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tz J. Roethlisberger, “The Hawthorne Experiments,” Management and Morale, Harvard University Press, 1941, pp.7-26. 요약번역. 

저자가 보기에 인간 행동 연구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것을 해결하는 법(the road back to sanity)을 찾으려면 복잡한 세계에서 실재를 파악할 좋은 도구를 찾아야 하고 “톱을 망치처럼 쓰지 않아야” 한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한데, 인간의 문제(human problems)에는 인간적 해결책(human solution)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인간의 문제를 파악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파악했다면 다른 방법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 그것을 다뤄야 한다. “인간의 문제는, 인간의 데이터와 인간의 도구를 요하는 인간적 방법으로 다뤄져야 한다.” 

- 조명 실험 Experiments in illumination 

웨스턴 일렉트릭에서의 몇 년간 지속된 실험: 노동자는 실험집단과 통제집단으로 나눠진다. 
(1) 첫 번째 실험에서 실험집단에는 작업장 조명을 점점 높은 정도로 했다. 실험, 통제집단 모두에서 생산성이 향상되었고 그 정도는 비슷했다.
(2) 두 번째 실험에서 실험집단의 작업장 조명을 낮췄고 이 경우에서 예상한 바와 다르게 실험 집단의 생산성은 향상됐다.
(3) 다른 실험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조도가 올라갔다고 믿게 했다. 그런데 다시 결과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4) 마지막 실험에서 조도는 달빛 수준으로 내려갔다. 이제서야 생산성은 약화되었다. 

이 실험에는 무언가 이상한(screwy) 것이 있다. 반응이 음성(negative)인 것은 확실하다. 액면가로만 받아들인다면 조명과 생산성에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실험자들은 여러 통제하지 못한 변수가 많다고 생각했고, 이것은 다르게 디자인된 실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몇몇의 냉정한(tough-minded) 실험자들은 인간의 행동 동기에 대한 기본 가정들을 점검했는데, 기존의 개념과 가정이 실험 대상인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변화들의 인간적 의미를 간과했다고 간과했다고 생각했다. 조명 실험은 인간의 상황에 대해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다뤘던 것인 셈이다. 

- 릴레이 조립기계 실험실 The relay assembly test room 

다섯 명의 소녀로 구성된 그룹이 각각 분리된 방에 배치되었고, 그곳에서의 조건은 세심하게 통제되었다. 각 방마다 쉬는 시간의 길이와 수가 조절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진행됐고 매우 많은 결과가 나왔다. 우선 결론은 반응이 양성(positive)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실험자는 처음 5분 휴식을 아침과 오후 두 번 일터에 도입했다. 그리고 그 후 시간의 길이를 늘렸고 쉬는 시간을 더 배치했다. 한 실험 기간에 그들은 피험자에게 특별히 준비된 점심을 쉬는 시간에 제공했다. 뒤에는 실험자들이 일하는 시간을 1시간 반에서 1시간으로 줄였다. 피험자들에게 토요일 아침에는 쉬게 했다. 총 13개의 다른 노동조건의 기간이 첫 두 해 동안 도입되었다. 

노동조건의 향상은 생산성의 향상을 꾸준히 불러왔고, 이는 피로감이 산출의 중요한 요인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실험자들은 결과가 잘 나와서 기뻤고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의 향상과 그들이 상부 관리부로부터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데에 기뻐했다. 그런데 한 실험자가, 노동조건을 원상복구시키자고 했다. 이것이 12번째 기간이었는데, 산출은 기대했던 대로 하락하지 않고 대신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 실험은 인간의 상황이란 것이 복잡하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인간의 상황에서란 어떤 작은 변화가 도입될 때 다른 예상치 않은, 원치 않은 변화들이 같이 생길 수 있다.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이 전심전력으로 실험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은 피험자들이 심리학적 요인에 구애받지 않고, 전적으로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에만 반응을 보이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노동자와 상의했고 일터에서의 일반적 관행을 모두 바꿔 버렸다. 몇몇 계획은 피험자 소녀들의 반대에 직면했는데, 즉 소녀들은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허락받은 것이고 그들의 두려움(bogey)은 사라진 것이다. 즉 실험의 조건을 세팅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상황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일터에서의 관행적인 감시 체제가 혁신된 것이다. 이것이 생산성 향상의 이유가 될 것이다. 

- 새롭고 좀 더 생산적인 관점 

이후 연구자들은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그들이 연구하고자 한 것은 노동자들의 태도와 감정의 중요성이었다. 노동자들이 인식하는 상황의 중요성에, 그들이 상황에 보이는 반응이 의존적인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노동자들의 태도와 그것을 규정하는 요인을 탐구하려고 들 때 연구자들은 일종의 “황혼의 지대”twilight zone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문제를 탐구하고자 하는 도구가 없었던 것이 문제이다. 

다행히도 몇몇 용감한 실험자들이 이를 돌파하고자 했다. 

- 노동자 인터뷰 실험 

노동자들이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파악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지 보기 위해 몇몇 실험자들이 작업장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1928년 당시에는 새로운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조언을 주지 않거나, 도덕적 판단을 주거나 암시하지 않고, 대화를 장악하지 않고, 유도신문(leading questions)을 하지 않기를 배운다는 것이 어려운 것을 연구자들은 알았다. 그럼에도 제일 중요한 것은 아마 한 사람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사실은 그의 즉각적 업무 상황과는 관련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일 테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그들은 방법을 배웠다. 그들은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해석하는 데에 점점 유능해졌다. 그들은 점점 간단한 인간적 방법human tool을 만들게 됐다. 그들은 이 방법을 “인터뷰”라고 불렀다. 

- 노동자의 만족과 불만족을 보는 새로운 방법 

처음에 실험자들은 노동자들의 호오와 작업환경에서의 일들에 간단한 논리적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작업 환경에 문제가 있으면, 바꾸면 된다는 것. 불행하게도 인간의 행동이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몇번 후에 그들은 불평불만의 대상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인터뷰 후 신기하게도 불만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형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형편없는 일터 식당에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며칠 후 그는 인터뷰어를 만나고 불평을 하고 이것을 들어준 조치를 취한 데에 고마워 한다. 변화는 일어난 것이 없지만, 노동자는 무언가 변했다고 느낀다. 

처음의,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가 전적으로 논리적일 것이라는 가정이 잘못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경제적 인간”이라는 관념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점점 증거evidence에 의지해, 실험자들은 이러한 관념을 버리게 되었다. 
(1) 그들은 노동자들의 행동이 감정feelings or sentiments 없이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감정은 충성심, 연대 같은 추상적인 것도 포함한다. (2) 그들은 감정은 잘 숨겨질 수 있고 그래서 알아차리고 연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3) 그들은 감정이 그자체로 연구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전체적 상황의 맥락에서 연구되어야 함을 알았다. 

사회적 행동의 형식으로서의 생산량output 

생산량이 사회적 행동의 형식이라는 것은 Bank Wiring Observation Room에서 일어난 호손 실험에서 잘 드러난다. 방에서는 전선공, 납땜하는 사람, 조사자inspector로 구성된, 14명의 인부가 일했다. 많이 일할수록 많이 버는 구조로서, 손이 빠른 일꾼이 느린 사람을 책망해 생산을 늘릴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행동했다. 또 그들은 고자질꾼이 되지 않도록 감독자들에게 일꾼들에 해가 될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고, 조사자는 너무 깐깐하게 굴지도 않았다. 즉 일꾼들 그룹에 속하기 위해서는 이런 사회적 기준 내지는 압력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각 노동자의 생산량의 정도는 그룹의 비공식적 조직에서의 그의 위치를 반영한다. 

무엇이 노동자들이 협업을 원치 않도록 만드는가 

회사 내에서 형성되는 비공식 조직의 존재를 의식했을 때 연구자들은 거기서 공유되는 믿음이나 신조beliefs and creeds, 그들이 의식하지 않은 채 협동을 가능 혹은 가능하지 않게 하는 품행규칙social codes and norms of behaviour들에 관심이 생겼다. 그들은 노동자 집단이 전체 조직을 구성하는 다른 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연구했다. 이런 관점을 채택했을 때야 많은 이상한 문제들이 좀 더 이해가능해진 것이다. 

많은 이들은 돈이 행동의 동기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만족을 원한다. 돈은 그러한 사회적 인정의 일부일 뿐이다. 


Crow, Graham. 1997.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the Historical Sociology of Barrington Moore.” pp. 31-50 in Comparative Soci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the Three Worlds. London: Macmillan Press. 요약번역 



“거대한 전환”이 일어난 시기를 살아간 몇몇 고전 사회학자들은, 당시를 풍미한 단선적 발전을 가정하는 사회진화론과는 거리를 두고자 했다. 맑스는 서유럽에서의 자본주의의 발흥이 그 자신들의 역사적 배경과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역사철학적 이론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베버는 더 했다. 여태까지의 유럽 문화의 발전은 전혀 순환적이지도 않고 단선적으로 발전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31)

물론 역사사회학 거대이론의 함정은 일반화를 아예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버와 맑스 또한 역사에는 어떤 패턴이 식별 가능하다고 보았다. 배링턴 무어 역시 그러한 전통에 따랐다. 그의 책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 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1967)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세 가지 근대 세계로의 도정을 구별한다. 

무어는 고전사회학자들과는 다르게 중국, 일본, 인도의 근대화 발전도 중심적으로 분석한다. (32)

역사사회학 분야에서 무어의 작업은 매우 영향력있었다. 스카치폴(Skocpol)의 혁명에 대한 비교사회학 연구는 무어의 작업에 매우 빚지고 있다. 무어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폭력과 강압이라는 주제는 마이클 만(Mann)의 저작과 공명한다. (33) 


- 배링턴 무어의 근대 세계로의 세 가지 길 

배링턴 무어가 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에서 제기한 테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前)산업화 세계에서 근대 세계(modern world)로 진입하는 세 가지 길은 1)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와 2) 우파 독재(파시즘) 3) 좌파 독재(공산주의)가 있으며, 이 길은 산업화를 감독한 정치 체제(political régime)의 본성에 의해 구분된다. 영국, 미국, 프랑스는 1)의 경우이며, 독일과 일본은 2)의 경우, 러시아, 중국은 3)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이후 성공적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은 매우 높은 정도의 경제사회영역에 대한 직접적인 국가개입을 했다. 

이는 전통적인 단선적 진화론과 배치된다. 그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에 필연적 연결이 있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민주적 제도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힘들의 균형은 매우 불안하고(precarious) 역사적으로 흔치 않은 것이다. (34) 

무어는 근대화로 제일 피해를 본 계층은 시골 인구들이라고 주장한다. Social Origins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근대로 가는 길에서 농촌 계급이 수행한 중요한 역할이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은 모두 자본주의 혁명을 겪었다 할 수 있고 여기서 민주주의가 산출된 것은 엘리트들 사이 힘의 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프랑스 혁명, 내전(civil war) 등의 정치적 격변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피로 얼룩진 독재를 통한 근대발전과 평화로운 민주적 근대발전을 비교하기 마련인데 무어는 이런 심플한 이분법을 거부한다. 근대화의 비용은 값싸지 않다. (35)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불러온 사회/정치적 혁명에 대한 무어의 대부분 설명은 그것에 선행한 경제적 변화, 특히 농업의 상업화에 집중되어 있다. 소작농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상층 지주계급의 정치적 헤게모니는 붕괴되어야 한다. 소작농은 시장에서 농작물을 판매하는 농부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농촌계급은 성장한 도시상인계급과 제조업자 그룹을 마주쳤고 이러한 그룹들이 지배엘리트나 지주계급의 배타적 성장을 막은 것이다. (36)

배링턴 무어는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는 유명한 주장을 던진다(“무어는 강한 부르주아지의 존재를 민주정치의 발전에 필수적인—그것만으로는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조건으로 본다. 근대화 과정을 늦게 거친 나라들에는, 부르주아지는 약하고 사회적·정치적 발전에서 중요하지 않은 역할을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36-7쪽). 보수적인 근대화를 겪은 나라들은 상업, 산업계급이 약했다. 무어는 일본, 독일에는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농업의 상업화와 자본주의적 공업화의 진척”을 자리잡게 했으며 “이는 ‘기존의 사회 구조를 가능한 한 보존하려는’ 점에서 지향에서부터 권위주의적이고 ‘반동적’”이라고 논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을 가능하게 한 군국주의(militarism)와, 외부의 위협에 대한 내부의 일치단결이 파시즘과 외부로의 확장 정책을 이끌었다고 한다(37쪽). 

공산주의(좌파 독재)의 경우 소작농들의 혁명이 구질서를 싹쓸이해버렸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강력한 농업적 관료제가 농업의 상업화와 산업화를 억눌렀다. 무어는 지주-소작농 사이 존재한 이 약한 고리가 농민 반란의 잠재력을 키웠다고 본다. (37)

즉 너무 강한 왕권이나 지주 귀족 계급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균형과, 적절한 기업농(commercial agriculture)으로의 전환이 민주적인 근대화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조건이 부재한 곳에서 근대화 과정은 권위주의적 정치 시스템에 의해 주도되거나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인도의 경우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다르게 평화로운 변화를 겪었다. 한데 인도는 그럼으로써 과거와 급진적인 단절을 할 수 없었고, 만성적인 후진성이라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38) 


- 혁명의 비교사회학 

프랭크(Frank)는 무어를 비판하는데, 논지는 진짜 이분법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대 자본주의/사회주의 독재체제가 아니라 민주적/독재적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산업화를 겪은 국가들의 정치적 체제의 차이를 이차적 현상으로 격하시키려는 프랭크의 시도는 무어의 분석을 아주 좁게 바라보는 것이다. (39)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이후 산업화를 겪은 나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강제적이었다. 첫째는 초기 산업화 국가들보다 훨씬 더 근대화에서의 국가의 지도와 압력이 매우 컸다는 것이고. 둘째는 소련의 사례와 같이 외부의 먼저 산업화한 국가의 군사적 위협으로 산업화가 강제됐다는 것이다. 

무어는 보수적 근대화를 위로부터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을 아래부터의 혁명으로 지칭한다. 하지만 그자신도 이런 위/아래로의 혁명 구분에 회의가 있었다. 왜냐하면 후자에서 농민은 중요한 혁명의 행위자이나 전자에서는 아니기 때문이고 그들의 혁명은 공산주의적 버전의 위로부터의 산업혁명의 길을 내준 역할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0) 

스카치폴은 무어의 파시즘적/공산주의적 근대로의 길이라는 구분을 받아들인다. 이는 초기의 계급 구조와, 혁명적인 정치적 갈등, 그리고 궁극적인 정치체계의 결과라는 세 패턴을 식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부르주아적 길’을 기각한다. 이는 오직 잔여적 범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보기에 영국, 프랑스, 미국은 비슷할 수 있으나 똑같은 과정을 밟지는 않았다. (41)

스카치폴은 ‘철과 호밀의 연합’—독일에서 드러나는—이 역시 19세기 초 영국에서도 드러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영국에서 민주화로의 저항이 실패한 이유가 계급이익은 물론 계급역량의 문제에도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즉 국가구조라는 정치적 요인 자체가 지주계급의 정치적 역량에 독립적으로 영향을 준 변수이다. 

무어의 문제는, 스카치폴이 보기에, 사회적 혁명과 정치적 혁명 간의 구분을 잘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혁명은 급격하고 근본적인 사회와 계급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계급에 기반한 반란을 수반한다. 정치혁명은 국가구조를 바꾸나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꼭 계급혁명을 동반하지 않는다. 스카치폴은 다음과 같은 그룹화를 시도한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성공적인 사회혁명의 세 가지 긍정적 케이스다. 영국, 일본, 독일은 비혁명적인 정치적 위기와 변화를 겪은 국가들이다. (42)

스카치폴은 역시 무어의 방법론이 간사회적 관점을 충분하게 지니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외부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없다. 스카치폴은 외국의 압력을 중시하는데, 실제로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혁명 전에 외부 선진국의 군사적 압력을 받았던 것이다. Foster-Carter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무어의 이론은 “식민지의 자원을 추출하고 그것을 세계체제의 다른 부분으로 이전시키는 흡수 효과를 강조하는 제국주의 이론이나 종속 이론과 공유하는 바가 별로 없다.” (43) 


Jan Nederveen Pieterse. 2001. Development Theory, pp. 18-25. London: Sage.


본 텍스트는 진화론부터 발전론까지 그에 관한 담론이 어떻게 서구의 패권에 의해 형성되고, 지식과 권력이 어떻게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다룬다. “서구 전통의 시작에서부터, 간문화적 비교는 역사의 개념과 상호작용했다.”(18)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된 성장과 발전의 유형을 만들어 비교를 진행했으며 당대의 미개인들을 한때 그리스인이 발전 과정에서 그러했던 단계로 상정함으로써 현재까지 이어지는 진화론-근대화론-발전론의 서구-비서구 이분법적 도상의 원형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비교문화 분석은 중립적이었던 적이 전혀 없다.”(18-9) 빅토리아 시대의 인류학은 그 당시 영국 제국 담론의 일부를 이루었다. “비교방법은 진화론의 하인으로 기능했다.”(19) 허버트 스펜서가 주도해 펴낸 «기술사회학»(Descriptive Sociology)이 좋은 예인데, 이 책은 당시에 수집할 수 있는 모든 경험적 자료를 동원해 현존하는 혹은 절멸한 사회의 사회적 사실들을 모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김덕영은 이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비교사회학 방법론은 아니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스펜서가 경험적 자료들로부터 귀납적 추리를 얻어내기보다는 이미 자신이 상정한 사회의 발전 일반이론을 예증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이다(김덕영, «사회의 사회학», 길, 2016, 118-23). 스펜서의 사례는 자신이 미리 상정한 진화론적 사회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비교사회학 방법론을 사용한 것이지만, 이외에도 스펜서가 당대에 사용 가능했던 식민지나 비서구 지역의 견문록, 탐험록 따위의 기록들이 외부의 타자들을 분류하고 더욱 잘 통치하기 위한 영국 제국의 인식관심에 부합했다는 점을 따져볼 때 지식과 권력의 이중주(二重奏)가 더욱 잘 드러나는 듯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인류학이 영국 제국의 담론이라면, 근대화 이론은 미국 패권의 담론이다. 근대화 이론의 맥락에서 근대성modernity은 한번 변화를 겪는데, 20세기에 이르러 근대성이라는 단어는 진보improvement나 효율성 따위와 동일어가 된다. 여기서 봉건제는 유럽적 맥락에서는 근대로의 중간 단계나 선도자를 의미하나 미국적 시각에서는 일반적으로 퇴보를 의미하게 된다. 이는 북미 지역과 유럽 지역의 상이한 근대화 과정에 기인한다(21). 근대화 이론에서 변화는 언제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근대화가 내재적이며 필연적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근대화 이론은 진화론과 다르다. 따라서 근대화라는 열차에 오르기 위해 선진국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22). 여기서 미국식 근대화론이 “기독교적 메타포”와 결합하게 된다. 
    사회과학에서 발전에 대한 담론은 발전주의냐 아니면 그 대안이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발전주의에 대한 것이냐가 주가 되어왔다. 이를테면 고전적 맑시즘이 제시한 경직된 사적 유물론의 발전단계 및 결정론은 서구 맑시즘에서는 거부되나 그람시는 여전히 급진적 근대화론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23). 
    1968년 이후 미국의 패권이 줄어들고, 파슨스류 사회학에 대한 비판이 커져가며 근대화론은 그 매력을 잃어갔다. 키워드는 발전development가 되었는데, 담론은 경제적이고 자민족중심적인 개념에 한해 축소되었다. 발전 담론은 이전 시기의 사회변동에 관한 담론보다 좀 더 중립적이어 보인다. 그러나 근대화론이 18세기의 정치적 합리주의에 절어 있듯이 발전론은 19세기의 경제적 합리주의에 절어 있으며, UN의 선진국highly developed, 중진국, 후진국least developed 구분은 또한 진화론의 발전단계에 상응한다(24). 


Frank, Andre Gunder. 1966. “The 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 Monthly Review. 41(2): 17-30. 

동일한 글이 염홍철 편저, 『제3세계와 종속이론』, 한길사에 실려 있음. 



요약 


프랭크의 글은 종속 이론을 다루고 있다. 글은 기존의 발전 담론이 오직 선진국의 경로만을 고려한, 현재의 저발전 국가들에게 적용될 수 없는 임의적으로 제시된 도상임을 비판한다. 그러한 기존 발전 담론의 접근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면서 글은 메트로폴리스-위성(satellite)의 기본적 관계가 국제적 수준에서는 물론이고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 사회, 정치 제 영역에까지 침투해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한 메트로폴리스-위성 관계 구도를 전제로 하여 이 글은 다섯 가지의 핵심 가설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가설은, 어떤 곳의 위성도 아닌 발전한 세게의 메트로폴리스와는 대조적으로 국가 수준(national)의 혹은 종속적인 대도시(metropole)는 그 위성적 상태 탓에 발전이 제한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그들이 메트로폴리스와 맺고 있는 연결이 가장 약해졌을 때 그들 도시는 최고의 경제적 발전, 특히 고전적 자본주의 발전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남미에서 그런 연결이 약해졌을 때는 17세기 유럽의 불황, 나폴레옹 전쟁, 1차대전, 30년대의 대공황, 2차대전이 있다.(두 번째 가설의 따름정리는 메트로폴리스가 공황에서 회복될 때 지역의 발전은 다시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 가설은 현재 가장 저발전적이고 봉건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곳은 이전 메트로폴리스와 가장 깊은 연관을 맺는 곳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가설은, 그것이 지금 플랜테이션이나 아시엔다가 됐는지에 관계없이, 라티푼디움(latifundium)이 국내시장이나 세계시장에서의 늘어난 수요에 부응해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토지, 자본 및 노동력을 늘려 더 많은 제품을 공급할 상업 기업으로 창안되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가설은, 현재 고립되고, 봉건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최저 생계비에 기반한(subsistence-based) 침체된 라티푼디움들은 그들 상품의 세계시장에서의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막스 베버, 「관료적 지배의 본질과 그 전제조건 및 발전경로」, 『막스 베버 사상 선집 I - ‘탈주술화’ 과정과 근대: 학문, 종교, 정치』, 전성우 편역, 2002, 나남출판. pp.361-425. 일명 “관료제” 논문 요약정리. (이 논문은 Wirtschaft und Gesellschaft 2부 제9장 <지배사회학> 제2절의 번역이다.) 

목차: 1. 근대 관료제의 특수한 기능방식 / 2. 관료의 지위 / 3. 관료제화의 전제조건과 부수현상 / 4. 관료적 기구의 지속성 / 5. 관료제화의 경제적-사회적 결과 / 6. 관료제의 권력위상 / 7. 관료적 지배구조의 발전단계 / 8. 교육의 ‘합리화’ / 결론 


1. 근대 관료제의 특수한 기능방식

I) 관청들은 법률 또는 행정규약 등과 같은 법규를 통해 일반적으로 규정된 명확한 관할권한을 가진다. 이는 다음을 포함한다: ㄱ. 조직 목적 달성 위한 활동은 의무로 명확히 배분 ㄴ. 명령권 역시 배분되어 있고 강제수단은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음 ㄷ. 상기 목적 위해 일정 자격의 인력이 임용됨. 베버는 위의 세 가지 요소가 시장에서는 관료적 기업을, 공법적 지배에서는 관청을 구성한다고 본다. (363)

II) 관직위계체제와 심급제(상급관청은 하급관청 감독)의 원칙. 이것이 발전하면 관직위계체제는 단일지도체제(monokratisch; 중앙집권체제)로 조직화. 이 체제에 따라 피지배자는 하급관청의 결정에 대해 상급관청에 항소할 수 있음. 

III) 근대적 공무수행은 공문서에 의거해 이뤄지며 서류들은 정본 또는 초안의 형태로 보존된다. (364) 관청의 물적 재화와 문서체제가 국, 과 등의 부서를 형성한다. 관료제에서는 원칙적으로 사무실과 사적 주거공간이 분리되어 있다(=공무활동과 사적 활동의 분리). 

IV) 관료제의 전문화된 직무활동은 전문훈련을 요한다. V) 관료제가 발전하면 공무활동은 관료의 전 노동력을 요한다. 이는 겸직 혹은 명예직과는 다르다. (365) VI) 공무수행이 법규정의 구속을 받는다는 것은 근대적 공무수행의 가장 중요한 본질에 속한다. 


2. 관료의 지위 

앞에서 언급한 상황이 관료의 내적 그리고 외적 지위에 대해 아래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 

1) 관료의 외적 지위 
관직은 직업이다. 왜냐하면 ㄱ. 관직은 규정된 교육 이수를 요하고 ㄴ. 시험의 통과가 임용의 조건이고 ㄷ. 관료의 지위는 의무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ㄷ의 경우가 중요한데 왜냐하면 “관직을 수임한다는 것은 …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는 대가로 관직에 대한 특별한 충성의무를 떠맡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료들의 의무는 봉건 사회에서 보이는 특정 인물을 향한 것이 아닌 추상적인, 비인격적이고 객관적 목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추상화된 목적 뒤에는 그것을 정당화하는 문화가치이념들이 존재하고, 그것은 과거의 초/세속적 “인격적 지배자의 대용물”이다. (367)

2) 관료의 개인적 지위

ㄱ. 근대 관료는 피지배자에 비해 높은 ‘신분적’ 사회적 평판을 추구하고, 대체로 그것을 향유한다. (베버는 여기서 어떤 조건 하에서 관료의 실질적 사회적 지위가 제일 높아지는지를 또한 밝힌다.) 관료층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낮은 경우는 보통 신개척지에서 그러하다=미국의 예. (368)

ㄴ. 임명직과 선출직: 순수유형(ideal type) 하 관료는 ‘임명’된다. 선출은 형식적일 수 있지만 형식적으로는 위계적 종속관계의 경직성을 완화시킨다(왜냐하면 선출직 관료는 상급자에 의해 원칙적으로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베버는 임명된 관료가 통상 일을 더 잘 한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그의 순수한 능력이 이후 선발, 진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행정수반뿐이 아닌 다른 공무원도 선출한다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으나 개혁성을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사정이 달라진다. 물론 이러한 “‘개인적인 천재의 지배’는 통상적 선출관료제가 가진, 형식상으로는 ‘민주적’ 원칙과는 모순된다.”(371)

ㄷ. 종신고용의 원칙: 종신고용 즉 자의적 해고, 전출 방지하기 위한 법적 보장제도는, 관료가 사적 이해관계에서 해방되어 객관적으로 자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립성 원칙이 항상 관료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봉건적 사회에서는 통치자의 예속이 “생활양식의 신분적 귀족스타일의 유지를 더욱더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ㄹ. 화폐급료: 관료는 보통 고정적 봉급 형태의 화폐급료를 정규적으로 받는다. “식민지를 통한 영리기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들에서는 관료직이 경제적 측면에서 가진 상대적 안정성과 사회적 존경이 제공해주는 심리적 보상으로 인해 관직이 선호되며 따라서 이런 나라들에는 관료봉급이 비교적 낮게 책정되어도 충원에 별 문제가 없다.”(373) 

ㅁ. 호봉승진 등에 대한 내용. 관료는 하위직으로부터 상위직으로 승진하는 경력을 기대한다. 그런데 장관 등의, 인격적이고 정신적인 자질이 중요한 직위는 시험이나 교육과는 다른 방식으로 충원된다. 


3. 관료제화의 전제조건과 부수현상

1) 화폐경제적 그리고 재정적 전제조건 
- 베버는 화폐경제의 발달이 근대 관료제 발달의 조건 중 하나이며, 이것이 근대 관료제의 행동양식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근대 이전 발전한 관료제의 경우 모두 관료들의 봉급이 현물로 지급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 현물이 불규칙적으로 급여될 때 관료들은 그들의 구역 내 피통치자들에게 직접 자신의 수입을 확보하려 들 수 있다. 이는 매관(賣官)을 초래할 수 있다. “통치자 자신이 관장하던 시설 … 조세권과 업무집행권 등을 관료에게 … 어떤 형태로든 위임하는 것은 관료적 조직의 순수유형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 베버는 연금이나 토지, 연금 자원 등에 대한 경제적 사용권이 종신적으로 관료에게 수여된 경우 그것을 ‘봉록적 관직체계’라고 부른다. 이는 관료적 조직—특히 위계적 종속관계를 약화시킨다. 
- 따라서 절대적인 직접적 강제수단[예: 노예]이 아니라면 보장된 화폐봉급이 경험적으로 관료제의 성공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확고한 조세체게—화폐경제—가 있어야 관료적 행정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이는 도시국가에서 관료제가 잘 발달한 이유기도 하다). (374-380). 

2) 행정업무의 양적 발전
- 행정업무의 특수한 발전양상이 행정 관료제화의 진정한 기반이다. 
- 베버는 대형국가와 대중정당이 관료제화의 고전적 기반을 형성한다 봤다. 
- 대형국가는 자신의 기능의 범위를 유지, 확대하고 대외적 접촉영역을 키우고 행정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관료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대중정당이 관료화되어 있다.(독일의 경우는 SPD) (380-383) 

3) 행정업무의 질적 변화
- “관료제화를 촉발시킨 더 중요한 계기는 … 오히려 행정업무의 내포적 그리고 질적 확대와 내적 발전이었다.”
- 상비군의 창설이 대부분 관료제화를 촉진시킨 요인이다. 그러나 근대국가에서는 행정에 대한 요구 수준 자체가 점차 상승하면서 이것 또한 관료제화를 촉진시켰다. 
- 부의 증대, 이를 통한 생활방식의 정교화는 일반적 욕구수준에 영향을 미치고 관료제화를 더욱 촉진한다. 
- 순수한 정치적 요인으로는 사회가 질서와 보호를 희구하는 경우이다. (경찰) 다른 중요한 것은 이른바 ‘사회정책적’ 과제이다. 
- 관료제화를 촉진하는 기술적 요인들: 근대 특유의 교통수단(철도, 전화, 육상,해상항로). “서구의 근대국가가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관리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전신전화망을 지배하고 우편과 철도를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384-386)

4) 관료적 조직의 기술적 우월성
- 관료적 조직이 확산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순전히 기술적으로 우월하기 때문
- 여기서 베버는 ‘명망가행정’(로마, 영국에서 나타난)과 ‘관료행정’을 구분한다. 명망가행정과 비교하면 관료행정이 훨씬 효율적이다. 

- 오늘날 신속한 관료적 행정업무를 무엇보다 요구하는 계층은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계층이다. 

“그러나 관료제화가 제공하는 가장 큰 이점 중의 하나는, … 행정업무를 순전히 객관적 기준에 따라 분할하는 원칙을 실시하는 데 가장 적절하다는 점이다. 이 경우 ‘객관적’ 업무처리란 우선, ‘상대방의 신분을 고려하지 않고’ 업무를 계산 가능한 규칙들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신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장’의 구호이기도 하고 또한 모든 적나라한 경제적 이익추구행동의 구호이기도 하다.”(388) 

- 관료제는 자본주의에 매우 유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탈인간화되면 될수록 고도로 발전하게 된다. 

- 신성화된 전통에 구속되어 있는 법 발견 유형: 1) 카리스마적 재판 2) 카디재판 3) 경험적 재판. 베버는 여기서 영국적 법전통과 독일적 법체계를 비교한다. 영국이 합리적 법체계를 지니지 않고 경험적 재판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독점적 명망가계층인 변호사조합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경우는 중앙집권화가 결여되었으면서 동시에 관료제화가 진행되었다. 

- 394쪽: 창조적인 활동에의 요구와 관료적 업무수행의 객관성, ‘국가이성Staatsräson’이라는 객관적 관념
- 395쪽: 민주주의적 입장의 아이러니 
“… 법적 평등과 자의로부터의 법적 보호에 대한 욕구는 행정의 형식적으로 합리적인 객관성을 요구[한다].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이성적 요구와는 달리, 만약 어떤 특정한 문제에 있어서 감정적 정서가 대중을 지배할 경우, 이들의 ‘정서’가 요구하는 바는 … 구체적 사례와 구체적 인간에 준거하는 실질적 ‘정의’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는 관료적 행정의 형식주의 및 규칙에 구속된 냉철한 ‘객관성’과 불가피하게 충돌하게 되며,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들이 합리적으로 요구한 바를 감정적으로는 거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395)

5) 행정수단의 집중
- 군대의 사례(396-398) 군대의 관료제화는 유산계층의 특권이었던 군복무를 무산계층에게 떠넘기는 과정과 함께 진행되었다. 동시에 인구, 경제가 발전하며 영리활동 계층은 점차 전쟁목적에 동원될 수 없게 되었다. 
- 경영수단의 집중화; 대학(아카데미아)의 경우 398-399쪽.

6) 경제적-사회적 차이의 완화와 평등화 
- 국가차원의 관료제화, 민주화는 그 행정이 경제적임에도 공공재정의 현금 지출이 상승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 당 차원의 관료제는 지역 명망가 집단의 저항에 부딪힌다. 
-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개념은 피지배자들의 법적 평등이라는 원칙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서로 상반되는 요구를 도출한다: 1) 누구나 어떤 관직이든 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폐쇄적 관료신분집단 발전을 저지해야 한다는 요구 2) 여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료들의 지배권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요구. 

- 베버는 소극적 민주화와 적극적 민주화를 구별하는데 여기서 전자는 ‘피지배자의 평등화의 진척’이다. 


4. 관료적 기구의 지속성

- 확립된 관료제: 가장 파괴하기 어려운 사회조직체. 
- 질서의 기초: 문서와 기강(숙달된 활동영역 내에서 어김없이 복종하려는 관료의 자세)
- 관료제는 지배권을 장악한 사람에게는 그가 누구든 간에 아주 쉽게 그를 위해 봉사한다. (e.g. 비스마르크의 경우) 관료적 지배기구는 그것이 근대적 정보수단을 장악하는 한 혁명을 점차 불가능하게 한다. 다만 쿠데타만이 가능해질 뿐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성공한 모든 정변은 결과적으로 쿠데타였던 것이다.” 


5. 관료제화의 경제적-사회적 결과 

- “우리가 매우 주목해야 할 것은 이미 여러 번 논의되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 논의할 아래와 같은 사실이다. 민주주의 그 자체는 불가피하게 그리고 비록 본의 아니게 관료제화를 촉진시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바로 촉진시키기 때문에 오히려 민주주의는 관료제의 지배를 반대하는 관료제-적대세력이며, 또 적대세력으로서 관료적 조직에 상당한 파괴와 장애를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6. 관료제의 권력위상

- 국가들에서 관료조직의 권력이 증가하는지는 미리 따지기 어렵다. 관료층의 수가 늘어난다고 관료제의 입지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베버는 일반적 사항을 고찰한다.
- 완숙한 관료제의 권력지위는 언제나 높다. ‘주인들’(데모스, 의회, 혹은 대통령이건 상관없이)과 훈련된 관료와의 관계는 언제나 아마추어와 전문가간의 관계이다.
- 모든 관료제는 직업적 지식소유자의 우월성을 강화시키려고 한다 - 비밀유지라는 수단을 통해. “<직무상의 비밀>이라는 개념은 관료제 특유의 발명품이며 관료들이 이러한 직무상의 비밀유지라는 수칙만큼 열렬히 옹호하는 것도 없다.” 관료제의 비밀유지동기는 객관적 동기에 의거한 수준을 넘어서 작동한다.

- 입헌군주와 절대군주 (절대군주는 전자에 비해 관료들에 더 의존적이다.) 여기서는 비전문가로서의 통치자와 관료들간의 갈등 문제가 다뤄진다. 

- 관료의 실무지식을 능가하는 것은 단 하나, 경제 영역에서의 사경제적 이해당사자들의 실무지식뿐이다. 


7. 관료적 지배구조의 발전단계 

- 합의체적 상임 자문 및 의결기구: 통치자는 관료의 전문지식을 활용하면서도, 그들에게 권력을 양보하지 않고 통치자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것을 설치한다. (e.g.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경우) 

- 관료제 이전의 기구: 원로정치가나 명망가들이 참여하는 장로회의가 전형적 형태. 
그런데 이러한 합의체행정은 의회제도가 발전하고, 행정 자체의 잘 짜여진 통일성이 필요해질 때 사라지게 된다. 


8. 교육의 합리화 

- 교육과 교양(Bildung)의 성격에 대해 관료제화가 끼치는 영향
- 민주주의는 스스로가 촉진시킨 관료제화의 다른 모든 부수 현상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전문시험에 대해서도 이율배반적 입장을 취한다.(421) 

- 오늘날에는 족보 대신에 학력 자격증이 그 역할을 한다.
- 학력자격증 획득에 필요한 교육과정은, 재능(카리스마)보다는 재산이 더 중요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 문화인간형과 전문인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