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영재발굴단인가? 수학 영재라는 어린이가 출연한 방송 캡처본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어린이는 <이야기로 아주 쉽게 배우는 삼각함수>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이걸 보고 책과 관련된 악연이 생각났다. 무엇이냐면 바로 결정적인 그리고 왜 교정이 안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오역이 있었다는 것이다. 통계학을 공부하기 전에 미리 약했던 삼각함수 부분을 복습해야겠다고 그 책을 샀었다. 겨울방학에 틈틈이 공부를 했는데,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있었다. 

즉 삼각함수의 역수(reciprocal-trigonometric function)인 시컨트, 코시컨트, 코탄젠트를 '역삼각함수' 혹은 '삼각함수의 역함수'라고 번역해놓은 것이었다. 나는 비루한 문과생이었기 때문에, 시컨트 코시컨트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고, 처음에는 그것이 실제로 '역함수'인지 알았다. 그리고 곰곰이 책을 읽으며 대체 왜 이것이 역함수인지, 역함수의 정의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닌지 고민을 했다.(애초에, 정의역을 실수 전체로 보았을 때, 삼각함수 자체가 일대일 대응 함수가 아님에도.) 한두 시간의 구글링을 거친 후 삼각함수의 경우 역수를 따로 표기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역수(reciprocal)는 역함수(inverse function)와는 전혀 다른 개념임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꿋꿋이, 책은 역수를 역함수로 표기했다. sec도 arcsin도, 모두 사이좋게 사인의 역함수였던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고 난 뒤 공부할 마음이 사라졌다. 해설에 오역이 있어서 헤맬지는 어떻게 아는가.

오역이 교정쇄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면, 그 수학 영재라는 어린이 분은 공부를 하며 꽤나 고생을 하실 것이다. 하지만 영재라면 필경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겠지.(부모님이 문과가 아닌 이상 이를 바로잡을 가능성도 충분할 것이다.) 영재라면 영어도 빨리 배우지 않을까?

1. 마이클 슈왈비, 『야바위 게임』, 노정태 옮김, 문예출판사, 2019. 사회학이 관찰하고자 하는 '불평등'에 대한 아주 좋은 입문서. 관련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느껴도 좋은 입문서는 종종 읽어두면 도움이 되는데, 왜냐하면 좋은 입문서는 해당 주제의 연구들을 최신의 성과까지 반영하여 명료하고 인사이트 있는 언어로 정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좋은 입문서를 읽으면 연구자나 전공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일반인들에게 설명할 어휘나 비유 체계를 습득하게 되고, 운이 좋다면 입문서로부터 또 다른 통찰을 얻거나 주변의 인접한 세부 분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슈왈비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입문서이다.

1-1. 좋은 개론서란 무엇일까. 최신의 학문 성과가 잘 업데이트 되어 있는 책. 해당 분야의 축적된 지식을 쉽게 이해시키고 머릿속에 정리할 수 있는 세련된 은유, 도식을 활용하는 책. 특히 후자가 중요한 게 나무 대신 숲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 (명확히 표현하면) 축적된 지식을 단순히 쉽게 암기시켜준다는 역할이라기보다는... 특정 분야의 접근이 어떤 점에서 다른 분야의 접근과 다른지, 그게 왜 유의미한지, 한계는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해야 좋은 개론서인 듯하다. 그래야 해당 분야 연구들이 공유하는 관점과 취지, 방법에 대해 친숙해질 수 있고, 이미 해당 분야에 대해 알고 있었던 다른 파편화된 지식들도 개론서를 통해 얻은 프레임워크 안에 통합시킬 수 있게 되어서.

2. 또 하나의 칭찬할 점은 편집자와 역자의 노고. 모든 각주의 책에 한국어 번역본 서지정보가 부가되어 있으며, 한국어 판본이 없더라도 해당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텍스트가 역자에 의해 종종 소개된다.(이를테면 미국의 인종적 불평등 약사略史에 대해 넷플릭스 다큐 하나를 소개하는 식.)

3. 무언가를 사회학적으로 설명sociologically explain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sociological account를 제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점에 대해 궁금한 신입생들이 읽어도 좋을 책 같다.

4. 몰라서 그렇지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이 정말 많구나... <야바위 게임> 읽으면서, 대학 수업에서 영어로 접했던 레퍼런스들이 이렇게 여러 권 번역되었다는 것을 알고 놀람. 스티븐 룩스의 Power: A Radical View도 번역본이 있었음. 이른바 고전 텍스트들이 번역이 거의 안 되어 있어서 그렇지 그때그때 화제가 되는 (그리고 과하게 아카데믹하지 않은) 양서들은 번역이 많이 되어 있는 것 같음.

리처드 리브스, 『20 VS 80의 사회 (원제: Dream Hoarders)』 기록한 것, 메모. 

p. 52 수전 패튼: 프린스턴 대학 출신, 결혼 오지랖

66 "성공적인 자녀 갖기의 첫 단계는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이다.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70-71 "1990년대 중반에 수행된 유명한 연구에서 베티 하트와 토드 리슬리는 계층 간에 매우 큰 ‘대화 격차’가 존재함을 발견했다. 복지 수급자 가정 아이들은 시간당 600단어, 노동자 계층 가정 아이들은 1200단어를 듣는 데 반해, 부모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이들은 2100단어를 들었다. 오늘날 당국자들은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혁신적인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81 커뮤니티 칼리지, 견습 제도, 취업 연계 교육 등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다른 집 아이들을 위한 것이지 우리 아이가 갈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 우리 중상류층 아이들은 4년제 대학을 목표로 한다. … 

109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이분법이다. … 더 높은 이동성과 더 강한 평등을 함께 추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하향 이동성이 낮으면 재분배 정책에 대해 사람들의 지지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유한 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지위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면 저소득층을 위한 제도와 정책을 지지해야 할 이유가 줄어들 것이다. 자기 아이들에게는 필요 없는 정책일 테니 말이다.
=> 복지국가의 합의가 종료된 것에 대해 많은 사회학자들이 진단하는 내용이 아니던가? 
=> 출처: Democracy and the Policy Preferences of Wealthy Americans. 

110 하지만 현재의 구조에서는 중상류층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것이 연착륙이 아니라 추락으로 보인다. 

119 하지만 다른 이야기도 있다. 시장에서 능력 본위 이상이 높아지면서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의 불평등이 인종과 계급 두 차원 모두에서 심화되었다. 

121 영국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마이클 영은 1958년에 『능력 지배 사회의 부상』이라는 제목의 디스토피아 소설을 썼다.
=> 소설인지 몰랐음;; 

124 소제목 능력 본위의 한계 

127 [버나드 윌리엄스를 인용해] 식자 사회에서는 기술, 두뇌, 학위, 자격증 등 하버드 법대 교수 라니 구니어가 “시험 점수 본위적(testocratic) 능력”이라고 칭한 것들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고학력 엘리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도 ‘가난하다고 해서’ 배제하지 않았다. 우리는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했다. 가난한 사람이 똑똑하지도 않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132 미국의 고등 교육을 종합적으로 연구한 사회학자 시걸 앨론은 능력 본위적인 선발 절치(특히 표준 시험 점수를 기준으로 한 선발 절차)에 맞추려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노력이 1980년대 중반 이래로 고등 교육에서 계층 분화를 심화시킨 주요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Alan, “The Evolution of Class Inequality in Higher Education: Competition, Exclusion, and Adaptation,” ASR Vol. 74: 731-55.)

135 경쟁적인 교육 시장에서 성적 장학금은 학교들이 원하는 부류의 학생, 즉 부모가 학비를 다 낼 여력이 되는 학생을 끌어오기 위한 할인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136 만약 어느 대학이 저소득층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 2만 달러를 지급하면 뿌듯할 수는 있겠지만 2만 달러가 순지출로 잡히게 된다. 그런데 5000달러씩 학비를 감해 주어 부유한 학생 네 명을 끌어오면 차액이 수입으로 잡히므로 재정적으로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150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이제껏 본 것 중 철학적으로 가장 훌륭한 답은 스위프트와 브리그하우스가 제시한 설명이다. 그들에 따르면, 부모는 아이가 잘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권리를 갖지만 아이에게 ‘경쟁 우위’를 부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권리는 없다. 

151 그런데 그렇게까지 요구하는 건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경쟁적인 노동 시장을 가진 사회에서 … 

162 이들에게 모교는 단지 교육 기관이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인 것 같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동문 자녀 우대제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거부감이 유난스럽게 과민한 것인지도 모른다. 

176 로렌 리베라가 저서 『혈통[Pedigree』]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노동 시장에서 상위에 있는 직군의 고용주들은 채용 시에 암묵적인 계급 장벽을 종종 세운다. “대학의 입학 사정 시에 쓰는 기법을 도입해서, 기업들은 지원자들을 학과 외 활동으로 한 번 더 거르는데, 백인 중상류층 문화와 잘 부합하는 고급스럽고 돈이 많이 드는 활동을 한 사람들이 우대된다.”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기: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Bill Evans: How My Heart Sings』 서평 

 

빌 에반스를 좋아해 최근 개정판이 출간된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Bill Evans: How My Heart Sings』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죽 생각했던 것이 있다. 바로 음악을 듣는 것과 어떤 음악가에 대한 책을 찾아 읽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는 것이다. 바꿔 말해, 어떤 아티스트에 대한 팬심을 넘어 수고로이 음악가에 관한 책을 구해 읽는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사실 이는 바로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모두들 재즈를 진지하게 감상하지는 않는다. 그저 카페 배경 음악 역할로 귀를 편하게 하는 속성을 좋아하는 데에 그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한다 해도 그 아티스트의 작품에 바쳐진 평문(評文)을 굳이 찾아보는 청자는 드문 것 같다. 그것은 어떤 곡의 가치가 해설자의 권위나 훈련받은 청각이라는 제3의 매개체를 거치지 않은 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인 것일까? 

흥미로운 점은 에반스가 여기서는 ‘훈련받지 않은’ 감상자의 편에 선 것 같다는 것이다. 관습적이지 않은 보이싱과 코드로 자신의 연주를 엄격히 건축하고자 했던 에반스다. 그렇지만 그에게 있어 음악의 아름다움은 ‘저절로 드러나는’ 듯하다. 에반스는 교육용 비디오 <빌 에반스의 보편적인 심성>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난 평범한 사람들의 견해가 직업적인 음악인의 것보다 음악을 판단함에 있어서 덜 타당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난 종종 직업적인 사람들보다는 감수성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판단에 더 귀를 기울이는데, 그 이유는 직업적인 음악인들은 음악의 메커니즘에 늘 매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순수한 감정을 지키기 위해 이에 맞서야 한다”(376). 

나뿐만 아니라 에반스의 연주를 좋아하는 재즈에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다른 많은 사람들도 여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실제로 (‘비밥 시절’이나 『California Here I Come』에서처럼 ‘스윙한 연주’보다는) 조용하고 서정적인 그의 피아노 터치에서 많은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감명을 얻는다. 한데 그렇다면 빌 에반스의 음악에 대해 (에반스 본인이 쓴 것이 아닌) 전문 피아니스트의 해설이라는 도움을 받을 필요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재미있게도 또 앞의 진술과는 상반되게도 책의 몇몇 대목에서 에반스는 본인이 청중을 향해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기도 한다. “나는 직업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 다시 말해 난 청중이 없는 곳에서 연주하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는 점이다. 의사소통하는가 혹은 하지 않는가는 내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훈련과 집중력을 통해 나의 자아의식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401).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도 피아니스트로서 스타일에 관해 부단한 노력과 혁신을 꾀했다. 

이는 기묘한 역설이다. 그는 대중을 향하는 듯하면서도 사실 대중을 염두에 두고 연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대목을 들자면, 에반스는 이렇게 얘기했다. “재즈는 결코 집단적으로 호소력이 있는 음악이 될 수 없다. 내가 청중에게 준 것은 내 스스로에게 연주한 것과 다르지 않다”(421). 그의 음악이 온전히 그 자신을 향해 있다면, 그의 앨범 제목마냥 그의 연주가 사실 ‘자신과의 대화(Conversations with Myself)’에 지나지 않다면 빌 에반스를 진지하게 듣는 것은, 그의 음악에 전기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과 함께 접근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내성(內省)이 코드 진행, 보이싱, 스케일의 적절한 선택과 혁신 같은 전적으로 음악적인 것들에 집중되었음을 볼 때, (에반스의 말을 따른다면) 일반적인 청중이 그를 듣고 그의 연주로부터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보았을 때 청중들이 에반스의 연주를 듣고 호소력을 느낀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된다. 피아노에 조예가 깊지 않을지라도, 재즈 연주에 대한 그의 신념과 마치 승려 같은 자기반성과 연습 과정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를테면 『Moonbeams』 앨범의 「Polka Dots and Moonbeams」과 같은 그의 가장 센티멘털하고 관습적이고 감상적인 연주일지라도, 저자의 표현을 빌면, “그때도 마치 누군가가 경청하고 있는 듯 연주된다”(268).

‘빌 에반스를 감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숙고하기를 이끄는 이런 역설에 관해 저자의 서술은 눈여겨 볼만하다. “초기 서정주의가 형성된 이후, 에반스는 자신의 내적인 성찰로 자연스럽게 향하는 경향을 보였다. 심지어 그의 연주가 강하게 표출될 때조차도 그는 스스로에게 열중한 듯 보였다. 무엇보다 우선했던 그의 생각은 자신이 만족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며, 그 길 가운데서 청중과 만남이 이뤄지길 기대했던 것이다”(244). 

‘그 길 가운데서의 청중과 만남’이라는 구절을 잠시 곱씹어본다. 같은 쪽의 재즈 평론가 휘트니 발리엣의 표현처럼 에반스는 “완벽하게 개인적이며 내면의 귀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픈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의 당연한 욕망이자 삶의 지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내면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의 감상은 에반스 본인 혹은 동료 피아니스트가 아닌 이상 알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진심은 그것이 아무리 자신만이 아는 언어로 씌어진 것일지라도 전달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자신 안에서 그러한 음악이 발견되었다는 환희를 표현하고픈 강렬한 욕망” 같은 것들. 사실, 그는 무대 중에서 말하기를 꺼리고 청중들의 박수가 방해된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다음 구절에서 보이듯 그는 ‘가장 재즈적인 것’을 매개로 한 청중과의 소통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는 점에서 순수주의자이다. “재즈의 위대한 전통이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청중들의 지배적인 태도는 피아노 독주자를 그들의 대화나 저녁 식사 뒷편으로 밀어 넣고 있다”(424). 

그렇다면 피터 페팅거가 표현한 ‘빌 에반스와 만날 수 있는 어떤 길’은, 잠시 라디오의 은유를 빌려 보자면,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진심은 저절로 전달되기도 한다. 「My Foolish Heart」의 그 수줍은 터치처럼. 그런데 「Five」의 (누군가는 재치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해하고 변칙적인 박자나 여러 차례 연주되고 녹음된 「Nardis」의 판본들의 차이에서처럼 음악과 자아에 관한 에반스의 절실한 고뇌가 결정화되어 있는 곡들은 그 진심을 놓치거나 종종 잘못 전달받을 수도 있다. 에반스의 마음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가 평생 절실히 추구했던 어떤 피아노 연주의 이상(理想)에 먼저 공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마음이 전달하고자 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을 피아노 연주라는 노랫말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음이 노래를 부르는 방식(How my heart sings)일 것이다. 다만 이를 왜곡 없이, 깨끗하게 받아들이려면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빌 에반스의 생애와 연주에 대한 피터 페팅거의 서술은 ‘빌 에반스와 만날 수 있는 어떤 길’을 찾는 데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에반스의 삶과 가족 관계에 대한 서술이 물론 존재하지만 그것이 가십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연주와 내면 세계와의 관련 하에서만 제시된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그의 삶의 중요한 결절점에서 우리는 재즈 피아노 연주를 대하는 그의 구도자적인 태도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를테면 마일스 데이비스와 같이 연주하며 “난 연주에 대한 나의 관점을 뒤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팀의 일원이자 피아니스트로서 정진하게 된 대목이라든가(112). 

저자가 피아니스트인만큼 음악 구성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들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종종 있기는 하다. (바꿔 말하면 피아노를 연주하고 음악을 악기와의 연관 하에 더욱 깊게 듣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게 많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전문 용어가 나올지언정 에반스가 녹음한 트랙들과 그의 동료들에 대한 피터 페팅거의 서술은 탁월하다. 개인적으로는 302에서 304쪽까지의 『Conversation with Myself』 앨범의 오버더빙과 멀티트랙 녹음에 대한 묘사를 듣고 이 앨범을 다시 진지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빌 에반스의 가장 유명한 트리오만 알고 있었던 청자들은 토니 베넷이나 짐 홀과의 사이드 프로젝트나 펜더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를 쓰는 기획에 대한 에반스의 여러 접근들을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에반스의 녹음들에 대한 그의 자료 수집은 탁월하고, 많은 대목에서—비록 과하게 전문적일지라도—피아니스트로서 그리고 재즈 애호가로서 그의 비평은 빛을 발한다. 

단순한 레코딩 이력에 대한 지식을 쌓기보다, 책을 읽어나가며 「Some Other Time」이나 「Nardis」, 「My Romance」와 같은 에반스가 즐겨 연주했던 곡들의 판본 사이 강조점들의 차이를 견주는 것도 에반스가 전달하려는 무엇인가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설의 트리오로 남은 스콧 라파로와 폴 모션과의 트리오가 사고로 해산하게 된 후 다른 여러 음악적 동반자(베이스스트 고메즈라거나 드러머 존스라거나)를 만난 과정들에 대한 서술들 역시, 그가 재즈에 대한 차분한 열정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어떤 시도들을 해나갈 수 있었는지 느끼게끔 해준다. 

절반 이상 책을 읽어나가며 독자는 다음 문장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추상적이거나 은밀한 음악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난 그저 나의 음악적인 개념을 연주할 뿐이다”(421). 물론 그의 음악은 어떤 전문성이나 대단한 비평을 요구할만큼 ‘추상적’이거나 ‘은밀’하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내성적 감상이 항상 촉각할 수 있을 만큼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정의 내리기 어려운 너무도 개인적인 영역”, “그 사람의 ‘색깔’과 정서적인 울림”(498-99)을 파악하는 데에는 주파수를 맞추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리고 피터 페팅거의 전기는 그 진동을 적절히 조절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팟캐스트 Social Science Bites (사회과학 맛보기) 
https://methods.sagepub.com/podcast/michael-burawoy-on-sociology-and-the-workplace https://www.socialsciencespace.com/2015/03/john-brewer-on-c-wright-mills/

존 브루어가 C. 라이트 밀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John Brewer on C Wright Mills)
전문全文 번역 

나이젤 워버튼: C. 라이트 밀스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회학자 중 한 명입니다. 밀스는 사회학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사회학자들은 중립을 지키기를 그치고 변화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62년에 단명(短命)했지만, 밀스의 사상은 60년대의 반문화에 동력을 제공했지요. 퀸즈 대학에서 강의하는 존 브루어(John Brewer)는 밀스의 열정적 추종자(a passionate admirer)입니다. 

데이비드 에드먼즈: 안녕하세요? 소셜 사이언스 바이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존 브루어: 감사합니다. 

에드먼즈: 오늘 말할 주제는 밀스와 사회학에서 그가 갖는 중요성입니다. 밀스와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담을 시작할까요? 

브루어: 네. 그는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목축업자(rancher)였어요. 상대적으로 교육바딪 못하고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요, 밀스는 물론 그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는 텍사스 대학에 갔는데 군사학교였습니다. 그렇지만 성취도가 매우 높았고, 결국에는 콜럼비아 대학에 들어갔고 뉴욕 그리니치(Greenwich)에 거주했습니다. 

에드먼즈: 그렇다면 밀스는 텍사스에서의 교육과 이후 동부에서의 삶으로부터 둘 다 영향을 받은 셈이군요.

브루어: 정말로 그렇습니다. 밀스의 저작을 읽으면, 텍사스와 동부라는 두 전기적(biographical) 공간을 두고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알아챌 수 있지요. 그 공간들이란 시골이고 덜 특권적인(underprivileged) 텍사스와 뉴욕 시내입니다. 그는 두 공간의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살았습니다(lives on the edge of both). 저는 아마 그 두 사회적 공간 사이의 충돌이 그에게 미국 사회의 본질에 대한 어떤 특별한 통찰을 주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배경에서 자라서 빈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죠. 

에드먼즈: 밀스는 살면서 속물들에게 많이 시달렸다고 하는데요.

브루어: 물론입니다. 즉 그는 텍사스 출신이라는 점으로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문화자본의 결여라고 부르는 것 때문에 놀림을 받은 셈이죠. 당시 최고의 사회학자 중 한 명이었던 에드워드 쉴즈(Edward Shils)는 밀스를 두고 그가 앞으로는 거의 읽지도 않을 책을 가방에 담고 그리니치에 겨우 올라왔다고 말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지금 쉴즈가 CIA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고 밀스를 굉장히 위험한 인물로 바라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에드먼즈: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회학자로 밀스는 알려져 있는데요. 그가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브루어: 그는 두 가지 점에서 굉장히 특별했습니다. 첫째는 미국 사회에 대한 그의 관심입니다. 그는 훌륭한 책 세 권을 썼는데, 그것들은 미국의 계급구조 변화를 반영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밀스는 미국의 대외 정책(foreign policy)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캐리비언에서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책 두 권을 썼고, 또 물론 밀스는 세계대전에 관한 글[The Causes of World War Three]을 썼는데, 이는 굉장히 문제적인 미소 관계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정리하면 밀스는 우선 미국 사회에 대한 급진적 비판가로 유명한데, 또 다른 점으로는 그가 사회학에 대한 급진적 비판가였다는 점에서 매우 유명한 것입니다.

에드먼즈: And what did that consist in? 

브루어: 밀스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1959년에 출판됐는데 유럽에 안식일(on sabbatical)을 갔을 때 집필됐습니다. 그 점이 매우 중요한데요, 그 책에는 사회학적 상상력에 대한 밀스의 이해에 유럽 사회학의 흔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유럽 사회학의 특징은 바로 그것의 뿌리가 도덕철학이라는 것이고, 또 사회학이 무엇보다도 근대의 사회적 조건을 진단하는 학문으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미국 사회학은 두 개의 지배적 전통에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었죠. 하나는 추상 이론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밀스가 추상적 경험주의라 부른 전통입니다. 전자는 일반이론을 강조하고 후자는 과학적 방법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밀스는 유럽의 전통에 단단히 뿌리를 둔 사회학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 낸 것이죠.

에드먼즈: 따라서 밀스는 개인이 그저 추상적인 그림의 데이터로만 간주되는 경향과 싸운 셈이군요. 

브루어: 정확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밀스가 두 가지 전기적(傳記的) 공간, 그러니까 텍사스에 기반을 두었지만 뉴욕 그리니치에서 살아온 생애적 이력 사이에서 살아오며 받은 영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그는 보통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겪는 생생한 영향을 포착하는 데에 매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밀스는 사회학이 규범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즉 사회학은 사회적 조건(social condition)을 진단하는 동시에 그것을 개선하는(ameliorate)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는 사회학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노력들의 학문으로 조형(造形)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을 거대이론의 추상적 범주로 간주하기도 거부하고, 추상적 경험주의의 그저 추상적인 통계적 범주로만 간주하기도 거부한 것입니다.

에드먼즈: 밀스가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썼다고 하셨는데요. 밀스가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의 삶의 측면들에 대해 예시를 제시해 주실 수 있나요? 

브루어: 미국의 변화하는 계급 구조를 다룬 글에서 밀스는 새로이 생겨나는 중간 계급(emerging new middle class)에 대해 상당히 강조했습니다. 즉 ‘조직 인간’(회사인간; the organization man)인데요, 물론 오늘날 우리들도 그들에 대해 이야기들 하죠. 조직 인간은 회사에 고용되어, 회사에 의해 삶이 결정되고, 충성은 회사에 향해 있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밀스는 이러한 새로운 중간 계급이 힘을 잃고(neutered), 구속을 받고(constrained), 그들이 갇혀 있는 사회적 상황을 파악할 수 없고, 거대한 사회 구조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과정을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밀스가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써서 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사회학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문제(private troubles)들을 공적인 이슈(public issues)로 바꿔야 할, 그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구조적 힘을 그들 스스로 이해하게끔 돕고 그들이 더 잘 살며 정치적 동원(mobilization)과 행동에 참여해 사횢거 조건을 바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규범적 의무를 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에드먼즈: 그러한 구조적 구조를 인식하게 하는 밀스의 방법론은 무엇인가요? 통계 자료를 분석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특정한 형식의 에스노그라피인지? 메모판(clipboard)를 들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찰을 했는지?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지 못하는, 그러나 그들에게 작용하는 힘을 식별해 내기 위해 밀스는 어떻게 했나요? 

브루어: 사실 그 점에서 밀스가 가진 역설(paradox)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거대 이론을 빈정거림에도(lampoon) 불구하고, 2차적 자료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어요. 에스노그라피를 수행하지도 않고, 통계 연구를 하지도 않고, 이차적 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 점에서 밀스의 모델은 베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스 베버 연구에는 메모판(clipboard)도 없고, 사회 조사(social survey)도 없고, 심층 질적 인터뷰도 없지요. 연구는 우선적으로는 이차적 자료, 이차적 소스에 의존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합쳐져서 분석적 서사(analytic narrative)를 형성합니다. 많은 측면에서 밀스는 그가 비판하는 추상적인 이론가와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밀스가 주장하는 사회학은 실질적이고(substantive) 현실적인 삶의 이슈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죠. 미국의 변화하는 계급 구조, 미국의 외교 정책, 미국의 쿠바 공격이나 소련 공격 같은 것들 말입니다. 

에드먼즈: 그렇다면 미국 사회를 탈구축(deconstructing)하는 데에 있어서, 밀스는 역사를 이해하고, 미국이 어떻게 이런 자리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고, 단지 단편적 풍경(snapshot)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네요? 

브루어: 그것이 제가 밀스를 왜 가장 유럽적인 미국 사회학자라고 일컫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밀스는 역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인의 생애가 갖는 중요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학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상상력은, 사회학이라는 학문(discipline)이 제시하는 전망(promise)은, 밀스의 묘사에 따르면, 바로 개인과 개인의 생애, 개인의 생생한 경험에 대한 강조를 사회 구조와 역사에 대한 강조와 조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밀스는 아주 많이 유럽적입니다. 밀스는 미국에 대해 애증(愛憎)의 관계를 갖고 있었어요. 유럽에서 그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곤 했죠. 그 편지들에는 온통 미국에 대한 향수(鄕愁)가 있었습니다. 사실 유럽에 거주함으로써 밀스는 그의 문제설정이나 이해, 그리고 그의 원동력이 사실 미국 사회를 분석하는 것에서 왔음을, 그리고 미국 사회가 그가 있어야 할 곳임을 깨닫게 된 것이죠. 밀스의 애증을 이해할 수 있나요? 밀스는 미국의 사회구조, 정치를 혐오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역시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에드먼즈: 그는 미국을 바꾸고 싶어했죠. 그리고 선생님 그것이 밀스의 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규범적 차원이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선생님은 규범적 의제(normative agenda)를 가지지 않은 사회과학자는 사회과학자로서의 역할 충족에 실패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브루어: 밀스는 그러한 용어로 말한 적은 없지만 말씀하신 바가 정확합니다. 사회학의 전망(promise)은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밀스가 묘사하듯 사회학자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켜야 할 규범적 책임(normative commitment)을 가질 의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이유 때문에 밀스가 유명해졌다고(popular) 봅니다. 그의 죽음 몇 년 후 60년대 후반에 반문화 운동이 출현했는데요, 이러한 거의 반과학적인(anti-science) 움직임은 밀스로 하여금 그들의 세대의 대변인이 되게끔 만들었습니다. 비록 밀스는 1962년에 사망했지만요. 민권 운동의 바리케이드에 선 사람들과 사랑의 여름(the Summer of Love; 미국 서부에서 히피 문화가 절정을 이룬 1967년 여름을 사랑의 여름이라고 칭한다—역주)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밀스와 함께했던 것이죠. 

에드먼즈: 밀스는 확실히 좌파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밀스가 FBI의 주의를 끌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밀스는 우파 사회학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우파 사회학자도 규범적 의제를 가질 수 있는데요.

브루어: 그것은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이에 관해 우리는 밀스의 서신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밀스의 편지들에서는 그의 사회학적 글(sociological writings)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무뚝뚝함(brusqueness)과 거칠음이 있습니다. 그 편지가 사적인 것이고 그가 두 정치적 그룹에 모두 비판적이었다는 데에서 오는 신랄한 문체(vitriol)가 있었습니다. 밀스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개혁적이지 않은 좌파(the unreconstructed left), 낭만적 좌파(the romantic left)에 굉장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일반적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포착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사회학의 분파들에게도 비판적이었습니다. 

에드먼즈: 밀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가 굉장히 글을 유려하게 쓰는 사람이며 그것이 그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설명한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브루어: 정말로 그렇습니다. 밀스는 포퓰리스트인데, 두 가지 의미에서 포퓰리스트입니다. 첫 번째 의미로, 밀스는 사회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특별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사회학이 유명해졌으면 바랐습니다. 그런데 다른 의미로도 그는 포퓰리스트였는데 즉 그는 매우 대중적인 방식(popular fashion)으로 글을 썼던 것입니다. 그는 어려운 전문용어(jargon)을 쓰는 사회학의 경향을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조롱했어요. 그 책에 참 아름다운 글이 있습니다. 거기서 밀스는 탤컷 파슨스(Talcott Parsons)의 사회 일반 이론에 대한 글을 발췌를 해서 그것을 몇 문장 수준으로 압축적 요약을 했죠. 비록 밀스가 그 책에서 ‘개소리(bullshit)’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밀스가 요약해 하고 싶었던 말이 그런 것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지요. 그러니까 밀스는 포퓰러라이저(populariser)였습니다. 사회학이 일반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사회학이 일반 사람들에게 통찰을 주어 그들이 밀스가 정치적으로 참여적인 만큼이나 정치적으로 참여적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에드먼즈: 밀스의 유산에 대해 요약하자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브루어: 이제 우리는 밀스의 모순(paradox)에 다다른 것 같네요. 밀스는 사망 후 미국 사회에서 빠르게 나타난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밀스는 1962년에 사망했는데 예컨대 민권 운동의 부상을 예측하지 못했죠. 밀스의 책은 젠더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요, 인종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한 밀스를 받들어(in Mills’ name) 바리케이드를 치는 학생 세대가 출현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점은 미국이 최후의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소련의 종말을 예상하지 못했죠. 이것 때문에 저는 밀스가 정말로 당대를 살았던 사회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밀스는 1950년대 후반 미국의 외교정책과 사회 구조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밀스는 그것이 어떻게 급격히 변할 지 예측할 수 없었고, 따라서 변화하는 계급 구조에 대한 그의 연구와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한 그의 연구는 사실상 오늘날 외면받고 있습니다. 밀스는 사회학의 급진적 비판가로 매우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유명한 책은 『사회학적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국제사회학회(International Sociological Association)는 사회학자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사회학 책을 알려 달라고 여론조사를 했는데, 베버의 『경제와 사회』가 1위를 차지했고 밀스의 그 책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이 설문조사는 다음 링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isa-sociology.org/en/about-isa/history-of-isa/books-of-the-xx-century —역주). 『사회학적 상상력』은 일종의 슬로건(bumper sticker)가 되었고, 밀스는 사회학의 본성에 대해 급진적으로 비평을 하고자 하는 사회학자 세대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그는 그것으로 매우 유명해졌죠. 우리 세대의 경우 밀스는 언제나 우리들이 따라야 할 별이 될 것입니다. 

에드먼즈: 존 브루어 선생님, 감사합니다.

브루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