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왜 한국 대학은 부동산 산업으로 분류되어야 하는가?
  • 2014년 교육부 추진한 전국 4년제 대학 204곳의 2015학년도 정원 감축분 8207명 중 7844명(96%)이 지방에 몰려 있음. 
  • 수도권 대학의 경쟁력: 입지 조건 때문. (저자 강준만은 이를 지대추구rent seeking로 간주.) 예시: 지방대 대학에서 잘 하는 사업을 수도권 대학이 벤치마킹해 추진하면, 함께 하던 산업체 등이 수도권 대학으로 옮겨 간다(경동대 부총장 전성용; 146쪽). 
  • 정부의 재정지원 분배: 철저히 서울 중심. 2013년 서울대가 받은 고등교육 재원은 전체의 6.8% - 경북대보다 두 배 이상 많음. 학생 1인당 지원금으로 보면 서울대는 4281만원, 경북대는 1324만원. 사립대학 역시 마찬가지. 

  • ‘교육분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혁신도시 사업은 실패하기 쉬움: 2015년 3월, 전국 10곳 혁신도시 공공기관 임직원 2만여 명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전국 평균 23.1%에 불과; 자녀교육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은 현금 혜택이나 아파트 특별분양 등 파격적 혜택을 받음. (예: 제주도는 자녀가 고교 전학, 입학해 1년 이상 다니면 최대 백만원 장려금 지급. 대구, 울산시, 충북시, 원주시 비슷) 153-5쪽. 
  • 혁신도시 이주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특별분양 등 혜택 제공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아파트를 되팔아 수천 만원의 시세차익 챙김. 2014년 말, 특별분양 받은 공공기관 직원 7666명인데 이들 중 863명이 전매제한기간 1년 끝난 뒤 아파트 팔아 수천만원 이익 챙김. 

  • 서울 입지조건 때문에, 지방대들이 역으로 수도권 캠퍼스 개설하는 것이 붐을 이룸. 예시: 청운대, 경동대, 세명대, 원광대, 한려대, 예원예술대, … 등 13개교 (162쪽)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원래 충남 금산에 있었던 중부대가 고양캠퍼스를 만들자 충남 주민들이 지역경제 이유로 반대 시위를 벌인 것. 이는 지역의 이익과 지역민의 이익이 다른 “구성의 오류” 때문: 지방대학이 망하는 것은 지방의 손실이지만,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는 것은 지역민의 이익. 각 가정이 누리는 이익의 합산이 지역의 이익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손실이 되는 ‘구성의 오류’(164쪽). 
  •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 지방 지자체들의 서울 학숙 짓기 경쟁. (164-6쪽). 아예 지방 내에 명문대 입학 전제로 공부시키는 학숙 또는 인재숙도 있음. 대표적인 예가 순창군의 옥천인재숙. 2006년 순창군은 17년 만에 처음으로 2명 서울대 합격자 배출. 2007년 지역주민 1000명 설문조사 시 83.2%가 인재숙이 순창군에 필요하다 응답. 
  • 그러나 ‘인재를 서울로 보내면서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할 수 없음. 서울로 간 인재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음(173쪽). 


pp. 40-42
  • 대학 진학률이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이유: (1) 1995년 5.31 교육개혁 => 대학설립준칙주의 => 대학의 수 증가. “미용, 간호조무, 제빵 등 직업훈련학원에서 학원비만 내면 배울 수 있는 기술들이 대거 대학 안으로 흡수되었다. 대학 등록금을 내야 배울 수 있게 됨으로써 기술 습득 비용이 증가했다.”; (2) 한국의 학력주의 문화. 
  • 학력주의와 ‘신학력주의’(1997년대 이후 - IMF가 결정적)의 차이: 학력주의 사회는 고성장 사회여서, 대학 졸업 이후 교육비 쉽게 회수 가능. 하지만 지금은 졸업 취업 사이 공백기간이 길고, 비정규직이 늘어나 그것이 어려움. 하지만, 대학 졸업장으로 취업을 잘 할 수 있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은 학력주의 사회나 신학력주의 사회 모두에서 동일. 

p. 50
  • 한국의 가계부채 현황 + 교육단계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p. 60
  • 민간 영역에서 공교육비 부담 비율, 한국이 OECD에서 칠레 다음으로 높음. 
  • 등록금이 비싸진 계기: 등록금 증가한 시기에, 진학률도 증가함. 5.31교육개혁 당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전환: 공교육 시장화와 학교 민영화 

p. 74
  • 2009년부터 한국장학재단 출범. (이전에는, 국가부처 여러 곳에서 학자금 대출 사업 진행; 대출처도 은행 사학재단 등 다양) 

pp. 80-83
  • 학자금 대출의 일반적인 형태: (1) 공무원연금공단 연금담보대출 (주로 공무원의 자녀들이 받는다); (2) 한국장학재단 대출. 소득분위 8-9까지 이용 가능; (3) 정부지원 학자금대출 불가한 경우, 제3금융권을 사용하기도 함. 부실대학 학생들의 경우 이걸 이용하기도; (4) 부모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라면, 기업에서 자녀 학비 대주는 복지 시행도 많음. 
  • “빈곤 프리미엄”: “20세 이후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거나 부모가 수입이 불안정해서 신용이 낮을 경우 자식은 더 높은 이자율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고 결국 더 많은 돈을 상환하게 된다. 이것을 빈곤프리미엄이라고 부르는데, 가난할수록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뜻한다.” (83쪽) 

p. 132
  • “든든학자금대출은 비면책 채권이기 때문에 개인이 파산신청을 하더라도 갚아야 한다.”
  • 든든학자금대출을 연체하면 한국장학재단이 소송을 제기함. (그걸 연체한다면, 학생들은 부실채무자가 되는 것임.) 

p. 139 
  • 연구자 백진영: “한국장학재단의 신용 교육 프로그램이 채무자인 학생에게 ‘스스로 관리하고 책임지는 것’을 요구하며, 연체의 원인을 상환이 불가능한 경제적 조건이 아닌 개인의 부주의나 실수로 돌림으로써 신용관리를 통해 연체와 같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선전하는 방식에 대해 이는 대학생을 신용관리 주체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pp. 149 ff (이 부분이 학자금대출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서 중요함) 
  • 학자금 대출 시작: 1960년 정부대여장학금제도. (박정희 정권의 대학장학금법-60년 + 61년의 대여장학금 시행령 및 대여장학금법) 교육기회균등 이념 실현코자 함
  • 1975년부터 2005년 8월까지는 ‘이자차액보전제도’, 그 다음 05년 9월에서 09년 8월까지는 ‘학자금대출증권발행’, 09년 9월 이후는 ‘재단채권발행.’ 
  • 2000년 기점으로 초반까지 학자금대출은 복지적 성격 강함. 하지만 2000년 이후 새로운 대출 산업이 됨. 
    • 이에 대한 두 가지 큰 전환점: 1990년 이후 금융시장 확대 및 IMF. 그리고 2005년 이후 학자금 대출이 증권으로 발행됨. 
    • “이 시기는 학자금 대출이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하던 시기이다.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 기관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서 대학생은 새로운 소비집단이자 금융소비자로 호명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시장이 커지고, 1997년 말 IMF라는 위기를 경험하면서 집단 휴학을 막고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편으로 대학생, 학자금 대출 영역에 국가적 경제위기를 일부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154쪽)

pp. 163 ff
  • “학자금 대출은 금융의 성격을 지닌 복지이거나, 복지적 성격을 지닌 금융이다.” ... “복지와 금융, 이 불편한 동거는 비단 교육영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 이런 방식은 빈곤이 금융을 통해 새롭게 통치되는 방식이자, 사회적 약자를 채권자로 몰아넣는 일이다. 학자금 대출은 복지라는 착한 가면을 쓴 금융상품이다.”(164쪽) 
  • IMF 이전의 학력주의 사회: ‘가족-개인’의 부채관계라 할 수 있음. 쉽게 말해 부모가 소 팔아서 자식을 대학 보내는 것. 하지만 신학력주의 사회에서, ‘금융권/정부(채권) - 대학생/가족(채무)’ 식의 방식으로 이행함. “오늘날 이 사회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빚지는 주체’가 되기를 요청하고 거대한 채무자 집단을 양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166)
  • 송제숙 <복지의 배신>, IMF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복지시스템은 일종의 사회통치술. (푸코 ‘통치성’ 개념 관련인 듯) 

p. 167 신계급으로서 학생-채무자 
  • “부채인간” -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개념. “자본주의 시스템이 부채경제로 전환되면서 출현하는... 부채인간이란 채무자의 다른 이름으로, 오늘날 금융을 중심으로 재생산하는 금융자본주의에서 채권자-채무자 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계급이다. 이때 채무자란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삶을 빚을 갚아 나가는 삶으로 내면화해서 살아가는 노예적 상태를 뜻한다.”(171쪽)
  • “‘배우는 자’로서의 대학(원)생과 ‘빚지는 자’로서의 채무자의 만남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시고가 기술을 습득하도록 독려하는 사회가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개인이나 가족에게 부채를 지우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 이때 ‘학생-채무자’는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자신의 삶-기술과 위험을 관리하는 주체가 되는 동시에 빚을 지는 주체로 등장한다.”(172쪽)  





매튜 데스몬드. 뉴욕 타임즈. Americans Want to Believe Jobs Are the Solution to Poverty. They’re Not. 2018년 9월 11일. 

URL: https://www.nytimes.com/2018/09/11/magazine/americans-jobs-poverty-homeless.html

기사 번역 



미국인들은 일자리가 빈곤의 해결책이라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바네사 설리번과 세 자녀들은 2015년 6월 집 앞에서 어떤 젊은 남자가 총에 맞아 숨진 후 그들의 마지막 거처를 떠났다. 이스트 트렌튼의 노스 클린턴 거리에 있는 바네사의 부모님 집에서 그들은 잘 곳을 찾았다. 더 안전한 동네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잘 아는 동네였다. 바네사는 집에서 그녀의 2004년 크라이슬러 퍼시피카에 우겨 넣을 수 있는 짐만 챙겨 왔다. 남은 가구는 빈대가 차지하라고 남겨 두고. 


어렸을 적 집에서 바네사는 아픈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는 살면서 거의 항상 마약 중독을 앓고 있었고, 날씨가 따뜻한 달에는 조경사로 일했으며 경기가 안 좋아질 때에는 실업률 상승분에 기여하고 있었다. "이런 것에 익숙해져야죠," 아버지의 마약 중독에 대해 바네사가 말했다. "아빠는 약쟁이지만, 저희를 두고 떠나진 않았어요." 33살인 바네사는 보통 뒤로 쪽진 검은 머리를 하고, 코에 철제 안경을 걸쳤다. 그녀가 스스로를 자랑스럽다고 느낄 때이면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엿보였다. 


바네사의 아버지는 바네사가 아버지 집으로 옮기고 일 년 뒤에 사망했다. 가족들은 거실에 그를 위한 빈소를 만들었다. 한 남자가 있는 빛바라고 큼직한 사진이 쪼그라든 풍선과 조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바네사의 어머니인 제이다는 남편과 같이 푸에트리코 출신이고 62세이다. 그녀는 보행 보조기를 쓴다. 남편의 죽음은 그녀에게 작은 수입만을 남겼고, 바네사는 종종 돈이 없었다. 건강이 악화되자 자이다는 바네사의 아이들만 보살필 수 있었다. 1세의 탈리야, 14세의 자말, 12세의 타티야나. 만약 언성이 높아지고 아이들 중 하나가 할머니에게 예의 없게 굴면, 제이다는 바네사에게 아이들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라고 부탁하곤 한다. 


바네사에게 돈이 있었다면, 아니면 지역의 비영리기구에게라도 돈이 있었다면, 그녀는 모텔이라도 예약했을 것이다. 그녀는 '빨간 지붕 여관'을 좋아했는데, 그녀 생각엔 머물렀던 모텔 중 가장 "안락했던" 곳이었던 것이다. 이층이고 문들이 모두 밖으로 나 있는 그 모텔은 여느 고속도로 모텔과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거기 머물렀을 때 바네사는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너무 시끄럽게 틀었다며 사과하는 두 남자를 지나치며 푸드뱅크에서 가져온 식료품 봉지를 들고 방으로 숙제를 가져가는 아이들을 뒤따랐다. 방 안에서 바네사는 미니 냉장고에 인슐린 약을 넣었고 아이들은 침대를 골랐는데, 매트리스 하나 당 두 명이 잘 터였다. 그런 후 그녀는 작은 의자에 앉아 말했다. "엄마가 얼마나 피곤한지 너희들은 모르지."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바네사는 샤말의 등을 문지르며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이런 괜찮은 집이 있었다면 좋을 텐데." 그리고 그녀는 스타코 마감이 된 벽을 기어가는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이런! 그렇게 좋지는 않네." 바네사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벌레를 툭 쳐서 탈리야에게 날려 보냈다. 그녀는 꺄악 하고 비명을 질렀고 뒤로 홱 움직였다. 집 안에 웃음이 가득 찼다. 


바네사가 모텔을 잡지 못할 때면 가족들은 크라이슬러 자동차에서 밤을 보냈다. 그 스테이션 왜건의 뒷자리에는 꼭 필요한 것들은 모두 있다. 베개와 담요, 빗과 칫솔, 여벌의 옷, 재킷과 보존식품. 그렇지만 아이들의 구겨진 사진 역시 있다. 하나는 꽃을 들고 크림색 드레스를 입은 탈리야의 8학년 졸업 사진이다. 다른 사진에는 퀸시네라(15세 소녀의 생일파티를 하는 남미 문화 - 역주)에 참석한 세 아이들이 보인다. 연한 청색인 클립 나비넥타이가 아기 같은 얼굴에 둘러진 샤말이 무릎을 꿇고 앞에 앉아 있고, 보조개가 깊게 파인 미소를 짓는 타티야나가 뒤에 자리잡고 있다.


아이들이 화가 나거나 수치스러워 달아나지 않기 위해 바네사는 Route 1 도로에 주차를 하는 법을 익혔다. 그 도로는 도시의 끄트머리에 위치해서 정적이 돌고 버려진 느낌을 준다. 그래서 아무도 해가 뜨기 전에 문을 두드릴 염려가 없다. 아침이 오면 바네사는 어머니의 집으로 차를 몰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또 일에 갈 준비를 할 것이다. 


5월, 바네사는 마침내 공공 주택을 찾았다. 하지만 거의 삼 년 동안 그녀는 오늘날의 저임금/고임대료 사회에서 이제야 필요해진 말인 "워킹 홈리스"였다. 그녀는 이제 가정 요양사로 일한다. 엄마가 무릎과 허리가 나가기 전까지 했던 일이다. 그녀의 직장 유니폼은 베티 부프 수술복, 운동화, 그리고 빨간 "바야다 홈 헬스케어" 줄로 걸린 아이디 카드이다. 그녀는 몇 시간 정도 꾸준히 일하고, 자기 일자리를 좋아한다. 리프트로 환자를 침대에서 올리거나 목욕을 시키는 힘든 일이라도. "사람들을 돕는 데 익숙해 졌어요."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나이 든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그들에게 많은 걸 배워요." 그녀의 임금은 그때그때 변한다. 한 환자에게는 한 시간 당 10달러를 받고, 다른 환자에게는 14달러를 받거나 한다. 일이 힘들고 쉽고 해서 급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바네사는 "어쩔 때는 제일 힘든 일거리가 제일 값이 싸기도 하죠"라고 말한다—급여와 관련이 있는 것은 일이 어떻냐가 아닌 환자의 헬스 케어 커버리지와 연관된 상환율이다. 세 아이들을 돌보고 당뇨를 관리한 후에, 바네사는 한 주에 20에서 30시간 정도 일할 수 있다. 그러면 한 달에 1200달러 정도를 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이 잘 풀릴 때이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 경제가 튼튼하다는 말을 듣는다. 실업률은 내려가고 다우 존스 산업 지수는 25000 이상이며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바네사 같은 사람들에게는 "제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이 중요치 않다 (물론 답은 대부분 "구할 수 있죠"일 것이다). 그런 질문 대신 이렇게 질문을 던져 보자.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죠? 대개 답은 이렇다. 살기에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일자리. 


최근 몇십 년간, 미국은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닥 풍요로워지지 못 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두고 "생산성-임금 격차"라고 부른다. 지난 40년간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의 이익이 올랐음에도 대학 교육을 받지 않는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그대로 남았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1973년 미국의 생산성은 77퍼센트 증가했는데, 시급은 반면 12퍼센트만 증가했다. 만약 연방 최저시급이 생산성 증가를 따라 갔다면, 최저시급은 지금의 빈궁한 7.25달러가 아닌 20달러는 족히 넘을 것이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거대한 이윤을 일구는 데에 기여했음에도 그것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주된 이유는 노조의 쇠퇴이다. 20세기 동안, 노조 조직화가 늘어났을 때 미국의 불평등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노조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변화는 조직화된 노동을 무력화시켰고, 기업의 이익 추구를 대담하게 만든 동시에 일반 대중의 권력을 앗아 갔다. 이러한 불균형적 경제는 왜 지난 수십 년간 1인당 복지 지출이 늘었음에도 미국의 빈곤율이 꾸준하게 유지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사회 안전망 프로그램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복지 프로그램은 수백만의 가족들을 매년 빈곤선 위로 끌어 올리고 있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반빈곤 대책 중 하나는 벌이가 괜찮은 직업인데, 그러한 일자리는 바네사 같은 사람들에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 거의 미국 전체 노동력의 삼 분의 일을 차지하는 사천백칠십만 명의 노동자들은 한 시간에 12달러도 채 못 벌고 있고, 그들의 고용주 대부분은 건강 보험을 제공하고 있지도 않다. 


미국 노동통계청은 "워킹 푸어"를 적어도 일 년에 절반을 일하거나 직장을 찾는 빈곤선 아래의 사람들로 정의하고 있다. 2016년, 거칠게 추산해 760만 명의 미국인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대부분의 워킹 푸어는 35세 이상인데, 5% 미만은 16-19세이다. 달리 말해 워킹 푸어는 식료품 가게에서 물건을 종이 가방에 담거나 아이스크림을 퍼 담는 십대들이 아니다. 워킹 푸어들은, 호텔 샤워장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음식 주문을 받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정육점에서 치킨을 해체하고, 24시간 데이케어 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과일을 따고, 쓰레기 통을 청소하고, 한밤 중에 식료품점 찬장을 정리하고, 택시나 우버를 운전하고,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고, 고속도로 아스팔트를 깔고,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물론 식료품을 종이 가방에 담고 아이스크림을 퍼 담는 성인들이다(그리고 그들은 대개 부모들이기도 하다).


미국은 경제적 이동이 자유로운 나라임을 자랑스러워 한다. 미국에서 삶의 기회는 오직 당신의 용기와 야망에 달려 있다고. 하지만 노동 시장에서의 변화는 원래 적었던, 평사원에서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작은 기회를 더욱 축소시켜 놓았다. 예로 들자면, 노동시장은 이중화되어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거리가 늘었다. 만약 고용주들이 사다리를 걷어 올리고 관리직을 대학 학위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열어 놓는다면,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는 것은 승진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대기업들이 많은 일자리 직위를 다른 하청 업체에게 맡기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사무실 바닥에 광을 내거나 쉐라튼에서 시트를 빠는 사람들은 보통 마이크로소프트나 쉐라튼에 고용되지 않고, 회사 안에서 승진할 기회가 없음에 좌절한다. 여기에 더해 예측하기 어려운 일자리 스케줄 때문에 사실 더 긴 시간 열심히 일하는 것은 선택지로 주어져 있지도 않다. 거의 40%의 풀타임 노동자들이 노동 스케줄을 한 주나 그도 안 되는 시간 전에 통보받는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그 아래로 들어갈 수 있는 직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그 일자리는 그렇게 오래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새로운 직책의 절반이 1년 안에 사라지니까. 노동사회학자 아르네 칼레버그(Arne Kalleberg)에 따르면, 영구 해고는 "고용주의 구조 조정 전략의 기본 요소"가 되었다. 


홈 헬스케어 일자리는 지금의 새로운 저임금 서비스 경제의 전형적인 일자리로 부상했다. 인구가 노령화되며 가정 내 헬스 케어의 수요는 급증했지만, 노동통계청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17년의 홈 헬스케어 노동자의 연소득 중위값은 그저 23,130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노동자들 절반은 겨우 먹고 살아야 하니까 공공 부조에 의존한다. 바네사는 몇 명의 복지 대상자들과 친해졌는데, 그들에게 그녀는 자신이 홈리스라고 털어 놓았다. 한 명은 이렇게 대답했다. "오 이런, 뭐라도 좀 도와주고 싶네." 바네사가 일자리 감독관에게 상황을 설명했을 때, 그는 혹시 그녀가 타임 오프를 원하는지 물어봤다. "아뇨!" 바네사는 말했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고, 남는 일 시간을 채우곤 했다. 감독관은 그때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서랍을 열고 그에게 50달러짜리 셸 주유 카드와 100달러 짜리 숍라이트 식료품점 카드를 내밀었다. 바네사는 도움에 감사했다. 그녀는 바야다가 관대하고 동정적인 회사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임금은 그녀가 일하던 삼 년 동안 그렇게 오르지 않았다. 바네사는 9815달러를 2015년에 벌었고, 12763.94 달러를 2016년에 벌었고, 10446.81 달러를 작년에 벌었다. 


연방정부는 바네사의 가족이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 년에 29,420달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추산한다. 바네사는 거기에 가깝지도 않지만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는 운이 좋은 편이다. 미국의 사회안전망은 이제 근로소득세액공제(현재 노동 중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현금 정책) 같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를 강력히 선호하고 있다. 지난 해, 바네사는 5000 달러 정도의 세금 환급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근로소득세액공제와 아동소득공제가 모두 포함된다. 제도들은 그녀의 소득 상승에 도움을 주었으나 빈곤선을 넘을 만큼은 아니었다. 만약 바네사의 경우와 같이 워킹 푸어가 논워킹 푸어보다 더 잘 산다면, 이는 그들이 일자리 그 자체를 갖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빈곤층들이 절실히 원하는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이 고용되어 있다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빈곤선 아래서의 불평등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불러 왔다. 워킹 푸어는 버려진 논워킹 푸어나 극빈으로 빠지게 된 불안정 노동자들보다 좀 더 많은 사회의 지원을 받는 것이다. 


가난이 특별히 사무칠 것 같을 때, 바네사는 중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던 셰리 스프라우스에게 전화를 종종 걸곤 한다. "셰리는 저와 비슷해요," 바네사는 말했다. "강하거든요." 셰리는 감정적 지지를 잘 해주고 판단에 균형감이 있어서 자주 친구들에게 인내심을 주고, 친구들은 그런 셰리를 고마워한다. 그러나 셰리도 두 딸을 고정 장애 수표[fixed disability check]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이다. 그리고 셰리의 집이 연방정부 바우처로 보조받고 있기 때문에, 이는 관리된다. "[제도의 조항] 8항 때문에, 같이 살 사람들을 구할 수가 없어요," 바네사는 말했다. "그래서 그것 가지고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 바네사가 홈리스였을 때, 셰리는 바네사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말고는 그다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바네사는 작년에 약간의 도움을 받았다. 막내인 타티야나가 학습장애 때문에 보족적 소득 보장[SSI]을 받은 것이다. 바네사는 장애인 보조금으로 매달 766 달러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서 카운티의 사회서비스 위원회가 바네사의 이런 추가적 소득을 알았기 때문에, 위원회는 바네사에게 그녀의 보족적 양육 보조 프로그램의 수혜가 544 달러에서 234 달러로 줄어들 것임을 통지하는 편지를 보냈다. 식량은 꾸준한 골칫거리였기 때문에, 이것은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다. 옥스팜 아메리카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이 분의 삼의 워킹 푸어들이 충분한 식량을 부담할 수 없다는 것에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바네사가 호텔에서 머물렀을 때, 그녀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전자레인지에 돌릴 수 있는 것들뿐이 없었다. 그녀 차에서 잠을 잘 때면 가족들은 그냥 조리된 레토르트 식사들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들은 보통 비싸기 마련이다. 가끔 바네사는 식품 잡화점에 들러 15 달러에 치킨 쌀 요리를 주문한다. 가끔 아이들은 배고픈 채로 등교한다. "전혀 먹지를 못 했어요," 어느 아침 바네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녁에 그녀는 푸드뱅크에 들르려고 했다. 샤말이 좋아하는 맥앤치즈가 아직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미국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그러니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일을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라는 국가 중추에 존재하는 생각이다. 18세기 버지니아의 농장주였던 윌리엄 버드는 "참을 수 없게 게으르고" "아이들 돌보는 것 외에는 나무늘보처럼 게으른" 빈민들에 대해 글을 썼다. 토마스 제퍼슨은 "일 없고 방종하게 지내며 시간을 낭비하는" 부랑아들을 구빈원에 가두는 것을 옹호했다. 20세기로 넘어가면, 배리 골드워터는 교육을 적게 받은 미국인들이 "낮은 지능이나 낮은 야망"을 드러낸다고 했으며, 로널드 레이건은 "복지 여왕(welfare queens)"을 비난했다. 2004년, 빌 오라일리는 빈민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너희들은 무책임하며 게으르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가난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신사 숙녀 여러분." 


미국인들은 빈민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들을 한다. 미국 기업 연구소(공화당의 정책 연구 기관 - 역주)에 의해 진행된 2016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거의 2/3의 응답자들이 대부분의 빈민들은 정규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2016년에 장애가 없는 노동할 수 있는 연령의 성인들 대부분이 노동력의 일원이었다. 삼 분의 일을 약간 넘는 응답자들은 복지 수혜자들이 생계를 꾸리는 것보다는 복지에 의존하는 쪽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가정은 미국적 현상이다. 사회학자 오페 샤론(Ofer Sharone)의 2013년 연구는 미국의 실업자들이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반면, 이스라엘의 실업자들은 고용 시스템을 비난한다고 밝혀 냈다. 미국인들이 담요를 뒤집어 쓴 홈리스를 볼 때 우리는 보통 그가 어떻게 실패했을까 궁금해한다. 만약 프랑스인들이 같은 사람을 본다면, 그들은 어떻게 국가가 그를 실패시켰는가를 궁금해한다.


만약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렇다면 해답은 일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것, 즉 사람들로 하여금 어디라든지 일할 수 있는 만큼 출근부를 기록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하지만 바네사를 생각해보자. 그녀의 사연은 좀 더 거대한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 즉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안전과 편안함에 대한 희망은 거의 없는 채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최근 수십 년간, 미국은 저임금만을 제공하고 혜택은 없으며 확실성도 거의 없는 나쁜 일자리들의 부상을 목격해왔다. 빈곤에 관한 한 일하고자 하는 의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일 자체도 더이상 해답은 아니다. 


18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서양에서의 빈곤은 지속 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을 위해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초기 근대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경제 이론인 중상주의는 굶주림이 일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임금을 낮게 유지한다고 보았다. 구호 대상자들은 감금되고 먹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고 요구받았다. 현재 시대에는 정치인들과 대중들이 노역과 땀을 빈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1980년대 보수주의자들은 푸드 스탬프에 노동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고자 했다. 1990년대에, 그들은 보조금으로 주택을 짓는 프로그램에 노동 조건을 붙이기를 요구하고 있다. 두 제안 모두 실패했지만 그러고 싶은 충동은 여전히 남아 있다. 


복지 수급에 노동 조건을 붙이는 것의 옹호자들은 1990년대 중반에 복지 개혁에서 기록에 남을 승리를 거두었다. 의장 뉴트 깅리치에 의해 주도되고 하원 공화당원들에 의해 제안된, 또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법에 사인한 복지 개혁안은 현금 부조에 시간 제한과 노동 조건을 붙였다. 복지 취급 건수는 1996년 1230만 건에서 450만 건으로 줄어들었다. "복지에서 노동으로" 정책은 사실 작동하는가? 빈곤을 줄이고 번영의 씨앗을 뿌리는 데에 중요한 성공을 거두었나? 별로 그렇지 않다. 캐서린 에딘과 로라 레인이 그들의 중요한 책 "Making Ends Meet"에서 보여주었듯이, 싱글맘들은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몰아 넣어지고 있으며 노동시장은 복지에 의한 것보다 더 돈을 많이 벌고 있다. 하지만 그러나 또한 싱글맘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나 교통 수단에 더 많은 지출을 쓰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적당한 수입을 무효화시킨다. 가장 성가신 것은 가장 필요한 수급자들에게 현금 부조를 보장하지 않았을 때 미국의 극한 빈곤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한 명당 하루에 2 달러나 그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수는 복지 개혁 이후 적어도 두 배 이상 올랐다. 거칠게 추산해 삼백 만 명의 아이들이—이는 시카고의 인구보다 많다—지금 이러한 상황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 그 아이들 중 상당 수가 일 년 중 때때로 일을 하는 어른들과 함께 산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의 가장 큰 사회안전망 프로그램 몇 개의 노동 조건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1월에 연방 정부는 메디케이드 수급자에게 노동을 요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열두 주들은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에 노동 조건을 붙이기 위해 연방 면제 규정(federal waiver)을 공식적으로 신청했다. 네 주는 이미 승인이 되었다. 6월, 아칸소 주는 새로운 노동 조건을 시행하는 첫 주가 되었다. 만약 모든 주가 아칸소 주처럼 메디케이드에 노동 조건을 규정한다면, 무려 사백 만 명이나 되는 미국인들이 건강 보험을 잃게 될 것이다.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기구들이 보족적 영양 부조 프로그램에서 주택 보조까지의 복지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새로운 기준을 제안하라는 행정 명령을 내렸다. 보족적 영양 부조 프로그램이 이미 몇 개의 요구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6월 하원은 신체가 건강한 성인들이 한 달 동안, 한 주에 적어도 20 시간을 (직업 훈련 같은) 노동 관련 활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일을 하지 않는다면 보족적 영양 부조 프로그램의 혜택을 일 년 전체 동안 삭감하는 농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의 농업법은 초당적 노력을 통해 이러한 규칙과 냉혹한 페널티를 삭제했는데, 이는 트럼프가 승인한 하원의 법안과 일대 결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의회의 예산국은 노동 조건 규정이 120만 명의 사람들이 식사하는 데 쓴 혜택을 삭감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다른 프로그램의 노동 조건 역시 비슷한 요구를 한다. 켄터키 주에서 제안된 메디케이드 조건안은 매달 일이나 일과 관련된 훈련을 80시간 이상 받아야만 충족된다. 자꾸 바뀌는 노동 시간, 보잘것없는 고용과 비자발적인 파트타임 노동이 특징인 저임금 노동 시장에서, 취약한 노동자들 대부분은 위 조건에 미달한다.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수입과 프로그램 참여 설문조사 데이터는 메디케이드를 지원한 노동자들 중에서 50%만이 적어도 한 달 동안은 80시간보다 적게 일했다고 보여 준다. 


7월, 백악관 경제 자문위원회는 전국 최대 규모의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노동 조건을 열렬히 지지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노동 시장의 노력에 대한 원조를 막는 "부정적 인센티브"를 선호했고, 저소득층 노동자의 세금 혜택과 같은 "긍정적 인센티브"를 깎아 내렸다. 왜냐하면 전자가 좀 더 싸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또한 미국의 복지 정책이 "자급자족의 감소"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과연 사실일까? 연구자들은 복지 의존에 대한 연구를 그 이슈가 공적 토의를 지배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추진했다. 연구자들은 많은 근거를 찾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거나 이혼 이후에 현금 복지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다시 주기적으로 복지를 받는다 하더라도 실업 수당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한 연구는 90%의 복지를 받는 젊은 여성들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2년 안에 수급을 중단했지만, 대부분은 미래 언젠가 다시 복지를 받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것이 한창 때일지라도 복지는 대부분의 수급자들에게 의존의 함정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그들이 일자리를 구하거나 가족의 위기 이후에 사람들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이언스 지의 1988년 리뷰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복지 제도는 일시적인 불행에 대한 보험으로 작용하므로 복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지는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이 가능한, 가난하고 일이 없는 성인들은 희귀한 것으로 남아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빈곤층의 1/3은 어린이들이며, 11%는 장년이고 24%는 노동하는 연령(18세에서 64세)이었다. 노동하는 연령대에 속하고 노동 시장과 연결되어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다수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이다. 대부분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 못하는데, 바네사처럼 가족을 돌볼 책임이 있거나 고용주가 더 일할 옵션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 경우 그들은 비자발적 파트타임 노동자라 불린다. 남은 노동하는 연령대의 성인들 중에서는, 12%가 장애 때문에 노동력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었고 (노동을 제한하는 연방 프로그램에 가입한 사람들 포함), 15%는 학생이거나 돌보미고 3%는 이른 은퇴자였다. 이러면 범주에 속하지 않는 2%의 가난한 사람들이 남는다. 즉, 가난한 사람들 중, 2%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노동 시장과의 연결이 끊긴 일하는 연령대의 성인이라는 것이다. 놀고 먹는 일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은 선거 사기와 비슷하다. 실제 생활보다 훨씬 더 크게 나타나 보이는 천민들인 것이다. 


바네사는 바야다에서 일하지 않을 때면 아이들을 쫓아다닌다. 바네사는 샤말을 제일 걱정한다. 샤말은 키가 180cm는 족히 넘는데, 그 덩치는 동네에서 샤말을 도구이자 타겟이 되게 했다. 작은 아이들은 그들이 말썽쟁이나 깡패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좀 큰 아이들은 그를 위협으로 본다. 작년, 샤말은 싸웠다는 이유로 두 번 정학당했다. 바네사는 벌로서 샤말의 소중한 아프로 머리를 밀도록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아이들의 돌발 행동을 좀 더 큰 맥락에 놓는다. "이 거리에 우리가 나앉아 있을 때 아이들 행동은 어떨가요?" 그녀는 좌절감 속에 내게 물었다. 한번 샤말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외부인들은 "아마도 내가 마약을 판다고 생각할 것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전 그냥 사람들 웃기고 노는 것 좋아하는 쿨한 사람이에요." 샤말은 셰프가 되고 싶어했다. 바네사는 만약 그녀가 샤말에게 경찰의 전자발찌를 붙여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추적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지만 샤말은 그 생각을 좋아했다. "만약 제 친구들이 저를 어딘가로 데려가고 싶어할 때면 도움이 될 수도 있지요," 그는 내게 말했다. 즉, 그 발찌가 친구들이 그에게 위험한 길을 가자고 꼬실 때 물러서기에 좋은 핑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거다. 


샤말과 타티야나의 아버지는 최근에 트렌튼으로, 바네사가 기억하기로는 "떠돌이들이나 쓰는 가방을 들고" 다시 옮겼다. 변덕스러운 양육비 지급과 와 척 E. 치즈[피자 체인점]로 한번 데려가는 것 빼고는 그는 아이들의 삶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탈리야의 아버지는 그녀가 1살일 때 감옥에 갔다. 탈리야가 8살일 때 아버지는 풀려났고, 그리고 몇 달 뒤 가슴에 총을 맞아 숨졌다. 가끔 바네사의 세 아이들은 서로 아버지를 운운하며 놀리곤 한다. "너 아빠 죽었어," 타티야나가 이렇게 말하면, "그래? 네 아버지 살아 있어도 뭐 해주는 것도 없잖아" 하고 탈리야가 받아친다. 


그러나 다른 때에 아이들은 아버지의 부재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서로 가볍게 안심시킨다. "아빠에게 쓸 시간이 없었어," 한때 탈리야는 마치 그것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나 된양 말했다. "내 진짜 친구들에게는 시간이 있어." 탈리야는 그녀의 막내 여동생을 바라보고 대답했다. "봐. 만약 착하게 굴면 아빠가 다시 돌아 오겠지."


바네사가 몇 시간 더 일을 했다면 지금처럼 그녀 가족을 관리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빨래를 하고, 치과 방문 약속을 조정하고, 섹스에 대해 아이들을 카운슬링해주고, 아이들의 재능은 뭐고 불편은 뭔지 깊게 고민하고. 하지만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아이를 돌보는 것을 일로 간주하기를 거부하곤 한다. 복지 개혁의 초창기에 몇몇 지자체는 복지 수혜를 받는 싱글맘들을 위한 쓸데없는 일들을 고안해 냈다. 한 극단적인 사례에서는, 수급자들은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을 각기 다른 색으로 분류하도록 되었다. 그 일이 끝나면 감독관이 다시 장난감들을 섞어버리고, 다음 아침에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게 아이들을 보호하고 먹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병들거나 죽어 가는 부모를 돌보는 것도 역시 일로 인정되지 않는다. 바네사는 아버지의 입에 비둘기콩밥[푸에르토 리코 요리]을 떠먹였고, 그의 약을 다시 채우고 요강을 비웠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일들을 바야다 노동자의 자격으로 사실상의 외부인들에게 할 때에만 그녀는 "일"을 하는 것이 되고 그때야 고려 사항이 된다. 에블린 나카노 글렌이 2010년 책 "돌보도록 강제되다Forced to Care"에서 말했듯이 산업화는 미국 가정들이 점점 임금에 의존하게끔 만들었는데, 이는 대개 여성들에게 속했던 과업(가사, 요리, 돌봄)을 "도덕적이고 영적인 소명"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글렌은 다음과 같이 쓴다. "남성의 임금을 받는 노동과 다르게, 여성의 무임금 돌봄은 동시에 귀중하고 가치 없는(priceless and worthless), 그러니까 화폐화되지 않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들이 풀타임으로 모성애의 이상에 맞춰 살 수 없기 때문에, 가난한 유색 인종 여성들은 결격이 있는 엄마나 돌보미로 보이곤 한다."


바네사는 그녀가 학업에서 부진했던 것—중학교 때는 좋은 학생이었으나, 고등학교 때 수업을 빼먹고 문제를 일으켰다—의 원인을 그녀의 부모님이 떠났다는 사실에 돌린다. 바네사가 지도와 훈육이 필요했던 중요한 시기에 아버지는 약을 했고 어머니는 항상 일을 하는 듯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바네사의 삶은 다음과 같은 작은 루틴을 따라 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 놓고, 일하고, 한 달에 천 달러보다는 임대료가 적은 아파트를 찾고, 아이들을 다시 데려 오고, 밥을 먹이고, 자는 것. 그녀는 돈을 담배나 술 포함해 다른 것들에 쓰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가 말하길 "내가 갖고 있는 이 작은 돈이라도" 아끼고자 한다. "그래야 우리가 집을 찾으면, 아이들에게 수건과 타월을 가져다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아마 바네사 같은 수백만의 워킹 푸어의 존재가 게으름과 빈곤은 서로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게끔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여러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신화들이 여러 집단적 반발의 힘에 의해 시들어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효과적인 공식에 압도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늘어나는 정치적 양극단화와 처방받는 약들의 가격이 오르는 것, 도시의 스프롤 현상이나 다른 많은 사회 병리 현상에 대해 확신에 차 할 수 있는 설명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왜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지 우리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우리는 바로 빠르게 임시변통의 설명을 내놓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국가적 수치가 너무 엄청나서 견디기 힘든 것이 될 터이다. 어떻게 빈곤율이 라트비아, 그리스, 폴란드, 아일랜드, 그리고 OECD의 다른 국가들보다 높은 국가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주장할 수가 있는 것일까? 바네사의 존재 자체는 일종의 판결이다. 하지만 이것을 설명하고 책임지려는 것 대신에,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을 탓함으로써 역할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여기 청사진이 있다. 첫째, 노동을 가난에서 벗어나는 티켓으로 간주하고 돌봄을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공식적 직장이 없는 싱글맘을 보고 그녀가 일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싱글맘을 찾아내고, 더 일하라고 요구해라. 사랑을 게으름인양 다뤄라. 다음으로, 빈민들로 하여금 그들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노동 시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해라. 그렇다면 당신이 그들에게 돈을 덜 써도 되고 병가나 건강 보험을 보장하지 않아도 될 것임을 확신해도 좋다. 근로소득 세액 공제 및 푸드 스탬프와 같은 프로그램에 돈을 대는 미국 납세자가 곧 개입할 것이다. 빈곤율이 정체하는 동안 복지 지출이 증가하는 것을 지켜보라. 이제 당신은 유리한 패를 쥔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회 안전망 자체를 비난함으로써 책임을 져라. 그리하여 정치가들은 빈민들의 구호에 비현실적인 노동 조건을 붙이는 것처럼 가족들의 구호를 부정하는 새 방법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원들은 공화당원들이 주장하는 노동 조건들을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원들은 아직, 이렇게 비열한 정치를 조장하는 지금의 빈곤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에 도전한 적이 없다. 자유주의자들은 '받을 만한 자격이 되는 것'(deservedness)이라는 미국의 도덕적 수사에 반대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제시하는 대신 일반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였고, 심지어는 저임금 일자리를 빈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 원조라면 대중들이 그것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며 그것을 포용하기까지 했다. 진보적 운동에 충실한 사람들조차도 경제적 번영을 풀타임 노동자들에게만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한때 그를 보러 온 민주당원들의 긴 줄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주 40시간이나 일하는 사람이라면 빈곤에 처해 있으면 안 된다." 그렇다. 하지만 바네사와 같이 20시간이나 30시간 일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보수주의자들이 빈곤 논쟁의 언어들을 정하는 것을 리버럴들이 허용했기 때문에, 지금 리버럴들은 (일자리 보장 정책jobs guarantee 같은) 완전고용 국가나 (보편적 기본소득 같은) 포스트노동 사회를 꿈꾸는 급진적인 해법에 대해 논쟁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이 중 어느 계획에서도 조만간 전국적으로 시행될 수 있다는 아주 희미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바네사와 그녀 같은 수백만에게 좋지 않다.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유토피아적 해결책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빈곤 문제의 중요성을 무시한다. 식량을 구할 수 없고 집값을 댈  수 없으며 실직 상태에 있는 가족들을 돕는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은 매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빈곤선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SNAP (The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은 그 자체만으로 8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매년 빈곤에서 끌어내고 있다. 2015년의 연구에 따르면 연방 세제 혜택 및 이전이 없이는 깊은 빈곤 상태(빈곤 기준치 절반 아래)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의 수가 5퍼센트에서 거의 19퍼센트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효과적인 사회 이동성 프로그램이 옹호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붙어 있는 끔찍한 노동 조건이 제거되어야 한다. 


워싱턴은 더 취약한 노동자를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워싱턴은 고용주들이 생활 임금이나 고용 안정을 고용주들에게는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일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이 복지가 아닌 가난한 일자리인 노동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현 빈곤 문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연방 및 주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바네사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시청 사람들의 절반은 트렌턴에도 살고 있지 않아요," 바네사는 한때 허둥지둥대며 나에게 말했다. "그들은 여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죠." 한편, 이 동네의 의회는 기록상 가장 부유한 의회로, 13명의 의원 중 한 명이 1% 부유층에 속한다. 그런 높은 지위에서는 빈곤이 덜 골치 아프고 작은 문제로 보이고, 노동이 뭔가 만족스럽고 가장 큰 해결책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줄여야 해결책이 같이 줄어든다. 거대한 문제에 작은 해결책들만을 적용하면 효과가 없다. 그리고 약한 빈곤 퇴치 계획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그냥 그 문제에 대해 돈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싸구려 해법은 문제의 격을 떨어뜨리기만 할 뿐이다. 


이번 달, 나는 매사추세츠의 한 대학에서 1학년 우수 학생들과 저녁을 먹었다. 몇몇은 우파였고 나머지는 좌파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어떻게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곤궁의 책임을 묻지 않는 방식으로는 빈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뜻이 같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노동윤리가 없어요,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은 좀 더 좋은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그러려는 근성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한 학생이 "The Pursuit of Happyness"라는 영화—윌 스미스가 홈리스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 초인적으로 직장에서 노력하는—를 꺼냈을 때 술이 없었다는 사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학생은 상원의원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는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 참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젊은 친구가 자신을 윌 스미스와 동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그의 부모님이나 목사들, 선생들, 카운슬러들이 동기 부여를 위해 "공부 열심히 하고, 충실히 살고, 꿈을 크게 가져야 성공한다"고 말한 것이 그의 인생관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게는 빈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빈곤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말한다.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미국에서는 누구도 빈곤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면 된다. 누구든, 혼자 힘겹게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이든, 이전에 복역했던 범죄자든, 젊은 헤로인 마약 중독자든, 연금을 낭비하는 퇴직한 버스 운전수든 빈곤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열심히 노동하는 것을 존중한다면, 물론 그것을 보상할 일이다. 노동의 가치를 가난한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커져 가는 불평등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정당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지금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열심히 일했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바네사 역시, 지금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오기까지 열심히 일한 것이다. 




쿤데라, 『정체성』.

2018. 9. 29. 15:14

밀란 쿤데라, 『정체성』. 


소설에 대한 두 가지 은유를 상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거울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물이다. 전자의 시각으로 소설을 봤을 때, 소설의 미덕은 현실에 대한 충실한 재현이다.[각주:1] 소설은 당대 사회를 반영해야 하고 인물들의 심리와 행위들은 납득 가능한, 유사-과학적인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물론, 거울 하나로 세계를 모두 비출 수 없기 때문에 소설가는 취사선택과 약간의 변형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류의 생각은 오랫동안 소설가들을 지배해 왔으며 우리가 소설에 대해 논할 때 흔히 드는 개연성이라든지 핍진성(Verisimilitude or truthlikeness)은 바로 이러한 소설관을 가졌을 때 그럴듯한 것이 된다 하겠다.  

그럼 다른 하나는? 건축물은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 낸 인공적인 것이다. 소설 역시, 소설가가 자신의 사유를 표현하기 위해 구축한 무엇이다. 여기서 소설가(건축가)는 자연을 모사할 수는 있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소설은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꼭 따를 필요가 없으며, 심지어 저자는 인물들의 입 뒤로 숨지 않아도 된다. 이런 식으로 볼 때 많은 실험적인 기법을 사용한 소설들은 자연을 충실히 비추는 거울이라기보다는 목적이야 어쨌든 소설가들의 생각을 독창적으로 반영한 건물들로 생각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 역시 분류하자면 후자의 소설관을 가지는 작가로, 따라서 우리가 그의 소설을 읽을 때 굳이 스토리라인이나 내러티브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사실, 그는 사유를 즐기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특정한 사유로부터 출발한다. “캐릭터는 살아 있는 존재의 시뮬레이션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상의 존재죠. 실험적 자아입니다. 이런 점에서 소설은 자신의 시초[돈 키호테]와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돈 키호테를 살아 있는 존재로 실제 생각하기는 쉽지 않죠.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서 좀 더 생생한 것은 어떤 캐릭터인지요?”[각주:2]  

늙은 자신의 육체를 마주한 샹탈은 소설 내내 다음과 같은 역설에 시달린다. (혹은, 우리는 작가의 그러한 사유가 샹탈을 잉태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녀는 두 가지 시선을 받고 있는데, 하나는 장마르크가 그녀에게 던지는 사랑의 시선이다. 이것은 개별성과 특수성, 대체 불가능함을 대표한다.[각주:3] 다른 하나는 익명의 대중이 그녀에게 던지는 욕망의 시선인데, 보통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니 여기에는 개별성이 무화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샹탈은 샹탈이어야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육체적으로) 매력적이라면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그녀가 늙었다는 사실이고,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게끔 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랑만으로도 살 수 있지 않은가?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을진데, 내가 시들어버린 장미꽃이 되면 관심을 거두어 버릴 누군가들의 욕망이 무슨 필요가 있다는 것일까. 오히려 사람들은 보통 애인이 있는 사람에게 던지는 누군가의 추파를, 그들의 신성한 언약의 영토를 무례하게 침범하는 행위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쿤데라는 그렇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듯한데, 왜냐하면 “사랑의 시선은 외톨이로 만드는 시선이기 때문이다”(45쪽). 장마르크의 시선은 샹탈을 그녀가 딛고 있는 지반으로부터 잠시 들어 올려 그녀와 그만이 존재하는 폐쇄적인 공간 속으로 그녀를 위치시킨다. 한편, “그녀 육체로 쏟아지는 시선”은 “그녀를 인간 사회에 머무르게” 한다(46쪽). 결국 그녀는 이 두 시선들 모두를 포기할 수 없고,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그녀는 두 개의 자아--일터나 공원에서 공적 인간으로서의 자아와 장마르크와 마주할 때 사적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갖고 사는 셈이다.  

그래도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 아닐까 다시 반문할 수 있지만 반대로 샹탈과 장마르크의 사랑이 자리잡은 공간의 취약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녀는 그녀가 “연상의 여자였기 때문에 약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46). 그녀는 나이가 많고 결혼한 적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볼 때 이것은 연애 시장에서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녀가 장마르크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바로 우월한 경제력이다(그녀는 장마르크에 비해 다섯 배나 더 많이 벌고, 아파트도 그녀의 소유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역시 그녀가 가면을 쓰는 대가로 얻어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위의 조건 때문에 장마르크는 불안을 느낀다. 그녀가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그리고 실제로 변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갖는 다른 자아(가면)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  

가족이라는 전통적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온전한 개인성을 되찾기 위해 가면을 써야 하는 샹탈과는 대조적으로, 장마르크는 가면을 써야만 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오히려 가면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이득--가면은 회사, 사교 클럽 등의 여러 가면 무도회장의 입장을 가능케 하는 티켓이 아닌가--을 포기한다. 이러한 포기로 인해 그가 샹탈에게 가질 수 있는 협상력은 제한되고(그는 육체를 불신하고 혐오하여, 의사의 꿈을 포기하고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한다) 우정을 ‘배반’한 오랜 친구와도 그럴듯한 관계를 맺는 데에 실패한다. 그가 자신에게 진실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커서, 삶의 “변경”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샹탈에 기대야만 한다.  

장마르크는 노화에 대한 샹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녀를 사회로 붙잡아 두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45-6쪽) 하에 자신의 정체성을 쪼개 시라노로서 편지를 보낸다. 이러한 행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하고 또 샹탈의 컴플렉스(자신이 나이 들었기 때문에 남자와의 관계에서 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극하게 되어 결국 그와 샹탈이 갈라서는 계기가 된다. 샹탈이 장마르크를 포기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에게는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을까?  

소설에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제시된다. 연인이 보내는 독특하고 무엇으로도 환원 불가능한 시선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샹탈이 할 수 있는 것은 가족으로 복귀하거나 난교 파티장에 가는 것이다. 사실, 이 두 목적지는 개인적, 독립적 정체성의 포기를 감수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샹탈이 전 남편과 재회하고 아이를 다시 갖는다는 것은 세계와 화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아기를 갖고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이 세계를 경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67쪽). 난교 파티장에 가는 것 역시 자신의 육체를 수많은 익명적 시선에 맡기고 원래는 애인에게 바쳐졌던 자신의 유일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것은 위의 두 가지 가능성 모두 현대적 삶의 조건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사실, 두 가지 가능성은 모두 닮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역사적 연원 역시 비슷하다고 하겠다. “폐허 위에 희망의 황금빛 오줌을 뿌리는 리틀 보이라는 인물로 의인화되어 히로시마 상공을 날아다닌 것은 바로 생명 그 자체란 말이지. 그렇게 해서 전후 시대가 개막된 거고”(37쪽). 전후 시대 이후 고도의 물질적 성장에 힘입어 새로운 계층으로서 ‘청년’이 발견되었고, 이들은 68혁명을 통해 역사의 주체로 바로 서서 성해방을 부르짖었다. 성해방은 곧 생명의 찬미와 같다. 여기서 바로 난교 파티는 삶과 젊음에 대한 순진한 긍정의 태도로 해석된다. 왕년에 트로츠키주의자였던 샹탈의 상관 를르와는 “섹스란 씁쓸한 질투심을 자아내는 젊고 건장한 육체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한다(61쪽). 그에 따르면, 에로티시즘(59쪽)은 늙은 엄마와 아이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샹탈의 집에 침입한 시누이처럼 가정을 이루는 것은 역시 아이(삶)를 찬미하는 것에 다를 바 없으며, 난교 파티장과 가족 역시 “타액 공동체”(62쪽)라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사태가 이러하기 때문에 개인성, 혹은 정체성의 발견은 더욱 소중한 것이 된다. 오직 육체에만 집중되는 군중의 시선과 마치 시위를 하듯 신음 소리를 내는 시누이(128쪽)는 각자의 개별성을 무화시키는 소설 첫머리에서 나오는 CCTV의 시선과 닮아 있다. “우리 발걸음 하나하나가 통제되고 녹화되는 이 세계 ... 에서 어떻게 감시에서 벗어나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8-9쪽). 따라서, 소설의 마지막 샹탈과 장마르크가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대화조차 사라진 풍경은 아름답다. 두 커플은 CCTV의 시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서로 같은 히스테리적 꿈을 꾸는데, 이 프로이트적인 꿈이 지나간 후 둘은 같은 대답을 발견한다.[각주:4] “이 세상이 아무리 경멸할 만한 것일지라도 그들에겐 이 세게가 필요해.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 어떤 사랑도 침묵에 배겨 날 순 없어”(92쪽). 소설의 마지막 장은 여기에 대한 대답이다.  



  1. “그런데 독자여, 소설이란 큰길가를 돌아다니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때로 그것은 푸른 창공을 비춰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도로에 파인 수렁의 진흙을 비춰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여러분은 채롱에 거울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다니! 그의 거울이 진흙을 비추면 여러분은 그 거울을 비난한다! 차라리 수렁이 파인 큰길을, 아니 그보다도 물이 괴어 수렁이 파이도록 방치한 도로 감시인을 비난함이 마땅할 것이다”(스탕달, 『적과 흑』 2권, 민음사, 162쪽). [본문으로]
  2. Milan Kundera, The Art of the Novel, trans. by Linda Asher. [본문으로]
  3. 참고로, 이러한 시선은 장마르크의 우정관과 조응한다. 장마르크는 우정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관계나 뒤마의 소설에서 나오는 총사들의 관계로 상상한다. 그들에게 있어 우정은 친구의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계산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본문으로]
  4. 재미있게도 이 소설의 구도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Eyes Wide Shut (1999) - 원작은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 - 과 매우 닮아 있다. [본문으로]

“우리가 사회 세계를 생각할 때 갖게 되는 어려움과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전 구성된 것의 힘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다. 즉 그것이 사물과 정신 속에 새겨져 있으면서, 정의상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간과되는, 자명성의 베일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단절은 실제로 우리 시선의 전환을 요구하며, 입문 철학자들이 간혹 말했던 것처럼, 사회학의 가르침은 먼저 ‘새로운 안목을 부여’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새로운 시선’, 사회학적인 눈을 생산하는 것이 그 임무이다. 그리고 이것은 진정한 개종, 회심, 정신혁명, 사회 세계에 대한 총체적 시각의 전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397쪽) 


393쪽에서 부르디외는 시쿠렐의 사례를 소개한다. 즉 그는 오랜 시간을 LA의 빈민 청소년과 어울리며 “비행의 공식적 표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부르디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학은 전성찰적인 “사회 세계에 대한 표상 생산과 그것의 조작 작업”을 폭로하고 그것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들이 여러 행위자들 - 정부, 여론조사 기관, 이익 단체들 - 에 의해 조작되어 있고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더욱 안 좋은 것은 우리가 그 언어들을 무비판적으로 ‘사회학적 지식을 생산’하는 데에 사용한다는 - 즉 그 표상이 어떤 것을 대표하는지 성찰하지 않는 - 데에 있다. 따라서, “범속한 상식, 혹은 범속한 형태의 학문적인 상식과 단절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단절의 수단들과도 단절해야 한다. 그것들은 스스로 그에 맞서 구성되었던 바로 그 경험을 부정하기 때문이다.”(396쪽) 


따라서 부르디외를 받아들이자면 모든 사회학은 우선 지식사회학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물들을 “근본적 의심”의 태도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사회학의 과업은, 무엇이 정당하고 공평무사한 것으로 여겨져 온 역사의 과정에서 파헤칠 수 있는 “특별한 상징투쟁”을 드러내고 끝내는 그 상징투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이데올로기가 패배당했다. 그들의 교의가 결국 환상임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길 그만두었다. 한 예로,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점점 더 빈곤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었다 ; 그러다 어느 날 유럽의 노동자들이 모두 자동차로 직장에 나가는 것을 알고는 현실이 속임수를 쓴 것이라고 부르짖고 싶었다. 현실은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강했다. 그리고 정확히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마골로기가 현실을 능가했다 : 이마골로기는 현실보다 훨씬 강하며 게다가 현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인간에게, 모라비아의 한 마을에서 살며 모든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던 나의 할머니에게 그것이 표상한 바를 표상하길 그만두었다: 즉 어떻게 빵을 굽는지, 집은 어떻게 짓고 돼지는 어떻게 잡아 어떻게 그것을 훈제하는지, 털이불은 무엇으로 만들고 신부님은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선생님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 그리고 10년 이래로 그 지역에 몇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는지를 할머니는 매일같이 마을주민들과 마주치며 알았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현실을 자신의 개인적인 통제하에 두고 있었으며, 따라서 집에 먹을 양식이 없는데도 모라비아의 농사가 번성하리라는 생각은 절대 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파리에서 같은 층에 사는 나의 이웃은 사무실에서 다른 동료 직원을 마주보고 앉아 하루 중 가장 밝은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기 위해 텔레비전을 켠다. 그리고 아나운서가 최근의 여론조사를 해설하면서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에게 안전에 관한 한 프랑스가 유럽 챔피언이라는 정보를 알리자(나는 최근에 이 여론조사를 읽은 바 있다), 매우 기뻐하며 그는 샴페인 병을 딴다. 그러나 바로 그날, 자신이 살고 있는 골목에서 세 건의 강도사건과 두 건의 살인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여론조사는 이마골로기적 권력의 완벽한 도구이며, 이 권력이 대중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것은 여론 조사들 덕분이다. 이마골로그는 사람들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프랑스 경제는 어떻게 굴러갈까? 프랑스에 인종차별주의가 있는가? 인종차별주의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는? 헝가리는 유럽에 속하는가 폴리네시아에 속하는가? 세계의 모든 정치가들 중 가장 섹시한 이는 누구인가? 오늘날에 있어 현실이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한 그런 대륙이므로, 여론조사가 일종의 상부 현실처럼 되어 버렸다; 달리 얘기하자면 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론 조사는 진실을, 더군다나 사상 유례없는 가장 민주적인 진실을 창출할 임무를 지닌 영구석을 차지한 국회이다. 진실의 국회와 대립 상황에 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에 이마골로그들의 권력은 진실 안에 영원할 것이고, 그렇기에 나는 인간적인 모든 것은 소멸하기 마련임을 알면서도 과연 어떤 힘이 이 권력을 깨뜨릴 수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밀란 쿤데라, 『불멸』)