주했고, 이것이 어머니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특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속에 실린 행복감과 달콤함을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8. Nights That Won’t Happen

Exclaim!: 이 곡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 접근으로 읽힙니다. “세상을 떠나보낼 때 죽은 자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지 / 모든 고통은 우리가 떠나보낸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거야” 제가 생각하기에 이 곡은 어머니를 떠나보낸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버먼: 그렇습니다. 어머니도 있고, 또 몇 친구들도 있죠. 이 곡은 관계를 끊는(burn-the-bridge) 유형의 곡입니다. 이 곡에는 아마도 얼마간의 분노가 들어가 있을 것이고요. 그렇지만 이 곡은 결혼 초기와 비슷하다고 할 것 같네요. 결혼 초기에는 희망과 꿈을 가득 품게 되지만, 그러고 나서는 죽거나 당신이 갈라섰기 때문에 어떤 사람과의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게 될 일들을 생각하게 되지요. 


9. Storyline Fever

Exclaim!: 이 곡은 거의 원시적인 랩을 하는 느낌을 가져다 주는데요. “스토리라인의 열병에 걸렸어, 스토리라인 플루에…”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버먼: 제가 만들어 낸 말이고, 이것은 일단 일종의 인지치료요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라인의 열병’은, 낭만적이든 영적이든 혹은 정치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어떤 특정한 내러티브에 정신이 사로잡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스토리라인은 우리를 추동하기도 하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스토리라인의 열병’은 휩쓸려 가는 것에 대한 은어(slang)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 스토리라인은 세상이 더 이상 좋아질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나는 망했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지점을 두고 우스운 가사를 썼습니다. 


10. Maybe I’m the Only One for Me 

Exclaim!: 이 곡은 고전적인 컨트리 뮤직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솔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당신이 실제로 느끼는 바인가요? 

버먼: 음,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그 누구와도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사실 바람둥이로 살아 왔던 지금까지의 제 인생의 정확히 반대 측면에 위치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거의 어떠한 성욕을 느끼고 있지 못하며, 아무런 관계에도 흥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곡에서 저는 또한, 어린 비자발적 독신자(involuntary celibates)들의 운명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하고자 했습니다. 이 곡은 확실히 인셀의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고, 그리고 저는 이 곡을 쓰면서 깨달았는데 이것은 또한 궁극의 신자유주의적 러브송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개인주의의 극한을 살아가고 있지요. 이 곡은 제가 자랑스럽게 나누고 싶은 그런 메시지는 아닙니다. 저는 이 곡이 자아 내지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그런 러브송으로 읽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차라리 이 곡은 ‘나 자신에게 머물러 있는I’m stuck with myself’ 그런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무도 당신과 떡치고 싶지 않아 한다면, 그것은 당신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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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ie Lee Jones, 『Pop Pop』

2020. 10. 14. 20:00

1. 리키 리 존스의 "I won't grow up"의 해석은 매혹적이다. 비교적 거칠게 살아 온 그녀의 약력이 엿보인다. 그녀의 버전으로 처음 들었는데, 가사가 흥미로워 몇 줄 번역해 보았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 공감이 간다. 지금 내 생각을 말하자면, 학교에 가고는 싶다. 어린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그렇게 멍청한 것들은 아니다. 다만 "목에 타이도", "심각한 표정도" 걸치고(wear) 싶지 않다는 가사에는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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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꼭두각시가 되는 법을 배우고
멍청한 규칙을 외우러는
I won't grow up
I don't want to go to school
Just to learn to be a puppet
And recite a silly rule

어른이 된다는 것이 만약
나무타기를 부끄러워 하게 되는 것이라면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난 되고 싶지 않아.
If growing up means it would be
Beneath my dignity to climb a tree
I won't grow up, won't grow up, won't grow up
Not me.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목에 타이도 
심각한 표정도 걸치고 싶지 않아 
7월의 한복판에 말이지 
I won't grow up
I don't want to wear a tie
Or a serious expression
In the middle of July

 

2. Bye Bye Blackbird: 찰리 헤이든의 베이스가 무심하게 정박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리키 리 존스의 보컬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듣다 보면 헤이든의 베이스의 중력에 존스의 보컬이 끌려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비교적 소박한 곡. 

 

3. I'll Be Seeing You: 좋아하는 스탠다드이다. 간략한 서론 후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구성이 마음에 든다. 찰리 헤이든의 베이스가 등장할 때, 존스가 "i'll be seeing you"를 읊조리고, 곡은 갑자기 따뜻해진다. 다시 한 번 "i'll be seeing you"를 반복하는 곡의 후반부에서, 그녀의 보컬은 거의 절규하는 듯하다. 

 

4. Dat Dere: 원래는 아트 블래키와 재즈 메신저들의 연주로 처음 접한 곡. 앨범에서 드물게 힘찬 곡이다. 

 


올뮤직의 이 앨범 해설을 번역해 보았다.

 

[Pop Pop]은 재즈팝의 가장 다재다능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리키 리 존스의 다종다양한(eclectic) 커버들의 콜렉션이다. [Pop Pop]은 극 무대에서 시작해 지미 헨드릭스의 하늘(Sky)을 거쳐 틴 팬 앨리로 여행한다. 리키 리 존스는 로벤 포드Robben Ford, 조 헨더슨Joe Henderson,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 등 쟁쟁한 연주자들의 가냘픈 반주들을 등에 업고, 그녀의 간청하는 듯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각각의 곡들을 감싸 안는다. 40-50년대의 사랑노래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보다 더 소박했던 시대와 단순했던 사랑에 대한 거의 갈망이라고 할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성격들은 “My One and Only Love”를 다루는 방식이나 “I’ll Be Seeing You”에서 메아리친다. 지미 헨드릭스의 환각적인 “Up From the Skies”에 대한 리키 리 존스의 나름대로 순화된 해석은 블루지한 어쿠스틱 넘버로 안착하는 반면, 피터 팬의 곡인 “I Won’t Grow Up”의 후렴구의 개구쟁이는 홍조를 띤 사랑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1979년 그녀가 셀프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하면서 보여준 포크 스타일을 좋아하는 팬들은 이러한 소울풀한 재즈 해석에서 그다지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Pop Pop]은 여전히 존스가 진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존스가 한 카테고리에 속박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올뮤직 해설 번역) 

 

 

2020. 10. 14. 

 

 

작년 이맘때 가을에 벨 앤 세바스찬을 (L의 추천을 통해) 처음 들었다. 작고한 시인 황병승의 시집 제목의 영감이 되어 준 밴드라는 점만 알고 있었다. 일단 유명한 곡들로부터 시작했다. "Step into my office baby", "Is it wicked not to care", "Like Dylan in the Movie", "Another Sunny Day" 등등. 완전히 꽂혔다. 나는 원래 이런 스타일의 팝을 좋아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 3학년 때부터인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인가, 플리퍼스 기타의 싱글과 초기 앨범들도 좋아해서 자주 들었었다.(아마 나고야에서인가 그들의 컴필레이션 앨범 colour me pop을 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밴드들을 잘 모르기도 하고, 음악을 열심히 찾아 듣는 편은 또 아니었다. 작년 처음 들은 뒤로, 벨 앤 세바스찬은 아주 자주 듣고 있다. 타이거밀크라든지 If you feeling sinister라는 초기 앨범의 약간 미니멀한 기타 위주 접근도 좋지만, 요새, 그러니까 2020년 가을 꽂히는 벨 앤 세바스찬의 앨범은 [Dear Catastrophe Waitress]이다. 여기서 "if she wants me"는 정말 압권이다.

 

이 곡의 가벼운 일렉트릭 기타 반주로부터 시작해서, 오르간, (1분 10초 쯤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스트링 사운드의 키보드와 일렉트릭기타, 그리고 코러스가 순차적으로 등장하며 사운드를 쌓아 나가는 접근은, 상투적이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2분 50초 쯤에서 나오는 기타 솔로와 연이은 키보드 솔로도 리드미컬하고 상쾌한데, 전혀 과하게 감정적이지 않아서 또 좋다. 스튜어트 머독의 부드러운 보컬에는 역시 이렇게 포근포근한 반주들이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초기의 앨범들도 좋지만 "소리의 벽"이 없어 허전한 감이 있다. 

 

If I could do just one near perfect thing I'd be happy
They'd write it on my grave, or when they scattered my ashes
On second thoughts I'd rather hang about and be there with my best friend
If she wants me

 

 

Casiopea, 『Mint Jams』

2020. 10. 1. 00:57

 

- 카시오페아를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동창 S 때문이다. 언젠가 교실에서 스마트폰으로 Casiopea와 T-Square가 협연하는 영상을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여러 점들이 신선했다. 첫째로는, 두 밴드 멤버들이 무대에 우루루 나와서 나름대로 정연하게 연주를 하기도 하며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드럼 등이 call & response의 형식으로 즉흥연주를 하는 것이 재밌었다. 퓨전재즈가 낯섦에도, 이래서 라이브를 보는구나 하는 생각. 둘째로는 (비록 TV 라디오 등에서 시그널 송 등으로 자주 들어 그 내용은 익숙했어도) 일본식 재즈퓨전은 처음이었다. 

- 꼭 일본에서만 하는 장르는 아니라고 해도(예컨대, Shakatak) 일본 퓨전재즈 밴드들이 주는 묘한 익숙함과 편안함 그리고 청량감이 있다. 그루비하면서도 끈적하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평면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결국 엘리베이터 뮤직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 아무튼 카시오페아 앨범이 참 많고도 많고 그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것도 거의 없지만, 앨범 단위로 좋아하고 구성이 알차다고 생각하는 것은 [Mint Jams]이다. 라이브 앨범이고, 대부분의 곡들은 정규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라이브가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1번 트랙 "Take Me". 1990년대에 나온 [Asian Dreamers]라는 스튜디오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민트 잼스 앨범에 있는 연주가 훨씬 더 쫀득하다. 키보드와 베이스의 조합이 정말로 환상적이다. 그리고 드물게 카시오페아의 곡들 중에서 애절한 느낌도 전해 준다.

- "Asayake"나 "Time Limit"은 워낙 유명한 곡들이고, 이것들보다는 뒤의 두 트랙을 훨씬 더 좋아한다("Swear", "Tears of the Star"). "Take Me"와 비슷한 이유로, 키보드와 베이스가 전면에 나서 환상적인 그루브감을 보여주고 멜로디라인이 대놓고 활기차지는 않아서다. 이번 여름에 수십 번은 반복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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